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의 1980년대는 한 마디로 요약하면 오리지널 블록버스터의 시대다. 그때는 지금처럼 슈퍼히어로 영화가 모든 흥행 판도를 주도하는 흐름이 없었다. 과거와 달리, 와이드 릴리즈되어 대성공하는 블록버스터 영화 시대가 도래했지만 수많은 영화들이 자신만의 오리지널리티를 지닌 채 각양각색의 영화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고스트버스터즈>
<빽 투 더 퓨처>, <빅>
<다이 하드>

여기 소개하는 영화들은 1980년대에 만들어졌던 영화들 가운데 장르적으로 독특하고 우수한 시도를 했던 영화들이다. 당연하게도 리스트에 언급되지 못한 수많은 걸작이 사방에서 째려보고 있다. <고스트버스터즈>와 <빽 투 더 퓨처>, <다이 하드>도 빼놨고 <런던의 늑대인간>, <스탠바이미>, <블루벨벳>, <빅>, <맨헌터>, <폴터가이스트>, <블루스 브라더스>도 리스트에서 언급 못했다. 여기 선정한 10편의 영화들 중에 아직 못 본 영화가 있다면 꼭 챙겨보시길. 후회 없는 2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E.T. (1982)
시대와 거장이 만든 SF 걸작

이 영화로 리스트를 시작한다는 게 다소 식상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E.T.>는 1980년대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을 대표하는 영화로 영원히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많이들 이 영화를 아동용 영화라고 생각하지만, 나이가 들어 다시 보게 되면 굉장히 쓸쓸한 어른의 동화라고 보게 될 것이다. 어린 시절의 상처, 특히 가족으로 인해 생겨난 상처를 지닌 소년 소녀들의 친구가 되어준다는 것. 그것이 외계에서 온 배 나온 괴생명체 이티의 아름다운 역할이다. 어린 시절 스필버그 감독의 자전적 경험이 담긴 상실과 결핍이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정서적 기운이다. 그것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에서 오는 감동이 이 영화를 수십 번 보게 만드는 힘이다.

이티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출연 헨리 토마스, 피터 코요테, 로버트 맥노튼, 드류 베리모어, 디 월리스

개봉 1982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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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이드 러너 (1982)
근사하게 망가진 미래를 보여주는 누아르 영화

인간 사회에 몰래 숨어든 복제인간 ‘레플리컨트’들을 ‘은퇴’시키는 일을 하는 ‘블레이드 러너’ 릭 데커드의 이야기. 필립 K. 딕의 원작을 바탕으로 각색과 디자인을 거쳐 새로운 디스토피아를 건설하는 데 성공한 영화다. 이 영화 전후로 이만한 완성도를 지닌 SF 세계를 구축한 영화는 드물다. 일러스트레이터 시드 미드의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미래 도시 LA의 음습한 뒷골목 풍경을 헤집고 다니면서 레플리컨트를 추적하는 릭 데커드는 하드보일드 형사 영화 속 캐릭터 같다. 미래 배경의 누아르 영화를 찍고 싶었던 리들리 스콧 감독은 인간과 복제인간의 차이는 무엇인가, 인간성이라는 건 누가 무엇을 어떻게 결정하는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은 리들리 스콧 감독 영화 전체에 영향을 끼치며 지금도 그의 영화 속 주요 테마로 자리매김했다. 해리슨 포드와 레플리 컨트 역의 숀 영 등 배우들의 연기도 연기지만 역시 이 영화는 분위기만으로 압도한다. 매우 시적인 대사와 반젤리스의 몽롱하면서도 환상적인 음악이 주는 기운은 중독성이 강하다. 요즘 영화들은 쉽게 가질 수 없는 매력이다. 속편인 <블레이드 러너 2049>가 개봉했다.

