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기사 카테고리

Movie & Entertainment Magazine from KOREA
>인터뷰

[인터뷰] 로맨스 영화의 새로운 고전 될까?〈싱글 인 서울〉박범수 감독

씨네플레이

보는 것만으로 설렘을 유발하는 로맨스 장인 이동욱, 임수정 배우가 만났다. <싱글 인 서울>(감독 박범수, 2023)에서 “나한테 딱 맞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라고 외치는 인플루언서 영호(이동욱)와 혼자 썸타기, 나 홀로 그린라이트 일상을 보내는 편집장 현진(임수정)으로. 싱글 라이프를 담은 에세이 ‘싱글 인 더 시티’ 시리즈의 작가와 편집자로 만난 두 사람은 생활방식부터 가치관까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책을 두고 사사건건 대립하면서도 함께 보내는 시간이 나쁘지만은 않다. 혼자가 좋지만, 연애는 하고 싶은 두 남녀의 싱글 라이프가 부쩍 차가워진 바람 사이를 비집고 11월 29일 관객을 만난다.

팍팍한 일상을 살아내다 보니, 어느덧 한 장만 남은 달력. 뉴스에서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사건, 사고들이 넘쳐난다. 쇼츠 영상으로 잠깐 웃어보지만, 언제 마음 편히 미소를 지어봤는지 까마득하다. 센 영화들, 우울한 영화들이 넘쳐나는 극장가에 등장할 <싱글 인 서울>은 잊었던 웃음을 되찾아주기에 충분하다.

뻔할 것 같은 상황에서도 뻔할 것 같은 캐릭터들에서도 빵빵 터지는 웃음을 선사하는 <싱글 인 서울>은 ‘말맛’에 충실한 영화다. 한국 대표 동안 배우 이동욱과 임수정의 투샷은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적재적소에서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활약하는 조단역들의 연기도 주연 배우들과 앙상블을 이룬다. 여기에 경복궁, 한강, 남산 등 서울을 대표하는 장소들이 친근하면서도 때로는 낯선 모습으로 다가온다. 배우의 연기부터 대사의 말맛, 배경과 소품, 음악까지 완벽하게 조화로운 <싱글 인 서울>은, 어쩌면 로맨스 영화의 새로운 고전의 반열에 들어갈지도 모르겠다. 2014년 <레드카펫>으로 데뷔해 근 10년 만에 두 번째 영화 <싱글 인 서울>로 돌아온 박범수 감독을 서촌에서 만났다.

 


박범수 감독. 사진 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박범수 감독. 사진 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2014년 데뷔작 <레드카펫> 이후 거의 10년 만에 돌아오셨어요. <빅토리>가 후반작업 중이기도 합니다만,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영화 한 편 찍고 나면 바로 다음 작품에 들어가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웃음). 첫 영화도 찍기가 정말 어려웠는데, <레드카펫>이 대중적으로 흥행하지는 못해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요. 그 사이에 제작자분들도 많이 만났고, 또 시나리오를 많이 쓰면서 보냈습니다.

<싱글 인 서울>은 어떻게 시작된 영화인가요?

명필름 심재명 대표님이 어느 날 전화를 주셨어요. 제가 일산 살면서 가끔 드라이브 삼아 파주를 가는데요, 거기 명필름 건물이 있어요. 멀리서 봐도 트로피들이 쭉 전시되어 있는 건물인데, 밖에서 명필름 건물을 보면서 제 모습을 다잡기도 했었는데, 그런 명필름에서 연락이 온 거예요. 깜짝 놀랐죠. <레드카펫>을 잘 보셨는지, <싱글 인 서울> 연출 제안을 주셨습니다. 신혜연 인사이트 필름 대표님이 구상했던 아이템이었는데, 심재명 대표님과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의기투합해서 공동제작을 하게 된 거고, 제게 연출을 제안하신 거죠.

원작 시나리오가 있잖아요. 첫인상이 어땠나요?

너무 드라마 느낌이 나서 고민을 좀 했죠. 영화적인 느낌으로 가야 할 거 같다는 생각이 강했거든요. 이걸 영화로 만들어서 극장에 걸렸을 때, 마블 영화들이나 <듄>(2021) 같은 영화처럼 모래폭풍 날리고, 사운드가 넘쳐나는 영화와 같은 가격을 받고 상영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었죠. 하지만 명필름이니까! 일단 하겠다고 했습니다(웃음).

