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했던 추석 박스 오피스 전쟁도 어느 정도 소강상태에 접어들고 있다. 강제규 감독의 <1947 보스턴>, 김지운 감독의 <거미집>, 강동원 주연의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이 개봉 4주차를 맞고 있는 지금 세 작품 모두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어려워 보인다는 것이 영화계 관계자들의 주된 전망이다. 송중기, 김형서, 홍사빈 주연의 <화란> 역시 평단과 관객의 호평과 달리 흥행에서는 좋은 성적을 기록하지 못하는 가운데, 강하늘, 정소민 주연의 로맨스 코미디 <30일>이 의외의 저력을 보여주며 <범죄도시 3>, <밀수>, <잠>, <콘크리트 유토피아>에 이어 올해 다섯 번째로 손익분기점을 돌파하는 성과를 보이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막을 내린 10월 중순부터는 국내 독립영화와 해외 예술영화 대작들이 연이어 개봉할 예정이다.
10월 중순부터 개봉을 이어갈 작품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화제작은 총 세 편이다. 마틴 스콜세지의 4년 만의 신작이자 26번째 장편 극영화 <플라워 킬링 문>, 데이비드 핀처의 12번째 장편 영화인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더 킬러>, 미야자키 하야오의 은퇴작 (물론 이후에 그는 이를 번복하기에 엄밀히 말하면 은퇴 번복작이 된)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세 편은 개봉 이전부터 많은 영화팬의 관심을 받았다. <플라워 킬링 문>은 지난 목요일인 10월 19일 이미 개봉하였고,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와 <더 킬러>는 10월 25일 수요일 개봉한다. 10월의 셋째 주와 넷째 주, 단 2주 만에 거장들의 치열한 빅매치가 성사될 예정이다.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이보다 더 짜릿하고 흥미로운 시기가 어디 있을까? 개봉에 앞서 영화에 관한 전망을 알아보도록 하자.
미야자키 하야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이보다 더 반가운 번복 소식이 있을까? 앞으로도 이런 은퇴 번복은 계속되었으면 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신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바람이 분다>(2013) 이후 10년 만의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초반에는 그의 진정한 은퇴작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에 많은 팬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의 은퇴 선언은 재차 번복되며 해프닝으로 끝났다. 물론 이번 작품이 지브리 스튜디오 역대 최고의 제작비를 투자한 작품이며, 최장 제작 기간을 들여 만든 작품이라는 점에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은퇴작(이었던 작품)에 걸맞은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특히 이번 작품은 프레임당 작화 매수도 어느 때보다 높으며, 제작비 전액을 스튜디오 지브리에서 부담하는 방식인 만큼 미야자키 하야오와 그의 영화사에 있어서 새로운 분기점과 같은 과감한 도전이기도 했다.
일본에서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7월 14일에 먼저 개봉했는데, 당시 신비주의 마케팅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통상적으로 영화 홍보 마케팅에는 메인 예고편을 비롯해 1, 2, 3차 포스터, 시사회, 추천 영상 등을 담게 되는데, 스튜디오 지브리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제작한 메인 포스터 하나를 제외하고 어떤 홍보도 진행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개봉 12주까지 일본 박스오피스에서만 3달간 80억 엔이 넘는 흥행 성과를 보이며 미야자키 하야오의 건재함을 드러내고 있다. 한국에서는 다행히도 3편의 예고편과 11종의 스틸컷이 공개되었지만, 포스터만큼은 일본의 마케팅과 동일하게 메인 포스터만이 공개되었고, 시사회 역시 진행되지 않으며 오로지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뚝심 있게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다. 그 결과 개봉 3일 전인 10월 22일까지 60%의 예매율을 기록하며 지난 상반기에 개봉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 <스즈메의 문단속>보다 훨씬 좋은 수치로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번 삼파전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작품은 단연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이다.
마틴 스콜세지 <플라워 킬링 문>
다른 두 작품과 달리 한 주 일찍 개봉한 마틴 스콜세지의 신작 <플라워 킬링 문>은 스콜세지의 페르소나인 로버트 드 니로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조합으로 큰 기대를 모았다. 3시간 25분에 달하는 긴 러닝타임과 미국이 인디언 원주민들을 수탈했던 역사의 한 시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호불호가 명확한 영화지만, <플라워 킬링 문>의 시사회 반응은 호평 일색이다. 지난 2016년 <사일런스>부터 <아이리시맨>(2019)을 거쳐 <플라워 킬링 문>에서 비로소 진정한 ‘애도’와 ‘속죄’의 영화를 완성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당초 미국에 우선적으로 제한 개봉을 한 뒤 전 세계에 극장에 확대 개봉 전략을 세웠지만, 영화의 작품성과 흥행 요소가 많다는 점을 인지하고 전 세계 동시 개봉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그 결과 이번 작품은 스콜세지의 역대 영화들 중 두 번째로 높은 개봉 첫 주 흥행 성적을 기록하고 있는 중이다.
