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인>은 단연 올해의 가장 성공한 드라마 중 한 편으로 기억될 듯하다. <연인>은 최고 12.9%의 시청률은 물론, 종영 후에도 ‘능군리’(<연인>의 배경이 되는 지명)에서 쉽사리 헤어 나오지 못하는 수많은 팬덤을 양산했다. <연인>은 현재 웨이브(Wavve)에서 독점 스트리밍 중인데, 마지막 회에서 결국 이어진 '장채커플'(장현과 길채)의 행복한 엔딩을 보고 난 후, 슬퍼할 일 없이 마음 놓고 드라마를 다시 정주행하는 팬들 역시 늘어나고 있다.
또한, 종영을 아쉬워하는 팬들을 위해 <연인>의 21화 '확장판'이 지난주 공개됐다. 확장판에서는 마지막 회에 미처 담기지 않은 장면들과 다양한 인물들에 대한 서사가 드러나 드라마의 여운을 더하고 있다. <연인>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정주행하고도 허한 마음을 달래지 못했다면, 웨이브에서 확장판을 시청해보는 것도 좋을 터.

원작이 없는 오리지널 드라마의 성공이 매우 귀한 이 시대에, ‘멜로’와 ‘사극’ 장르 역시 귀한 이 시대에 <연인>의 성공적인 종영은 꽤나 반갑다. 최근 타임슬립 등의 요소를 덧댄 판타지 사극이나 가상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퓨전 사극이 주를 이루는 것과 <연인>은 대조적이다. 또, 정통 멜로보다는 로맨틱 코미디, 그리고 에피소드 중심으로 구성된 드라마가 유행하는 요즘 같은 시기에 완결된 21부작 멜로드라마라니. 여러모로 성공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먼지 쌓였던 장르의 부활을 알리며 보란 듯이 흥행을 거둔 <연인>이 주는 의미는 그래서 더욱 깊다.

<연인> 성공의 주요한 이유로는 이른바 ‘작감배’(작가+감독+배우)의 삼위일체가 꼽힌다. ‘휴먼 사극’ 강자 황진영 작가와 <검은태양>의 김성용 감독, 그리고 배우 남궁민과 안은진 등의 출연진까지. 특히나 ‘이장현’ 그 자체가 되어버린 남궁민의 연기는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레 남궁민의 연말 연기대상 수상을 점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올해 <연인>과 남궁민이 연기한 이장현이 사랑받은 이유를 다시 짚어보자.
‘분석형 연기자’ 남궁민이 생명력을 입힌 이장현

배우의 연기를 유형화할 수 있다면, 남궁민은 단연 ‘분석형 연기자’다. 그는 연기에서만큼은 ‘완벽주의자’로 정평이 나 있는데, 그의 대본은 빼곡한 필기로 너덜너덜해질 정도다. 그는 대본에 대사 톤, 발성, 호흡, 발음, 그리고 대사에 대한 자신만의 해석 등을 적는데, 마치 논문과 같은 모습에 그의 대본은 ‘논문 대본’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는 부단한 연습의 이유로 “그래야 자신감이 생긴다”라며, “연습을 안 하고 잘하길 바라는 건 욕심”이라고 밝혔다. 그는 카메라 앞에서 대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튀어나와야 한다”라며, 연기를 하는 순간에는 그 상황의 감정에만 집중한다고 밝혔다.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하지만 ‘전쟁 드라마’가 아닌 ‘휴먼 드라마’, 사건에 휘말린 인물의 섬세한 감정이 서사의 주가 되는 <연인>에서 남궁민의 ‘분석 연기’가 특히나 빛을 발한 이유다.
다양한 장르를 거쳐 비로소 완성된 남궁민의 이장현