 

각색을 많이 하셨겠네요. 특히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요?

원래 제가 글을 쓰는 편이라 원작을 많이 고칠 거라고 말씀드렸어요. 첫 제목이 <싱글남>이었어요. 출판하는 이야기였는데, 배경을 서울로 가져온 거예요. 제가 예전에 아내와 홍콩 여행을 갔는데, 처음 와 본 홍콩이 너무 익숙한 거예요. 어렸을 때 <첨밀밀>(감독 진가신, 1996) 같은 홍콩영화를 많이 봐서 그런지, 마치 자주 와봤던 것처럼 추억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없던 추억도 만들어줄 수 있는 홍콩이란 도시처럼, 서울을 배경으로 가져가면 극장 티켓값 만오천원의 가치가 있을 거란 생각을 했습니다. 서울을 아는 분이나 한번 와봤던 분들에게 공감 가는 추억을 줄 수 있도록요. 그러면서 그 안에 싱글들의 모습과 책을 만드는 과정도 넣었죠.

영화에서는 책을 만드는 과정이 굉장히 디테일하게 나오는데, 원작 시나리오에서부터 가져온 설정인가요?

그렇게 디테일하게까지는 아니었어요. 사실 영화를 찍기 전까지는 책을 만드는 과정을 잘 몰랐어요. 그래서 심재명 대표님께 말씀드려서 편집자들을 많이 만났죠. 조사하다 보니 책을 만드는 과정이 영화 한 편을 만드는 과정과 비슷하더라고요. 또 연애 과정과 비슷한 점도 있어서 그런 부분들을 담아내려고 생각했어요. 영화에서 오 시인(조달환)이 “글을 쓰는 건 사랑한 흔적과 같다”라고 했듯이요. 주인공인 영호는 논술 강사니까 글을 이성적으로 평가하는 사람이고, 여기에 현진이라는 편집자 캐릭터가 들어가면 대비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구상했습니다.

 

뻔할 뻔했던 상황들을 뻔한 데도 웃음 터지게 만드는 건 대사의 힘이겠죠. 말맛이 너무 좋은 영화인데요.

평소에도 재미있는 말에 관심이 워낙 많은 편이에요. 글을 수집합니다. 상황에 맞게 쓰려고 하고요. 사람들 관찰도 많이 해요. 저는 코미디 영화를 하고 싶은 사람인데요. 코미디도 날카로운 유머가 있고 따뜻한 유머가 있다고 생각해요. 누군가를 벨 수 있는 유머보다는, 따뜻한 유머 글을 수집하는 편입니다. 다소 뻔한 상황에서 자기들끼리 별거 아닌 거 만들면서 만족하는 그런 이야기를 좋아하거든요. 사실 유머라는 게 공감이 되어야 웃을 수 있잖아요? 그래서 공감 가는 캐릭터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요.

어떤 코미디 영화들 좋아하세요?

기본적으로 픽사 영화들은 다 좋아해요. 가장 닮고 싶은 감독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입니다. 물론 코미디 감독으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그분 영화의 따뜻함이 기본적으로 좋아요. 웨스 앤더슨 같은 발칙한 감독도 좋아합니다. <랍스터>(2015)의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님도요. 주성치도 너무 좋아하고요. 말하다 보면 끝도 없을 거 같아요. (웃음)

 

뻔할 것 같은 로맨스 영화를 그렇지 않게 만드는 요인 중에는 배우의 힘도 빼놓을 수 없겠죠. 그야말로 ‘뱀파이어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나이를 먹지 않는 두 배우, 임수정과 이동욱을 캐스팅하셨습니다. 원픽이셨나요?

솔직히 원픽은 맞습니다. 다만 시나리오 쓸 때는 두 배우를 생각한 건 아니었어요. 제작사 측에서는 젊어야 한다고 이야기하셨는데요, 저는 오히려 나이 있는 분들 이야기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20대가 싱글이라고? 하는 느낌보다는 더 올리고 싶었던 거죠. 계속 논의하면서 합의한 나이대가 딱 임수정, 이동욱 배우 정도였어요. 임수정 배우는 워낙 제 로망이고요. 영화감독 중에는 임수정 배우와 영화를 찍은 감독과 아닌 감독으로 나뉜다고 생각했었거든요(웃음). 그래서 임수정 배우와 영화를 찍게 되어서 정말 영광스러웠습니다.