국내에서도 <플라워 킬링 문>의 흥행 성적은 고무적인 편이다. 개봉 직전 가장 높은 예매율를 기록한 것은 물론 그의 최근 두 작품보다 국내에서 개봉 첫 주 성적은 압도적으로 높은 편이다. 물론 개봉 2주차부터 다른 아트버스터들과 경쟁을 펼쳐야 한다는 악조건이 있지만, 그래도 첫 출발이 매우 좋다. <플라워 킬링 문>의 흥행에는 엄청난 연기력을 자랑하는 배우들의 힘이 크다. 믿고 보는 두 배우 로버트 드 니로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그리고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릴리 글래스톤의 힘이 전반부를 지탱한다면, 이번 아카데미 인간 승리의 아이콘인 브랜든 프레이저, 꾸준히 좋은 연기력을 보여주는 제시 플레먼스가 극의 후반부를 휘어잡는다. 거장의 품격을 보여주는 세심한 터치들이 담긴 연출은 200분이 넘어가는 상영 시간을 전혀 지루하지 않게 만든다. 이 영화의 마지막 10분은 마틴 스콜세지의 지난 10년간의 영화가 견지하는 ‘애도’와 ‘속죄’의 정점에 달하는 장면이다. 과연 <플라워 킬링 문>은 미야자키 하야오와 데이비드 핀처의 공세에도 굳건히 2주차 성적을 지켜낼 수 있을까? 추이를 한 번 지켜보도록 하자.
데이비드 핀처 <더 킬러>
데이비드 핀처가 <맹크>(2020)에 이어 3년 만에 다시 한번 넷플릭스와 손을 잡았다. 마이클 패스벤더와 틸다 스윈튼 주연의 누아르 스릴러물 <더 킬러>는 지난 부산국제영화제 아이콘 섹션에서 한차례 한국 관객들과 미리 만나볼 기회를 얻었다. 영화제 상영 당시 전 회차 매진을 기록했으며, 관람객들의 호평이 이어지며 공개 이전부터 큰 기대를 모았던 작품이다. 베니스부터 부산까지 상영 직후 관객과 평단은 ‘잔혹한 킬러가 직면한 생명의 위협이라는 누아르 스릴러의 전통적인 공식에도 데이비드 핀처의 터치가 한끗의 차이를 만들어 낸다’라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그의 주 장르인 스릴러의 심리 묘사가 탁월하고, 마이클 패스벤더의 연기가 빛을 발했다는 평가도 많았다. 그의 12번째 장편 영화 <더 킬러>는 알렉시스 놀렌트의 동명의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하며, <세븐>(1995)을 연출할 당시 함께 합을 맞췄던 각본가 앤드류 케빈 워커와 30여 년 만에 협업하게 되었다.
<더 킬러>는 세 작품 중에 유일하게 국내 흥행 성적 예측이 어려운 작품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11월 10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되기 전, 미국은 10월 27일, 한국은 10월 25일 제한 상영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객과 평단의 반응은 있을지라도 구체적인 박스 오피스 성적에 대한 데이터는 전무한 상태다. 또한 2014년에 개봉한 <나를 찾아줘>는 83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큰 성과를 보였지만, 3년 전 코로나 시기에 제한 개봉한 <맹크>는 팬데믹의 영향으로 만 명도 되지 않는 성적을 기록했기 때문에 핀처의 영화가 어느 정도의 성적을 보일지는 미지수다. 다만 <더 킬러>는 앞선 작품에 비해 OTT 기반의 제한 상영으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스콜세지와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보다는 상대적으로 악조건을 갖고 개봉한다고 볼 수 있다. 마치 50년 전 장 피에르 멜빌 영화에 등장하는 알랭 들롱을 떠올리게 만든다는 <더 킬러>는 어떤 모습으로 관객들과 만나게 될까? 개봉을 앞두고 베일에 싸인 <더 킬러>를 기대해 보자.
씨네플레이 최현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