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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보고 나면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 드는 영화〈어른 김장하〉김현지 감독‧김주완 기자

“큰 어른은 큰 스크린에서 만나세요!”

씨네플레이
〈어른 김장하〉포스터. 사진 제공=시네마달
〈어른 김장하〉포스터. 사진 제공=시네마달

 

어른은 없고 꼰대만 가득한 시대, 당신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한 도시에서 60년 넘게 펼쳐진 기적 같은 ‘어른’ 이야기. 더 나은 우리가 되고 싶게 만드는 ‘진짜 어른’을 만나는 휴먼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감독 김현지) 11월 15일 개봉한다.

<어른 김장하>는 경남 진주시에서 남성당 한약방을 운영하며 60년간 이웃을 위해 선행을 이어온 김장하 선생에 대한 이야기다. 수백 명의 장학생부터 지역신문사, 서점, 연구단체, 이웃사촌, 여성 보호 시설, 환경운동 단체, 연극단, 문학가까지 진주시와 인근 도시에 한약을 팔아 번 100억 원이 넘는 금액을 기부했다. 그러면서 평생 자신의 옷 한 벌 허투루 사지 않았다. 그 이유를 김장하 선생은 이렇게 설명한다. “내가 돈을 벌었다면 결국 아프고 괴로운 사람을 상대로 돈을 벌었다. 그 소중한 돈을 함부로 쓸 수 없어서 차곡차곡 모아서 사회에 다시 환원하기 위해서였다.”

언뜻 평범한 인물 다큐멘터리로 보이는 이 영화의 특이점은, 주인공인 김장하 선생의 직접적인 인터뷰가 거의 들어가지 않다는 점이다. “총 몇 명에게 장학금을 주셨습니까?”라고 묻는 김주완 기자에게 김장하 선생은 그저 침묵으로 일관한다. 어떤 답변을 해도 결국 자기 자랑이 될 것이기 때문. 결국 김주완 기자는 취재 방법을 바꾼다. 김장하 선생이 아닌 그 주변인을 취재하기로. 이 독특한 취재 방식은 경남MBC의 김현지 감독과의 첫 미팅에서 결정됐다.

 

절대 자신의 선행을 알리지 않으려는 김장하 선생과 어떻게든 사회의 좋은 어른을 찾아내 시민에게 알리려는 김주완 기자의 쫓고 쫓기는 미담 추격전을 김현지 감독의 카메라가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어른이 사라진 시대에 참 어른의 이야기로 차가워진 우리 사회의 온도를 높인 <어른 김장하>의 김현지 감독과 영화의 키맨 김주완 기자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김현지 감독과 '키맨' 김주완 기자. 사진 제공=시네마달​
김현지 감독과 '키맨' 김주완 기자. 사진 제공=시네마달​

<어른 김장하>라는 영화 제목이 너무 와닿습니다. 다른 후보군들도 있었을 것 같은데, 어떻게 결정했나요?

김현지 감독 처음부터 ‘어른 김장하’였습니다. 이름도 너무 멋있지 않나요? 약간 독립운동가 같은 느낌도 나고요(웃음). 사실 내부에서 논의하는 중에 ‘어른’이라는 단어가 너무 가부장적인 느낌이 있지 않냐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요즘 ‘꼰대’라는 단어도 많이 쓰이잖아요. 지난번 진주 시사회에서 한 관객이 “어른이 이렇게 푸근한 단어였죠. 내가 이렇게 기댈 수 있다는 안전함을 느낄 수 있는 단어라는 걸 재발견하게 되었어요”라고 말씀하셨어요.

어른이라는 단어에 본래 의미를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원래 어른이라는 단어가 나쁜 의미는 아니었잖아요. 요즘 인터넷을 하면서 너무 상처받고 슬픈 것 중 하나가 우리가 사랑하는 단어들이 자꾸 오염되는 겁니다. 거창한 건 아니었는데, 영화를 다 만들고 보니 오염되었던 언어에 본래 의미를 돌려준 것 같아서 뿌듯합니다.

김주완 기자님은 올해 초 책을 먼저 내셨어요. 제목이 『줬으면 그만이지』입니다.

