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한국영상자료원에서는 정기프로그램인 ‘KOFA 더블 피쳐’를 통해 1970년대 필리핀 뉴 웨이브의 새로운 기수들인 리노 브로카와 마이크 드 레온 두 감독의 작품을 국내 관객들에게 소개한 바 있다. 씨네플레이도 필리핀 뉴웨이브 특별전에 관한 기사를 발행하며, 현재 필리핀 영화의 가장 중요한 감독도 함께 다뤘으나 아쉽게도 한 감독의 이름을 누락하고 말았다. 바로 부산국제영화제가 사랑하는 필리핀의 감독 브리얀테 멘도사였다. 2005년 장편 데뷔작인 <마사지사>가 로카르노국제영화제 황금표범상을 수상하고, 2009년 <도살>을 통해 필리핀에서는 최초로 칸 영화제 감독상을 받으며 그는 명실상부 필리핀 영화를 대표하는 이름이었다. 이런 그의 이름을 빠트린 것에 대한 아쉬움이 한 편에 있었기에, 이번 2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브리얀테 멘도사가 신작 <모로>와 함께 내한한다는 소식은 큰 반가움으로 다가왔다.
부산국제영화제와 브리얀테 멘도사 감독의 인연은 매우 깊다. 2007년 고인이 된 김지석 프로그래머가 ‘아시아영화의 창’ 섹션에서 그의 영화 <입양아>를 소개한 이후, 2008년에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운영하는 아시아 영화 지원 사업인 ACF(아시아영화펀드) 개발 지원을 받아 <서비스>를 제작하고 내한하게 된다. 이후 2009년에 공개한 두 편의 작품과 2019년 <민다나오 섬>, 2022년 <만찬>은 모두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최초 공개하게 되었다. 특히 올해는 그가 처음으로 부산국제영화제와 인연을 맺게 된 故 김지석 수석 프로그래머를 기리며 만든 섹션 ‘지석’을 통해 그의 신작 <모로>를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하게 되었다. 첫 상영이 열린 10월 6일 브리얀테 멘도사 감독은 직접 GV 현장에 참여해 자신의 신작과 영화세계에 관한 이야기를 관객들과 나누었다.
아무도 말하지 못한 현재 진행형의 역사
브리얀테 멘도사 감독의 신작 <모로>는 필리핀의 분쟁 역사에서 가장 핵심적인 지역인 필리핀 남부에 위치한 민다나오 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GV 초반 필리핀의 역사와 상황에 대한 배경지식을 공유하고자 브리얀테 멘도사 감독은 영화에 관한 설정을 짤막하게 소개했다. “<모로>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방사모로라는 13개의 부족이 모여 이슬람 독립국가를 건국하고자 했던 모로 족에 대한 이야기다. 필리핀은 가톨릭 국가로 전 국민의 90%가 가톨릭을 믿고 있으며, 극소수만이 다른 종교를 갖고 있다. 이들은 주로 남부 지방에 거주하고 있으며, 독립을 둘러싼 충돌이 계속되고 있다. 그들의 직면한 삶의 고통과 실상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영화의 제목을 경유하여 제작 이유를 밝혔다.
형제의 분쟁에서 국가의 폭력으로
80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이지만, <모로>의 이야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이야기할 수 있다. 전반부는 성실하게 장사하며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형 자심과 헛된 공상과 노름에 빠져 땅을 날려 먹은 동생 압델 간의 토지 문제를 둘러싼 다툼과 화해를 이야기한다. 두 형제의 홀어머니는 두 형제가 옥수수밭에서 붉은 피를 뒤집어쓴 채 먼저 간 아버지를 따라간다는 불길한 꿈을 꾼다. 오랜 기간 절연한 두 형제의 화해를 위해 어머니는 아버지의 제사를 지내며 부단히 노력하고, 결국 두 형제는 불완전하지만 코란 아래에서 우애의 포옹을 나누게 된다. 하지만 <모로>의 갈등은 단순히 지엽적인 개인사의 해결로 마무리되지 않는다. 브리얀테 멘도사는 형제간의 토지 분쟁을 다루는 전반부를 뒤집어 국가와 소수 민족 간의 분쟁으로 이 문제를 확장한다. 작은 공동체가 화해로 하나 되는 순간 필리핀의 국가권력은 모로족의 마을에 특수부대를 파견하여 대규모 학살을 도모하게 된다.
