1. 김태훈, 글쓰고 말하는 사람
김태훈의 로그라인은 팝 칼럼니스트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아직도 그를 이동진 평론가와 출연했던 SBS 영화 정보 프로그램 '접속! 무비월드'의 ‘영화는 수다다’의 진행자로 기억한다. 김태훈은 원래 팝 음악에 관심이 많았고, 유니버설 뮤직에 다니던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다. 퇴사 이후 팝 칼럼니스트와 연애 카운슬러로 활동하면서 그의 칼럼들이 각종 매체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지상파와 케이블 및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면 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는 글 쓰고 말하는 사람이다. 지금은 KBS 아침 라디오 <김태훈의 프리웨이> 진행자로 매일 아침 출근길을 책임지는 그는 DJ, 영화제의 MC로 활동하기도 하고, 그리고 최근에는 거의 직업이 되어버린(?) 서퍼의 전문성을 살려 서핑 방송에도 출연 중이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년, 나는 그와 오디오 기반의 소셜미디어에서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고, 가끔 만나면 나는 그를 “21세기 르네상스 맨”이라고 부른다. 음악과 영화에 진심이고, 쓴소리를 아끼지 않지만, 애정만은 가득한 사람. 그에게 한 편의 인생 영화를 추천해달라고 부탁했고, 그는 서슴없이 ‘카사블랑카’를 선택했다.
2. 카사블랑카, 사랑과 희망의 갈림길


1942년, 제2차 세계대전의 한복판에 위치한 카사블랑카. 프랑스령 모로코의 이 도시는 추방당한 반나치 세력과 독일군의 손에 쥐어져 있다. 이곳에서 미국인 사업가 릭 블레인은 독일군에게 쫓기는 자유 프랑스 운동가와 사랑에 빠진다. 릭은 그녀를 사랑하지만, 그녀를 도우려면 독일군을 도와야 하는 상황에 부닥친다. 영화는 사랑과 희망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다룬 작품이지만, 그 주제를 다루는 방식은 매우 독특하다. 영화는 릭 블레인이라는 인물을 통해 사랑과 희망이라는 두 가지 가치가 충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릭은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희생하고 싶지만, 동시에 자신이 믿는 정의를 지키고 싶어 한다. 이 두 가지 가치 사이에서 흔들리는 릭의 모습은 관객들에게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카사블랑카는 제작 당시 전쟁을 독려하는 일종의 프로파간다 영화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영화의 상당 부분이 레지스탕스 활동을 언급하고 있고 결말에서 보이는 주인공의 행동도 사랑 대신 전투를 독려하는 듯이 묘사된다. 프로파간다는 유대계 미국인 학자로 홍보(PR, Public Relations) 분야의 선구자였던 에드워드 버네이스가 남긴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버네이스는 라이프지에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미국인 100명 중 한 명이다. 그는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조카로, 선전이 잡부의 일로 취급되던 시대에 세계 최초의 PR 에이전시를 세운 인물이다. 그를 열렬히 추종한 사람이 바로 나치의 괴벨스다. 그는 인간의 심리, 그중에서도 집단 심리를 깊이 연구하였는데, 이를 마케팅에 접목한 것이 바로 선전(Propaganda)이고, 이를 체계화한 것이 PR(Public Relations)이었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연방 공보위원회(CPI)에 발탁되어 독일 등에 맞서 뛰어난 선전 전략을 펼치기도 했지만, 과테말라 민주 정부의 전복에도 큰 역할을 하면서 평가가 매우 극단으로 나뉘는 인물이다. 이 영화도 극단이라는 키워드와 이별할 수 없는 작품이다. 그럼에도 영화는 로맨스와 스릴러가 잘 결합한 탄탄한 스토리, 개성적인 캐릭터, 배우들의 명연기가 한데 어우러져 87만8천 달러 제작비로 3700만 달러의 이익을 거두었다. 이제는 누구도 이 영화를 프로파간다 영화로 기억하지 않는다. 흔히 비평가들에 의해 역사상 최고의 영화 중 하나로 선정되곤 하며, 회자되는 명대사도 많다. 불후의 명작으로 꼽히는 , 작가주의를 지향하는 앤드류 새리스는 이 작품을 '할리우드 사상 최고의 우연'이라 칭했다. 우연으로 만들어진 걸작, 흑백 영화에 스며든 굵은 대사가 기억에 남는 이야기.