블레이드 러너

감독 리들리 스콧

출연 해리슨 포드

개봉 1982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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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몬드 연애소동 (1982)
우리의 20세기 틴에이지 섹스 코미디

십대 청소년들의 ‘연애’를 소재로 한 멜로나 코미디 영화는 지금도 숱하게 만들고 있지만 이때처럼 ‘통통 튀게’ 만들기는 쉽지 않다. <리치몬드 연애소동>은 청소년들이 주로 생활하거나 돈을 버는 쇼핑몰과 패스트푸드점, 학교 등을 배경으로 섹스에 대해 고민하고 또 즐기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어른들은 엄격하고 꽉 막힌 존재로 묘사되면서 아이들 스스로 삶을 고민하고 선택하는 과정을 담았다. 20대 시절의 숀 펜이 수업시간에 피자를 시켜 먹는 괴짜 너드 학생을 연기하는데 정말 얄밉게 연기를 잘한다. 무엇보다 가장 아름다운 피비 케이츠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영화 중 한 편으로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피비 케이츠 출연작 중에선 개인적으로 <그렘린>을 더 좋아하지만 이 영화도 빼놓을 수 없다.

리치몬드 연애 소동

감독 에이미 해커링

출연 숀 펜, 제니퍼 제이슨 리, 저지 레인홀드, 피비 케이츠, 브라이언 백커, 로버트 로마너스, 레이 월스톤

개봉 1982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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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스의 해방 (1986)
할리우드 중2병 틴에이저의 대표를 뽑는다면?

바로 위 질문의 대답을 하자면, 바로 이 영화의 주인공 페리스가 아닐까. 짜릿한 십대들의 일탈을 다루는 또 한 편의 영화 <페리스의 해방>이 독특한 이유는 에너지 넘치는 ‘섹스리스’ 코미디라는 점. 이 영화에서 첫 경험 따위는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갑자기 학교에 가기 싫어진 주인공 페리스(매튜 브로데릭)가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등교를 거부한 다음, 친구들과 함께 미술관, 극장 등 시내 중심가를 돌아다니다가 몰래 귀가한다는 내용의 영화다. 페리스와 친구들이 도심 곳곳을 돌아다니며 벌이는 행동을 통해 중산층 가정에서 억눌린 채 살아온 십대들의 자아를 마음껏 발산하는 쾌감을 선사한다. 어른들의 이중적 잣대와 중산층 계급의 허상을 슬쩍 꼬집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아주 유쾌한 코미디다. <스파이더맨: 홈커밍>에서 피터가 친구 홈 파티에 참석했다가 범죄 현장으로 가기 위해 이웃집들을 깨부수며 질주하던 장면은 페리스가 하루 동안 부모와 학교를 속이고 일탈을 벌이다가 집으로 귀가하는 마지막 장면을 오마주한 것이다.

페리스의 해방

감독 존 휴즈

출연 매튜 브로데릭, 앨런 럭, 미아 사라, 제니퍼 그레이

개봉 1986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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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시간 (1982)
형사 버디 영화의 시조새

두 명의 형사 내지는 형사와 범죄자 등의 콤비가 영화 내내 사건 현장을 휘젓고 다니는 이른바, ‘버디 무비’와 범죄 스릴러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이 놀랍도록 박력 넘치는 영화를 놓쳐서는 안 된다. <나쁜 녀석들>, <리쎌 웨폰> 등의 시리즈 이전에 캐릭터의 원형 같은 걸 제시해주고 있으며 <다이 하드>나 <프렌치 커넥션> 같은 영화 속 형사처럼 근성 하나로 끝까지 밀어붙이는 하드보일드 형사 캐릭터 계보에 놓여 있는 영화다. 강력반 형사 역의 닉 놀테와 정보 제공하는 끄나풀 범죄자 역의 에디 머피가 환상적인 콤비를 자랑한다. 오우삼, 두기봉 감독 류의 홍콩 경찰 영화를 보는 듯한 스타일리시한 매력과 박력을 겸비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서극, 두기봉, 오우삼 감독의 주요작보다 먼저 만들어진 영화다. 이 영화를 연출한 월터 힐 감독은 현대 장르 영화에 서부극을 이식해 만들길 좋아했던 감독이다. 신경질적이면서 적당히 알코올 중독에 가정생활은 파탄난 채로 대충 오늘만 살다가 범죄자만 보면 눈 반짝거리는 전형적인 거리의 강력반 형사 역할을 닉 놀테만큼 멋지게 소화하는 배우도 드물 것이다.

