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는 27일 개봉하는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는 세계적인 거장 류이치 사카모토의 마지막 연주 연상이 담긴 콘서트 필름이다. 영화는 약 스무 곡을 연주하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았다. 흑백 화면에 담긴 그의 마지막 모습은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전장의 크리스마스>(1983)부터 <괴물>(2023)까지, 류이치 사카모토는 1975년 데뷔 이래 수많은작품을 세상에 내놓으며 끊임없이 대중들과 만났다. 지난해 류이치 사카모토가 4기암 투병 중이라는 충격적인 발표를 했다. 2014년 인후암 진단을 받았지만 완치 이후 왕성한 활동을 해 온 그였다. 1년 동안 여섯 차례의 크고 작은 수술을 하며 병마와 싸우면서도 ‘한 번 더 납득할 만한 작품을 남기고 싶다’며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를 촬영했다.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는 2022년 9월 8일부터 약 8일간 촬영했다. 2000년 발매된 드림캐스트용 게임 소프트 ‘L.O.L(lack of love)’의 사운드 트랙으로 시작한 연주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 <괴물>의 사운드 트랙 ‘aqua’로 이어진다. 그에게 오스카상을 안겨준 영화 <마지막 황제>(1987)의 ‘The Last Emperor (Theme)’와 그의 대표곡인 <전장의 크리스마스>의 ‘Merry Christmas, Mr. Lawrence’도 빼놓지 않는다.
103분간의 연주 중 류이치 사카모토는 표정과 손짓, 등의 움직임 등 한정적인 모습으로 담긴다.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의 연출을 맡은 네오 소라 감독은 최근 씨네플레이와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관객들의 주관을 카메라의 무빙으로 모방하려 했다”고 전했다. 더해 “류이치 사카모토의 신체성을 표현하고 싶었다”는 연출 의도를 밝히기도 했다. 무대 위 피아노와 연주자의 몸에 오롯이 집중해 관객이 음악과 소리에 더욱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네오 소라 감독은 류이치 사카모토의 아들이다. 뉴욕과 도쿄를 오가며 활동하는 아티스트인 네오 소라는 단편 영화 <더 치킨>(2020)으로 카이에 뒤 시네마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며 필름메이커 매거진에서 선정한 ‘독립영화계의 뉴페이스 25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는 이번 작품 이전에 류이치 사카모토의 또 다른 다큐멘터리 영화인 <류이치 사카모토: 에이싱크>(2018),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2017)에서 촬영감독으로 참여했다. 카메라맨에서 연출자가 된 네오 소라 감독은 류이치 사카모토의 마지막 연주인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의 컨셉을 “빛의 흐름에 따른 시간의 변화”로 설정했다. 이 컨셉에 맞추어 류이치 사카모토는 곡의 구성을 재설정하기도 했다.
빛과 시간 그리고 음악의 연결성을 찾고자 했던 네오 소라 감독.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를 위한 그의 디테일한 노력은 화면 너머에도 있었다. 평소 즉흥적으로 레퍼토리를 선정하는 류이치 사카모토에게 미리 음악의 구성을 정해달라고 요청하거나 일본에서 가장 좋은 소리를 담을 수 있다는 NHK 방송 센터의 509 스튜디오를 선택하는 등의 모습에서 알 수 있다.
그는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 속 가장 인상 깊은 연주로 열한번째 곡인 ‘tong poo’를 꼽았다. 이 곡은 1978년 발매된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류이치 사카모토, 타카하시 유키히로, 호소노 하루오미)의 동명 앨범의 수록곡이다. 류이치 사카모토는 3인조 신스팝 그룹인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에서 음악 활동을 시작하며 유명세를 얻었다. 장 뤽 고다르 감독의 영화 <Le vent d’est>(동풍)에서 영향을 받아 작곡한 ‘tong poo’은 원래 경쾌한 느낌이 인상적인 빠른 템포의 곡이다. 그러나 류이치 사카모토는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에서 컨디션의 한계 등의 이유로 느리게 연주했다. 네오 소라 감독은 이에 대해 “템포가 달라졌을 때 곡의 다른 면이 보일 것”이라고 관람 포인트를 알렸다.
인터뷰 중 화려한 수식어를 지닌 류이치 사카모토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자 하는 감독의 의도가 전달되기도 했다. 류이치 사카모토에게 음악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우연히 좋아하게 되고 그것을 지속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다는 것 외에는 특별한 의미는 없을 것 같다”는 신선한 답변을 내놓았다. 이러한 면모는 영화에서도 드러난다. 연주 중 류이치 사카모토는 힘에 겨운 듯 “잠시 쉬고 합시다”라고 말한다. ‘힘들다’며 가쁜 숨을 내쉬는 그의 모습을 영화는 오롯이 담아 낸다. “역시나 몸의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의 연주는 다르다”는 네오 소라 감독은 촬영 당시를 회상하며 “근육이 아닌 뼈로 소리를 내고 있는 느낌이었다”고 전했다.
네오 소라 감독은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를 통해 자신에 대한 주목이 쏟아지는 것을 꺼려하는 듯했다. 그는 “감독보다는 연주자와 작품에 초점을 맞춘 인터뷰가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뿐만 아니라 “어릴 적부터 다양한 영화와 음악을 적극적으로 흡수하려는 습관을 익힌 것이 현재 영화를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며 류이치 사카모토의 아들이 아닌 독립적인 아티스트로서 존재하고자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편, 감독은 류이치 사카모토에 대해 “아이 같은 사람”이었다고 회고했다. 류이치 사카모토는 음악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활동으로 전 세계에 위로를 전한 인물이기도 하다. 특히 1990년대 이후에는 환경 운동에 적극적이었다. 지난 2017년 개봉한 그의 다큐멘터리 필름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는 그의 이러한 신념을 담는다.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는 그가 동일본 대지진 본연인 후쿠시마 원전을 찾은 것으로 시작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집회에서 원전 가동을 반대하는 의견을 거침없이 내놓는 류이치 사카모토는 자연의 소리를 찾아 나서며 자연과 인간을 음악으로 연결하려는 시도를 했다. 그는 “음악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인간에게 평화로운 일상이 유지되어야 한다”며 음악과 사회 운동을 병행하는 이유를 밝혔다.
자연과 인간을 사랑하며 끊임없이 음악을 탐구했던 아티스트 故 류이치 사카모토, 50년 음악 인생의 작별인사가 담긴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는 오는 27일 국내 극장을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