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어떤 산일까. 10월 20일 개막하는 8회 울산울주세계산악영화제(집행위원장 엄홍길)의 전통적인 인기 프로그램은 바로 ‘올해의 산’이다. 매년 전 세계의 대표 산맥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를 선정해 그 나라의 산과 자연, 그리고 인간의 삶의 모습을 영화 및 다양한 예술 형식을 통해 소개하고 있다. 2018년 히말라야-네팔을 시작으로 알프스-오스트리아, 록키-캐나다, 알프스-스위스에 이어 올해는 ‘타트라-폴란드’가 선정됐다. 14편의 폴란드 영화와 더불어 문화를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소개한다.
화강암과 침엽수로 이뤄진 타트라 산맥은 동유럽 최대 산맥 카르파티아 산맥에서 가장 높은 고도를 자랑한다. 슬로바키아의 지붕으로 불리는 타트라 산맥은 슬로바키아 최초의 국립공원이자, 1992년 유네스코 생물권 보존지역으로 지정된 구역이다. 하이 타트라는 2,500미터 이상의 봉우리들이 밀집된 지역으로 로우 타트라는 그보다 낮은 산군들이 밀집된 지역을 일컫는다. 로우 타트라 최고봉인 ‘둠비에르’, 암봉과 어우러진 터키석 빛깔 호수를 볼 수 있는 하이 타트라 최고의 뷰포인트 ‘롬니키 전망대‘, 폴란드 최고봉인 ‘리시’, 카르파티아 산맥의 최고봉인 게를라호프스키를 조망할 수 있는 ‘슬라브코프 계곡’까지, 현재 동유럽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트레킹 지역이기도 하다.
울산울주세계산악영화제 이정진 프로그래머의 소개에 따르면, “1984년 한국을 방문한 폴란드 출신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한국이 자신의 모국과 민족의 역사가 닮았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고 한다. 폴란드는 한때 전쟁과 기아로 인해 약 2천만 명의 국민이 전 세계로 이주한 디아스포라의 경험과 주변국 지배의 기억을 지니고 있으며, 인구의 90% 이상이 가톨릭을 종교로 삼고 있지만, 그들의 가치관은 현대 사회의 새로운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중이다. 더불어 “폴란드 남부 슬로바키아와 국경을 접한 험난한 타트라 산맥은 일반인들에게는 휴양지이자 산악인들에게는 최적의 훈련 장소이다. 그러기에 폴란드는 등반에 있어 유럽 프리미어 리그 축구에 견줄만한 걸출한 등반가들이 활동해왔고, 많은 산악영화 또한 제작되고 있다”고 말한다.
인류 최초로 히말라야산맥의 8,000미터급 고봉 14개를 모두, 그것도 무산소 단독행으로 등정한 전설적인 산악인인 이탈리아의 라인홀트 메스너와 경쟁구도에 있었던 예지 쿠쿠츠카가 바로 폴란드 출신이다. 라인홀트 메스너와 각축전을 벌이다 간발의 차이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14좌를 완등했지만, 메스너가 16년 동안 이룩한 업적을 그는 단 8년 만에 이룩했다. 그 외에 ‘얼음의 전사’라 불린 크시스토프 비엘리츠키, 폴란드 전설적인 여성 산악인 반다 루트키에비츠, 그리고 올해 <불멸선언>을 통해 만날 수 있는 피오트르 매드 코르차크 등 등반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는 무척 낯익은 이름들일 것이다.