48시간

감독 월터 힐

출연 닉 놀테, 에디 머피

개봉 1982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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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게임 (1983)
테크놀로지에 맞선 십대 소년의 싸움

소년과 기계의 싸움. 소년의 두 어깨에 지구의 운명이 달려있다? 최근 들어 알파고의 활약이 두드러지면서 이 영화도 다시 기억의 저편에서 떠오른 영화다. <조니 5 파괴 작전>을 만들었던 존 바담 감독의 1983년작 <위험한 게임>은 소년과 전쟁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이 핵전쟁 게임을 벌이면서 벌어지는 내용의 영화다. 일종의 게임 소재의 어드벤처 영화랄까. 영화에 결정적으로 등장하는 게임이 오목이랑 비슷한 '틱택토' 게임이다. 선이 누구인지에 따라 승패가 갈리기도 하고 무승부 요인도 많은 게임이라서 실제 핵전쟁 자체랑 되게 비슷하다. 결국 모두가 지는 게임이니까. 만약 알파고가 전쟁을 지휘하게 된다면 누가 이기고 지는 걸 어떻게 판단하게 될지도 궁금하다. 아날로그 게임이 소재라서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도 공을 많이 들였다. 아무튼, 요새는 할리우드도 이런 소년 성장 활극(?) 같은 어드벤처 영화를 안 만든 지 꽤 오래됐다. 최근 들어서는 영어덜트계 소설과 영화라고 불리는, 성격이 다소 다른 장르물로 변형되어가고 있다.

위험한 게임

감독 존 바담

출연 매튜 브로데릭, 데브니 콜먼, 존 우드, 알리 쉬디

개봉 1983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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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렘린 (1984)
재난 괴수 영화계의 인기스타, 기즈모

죠 단테 감독의 걸작 <그렘린>은 1980년대를 대표함과 동시에 괴수 영화 역사에서도 걸작의 반열에 오를 만하다. 희대의 캐릭터 ‘기즈모’는 괴수 영화 역사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성격과 외모의 소유자다. 각본을 쓴 크리스 콜럼버스는 엄청나게 잔인한 호러 영화 각본을 쓰는 걸로 유명하다. 기즈모 캐릭터의 아이디어는 대학 시절 기숙사에 창궐하던(?) 쥐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등의 조언으로 등급 수위를 다소 낮춰 만들었다. 그 수위라는 건 모과이라고 불리는 괴수들이 인간을 어떤 방식으로 살해하는지를 묘사하는 방식에 달렸다. 크리스마스에 보면 좋을 겨울 영화로 분류되는데, 특히 크리스마스에 솔로가 보면 좋을 영화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깔깔 웃으며 영화를 보던 극장을 괴수들이 활활 태워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장면 하나하나 뜯어보면 정말 무시무시한 재난 영화다. 이 놀랍도록 잔인한 공포 영화를 아직 접하지 못한 관객이라면, 귀여운 ‘기즈모’의 얼굴은 이 영화의 극히 일부분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렘린

감독 죠 단테

출연 자크 걸리건, 피비 케이츠, 호이트 악스톤, 폴리 홀리데이, 프란시스 리 맥케인, 저지 레인홀드

개봉 1984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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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리언 2 (1986)
우주 액션의 파워를 보여주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에이리언2>는 역사상 가장 훌륭한 시리즈 속편 중 하나에 속한다. 리들리 스콧 감독이 첫 편에 만들어놨던 장르적 분위기는 거의 호러 영화에 가까울 정도로 섬뜩하고 잔혹한 생존극이었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기존 스타일을 뒤집고 인간과 기계의 전쟁 같은 느낌으로 시리즈의 분위기를 전환시켰다. 그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리플리(시고니 위버)의 말을 듣고 새로 파견한 원정대가 가공할 위력의 전투 화기를 동원해 싸우는 장면 등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액션 장면 투성이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1편보다 2편을 더 많이 기억하고 있다. 1편에서는 볼 수 없었던 스펙터클한 액션이 많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에이리언 2

