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가 재즈다! <블루 자이언트>

하루 종일 엘라 피츠제럴드에 빙의돼 엉터리 재즈 선율을 흥얼거리고, 소니 스티트, 아트 블래키, 우에하라 히로미의 곡으로 채워진 플레이리스트를 무한 반복 중이다. 영화 <블루 자이언트>에 빠져버렸다. “귀로 듣는 슬램덩크”라는 세간의 평가가 과장이 아니었다. 큰일이다. 「슬램덩크」 때는 고작 농구공이었는데, 이 허우적거림, 기어코 큰 지출-예컨대 36개월 카드 할부로 산 드럼 세트-을 파생시킬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하지만 어쩌랴, 이미 봐버린걸. 들어버린걸.

<블루 자이언트>(왼쪽), <더 퍼스트 슬램덩크>

재즈 문외한이어도 상관없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시절이 있는 이에게, 다시 한번 그 열정에 불을 댕기고 싶은 이에게, <블루 자이언트>는 분명 잘 들리는 영화가 될 것이다. 닮은 곳이 많은 두 작품. 오늘은 만화 「슬램덩크」와 영화 <블루 자이언트> 속 평행우주적 장면을 모아봤다.


“된다. 된다. 된다. 세계 최고의 재즈 플레이어가 될 거야”

<블루 자이언트> '다이'

"난 천재니까!"

「슬램덩크」 '강백호'

<블루 자이언트> 다이(좌), <더 퍼스트 슬램덩크> 강백호

세계 최고의 재즈 연주자를 꿈꾸는 고등학생 ‘다이’(야마다 유키)는 졸업 후 무대를 찾아 무작정 도쿄로 향한다. '세계 최고의 플레이어'라는 그의 꿈은, 4살 때 피아노를 시작해 진로를 탄탄히 다져온 '유키노리'(마미야 쇼타로) 같은 베테랑의 눈에는 한낱 자기암시나 공상 같은 것이다. 첫 만남에 팀 결성을 제안하는 다이를 향해 유키노리는 실소를 터뜨린다. '빈사 상태'에 빠진 재즈신을 소생시키고 싶은 이 자신만만한 젊은 피아니스트에게 연습 경력 3년의 애송이는 왠지 미덥지 않다. 그래도 엄지손가락에 박힌 굳은살만큼은 진실이리라. 다이의 색소폰 연주를 마침내 듣게 된 유키노리는 그가 관통했을 남다른 밀도의 3년을 상상한다. 그리고 눈물을 떨구며 읊조린다. “저 녀석 대체 연습을 얼마나 한 거야”. 그렇다. 다이의 음악적 재능을 능가하는 것은 뜨겁고 강렬한 재즈를 향한 단순한 이끌림과 목표를 향한 저돌, 그리고 미련한 꾸준함이다. 어딘가 기시감이 들지 않은가? 자칭 천재에 단순무식 저돌형이지만, 근기 있는 강백호가 보인다. 알고 보면 섬세하고 풍부한 감성까지. 다이와 백호, 두 캐릭터는 참 닮아있다.


"저 드럼 치고 있어요. 지금 안 하면 후회할 거 같아서요"

<블루 자이언트> 슌지

"안선생님 농구가 하고 싶어요"

「슬램덩크」 정대만

<블루 자이언트> 슌지(왼쪽)와 「슬램덩크」 정대만

마침내 팀을 결성하기로 마음을 모았지만, 엄청난 연주 실력을 뽐내는 천재 피아니스트 유키노리의 수준과 다이의 목표에 걸맞은 드러머를 찾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 이때 다이의 고등학교 동창이자 평범한 대학생이던 '슌지’(오카야마 아마네)가 의외의 열정을 보인다. 초짜 연주자를 밴드에 넣을 수는 없다고 거부하던 유키노리는 연주의 능숙함이나 서투름이 아니라, 순수하게 재즈를 '하고 싶다'라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다이의 말에 마침내 그를 받아들이지만, 열정만으로 실력의 간격을 좁히기는 역부족. 한계를 느낀 슌지는 밴드 활동에 몰두하기 위해 휴학을 결정한다. 아마도 어렵게 진학했을 도쿄의 대학교. "지금 안 하면 후회할 거 같아서요"라고 어머니께 진심을 전하는 슌지의 모습이 부상을 입고 방황했지만 결국 "농구가 하고 싶어요"라고 울부짖던 「슬램덩크」 정대만의 간절함과 겹쳐진다. 이 둘의 절실함은 우리가 잊고 있던 마음속 깊은 열정을 끄집어내 불을 지핀다. 이 열정 가득한 드러머의 합류로 밴드 'JASS(재스)'는 드디어 완성된다.