김현지 감독 사실 방송이랑 책이 같이 나왔어요. 책 제목으로 김주완 기자님이 페이스북에서 투표를 하더라고요(웃음). ‘줬으면 그만이지’가 높은 평가를 받았다길래, ‘어, 입에 잘 안 붙는데?’라고 처음에는 생각했죠. 그런데 갈수록 붙더라고요. 그리고 김장하 선생님의 가치관을 한 마디로 설명하는 제목이어서 좋았어요.

맞아요. 그런데 책도 나왔고, 방송도 탔어요. OTT에서도 볼 수 있고요. 그런데도 영화로 개봉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김현지 감독 사실 기획 때부터 영화를 염두에 두고 24프레임으로 찍었습니다. 그런데 좀 나이브했어요. 영화를 개봉하기 위해 뭐가 필요한지, 어떤 순서를 거쳐야 하는지도 몰랐거든요. 그래서 먼저 방송을 공개했고, 좋은 배급사를 만나게 되어서 이렇게 무사히 개봉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영화로 만들려고 한 결정적 이유가 있어요. 방송은 사실 오래 두고 보는 매체는 아니잖아요. OTT 역시 청소년과 노인의 접근성이 떨어지고요. 반면에 영화는 한 번 만들면 영원히 남아요. 김장하 선생님의 이야기를 더 오래, 더 많이 전하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성공적으로 영화를 개봉하게 되어서 감개무량합니다(웃음).

방송분과 달라진 부분이나 추가된 부분이 있다면요?

김현지 감독 그건 스크린에서 확인해야죠(웃음). 그런데 이런 건 확실히 있는 것 같아요. 휴대폰이나 노트북 작은 화면에서 OTT나 유튜브로 볼 때 ‘와, 정말 멋진 분이구나!’라고 느낄 수 있지만, 커다란 스크린으로 보니 또 다른 지점에서 울컥하더라고요. 큰 어른은 큰 화면에서!(웃음)

 

〈어른 김장하〉스틸컷.    사진 제공=시네마달
〈어른 김장하〉스틸컷. 사진 제공=시네마달

멋진 카피네요! 김주완 기자와의 인터뷰 첫 장면을 텅 빈 극장에서 찍으셨더라고요.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김현지 감독  김주완 기자만의 호기심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는지를 수많은 사람이 객석에 다 앉아서 궁금해한다는 생각으로 설정한 장면입니다.

김주완 기자님은 언제부터 김장하 선생님을 취재하셨나요?

김주완 기자 책을 쓰기 위해 취재를 시작한 해가 2015년이니, 햇수로는 7년이네요. 그전에 1995년에 그런 분이 있다는 걸 알고 취재를 하려고 했는데, 인터뷰를 일절 안 하신다는 걸 알고는 접었죠. 당시 사주로 계셨던 <진주신문> 인터뷰도 거절하셨다더라고요. 김현지 감독과 영화 작업은 2021년 11월부터 1년 2개월 정도 함께 했네요.

김현지 감독님과 김주완 기자님은 어떻게 만나신 거예요? 서로 알고 지내던 사이였나요?

김현지 감독 김장하 선생님께서 절대 인터뷰를 하지 않으시니, 주변 인물을 통해 선생님을 드러내자는 생각을 기획 때부터 했고요. 여러 사람이 출연하면 이야기가 너무 중구난방이 될 것 같아서 뭔가 키맨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료를 뒤지는 중에 김장하 선생님과 관련된 책을 쓴 분이 딱 한 명 나오더라고요. 바로 김주완 기자셨죠. 저야 물론 김주완 기자를 잘 알고 있었죠. 강연하시면 찾아가서 듣던 팬이기도 했고요. 굉장히 존경하는 지역 언론인 선배시죠. 경남도민일보 편집국장을 역임하셨고요. 국장님은 절 모르지만 제가 전화를 드렸어요. 섭외하고 싶다고, 같이 취재하고 싶다고요. 은퇴를 앞둔 노 기자가 자신이 청년 시절 취재하려다 못했던, 30년 전 취재를 이제 마무리하는 데 함께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죠. 그리고 다음날 만났어요.

〈어른 김장하〉 스틸컷. 사진 제공=시네마달
〈어른 김장하〉 스틸컷. 사진 제공=시네마달

김주완 기자님은 김현지 감독의 제안을 받고 바로 오케이하신 거예요?