3.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현실과 이상의 갈등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은퇴작이라 알려진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얼마 전 개봉한 애니메이션 영화다. 영화는 전쟁으로 어머니를 잃은 한 소년이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영화는 삶의 의미와 가치를 탐색하며,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선 굵은 질문을 던진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일본. 마히토는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의 재혼으로 새로운 가족과 함께 살게 된다. 그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현실에 좌절한다. 그러나 왜가리를 만나 신기한 세계로의 여행을 떠나면서, 세상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되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기로 결심하는데... 영화의 장르는 판타지 어드벤처에 속하지만, 관객이 흔히 기대하는 액션 활극 스타일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이상한 일이 계속해서 벌어지는 고전적인 이세계물에 가깝다. 또한, 작품 전반적으로 스릴러적 연출도 많이 보인다. 이러한 특징은 기존 미야자키 하야오와 지브리 작품들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더 많이 보일 것이다. 따라서 일반인이 입문용으로 가볍게 볼 수 있는 작품은 아니라는 의견이 많다. 또한, 이 작품은 평소 우리에게 익숙한 고전적인 지브리 스타일의 영화라기보다 하야오 개인의 자전적인 회고록 느낌이 매우 강하다. 그 때문에 관객들 사이에서 평가가 극단적으로 엇갈리고 있다. 평론가들조차 한번 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이라 평가하고 있고, 심지어 감독 본인조차 "나도 잘 이해가 안 된다”라고 인터뷰했다. 이 작품의 해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하는 청춘의 성장담으로 보는 관점이다. 다른 하나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보는 관점이다. 어떤 해석이 옳은지는 관객의 몫이다. 그러나 이 작품이 단순한 판타지 모험물이 아니라,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있는 작품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결국 인생은 갈림길과 갈등의 연속이라는 메시지. 아직 현재 진행 중인 영화, 감독의 은퇴도 불분명한 이야기.
4. 직시와 추구의 끝없는 충돌, 그것이 인생
두 영화는 서로 다른 시대와 장르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삶은 갈림길의 연속이라는 질문을 함께 던진다. <카사블랑카>가 사랑과 희망이라는 보편적인 가치가 충돌하는 모습을 통해 삶의 선택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면,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하는 소년을 통해 삶의 목표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두 영화는 모두 전쟁을 배경으로 한다. 우리는 지금도 전쟁을 겪고 있다. 지구를 캐릭터로 본다면, 전쟁은 정말 인생에서 지우고 싶은 플롯 아닐까? 전쟁이 현실이라면 직시하는 일은 의미가 있을까? 전쟁이 이상이라면 추구해야 할 가치가 있을까? 두 영화 모두 보고 나면 고민이 해소되기보다 고민이 가중되는 작품이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지금 고민 많은 사람이 더 좋아할 수 있는 작품이다. 더 큰 고민은 작은 고민을 줄여줄 수 있는 강력한 방법이니까.
부딪히고 충돌하며 살다가 가는 것, 그것이 인생. 정답은 시험지 위에 있는 글자와 종이처럼 단순한 것. 끝.
김우정의 '영화 라면'은 각계각층의 명사가 추천하는, 반복해서 보고 싶은 인생영화와 함께 최신 작품을 버무려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이 코너는 영화 한 편을 심층 분석하는 비평이나 최신 영화를 평가하는 평론은 아닙니다. 그저 한 번 사는 인 생의 서로 다른 가치를 영화 속에서 찾고 싶고, 라면을 먹은 것처럼 잠시나마 사소한 행복을 선물하고 싶을 뿐입니다. 다음 화는 뮤지컬 배우 장재승의 ‘조커'가 이어집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