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날수록 그 위대함을 실감하게 만드는 거장들이 있다. 보통 이런 작품들은 후대의 영화를 관람할 때마다 어김없이 다시 소환된다. 가령 여전히 서부극과 황야의 무법자를 다루는 모든 작품에는 존 포드의 모뉴먼트 밸리를 연상할 수밖에 없다. 관음증과 서스펜스를 자아내는 작품에는 히치콕의 이름이 빠질 수 없으며, 행복했던 순간에서 일순간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절절한 멜로 드라마는 더글라스 서크의 작품을 경유할 수밖에 없다. 현대 영화의 어떤 장르적인 특성을 영화사의 위대한 거장과 연결 짓는 ‘계보학’ 놀이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려는 이름은 특정한 관념의 측면에서 후대의 모든 영화감독이 벗어날 수 없는 존재다. 그는 모든 창작자가 마주하는 방황의 고통을 누구보다 날카롭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이탈리아의 작은 동네 리미니 출신의 한 사람이 불현듯 뇌리를 스칠 것이다. 코엔 형제의 <바톤 핑크>(1991)부터 최근 개봉한 크리스티안 펫졸트의 <어파이어>(2023)까지 창작자의 무능력한 방황을 다루는 모든 작품은 페데리코 펠리니의 <8과 1/2>(1963) 속 무의식의 세계에 큰 빚을 지고 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 영화 부문에서 네 편의 영화를 수상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던 이탈리아의 거장 페데리코 펠리니는 앞서 언급된 거장들처럼 영화 만들기라는 무의미한 고통을 가장 탁월하게 표현했다.
리미니의 촌뜨기에서 로마의 황태자로
오손 웰스는 피터 보그다노비치와의 인터뷰에서 페데리코 펠리니에 대하여 “Small town boy”(촌놈)의 영화라는 코멘트를 남겼다. 그 당시 펠리니의 영화는 주로 ‘로마’를 경유하여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화는 촌뜨기의 시선이 지닌 순수함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와 관련한 내용은 유운성 평론가의 ‘펠리니의 모더니티에 대한 의문’이라는 글을 참고하면 더 좋다) 오손 웰스가 펠리니에 대해 칭한 “스몰 타운 보이”라는 말은 그의 일생과 작품 세계를 살펴보는 중요한 단어가 된다. 펠리니는 리미니라는 소도시에서 태어나 휴양지의 풍경 속에서 로마를 동경했던 유년기를 보낸다. 그의 후기작 중 하나인 <나는 기억한다>(1973)를 참고한다면, 펠리니의 유년 시절 로마와 현대 문명에 대한 동경 어린 시선을 느낄 수 있다.
펠리니의 첫 출발은 삽화가와 저널리스트였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영화 제작에 참여하며 그의 영화 인생은 시작되었다. 로셀리니의 조감독과 각본을 담당한 이후 1950년 그는 알베르토 라투아다와 공동 연출한 데뷔작 <청춘군상>(1950)으로 본격적인 자신의 이름을 알린다. 그가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작품은 <길>(1954)로 그는 첫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을 거머쥔다. 이후 <카비리아의 밤>(1956)을 통해 2연패에 성공한 그는 황금종려상을 받은 <달콤한 인생>으로 자신의 영화 인생의 변곡점을 맞이한다. 방황하는 청춘의 군상과 젊은 연인들의 여로를 다뤘던 초기 작법에서 벗어나 꿈과 환영의 비정형적인 연출을 택한 것이다. 그 이후 공개된 <8과 1/2>는 후대 감독들에게 창작이라는 무기력한 세계를 그리는 방법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70년대 중반까지 그는 <8과 1/2>, <나는 기억한다>를 통해 두 차례 외국어 영화상을 추가로 수상한다. 1990년도 <달의 목소리>로 유작을 남기기까지 28편의 영화를 연출하며 이탈리아와 로마의 황태자로 자신의 이름을 남기게 된다.
<비텔로니>
1954년 <길>이 전 세계에 그의 이름을 알리는 계기였다면, <비텔로니>(1953)는 유럽 영화계에서 그의 이름을 주목하게 만든 작품이다. 오히려 그의 영화 <길>만이 펠리니의 영화 중에서 유일하게 네오리얼리즘의 색채가 묻어나온 작품일 뿐, 그는 네오리얼리즘와는 다른 영화를 만들어왔다. 작은 해변에 사는 그저 빈둥거리며 삶을 허비하기 바쁜 다섯 청년의 패기와 방황을 그려낸 <비텔로니>야말로, 앞서 언급한 ‘촌뜨기’ 펠리니의 정수를 보여준다. 패거리들의 배회와 유흥, 그리고 로마를 향한 동경과 두려움의 시선은 끝내 청년들의 실패로 이어진다. 꿈도 희망도 없는 시골의 일상을 그린다는 점에서 현실의 리얼리즘을 다룬 것이 아닌가 싶겠지만, <비텔로니>의 매력은 기차에 오르고 내리는 로마와 소도시의 지역적인 관계에 있다. 로마의 호색한들과 차원이 다른 순박함이 이 천치들에게는 있다.