김주완 기자 통화하고 만나기 전에 검색을 좀 했죠(웃음). 김현지 PD가 그동안 만든 프로그램이나 다큐멘터리를 다 찾아봤습니다. 상당히 진정성 있는 좋은 작품을 많이 했더라고요. 같이 해도 괜찮겠다고 판단해서 오케이했습니다.

같이 해보니 어떠셨나요?

김주완 기자 저는 방송을 잘 모르잖아요. 예전에 토론 프로그램 같은 데 패널로 참여한 적은 있지만, 공동으로 해본 적은 처음이라 낯설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가 부족한 부분을 김PD가 채워주기도 하니까, 제가 몰랐던 새로운 분야를 알게 되는 재미도 느꼈습니다.

〈어른 김장하〉 스틸컷. 사진 제공=시네마달
〈어른 김장하〉 스틸컷. 사진 제공=시네마달

김주완 기자가 김장하 선생님을 찾아가고, 주변인들 이야기를 듣는 과정을 김현지 감독의 카메라가 쫓아갑니다. 매우 독특한 방식이 탄생한 건데요. 이런 방식에 대한 합의도 두 분의 첫 만남에서 합의되었고요. 그런데 김장하 선생님은 인터뷰를 안 하시잖아요. 어떻게 접근방법을 찾으셨나요?

김현지 감독 선생님께 촬영 허락을 받은 적은 없어요. 촬영을 시작할 때가 남성당 한약방 문을 닫기 위해 그간 하셨던 일들을 정리하고 계시던 중이었고요. 그런 공식 행사에 찾아가서 촬영을 먼저 했죠. 그리고 선생님은 처음부터 어떤 것에도 곁을 내주지 않으시는데, 이상하게 장학생 이야기만 하면 풀어지시는 거예요. 그래서 저희가 고안한 방법이, 장학생을 자꾸 섭외해서 선생님을 찾아뵈는 겁니다. 그때 장학생을 취재한다고 하면서 따라가서 선생님도 같이 찍는 거죠. 그렇게 1년을 하다 보니, 선생님께서도 약간 ‘모르겠다’ 하는 심정이 되신 거 같아요. 허락하신 적은 없어요. 그 점은 지금도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고요.

김주완 기자가 그전부터 그렇게 따라다녔는데, 이번에는 김현지 감독까지 ‘혹’을 달고 간 셈이에요(웃음). 김장하 선생님 반응이 어땠나요?

김주완 기자 김PD가 처음 방송카메라를 들고 갈 때, 김장하 선생님 다큐멘터리를 만들 거라고 접근하지 말자고 했죠. 선생님이 주로 활동하셨던 형평운동사업회부터 시작했습니다. 1920년대 진주에서 태동하고 올해가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작년이 99주년이었고요. 그래서 김PD가 ‘내년에 형평운동이 100주년을 맞는데, 관련해서 영상 기록을 남겨야 하니 카메라가 좀 자주 올 겁니다’라고 말씀드렸어요.

 

〈어른 김장하〉 스틸컷. 사진 제공=시네마달
〈어른 김장하〉 스틸컷. 사진 제공=시네마달

김장하 선생님은 언제 당신에 대한 영화라는 걸 알게 되셨나요?

김현지 감독 2022년 초에 한 행사 촬영을 마치고 저 혼자서 찾아뵌 적이 있어요.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속이면서 할 수는 없잖아요. 역시나 선생님께서는 ‘나는 안 합니다’라고 말씀하셨죠. 그냥 다음에 또 올게요. 카메라랑 올게요. 이렇게 말씀드렸어요. 선생님은 허락한 적이 없다고 말씀드리는 게 그런 의미입니다. 다행히 선생님이 사람을 내치거나 매몰차게 대하는 분이 아니시니까. 만약 평범한 일반인이었다면, 인터뷰를 거절하는데 기록한다고 말할 수 없죠. 그런데 지역사회에서 선생님의 공적역할이라 해야 할지, 그런 것들을 기록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계속 촬영하면서 만나다 보니, 김장하 선생님께서 ‘절대 나를 우상화하는 이야기는 안 된다’라고 말씀을 주셨어요. 그 부분을 지키며 촬영, 편집하려고 노력했고요.

김장하 선생님을 무작정 찾아가지만 굳게 입을 닫으시죠. 접점을 찾으려 부단히 노력하는데도요. 그런데 김주완 기자와 김장하 선생님의 공통점이 하나 보이더라고요. 차가 없다는 점요. 이걸로 김장하 선생님과 대화는 하셨는지 궁금해요.