2022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한 그의 전작 <만찬>은 음식과 종교를 매개로 끝내 공동체가 용서와 화해에 이르지만, 반대로 <모로>는 형제 관계의 회복에도 불구하고 유혈이 낭자한 학살의 현장과 분노의 감정을 세밀하게 다룬다. 브리얀테 멘도사 감독은 GV 도중 두 작품에 상반된 주제의 식을 두고 “<만찬>은 판데믹을 경유하여 무겁고 힘든 감정을 다루기보다는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작품을 만들기를 원했다. 하지만 <모로>는 판데믹 이전부터 프로젝트를 진행한 작품으로 참혹한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작품을 통해 지금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을 직시하기를 원했다”라는 코멘트를 남겼다.
논쟁적인 소재, 고뇌하는 연출
브리얀테 멘도사 감독의 <모로>는 누구도 다루려 하지 않은 종교와 국가 폭력에 대한 민감한 소재를 다뤘다는 점에서 자국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정치적으로 복잡한 소재를 영화화했을 때 주변 반응이 궁금하다는 관객들의 질문에 멘도사 감독은 “주류 언론에서 다루지 않은 이야기를 소재로 한 만큼, 작가진부터 남부 출신으로 구성하여 상황을 보다 정확하고 자세히 알기 위해 노력했다. 모로 부족들과 오랜 기간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왜곡 없이 현실을 다루려고 했다. 물론 남부 지역의 영화인들로부터 비판의 목소리를 듣기고 했지만, 한 사람의 스토리텔러로서 전쟁과 살육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자 했다”고 밝혔다. 또한 <모로>의 제작을 담당한 크리스마 파자르도 프로듀서는 <모로>의 제작 비하인드를 이야기하며 “남부 지방 특유의 방언과 지역의 참혹한 현실을 다루는 데 있어서 디테일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특히 판데믹 상황과 겹치면서 어려움이 많았다”는 이야기를 덧붙이기도 했다.
특히 <모로>의 후반부 필리핀 정부의 특수부대와 모로 이슬람 해방 전선 사이의 전투 장면은 브리얀테 멘도사 감독 특유의 연출이 돋보였다. 모로족의 무장 자치 부대는 특수부대의 주둔 상황을 모르지만, 특수부대는 이들의 사살을 위해 사전에 잠복하고 있는 상반되는 상황을 롱테이크 트래킹 기법으로 담아낸다. 또한 전투 장면의 사실성을 더하기 위해 고정된 스테디 캠 기법을 사용하기보다는 최대한 핸드헬드 기법을 활용하여 급박한 현장을 담아내려 노력했다. 한차례의 전투가 끝나고 난 뒤, 양측의 사상자를 직시하려는 카메라의 움직임은 논쟁적이지만 동시에 이 민감한 현실을 우회하지 않겠다는 브리얀테 멘도사 감독의 태도가 가장 잘 드러나는 지점이다. 핸드헬드 기법의 연출이 도드라진다는 관객의 질문에 그는 “영화는 연극적인 무대가 아니다. 유기적이고 몰입감이 넘치며 역동적인 상황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핸드헬드 기법이 훨씬 더 자연스럽다”라며 자신의 연출 의도를 밝혔다. 초기작인 <도살>부터 <모로>까지 폭력과 참혹한 현실의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을 고수하는 브리얀테 멘도사 만의 철학이 묻어나는 답변이었다. 논쟁적인 소재를 다룬 <모로>가 고뇌하는 연출 끝에 택한 이 방법은 소재를 전달하기 위한 그 만의 최선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씨네플레이 최현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