<달콤한 인생>
페데리코 펠리니가 자의식을 직접 인물로 투영하기 시작한 첫 작품을 꼽자면 바로 <달콤한 인생>이다.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가 연기한 삼류 신문사의 가십을 쓰기 바쁜 저널리스트 마르첼로는 펠리니의 젊은 시절 그가 언론계에 입성하여 로마로 발을 들였던 시절을 떠오르게 만든다. <달콤한 인생>은 사건의 중심 따위는 부재한 영화다. 오로지 마르첼로와 마르첼로의 곁을 머무는 사교계의 여성들뿐이다. 로마에는 사치와 방탕이 가득하고, 이런 환락의 로마에는 마치 유령과 환영이 기이하게 서려 있다. 환각 상태에 빠져 호접몽을 꾸는 듯한 마르첼로의 여로에는 중간중간 침묵과 단절이 유령의 등장을 대체한다. 펠리니가 그린 로마는 불연속적인 공간이다. 웰스의 지적처럼 로마 안이 아닌 로마 밖의 사람만이 이 파편화된 로마에 매료되는 것이 아닐까? <달콤한 인생>은 펠리니의 영화를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관문이 된다.
<8과 1/2>
대부분의 사람들은 입을 모아 펠리니의 최고작을 <8과 1/2>로 꼽는다. <달콤한 인생>에 이어 다시 한번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가 연기한 감독 귀도 역은 펠리니의 자의식이 투영된 캐릭터이며, 제목 <8과 1/2> 역시 여태 그가 연출한 8편의 장편과 공동 연출작 1/2를 의미한다. 귀도는 어느 날 자신이 추락하는 꿈을 꾸고, 요양을 핑계로 온천을 전전하며 여러 여성과 밀회를 즐긴다. 요양 차 도망친 로마가 아닌 곳에서 그는 자신의 유년기부터 지금 곁에 있는 신경질적인 아내까지 자신을 둘러싼 여성에 대한 기억으로 허덕인다. 영화를 끝내 만들 수 없는 무기력한 창작자에 대한 오랜 꿈의 세계를 내보인 <8과 1/2>는 어쩌면 펠리니의 회고록 같은 그의 에세이 영화의 정점과도 같은 작품이다. (이후 이 영화를 토대로 뮤지컬 <나인>이 탄생했다)
<영혼의 줄리에타>
페데리코 펠리니의 첫 컬러 영화인 <영혼의 줄리에타>는 마치 <8과 1/2>을 아내의 관점에서 그린 작품 같다. <8과 1/2>의 귀도는 영화를 만들지 못하고, 자신의 곁을 머문 여성들의 왕으로 군림하고자 하는 망상 속에서 허덕인다. <영혼의 줄리에타>는 반대로 바람기 가득한 남편 조르지오(마리오 퍼스)에 대한 걱정으로 이따금 환상에 사로잡히는 중년의 줄리에타(줄리에타 마시나)의 이야기를 다룬다. 줄리에타는 남편이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르고, 그녀는 매혹적인 남녀의 육체로 가득한 꿈의 세계로 진입한다. <백인추장>(1952)부터 <길>, <카비리아의 밤>(1957)까지 펠리니의 페르소나이자 그의 오랜 동반자였던 줄리에타 마시나가 맹활약한 <영혼의 줄리에타>는 어쩌면 <8과 1/2>까지 일그러진 여성 편력의 세계를 다룬 자신에 대한 참회가 서린 목판화 같은 작품이다. 물론 펠리니의 꿈과 환상의 세계가 강렬한 색감과 만난 <영혼의 줄리에타>는 전작에 못지않게 매력적이다.
전후 네오리얼리즘 감독과는 완벽하게 다른 길을 걸어온 페데리코 펠리니의 대표작을 스크린 위에서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펠리니의 서거 30주년을 맞이하여 CGV 아트하우스에서는 10월 4일부터 17일까지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전>을 개최한다. 이번 기획전의 상영작은 그의 대표작인 <비텔로니>(1953), <달콤한 인생>(1960), <8과 1/2>, <영혼의 줄리에타>(1965) 네 편과 그에 대한 다큐멘터리 <달콤한 인생>에 관한 진실>(2020)이 상영될 예정이다. 특히 대표작 네 편은 지난 2020년 펠리니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거친 버전으로 기존 상영 버전보다 탁월한 음향과 화질로 그의 영화 세계를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씨네플레이 최현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