캐스팅은 바로 된 건가요?

로맨스 영화에서 남녀 주인공의 훈훈한 비주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두 시간이라는 영화의 러닝타임 동안 관객들이 배우의 감정에 올라타서 사랑에 빠지게 하려면, 훈훈하면서도 편안하고 그러면서도 약간 코미디도 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연출 정지현‧권영일, tvN, 2019)에서 임수정 배우와 이동욱 배우가 함께 연기하는 걸 보면서 설레였거든요. 둘이 궁금하다, 두 사람으로 영화 한 편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사적인 팬심을 이렇게 영화에 녹여본다는 마음으로 제안했는데, 다들 좋아해주셨습니다. 두 배우 모두 답을 금방 줘서 쉽게 캐스팅되었고요.

촬영 현장에서 이동욱, 임수정 배우는 어땠나요?

이동욱 배우는 정말 가식이 없어요. 투덜대면서도 잘해주는 타입이죠. 영호 캐릭터에 찰떡이더라고요. 임수정 배우는 우아하고 기품 있는 와중에도 허당 같은 모습이 있어요. 이 두 배우의 평소 모습을 캐릭터에 반영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배우들도 촬영 현장에서 굉장히 협조적이었어요. 게다가 두 배우 모두 너무 노련해서 촬영 현장의 분위기를 리드해주셨죠. 조단역 배우들이나 카메오 배우들이 오면 굉장히 잘 챙겨주면서 호스트 역할을 하시더라고요. 감독까지 잘 챙겨주는 걸 보면서 역시 대단한 배우들이란 느낌을 받았습니다.

조연 캐릭터들도 다들 한몫을 해요. 김지영 배우 대사는 촌철살인이고, 이미도 배우도 처음에는 미스캐스팅인가 싶었는데, 역할을 톡톡히 하더라고요. 과하게 느껴지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습니다.

정말 제가 배역을 제안 드렸을 때 다들 흔쾌히 합류해주셨어요. 팔불출 같아서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싱글 인 서울> 조연 배우들은 인성도 너무 좋더라고요. 장현성 배우는 첫 만남에서 “영화를 하고 안 하고를 떠나서 이런 대사를 쓰는 감독이 누군지 궁금해서 얼굴 보러 왔다”고 하셨고요. 물론 할 마음으로 오셨겠지만요.(웃음) 김지영 배우와 이미도 배우는 현장을 유쾌하게 이끌어가는 ‘에너자이저’들이었습니다. 이미도 배우는 거의 반 스텝일 정도였어요. 김지영 배우는 리딩 때 옷도 반쯤만 걸치고서는 “옷 사이즈 맞다고 생각하세요, 살 빼서 올게요. 입금되면 맞춰요”라면서 현장 분위기를 풀어주셨어요.(웃음)

 

눈치제로 막내 편집자로 분한 이상이 배우의 연기 변신도 흥미롭더라고요.

오디션을 한참 보던 중에 “내가 신인 보는 눈이 있어”라며 심재명 대표님이 추천해주셨어요. 조정석 배우도 그렇게 발굴하셨잖아요. 저는 눈치제로 출판사 막내 ‘병수’ 역할은 실제로 어리숙해 보이는 캐릭터보다는, 뭔가 반듯하고 공부도 잘하고, 장기도 있는 캐릭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레드카펫>에서는 황찬성 배우가 그런 역할을 해줬죠. 이상이 배우 미팅을 했는데 느낌이 너무 좋더라고요. 목소리도 좋고 반듯한 이미지가 있어서요. 그래서 보상을 줘야 한다고 생각해서 영화 후반부에 노래 부르는 장면이 들어간 거죠. 아, 그 장면을 본 장현성 배우가 자기도 노래 잘하고 기타도 잘 치니까 씬 하나 만들어 달라고 하더라고요. 에필로그에서 노래 부르면 안 되겠느냐고요.(웃음)

심지어 고양이도 연기를 잘하더라고요.(웃음)

오디션을 봤습니다.(웃음) 김포에서 고양이들을 케어하는 곳이 있는데, 가장 연기력이 뛰어난 고양이를 보내달라고 해서 3마리를 오디션 했고요. 그중에 가장 성격 좋은 고양이가 선발이 된 거죠. 그런데 막상 현장에서는 스태프까지 사람들이 100명이 넘으니 세트장 밑에 들어가서 안 나와서 애를 먹었죠. 나중엔 친해져서 이동욱 배우 품에 안겨 있더라고요. 그걸 본 여자 스태프들도 고양이도 잘생긴 거 안다며 웃었고요.