감독 제임스 카메론

출연 시고니 위버, 마이클 빈, 폴 레이저, 랜스 헨릭슨, 캐리 헨

개봉 1986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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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행 (1987)
영화 역사상 가장 귀여운 오프닝!

사실 1980년대 어드벤처 영화라면 역시 리처드 도너 감독의 <구니스>를 빼놓을 수 없는데 <구니스>는 너무 많이 언급됐으므로 이 영화를 골랐다. <야행>은 이웃집 어린아이들을 잠시 돌봐주던 보모가 아이들과 외출을 했다가 기상천외한 사건에 연루되면서 집으로 돌아가려 필사의 노력을 다하는 내용의 어드벤처 무비다. 1980년대 가족 코미디 영화를 언급해야 할 때마다 빼놓지 않고 언급하는 영화다. <나 홀로 집에>를 연출해 대박을 터뜨린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의 데뷔작이다. 이 영화의 오프닝 장면에서 엘리자베스 슈가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앞두고 어떤 옷을 입을까 고민하는 광경을 유쾌한 뮤지컬처럼 연출했는데, 영화 역사상 가장 귀여운 오프닝 장면이라고 감히 꼽고 싶다. 아이들이 주인공인 코미디 영화이지만 온갖 범죄에 연루되면서도 하룻밤 안에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설정상의 서스펜스를 기가 막히게 연출했다.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은 이를 시작으로 가족 코미디 영화의 장인으로 성장한다. 물론 최근 <픽셀>의 경우는 좀 의아했다. 그에게는 에드가 라이트 감독 같은 너드 캐릭터 조율 감각은 없는 듯하다. 조나 힐이 주연하고 데이빗 고든 그린 감독이 연출한 <더 시터>가 이 영화를 모티브 삼아 만든 영화다. 최근 TV 영화로도 리메이크됐는데 웬만하면 원작 영화를 추천한다. <나 홀로 집에> 같은 역작이 만들어지는 기반이 되어준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야행

감독 크리스 콜럼버스

출연 엘리자베스 슈, 마이아 브리튼, 키스 쿠건, 안소니 랩

개봉 1987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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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 (1989)
슈퍼히어로 영화의 올 타임 마스터피스

1980년대가 끝나가던 무렵에 만들어진 최고의 슈퍼히어로 영화이자, 팀 버튼 영화 세계를 집약해놓은 박물관 같은 영화다. 과거에는 지금처럼 슈퍼히어로 영화가 이렇게 전 세계를 강타할 거라고는 누구도 생각 못 했을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배트맨>을 세상에 선보인 이후, 누구도 <배트맨>과 같은 완성도의 슈퍼히어로 영화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팀 버튼의 배트맨은 어둡고 퀴퀴하고 우울하고 외로운 상처 입은 영혼의 소유자다. 실사영화로는 히어로와 악당이 각자 자기의 정체성을 지독하게(?) 고민하는 사실상의 첫 영화다. 여기선 지독한 분위기가 중요하다. 리차드 도너 감독의 <슈퍼맨>이 만들어놓은 세계와는 다른 방식의 영화인 것이다. 이때부터 길고 긴 배트맨의 영화화 역사가 펼쳐진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나이트> 트릴로지 역시 팀 버튼의 배트맨에 비하면 여러모로 존재감이 약한 게 사실이다.

배트맨

감독 팀 버튼

출연 마이클 키튼, 잭 니콜슨, 킴 베이싱어

개봉 1989 미국,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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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 / <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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