“자네… 좋아지고 있어. 난 자네의 드럼을, 성장하는 자네의 드럼을 들으러 온다네. 자네의 드럼은, 좋아지고 있어.”

<블루 자이언트> 속 노신사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반드시 좋은 일이 있을 거예요 여러분들은 강해질 거예요."

「슬램덩크」 안선생님

<블루 자이언트> 슌지(좌) <더 퍼스트 슬램덩크> 안선생님

다이가 가진 끈기도, 유키노리와 같은 천재성도 없는 범인들에겐 성장캐 슌지의 스토리가 특히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게 이불을 덮어쓰고 밤을 새워 연습을 하고, 손 마디마디에 반창고를 붙이며 스틱을 잡지만 두 멤버의 수준을 따라가는 것이 쉽지 않다. 박자 맞추기에 급급하던 어느 날, 한 노신사가 연주를 끝낸 슌지에게 다가와 모자를 벗고 정중히 말한다. "자네의 드럼은 좋아지고 있어." 조용히 성장을 응원하는 이 노신사의 미소에서 후덕한 인상의 한 인물이 떠오른다. 「슬램덩크」 북산고 농구부의 안선생님 말이다.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반드시 좋은 일이 있을 거예요.", "마지막까지 희망을 버려선 안돼. 단념하면 바로 그때 시합은 끝나는 거야.", "나뿐인가. 아직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포기하면 그 순간이 바로 시합 종료다." 같은 명대사를 남긴 따뜻한 감독의 태도에서 누군가의 서툰 시작에 필요한 건 역시 냉정한 평가보다는 공감과 응원의 말이라 확신하게 된다. 피나는 연습과 주변의 지지로 밴드 JASS(재스)는 그렇게 꿈의 무대 '쏘 블루(So Blue)'에 오르게 된다.


"재즈 밴드는 록 밴드와 달리 평생 함께하지 않는다."

<블루 자이언트> 유키노리

"울지 마라"

「슬램덩크」 채치수

<블루 자이언트> 유키노리(좌)와 「슬램덩크」 채치수, 강백호

영화 초반 유키노리가 던진 대사가 암시한 것처럼 주인공들이 꿈의 무대로 삼았던 쏘 블루(So Blue)에서의 공연은 밴드 JASS(재스)의 마지막 공연이 된다. 역경을 이겨내고, 마침내 내장을 꺼내 보인 마지막 공연은 극장에 앉아있는 관객을 '쏘 블루'의 청중으로 만들어 버린다. 서로 다른 색과 결을 지닌 세 주인공의 우정과 꿈을 향한 열정, 땀과 눈물의 서사가 서로를 보조하고 응답하는 재즈 선율 안에 녹아들며 엄청난 영화적 몰입의 경험을 제공한다. 최고의 순간에 미련 없이 해산한 JASS(재스)를 보니 슬램덩크의 마지막 경기가 떠오른다. 북산고는 전국최강 산왕공고에게 기적처럼 승리했지만, 직후 열린 해남고와의 경기에서 거짓말처럼 패한다. 1점 차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강백호의 패스 미스가 발생한 것. 채치수는 그런 강백호의 머리를 쓰담으며 이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니, "울지 마라"고 덤덤히 말한다. 최선을 다한 이는 울지 않는 법이다. 무언가에 빠져드는 마음만으로 지금 이 순간에 모든 것을 거는 영광의 시절은 패하는 법이 없으므로. 그렇게 <블루 자이언트>와 「슬램덩크」 는 우리의 마음 속, 영속하는 청춘의 표상이 된다.

(추신: 이 글을 쓰는 지금, 필자가 가장 부러운 사람은 아직 <블루 자이언트>를 한 번도 보지 않은 당신이다. 어서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는 행운을 거머쥐시길!)

다이, 유키노리, 슌지(왼쪽부터)


문화기획자 하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