 

생생하게 살아있는 조연 캐릭터들을 만들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저는 시나리오를 쓸 때 빨리 초고를 뽑고, 여러 번 빠르게 수정하는 타입이에요. 이번에는 현진의 입장에서 시나리오를 수정하고, 다음에는 영호의 입장에서 수정하는 거죠. 그다음에는 단역들의 입장에서 수정하고요. 작가나 배우가 캐릭터에 애정을 안 갖고 있으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인지 미팅할 때 다들 좋아해주신 거 같아요. 영화에는 나오지 않는 캐릭터의 이면이라든가, 전사도 같이 이야기하면 배우들도 좋아하더라고요.

현진과 영호의 러브라인을 따라가는 것이 영화를 관람하는 큰 줄기인데요. 사실 뒷부분에서 두 사람의 진도가 쭉쭉 나가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저만의 기분일까요?

그럴 수 있습니다.(웃음) 사실 기자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고요. 제 성향이 사랑이 이뤄지기 전까지 과정을 재미있어하는 취향이에요. 드라마를 봐도 사랑이 이뤄지기 전까지 3~4화는 재미있게 보는데, 막상 사랑이 이뤄지면 흥미를 잃게 되더라고요. 영화는 두 시간이니까, 그 과정까지만 밀도 있게 담으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제작사에서도 이해해주셨고요.

 

뻔한 데 뻔하지 않게 하는 요인 중에 대사, 배우들의 연기, 장소, 음악 등 모든 것에서 느껴져요. 연출에서 특별히 신경 쓰신 부분인가요?

현진과 영호 캐릭터의 자연스러움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걸 놓치면 의미가 없다고 봤죠. 톤, 전체 흐름 조절에 대해 배우와 틈틈이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래서 현장에서 디렉팅 할 때 정말 편했어요. 딱 봤는데 아무리 봐도 이 톤은 아닌 거 같아서 ‘컷’하고 배우들에게 걸어가기만 해도 “감독님, 이번 대사 좀 빨랐죠?”, “이 감정 톤이 아니죠?” 이렇게 말할 정도로 통했어요. 정말 임수정, 이동욱 배우는 선수더라고요. 수다를 떨면서 리딩을 많이 한 덕분이기도 하죠. 그리고 현장에서는 아무래도 연기에 중점을 뒀어요. 관객들이 올라탈(몰입) 수 있는 감정인가를 잡아내야 하는 거죠. 한정된 러닝타임에 로맨스 영화라는 장르에서 관객들이 빨리 올라타려면 캐릭터들이 공감 가야 하거든요. 저는 그걸 ‘귀엽다’고 표현하는데요, 두 배우에게 관객들이 호감을 느껴야 공감할 수 있고 따뜻하게 볼 수 있으니, 계속해서 “귀여움을 잃지 말아 달라"라고 디렉팅 했습니다.

 

제목에서도 나오지만, 서울의 여러 모습이 담겨 있어서 좋더라고요. 경복궁이나, 남산 등등 여러 장소 중 영화에서 서울의 얼굴로 보여주고 싶은 장소는 어떻게 선택했나요?

궁, 한강, 남산 같은 곳들은 시대가 지나도 변하지 않을 것 같아서 선택했습니다. 물론 제가 좋아하는 장소이기도 하고요. 저는 집이 일산이지만, 서울을 굉장히 좋아해요. 한때는 유럽 도시들에 로망이 있었습니다. 템스강도 가보고, 프랑스도 갔죠. 그런데 과연 한국보다 멋있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방에 갔다가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한남대교로 넘어갈 때 만나는 서울의 모습이나, 인천공항에서 서울에 들어갈 때 야경이 너무 멋지잖아요. 이런 모습이 외국인들이 보면 멋있을 수 있는데, 왜 멋있는 걸 밖에서만 찾지 하는 생각도 있었죠. 그래서 촬영감독에게 서울의 모습을 담을 때 최대한 뻔하지 않은, 마치 외국인이 찍은 것 같은 모습으로 담아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조금 낯설게 보일 수 있는 느낌을 주면 좋겠다고요.