폴란드는 이미 자국 내 3개 이상의 산악 영화제가 매해 개최될 정도로 산과 친숙하다. 올해 주빈국 프로그램 타트라-폴란드 섹션에서는 특별히 크라쿠프산악영화제 집행위원장 피오트르 투르콧이 소개하는, 5편의 폴란드 산악영화 <드림랜드>(2018), <가자, 폴란드!>(2021), <불멸선언>(2010), <영웅의 증발>(2021), <남극의 세 예술가>(2020)를 만나볼 수 있다. <드림랜드>는 중국과 파키스탄 국경에 위치한 브로드피크로 떠난 겨울 탐험에 관한 이야기로, 스나티스와프 베르베카 감독이 자신의 아버지를 회상하는 내용이다. 2013년 3월 5일, 마치에이 베르베카는 정상에 오르며 그의 꿈을 이뤘지만, 기지로 내려오는 길에 사망했다. 감독은 아버지와 함께했던 원정대원들, 가족들의 회상, 그리고 기록 덕분에 저명한 폴란드 산악인이자 여행가였던 그의 사고방식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1988년 등반에 실패했다가 25년이 흘러 재도전한 이 실화는, 역시 폴란드의 레스젝 다비드 감독이 <브로드피크>(2022)라는 극영화로 만들었고 현재 넷플릭스에서 감상할 수 있다. 다큐멘터리 <영웅의 증발>은 1939년 히말라야의 난다 데비 동봉에 오른 야누시 클라르네르의 이야기로, 산 등정 후 실종을 교차편집과 무성영화 형식으로 풀어낸 독특한 산악영화다.
그 외 인간의 본성과 숭고함을 탐구하는 여행자이자 세계적인 다큐멘터리 감독인 파벨 로진스키의 <발코니 무비>(2021), <베르카>(2014), <암병동>(2009), <키티 키티>(2008) 등 초기작과 최근작을 두루 소개한다. <베르카>는 한 성냥공장 노동자를 지켜보며 개인이 희생할 수 있는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라는 질문을 던지는 작품으로 몇 달 동안 꿈을 현실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그녀의 인생을 관찰하며 믿기 어려운 변화를 포착한다. <베르카>에 대해 “<키티 키티>가 길고양이에 대한 동반과 희생을 담아냈다면, <베르카>는 장애아이를 돌보며 성냥공장 근로자로 살아가는 베르카의 이야기를 담는다. 노동자로서의 삶과 아이를 돌보는 삶이 병치되어 열거되는 가운데, 우리는 사랑과 숭고함 그 어느 지점을 느끼게 된다”고 평한 이정진 프로그래머의 움프토크 ‘이웃을 통한 인간 본성에 대한 고찰 - 파벨 로진스키의 영화를 만나다’는 10월 25일(수) 13시 <타트라-폴란드4>(<암병동><베르카>)와 16시 <타트라-폴란드5>(<발코니 무비><키티 키티>) 상영 후 알프스 시네마1에서 진행된다.
더불어 주인공 안테크의 드라마틱한 변화를 카메라에 담아낸 <나를 위한 기도>(2022)와 취재나 촬영이 힘든 예수회 선교사들의 교육과 수도 과정을 담은 <수도사>(2022)가 상영된다. <나를 위한 기도>는 전통적인 가톨릭 신자로 매우 보수적인 가치관을 따르며 살고 있던 청년 안테크가 사랑에 빠지게 된 이후의 이야기다. 그때부터 혼전 성관계 금지에 대한 의구심이 생기기 시작하고 궁극적으로는 신의 존재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게 된다. <수도사>도 가톨릭 전통이 강한 국가인 폴란드에서 2년간 예수회 수도사가 되기 위해 준비하는 젊은 청년들의 모습을 담아낸다. 2년 동안 사회와 문명의 안락함으로부터 고립된 젊은이들은 수도 생활이 자신에게 맞는지 충분히 숙고할 시간을 갖는다. 이정진 프로그래머는 “취재가 제한된 금절의 구역을 엿보는 기쁨과 함께, 이들 작품을 통해 폴란드 국민의 가톨릭 종교적 가치관의 다면성과 변화를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현대 폴란드가 당면한 혼돈과 가치관의 변모를 비추는 거울일 수도 있다”고 덧붙인다. 한편, 촬영감독 출신의 아담 크솁토프스키 감독의 1932년 무성영화 <화이트 트레일>은 폴란드 재즈 뮤지션 피오트르 파블락 재즈텟의 공연과 함께 소개된다.
주성철 씨네플레이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