김주완 기자 물론 이야기를 나눴죠. 선생님께서 ‘기자 생활 불편할 텐데’ 이런 식으로 말씀하셨던 거 같아요. 짧게.

두 분 모두 김장하 선생님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취재하셨어요. 특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김현지 감독 질문에 ‘네’라는 답변 말고는 별말씀을 안 하는 편이세요. 자주 찾아뵈면서 조금 말씀이 늘긴 했어도요. 그런데 NC구단 이야기하면 함박웃음을 지으시는데, 너무 좋더라고요(웃음). 사실 그거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습니다. 남성당 한약방 문을 닫는 날이었죠. 카메라를 일부러 멀리 뒀어요. 가족들과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마지막 문을 닫을 수 있도록 멀리서나마 지켜드리고 싶었어요. 그렇게 지켜보고 있었죠. 60년을 일하셨던 한약방에서 마지막으로 나오셔서 셔터를 내리고, 차로 걸어가시는데, 차 문을 열고 갑자기 카메라를 보고 경례를 하시는 거예요. 벼락을 맞은 것 같았어요. 저도 모르게 ‘정말 멋진 인행이다’라고 말이 나오더군요. PD 생활을 하면서 겪는 몇 안 되는 전율을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물론 김장하 선생님께서는 ‘문을 닫으니 이제는 이놈들이 더 안 오겠지’하는 홀가분한 마음이었을지 모르지만요(웃음).

김주완 기자 영화에서 선생님은 답변이 자랑이 될 수밖에 없는 질문에는 침묵으로 일관하시죠. 45도 각도로 먼 산을 보시면서요. 그런데 선생님의 다른 수법(!)이 또 하나 있습니다. ‘기억이 안 나’라며 먼산을 보시는 거죠(웃음). 제가 구체적인 연도, 수치, 이름 등등을 대면서 예전에 이런 일이 있다고 하는데요 라고 물으면, 아무리 발뺌하기 힘든 증거를 들고 가도 ‘기억이 안 나’라고 하시더라고요.

 

〈어른 김장하〉 스틸컷. 사진 제공=시네마달
〈어른 김장하〉 스틸컷. 사진 제공=시네마달

김장하 선생님이 지역사회에 많은 지원을 하신 건 어느 정도 알려져 있는데요, 영화에서는 여성운동 지원도 하셨다는 게 새롭게 밝혀진 사실 같아요.

김주완 기자 저도 사실 처음에는 김장하 선생님이 1944년생이시고, 또 보수적인 경상도 어른이시고 해서 여성 문제에 있어서는 보편적인 그 연배 어르신들처럼 약간 가부장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취재 과정에서 전혀 아니란 걸 알게 되어서 놀랐습니다. 지역 시민사회단체와 문화예술단체 또 수많은 장학생들을 지원하신 건 알고 있었지만, 여성운동단체까지 지원하셨던 건 이번 취재에서 처음 알게 된 사실이거든요.

영화를 보면서 가장 궁금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김장하 선생님께서 60년을 아니 어쩌면 평생을 그렇게 강직하고 우직하게 살아오신 배경이었어요. 원동력이라고 표현해야 할지, 마땅한 단어가 떠오르진 않는데요. 김장하 선생님이 평생을 그렇게 살게 한, 지키려고 한 그것은 무엇인지 가장 가까이서 살펴본 두 분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김주완 기자 김장하 선생님이 이렇게 지금까지 살아오실 수 있었던 어떤 바탕에 대해 책 '줬으면 그만이지'를 쓰면서 서술해 둔 부분이 있습니다. 선생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분이 세 분 있어요. 첫째는 조부, 둘째는 남명 조식 선생, 셋째는 공자입니다. 특히 선생님이 실천적인 삶을 살아오실 수 있던 건 남명 선생의 영향이 컸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남명 선생은 ‘많이 안다는 것만으로는 지식이 아니다, 아는 것을 실천해야 그것이 진정한 지식이다’라고 늘 실천학문을 강조하셨던 분이잖아요. 남명 선생의 가르침을 김장하 선생님이 실천하는 삶을 살아오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어른 김장하〉 스틸컷. 사진 제공=시네마달
〈어른 김장하〉 스틸컷. 사진 제공=시네마달

그렇군요. 조금 더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김주완 기자 세 분 다 일일이 설명하면 길어지니까, 공자님 관련해서만 부연드릴게요. 김장하 선생님이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 『논어』 「학이」편의 세 번째 문장 ‘인부지이불온(人不知而不慍)이면, 불역군자호(不亦君子乎)아’입니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서운해하지 않으면 군자가 아니겠는가’라는 뜻이죠.