음악이나 소품에도 신경 쓴 티가 역력히 드러나는데요, 특히 공들인 부분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영호 집은 혼자 사는 남자의 로망으로 보이도록 신경을 썼죠. 일타강사면 과연 이 정도 한강뷰가 보이는 집에서 살 수 있는지 분석도 했어요. 실제 일타강사에게 편지를 써서 답장도 받았습니다.(웃음) 헌팅 갔던 장소에 미술팀도 답사를 함께 가서 그 느낌을 살려서 세트에 구현했고요. 싱글인 영호의 취향을 반영해서 머그잔도 하나, 수저도 한 벌만 있게 했죠. 영호의 예전 자취방은 모두가 한 번쯤 살아봤던 자취방 느낌으로 만들어달라고 미술감독님께 말씀드렸죠.

 

이 영화의 또 하나의 미덕은 아날로그적인 감성의 소품들을 로맨스 영화의 클리셰로 충분히 활용해 낡아 보이지 않도록 한다는 데 있습니다. 책이라는 물성, 그것을 만들어내는 편집자, LP 등등 너무 많아요. 원작에 있던 설정인지, 아니면 감독님께서 넣은 부분인지 궁금하고요. 또 이런 아날로그적 감성을 통해 드러내고 싶었던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각색하는 과정에서 다 들어온 부분들이에요. 영호 캐릭터를 만드는 과정에서 좀 아이러니하게 생각한 게 있어요. 현진도 “혼자 살면서 온갖 멋있는 거 다 있는데, LP는 허세 아니야?”라고 말하잖아요. 현진이도 종이책 만드는 사람이면서 말이죠. 그래서 영호는 클래식한 걸 좋아하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러면서도 현대적이에요. 싱글을 주장하는 것 자체가요. 그렇게 아이러니한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던 마음이 있습니다. 또 영화가 개봉하고 5년 후, 10년 후에 다시 봤을 때, 낡아 보이는 영화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고 봐도 더 좋은 영화였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멋지게 낡아 보인다고 할까요? 빈티지한 느낌이 나도록 하려고 해서 아날로그적인 부분들에 신경을 썼습니다. 두 배우의 헤어부터 전반적인 스타일까지도요.

그래서 ‘싱글이냐 커플이냐’라는 해묵은 논쟁에 감독님은 어떤 말씀을 해주시겠습니까?(웃음)

저도 그걸 고민하다가 결혼한 케이스라서요.(웃음) 싱글로 살겠다고 선언하고, 부모님께도 말씀드렸거든요. 같은 선언을 한 후배가 있었는데, 그 친구랑 연애하다가 결혼하게 된 거죠. 저희 생각을 말씀드리면, 혼자가 정말 좋고 편하기는 한데, 그 혼자도 진짜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정말 완벽한 혼자가 어디 있나요? 예를 들어 웹툰은 혼자 만든다고 하는데, 밥해주는 분들부터 청소하는 분, 친구, 가족 등 다 영향을 받고 있잖아요. 진짜 완전한 혼자라는 건 없는 거고, 꼭 연애가 아니더라도 관계 속에서 사는 거죠. 그래서 관계가 굉장히 중요하고요. 확실히 싱글일 때 편한 게 많아요. 저 역시 싱글일 때 성장을 많이 했거든요. 여행도 많이 다녔고, 책도, 영화도 많이 봤죠. 그런데 결혼해서 둘이 되어 보니, 이건 성숙하는 시기로 접어들더라고요. 답은 없는 것 같아요. 뭐라 딱 말씀드리기가 그렇지만, 싱글인 분이나 커플인 분들도 이 영화를 보고 공감하고 설렜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합니다. 커플이 되는 것에 너무 닫아두지는 마시고요.(웃음)

관객들에게 <싱글 인 서울>이 어떤 영화로 다가가면 좋겠다고 생각하세요?

두 시간 가까이 감독으로서 하고 싶은 말들을 다 쏟아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설 때 싱글이든 커플이든 다시 설레는 마음으로 나가면 좋겠다는 마음이 제일 큽니다. 마치 제가 홍콩에서 와봤던 곳처럼 느꼈듯이, 관객분들에게도 좋은 추억으로 기억되는 영화면 좋겠습니다. <싱글 인 서울>에서 그런 추억을 선물해드리고 싶습니다.

 

윤상민 씨네플레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