<연인>의 이장현은 스스로를 “닳고 닳은 잡놈”이라고 했던가. 어디서 굴러왔는지 근본도 모를, 닳고 닳은 사내. 남궁민이 걸어온 길 역시, 이장현의 그것과 똑 닮았다. 어떤 작품 하나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것이 아닌, 코미디도 하고, 로맨스도 하고, 스릴러도 하고, 액션도 하며 하나의 길만을 걸어오지 않은 배우. 다채로운 장르를 섭렵하며 줄곧 캐릭터와 연기의 폭을 넓혀온 그는 <연인>의 이장현을 통해 그의 커리어에 정점을 찍었다.
<연인>의 이장현은 사극의 주인공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입체적인 캐릭터다. <천원짜리 변호사>의 ‘천변’의 말빨 한 스푼, <김과장>의 ‘김과장’의 능글거림 한 스푼, <스토브리그>의 ‘백승수’처럼 빠른 실리 판단 한 스푼. 그 모든 장르가 합쳐져, <연인>의 이장현은 남궁민일 수밖에 없었다.
‘비혼’ 이란 단어를 사극에서 들어본 적이 있던가. “유교가 지배하는 이씨 조선에서 잡놈으로 한번 살아보려고” 스스로 이름을 ‘장현’에서 ‘이장현’으로 바꾸고, 스스로 '비혼주의자'를 자청하는 등, 이장현 전통적인 조선의 문화에 반기를 드는 인물이다. ‘연준’(이학주)이 시대의 전형적인 선비상을 대변하는 인물인 반면, 이장현은 연준과 모든 부분에서 대척점에 서 있다. “오랑캐가 명을 이길 수도 있지 않은가” “임금이 백성을 버리고 도망하였는데, 왜 백성이 임금을 구해야 한단 말인가” 등, 남궁민의 이장현은 ‘그동안 사극에서 본 적 없는 캐릭터’를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황진영 작가의 차진 대사빨, 그리고 침묵도 대사처럼 들리게 만드는 남궁민의 연기력

남궁민은 <연인>의 대본을 읽고 사흘 만에 출연을 결정했다고 밝혔을 만큼, 황진영 작가는 흡입력 있는 이야기를 섬세하게 그려내는 작가다. 남궁민은 유난히도 작품을 고르는 눈이 좋다고 소문난 배우이기도 한데, 순전히 대본의 ‘재미’를 기준으로 출연을 결정해 온 것이 그 바탕이 되었다. 남궁민은 신인 감독이나 작가도 가리지 않고 대본만 재미있다면 출연을 결정해왔는데, 그 덕분에 <스토브리그> <검은태양> 등의 히트작들을 남길 수 있었다.
황진영 작가는 영화 <쌍화점>(2008)의 각색으로 커리어를 시작해, 드라마 <절정> <제왕의 딸, 수백향> <역적 : 백성을 훔친 도적> 등의 사극으로 필모그래피를 채웠다. 역사를 전공해 역사에 진심인 황진영 작가는 역사적 사실을 꼼꼼하게 짚어내는 작품보다는 역사를 배경으로 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줄곧 관심을 가져왔다.
황진영 작가는 순간의 감정을 대사를 통해 ‘탁’ 하고 짚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봄에는 꽃구경하고, 여름엔 냇물에 발 담그고, 가을에 담근 머루주를 겨울에 꺼내 마시면서 함께 늙어가는 것”이라던 길채(안은진)의 대사처럼, 작가가 정의하는 사랑, 그리고 인간에 대한 통찰력은 드라마의 대사 곳곳에 묻어 진한 울림을 준다.
황 작가의 과감하고 재치 있는 대사도 매력적이다. 길채가 연준을 연모하자 이장현이 “나는 너를 믿었던 만큼 내 친구도 믿었기에 널 아무런 부담 없이 내 친구에게 소개시켜줬고”라고 능청스레 내뱉는 말은 유명 가요의 가사임에도 이질적이라기보단 극에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해냈다.

가령 길채와의 입맞춤 전 “내 몸과 마음은 모두 낭자의 것인데, 낭자의 것 중 내 것은 없나” 등의 대사처럼 과할 수 있는 대사도 남궁민이 연기하는 이장현의 입을 거치면 명대사가 된다. 특히 <연인>을 관통하는 명대사로 회자되는 이장현의 “안아줘야지, 괴로웠을 테니"는 길채뿐만 아니라 고된 현실에 지친 모든 시청자들에게 건네는 위로와도 같았다.

남궁민은 심지어 대사 한 줄이 없는 장면조차 압도한다. 특히, 드라마의 마지막 엔딩 씬은 드라마를 이제까지 한 번도 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단박에 눈물을 흘리게 할 만큼, 눈빛으로 그들의 모든 서사를 설명하는 장면이었다. 길채 역을 맡은 안은진은 “(남궁민의) 눈만 봐도 찡해진다”라며, 배역에 완벽히 녹아든 모습을 뽐냈다. 특별한 대사 없이도 찰떡 케미를 보여주는 그들의 모습은 많은 이들이 ‘장채커플(장현길채 커플)’의 베스트커플상 수상을 염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씨네플레이 김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