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혜란은 매 작품에서 놀라운 연기 변신을 보여주었다. 드라마 <도깨비>에서 고아 조카를 착취해 왔던 이모 ‘연숙’으로 대중들에게 얼굴을 알린 뒤, <아이 캔 스피크>에서 주인공에게 진심을 전하는 인상적인 인물 ‘진주댁’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이외에도 <동백꽃 필 무렵> <더 글로리> <마스크걸> 등 보는 이에게 친근감을 유발하는 캐릭터부터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낯선 얼굴까지 만들어 내고 있다. 그렇게 염혜란만의 캐릭터를 만들어내며 대중에게 강인한 인상을 남기는 중이다.
그런 그녀가 이번에는 실화를 소재로 둔 영화 <소년들>에서 ‘우리슈퍼 강도치사 사건’의 재수사에 나선 수사반장 ‘준철’을 묵묵하게 지지해 주는 아내 ‘경미’를 연기한다. 이번에는 어떤 열연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까, 오늘은 명품 조연에서는 이제는 믿보 배우로 거듭난 배우 염혜란의 대표작들을 살펴본다.
<아이 캔 스피크>(2017)의 ‘진주댁’ 역
2017년에 개봉한 영화 <아이 캔 스피크>는 나문희, 이제훈이 주연을 맡아 영어로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한 인물의 이야기를 그린다. 민원 건수만 무려 8,000건, 구청의 블랙리스트 1호 도깨비 할머니 ‘옥분’과 오직 원칙과 절차가 답이라고 믿는 9급 공무원 ‘민재’가 영어를 통해 엮이게 되면서 밝혀지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담았다.
염혜란은 늘 혼자인 옥분의 친구이자, 그녀가 운영하는 수선실의 VIP 손님인 ‘진주댁’ 역을 맡았다. 남들에게 말하지 못한 옥분의 사연을 알고 그전과는 다른 태도를 보였지만, 끝내 숨겼던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한 인물이다. 염혜란은 부산 사투리를 구사하는 캐릭터를 잘 소화하기 위해 부산 출신의 동료들에게 녹음을 부탁했다고 한다. 사투리를 연습하고 검사를 받으며 캐릭터 연기를 준비하는 노력으로 ‘진주댁’을 완성했다(참고로 염혜란은 전남 여수 출신의 배우). 주연으로 출연한 나문희, 이제훈을 포함해 조연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들 또한 좋은 연기로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그중에서도 염혜란은 웃음보다는 감동 코드를 선사하는 캐릭터로서 확실하게 관객들의 마음에 자리매김했고, 이후 더욱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증인>(2019)의 ‘미란’ 역
2019년에 개봉한 영화 <증인>은 정우성과 김향기의 연기는 물론, 유머와 감동이 적절하게 느껴지는 시나리오를 통해 극장에서 253만 명의 관객을 모았다. 유력한 살인 용의자의 무죄를 입증해야 하는 변호사 ‘순호’가 사건 현장의 유일한 목격자인 자폐 소녀 ‘지우’를 만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염혜란은 유력한 살인 용의자로 지목된 ‘미란’ 역을 맡았다. <증인>의 반전을 이끌어내는 캐릭터로 변신, 억울한 누명을 쓴 평범한 가사도우미의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미묘한 표정의 변화를 통해 관객들에게 호기심과 긴장감을 불어넣는 캐릭터를 선보였다. ‘지우’의 시선으로 담긴 그녀의 복잡미묘한 표정, 법정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오해와 혐의를 벗어나기 위해 보여주는 행동은 연기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미란’ 그 자체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준다. <증인>은 직업의 의무를 저버린 변호사라는 설정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 편이었지만, 감동적인 이야기와 인물들의 섬세한 묘사가 관객을 사로잡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영화의 전개를 쉽게 예측할 수 없게 만든 ‘미란’을 연기한 염혜란의 포커페이스 또한 많은 호평을 받았다.
<아이>(2021) ‘미자’ 역
<아이>는 <증인> 이후로 김향기와 염혜란이 다시 만난 작품이다. 일찍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 ‘아영’이 의지할 곳 없이 홀로 아이를 키우는 초보 엄마 ‘영채’의 베이비시터가 되면서 따스한 위로와 치유의 과정을 그린다.
염혜란은 영채를 때론 딸처럼, 때론 동생처럼 아끼며 버팀목이 되어주는 사장님 ‘미자’로 변신했다. 다소 거친 말투의 인물임에도, 여러 방면으로 잘 챙겨주는 모습을 통해, 아영과 영채 사이에서 다리의 역할을 해준다. 외면적으로는 강인해 보이는 인물이자, 내면적으로는 내 사람을 챙기는 따스함이 있는 인물로, 관객들에게도 뭉클한 감동도 전한다.
영화는 비록 저조한 관객수로 흥행에는 실패했으나, 아이를 돌보는 역할로 따스한 진심을 보여준 김향기와 아이의 엄마로서 복잡한 감정을 표현한 류현경, 그리고 이들에게 현실적이면서도 따스한 모습을 보여주는 염혜란의 연기는 많은 호평을 받았다. 참고로 염혜란은 주연을 맡은 <새해전야>도 <아이>와 같은 날에 개봉해 그녀의 다양한 모습을 극장에서 만날 수 있었다.
<빛과 철>(2021) ‘영남’ 역
2021년에 개봉한 <빛과 철>은 염혜란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배우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화제를 모았다. 염혜란과 김시은, 박지후가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남편들의 교통사고로 얽히게 된 두 아내와 딸, 그들을 둘러싼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묵직하게 담았다.
염혜란은 자동차 충돌사고로 의식불명이 된 남편을 2년간 보살피게 되는 ‘영남’을 연기했다. 고단한 삶을 살아가면서도 말 못 할 사정을 간직한 인물로서 관객이 숨겨진 비밀을 따라가게 만드는 역할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의식이 없게 만든 사고를 둘러싼 인물들 사이에서 가해자의 아내와 우연히 엮이게 되는 과정, 그리고 깨어나지 않는 자기 남편이 당한 사고에 대해 조금씩 의문을 품는 모습은 관객을 감정의 소용돌이로 빠져들게 한다. 특히 영화의 메인 주연으로 온전히 혼자 힘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에너지는 염혜란이란 배우의 무게감을 확실하게 느끼게 한다.
<특송>(2022) ‘미영’ 역
<특송>은 박소담 배우의 원톱 주연 액션 영화이자, <기생충> 박소담과 정현준이 다시 만난 것으로도 주목받은 영화다. 성공률 100% 특송 전문 드라이버 ‘은하’가 예기치 못한 배송 사고에 휘말리면서 벌어지는 추격전을 그린다. 코로나 시기에 개봉해 극장에서 흥행은 아쉬웠지만, 박소담이 소화한 다양한 카체이싱 액션만큼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염혜란은 남다른 촉을 지니고 있는 국가정보원 ‘한미영’ 역을 맡았다. 영화에서는 은하를 뒤쫓는 인물 중 하나로 등장한다. 그녀의 사연을 조사하면서, 어느 날 갑자기 살인 용의자가 되어버린 은하를 타인들과는 다른 심정으로 쫓는 인물로, 호기심을 자극한다. 비교적 단면적인 인물 묘사와 스토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음에도, 카리스마를 겸비한 추격자로서 염혜란의 또 다른 매력을 내비친다.
테일러콘텐츠 에디터 곰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