둘째로 김장하 선생님이 생활신조로 삼은 말이 있어요. ‘앙불괴어천부부작어인(仰不愧於天俯不怍於人)’으로 『맹자』 「진심상」편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고, 사람을 향해서도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이 사는 것을 뜻합니다. 선생님께서 평생 실천하려고 했던 신조였죠.

부끄러움에 대해서는 영화에서도 나오죠. 깜짝 생일잔치에서 부분에서요.

김주완 기자 그렇습니다. 진주시민 120여 명이 모여서 깜짝 생일잔치를 열었잖아요. 덕담 한 말씀 해달라고 했죠. 김장하 선생님께서 딱 세 마디를 하셨어요. “칠십 년 동안 나름대로 부끄럽게 살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아직도 부끄러운 것이 더 많습니다. 앞으로는 부끄럽지 않게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요. 세 문장에 공통적으로 ‘부끄러움’이 들어갑니다. 겹쳐져요.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기 위해 평생을 저렇게 살아오신 것이죠.

김현지 감독 또 정말 멋있는 장면이요. 당시 전교조에 가입한 교사들을 해임하라는 정부의 압력이 들어오잖아요. 세무조사부터 감사까지 한다고 하니 선생님께서 ‘그렇게 나오면 나는 쉬워요. 잘못한 게 없거든’이라고 말씀하세요. 너무 멋있지 않습니까?

 

정말 부끄럽지 않게 살아온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네요. 두 분이 생각하기에 어른은 누구인가요? 또 어른의 자격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김주완 기자 어른과 꼰대를 비교해서 말씀드리면요. 꼰대는 말로 가르치려고 하는 사람이고, 어른은 자기가 살아온 삶과 행동으로 후배, 후세들에게 자연스럽게 가르침을 주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장하 선생님은 수많은 장학생이 있었지만, 단 한 명에게도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도 한 적이 없어요. 명신학원을 운영할 때는 교사들에게 일체 훈수를 두지도 않았죠. 말이 아니라 그분이 살아온 삶 자체가 가르침이 되는 겁니다.

자녀 교육에 있어서도 흔히 부모가 하는 행동을 자식이 따라 해요. 부모가 자녀를 앉혀놓고 말로 이래야 해, 저래야 해 하면 제대로 된 교육이라고 할 수 없죠. 부모가 모범적인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게 진정한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장하 선생님은 그런 점에서 어른이라고 생각해요.

김현지 감독 어른이 되려면 자기연민을 먼저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젊은 시절에는 세상의 중심이 자신이고, 자신이 가장 불쌍한 사람이죠. 그때는 그럴 수 있어요. 저도 그랬고요. 어른이 되려면 자기연민을 내려놓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웃을 연민할 수 있는 거죠. 김장하 선생님을 보면 자기연민이 거의 안 느껴져요. 어른으로 살면서 외로우셨을 거 같아서 외롭지 않으셨냐고 여쭤본 적이 있는데 ‘별로’라고 답하시더라고요. 공부를 못해서 한이 되면 그걸 풀려고 과하게 몰입하거나 몰두하는 분야가 있을 법도 한데, 그렇지도 않으셨고요.

 

김장하 선생님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요?

(둘이 동시에) ‘어른 김장하’죠(웃음).

알겠습니다. 이제 조금 영화적인 부분을 질문할게요. 마치 영웅과도 같은 한 인물의 서사를 따라가면서 자칫 딱딱해질 수 있던 분위기를 약간 대조적으로 사용한 음악이 완화해준 거 같아요.

김현지 감독 제가 김인영 음악감독께 부탁드린 게 있어요. 절대 웅장한 오케스트라 음악은 하지 말아 달라고요. 특히 바이올린은 안 된다고요(웃음). 김장하 선생님이 평생을 평범하게 삶을 꾸려온 분인데 음악으로 그런 무게감을 만들면 안 될 것 같아서요. 그래서 코러스도 안 된다고 했고요(웃음).

 

영화는 김장하 선생님 이야기를 다루지만, 또 다른 결이 있더라고요. 지역 언론의 역할을 재조명한 부분인데요. 김주완 기자님은 평생 기자 생활을 하시면서 사회의 어두운 면을 파헤쳐 고발하는 언론 본연의 역할에 충실했다가, 김장하 선생님 취재를 계기로 변화하셨습니다. 좋은 이야기를 발굴해 사회를 선하게 바꾸는 데 영향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하신 거죠. 지역 언론의 역할에 대해 고민해보게 되는 지점인데요. 초고령화 시대, 지역소멸 시대에 접어들면서 지역 언론이 직면한 위기는 무엇이라 생각하세요?

김주완 기자 새삼스럽게 지금 위기가 온 것이 아니고 오래전부터 문제였죠. 실제로 지역 언론이 지역 주민에 밀착하려고 노력한 적이 별로 없습니다. 관의 눈치를 보면서 광고를 받아 살아왔어요. 지역신문 매출의 70% 이상이 지방자치단체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지자체의 언론에 대한 홍보비 집행 기준이 전혀 없어요. 마음대로 주는 거죠. 제도적 보완이 필요합니다. 여하튼 그런 상황에서 실제 지역 주민에게 다가갈 노력을 할 필요가 없는 거죠. 지자체에만 잘하면 광고가 나오니까요.

이렇게 말하면 민망하긴 하지만, 그래도 제가 있던 경남도민일보는 지역 주민에게 손을 벌렸어요. 후원해달라고요. 뻔뻔하게 말이죠(웃음). 우리는 관에 의존하지 않는다, 빌붙지 않겠다, 주민 편에 서겠다고 말하면서요. 그러니 한 달에 만 원이라도 보태달라고 까놓고 이야기한 신문은 우리뿐일 겁니다. 저는 지역언론이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현지 감독 사실 김주완 기자는 지역언론이 살아갈 방법에 대한 연구도 많이 하셨고, 발언도 해오셨어요. <어른 김장하>에서도 진주신문에 대해 질문할 수 있었던 건 김주완 기자였기에 가능했던 거죠.

 

알겠습니다. 사실 제일 궁금했던 건데 김장하 선생님은 영화 보셨나요?

김현지 감독 아니요.

안 보실 거래요?

김현지 감독 네. 시사회에 초대했지만, 안 오셨어요. 이렇게까지 사람들이 알아보고 하니 불편하실 것 같아요. 저희도 죄송한 마음이 있죠. 60년이나 ‘어른’이라는 감옥에 갇혔다가, 이제 자연인으로 살고 싶으신데 평안을 깬 거 같아서요. 가족께도 죄송하고요. 그래서 ‘김장하 정신’은 스크린으로만 감상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어떻게 다가가면 좋겠나요?

김현지 감독 저는 김장하 선생을 뵙고요, 저 자신도 그랬고 경남MBC 동료들도 그랬는데,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게 해주셨어요. 우리 모두가 김장하가 될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아요. 이상이 높으면 상처도 크거든요(웃음). 다만 이 영화를 보고 조금은 더 나은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이 들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김장하 선생님께서 말하는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는 세상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길이기도 할 테고요.

또 하나 말씀드리고 싶은 건, 김장하라는 영웅을 칭찬하는 걸로 끝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문화, 여성, 시민운동 같은 건 사실 국가가 감당해야 할 일인데, 김장하 선생님이 그 틈을 메꿔온 것 아닌가요? 이제 은퇴하셨으니 국가가 그리고 시민사회가 그 부분을 메꿔가야 할 거라고 생각해요.

김주완 기자 김장하 선생님을 취재하면서 가정에 평화가 왔습니다(웃음). 저한테 김장하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기소불욕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이라고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도 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죠. 그 말씀을 듣고부터는 제가 하기 싫은 일을 절대 아내에게 안 시킵니다. 예전에는 뭐 가져다 달라는 등 요구를 많이 했는데요. 이제 직접 하죠. 설거지거리가 눈에 띄면 먼저 하고, 청소해야겠다 싶으면 청소도 합니다. 그러니 가정에 평화가 오더라고요. <어른 김장하>를 보시고 저처럼 그런 좋은 영향을 받아서 자신의 삶이 행복해지는 사람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윤상민 씨네플레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