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는 일본의 전설적 작곡가 류이치 사카모토에 바치는 지독할 정도로 순수한 헌사이다. 도전에 가까울 정도로 디테일을 덜어낸 흑백의 화면과 과도할 정도로 다양한 소리가 담긴 이 다큐는 사카모토의 아들인 네오 소라가 감독으로서, 아버지인 사카모토가 암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공연을 기록한 기록물의 성격도 갖는다. 어떤 장식과 묘사, 해설이나 서사적 장치를 지양하고 대신 사카모토가 펼쳐내는 음악적 세계에 대해 순수하고도 몰입감 있는 경험을 선사한다. 사카모토 본인이 오랫동안 소장해왔던 것으로 보이는 야마하 피아노 한 대와 그 앞에 앉은 류이치 사카모토만 존재하는 이 다큐는 불친절할 정도로 설명이 생략되어 있으며, 아들이 아버지를 기록하면서 그 어떤 감정적 시각이나 외부적 개입을 철저히 배제한 채로 음악가로서의 사카모토만을 집요하게 담아냈다는 점에서 여타의 다큐멘터리와 차별화된다.

1978년 「THOUSAND KNIVES」로 데뷔한 류이치 사카모토는 테크노 그룹 ‘Yellow Magic Orchestra’부터 수많은 팝 앨범과 클래식 작곡, 오페라, 올림픽 시그널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 작품 활동을 한 세계적인 음악가다. 특히 그는 1983년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영화 음악 작곡가로 활동하기 시작했으며, 이 작품으로 제37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음악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 오시마 나기사와 다시 조우한 <고하토>(1999) 외에도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마지막 황제>(1987)와 <마지막 사랑>(1990), 브라이언 드 팔마의 <스네이크 아이즈>(1998)와 <팜므 파탈>(2002),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2015),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괴물>(2023) 등 거장 감독들의 영화 음악을 작곡하며 국적을 초월하는 음악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특히 <마지막 황제>로 아시아인 최초 미국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했다. 유작으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을 남기며 지난 2023년 3월 28일 세상을 떠난 류이치 사카모토는 동일본 대지진 폐허 지역을 찾고, 일본 후쿠시마 지진 및 쓰나미, 원전 사고 피해자들을 지지했다. 또한 9.11 테러 현장에 있던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환경 보존 노력, 비핵화 및 세계 평화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운동가로 전 세계에 따뜻한 치유와 위안을 안겨주었다. 투병으로 지난 몇 년 동안 라이브 공연을 진행하지 못했던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세계인을 위해 마지막 혼신의 힘을 모아 완성한 103분의 연주가 바로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다.

장소는 일본의 한 녹음 스튜디오. 사카모토는 단 한 명의 관객, 오로지 자신을 위해 엄선한 곡들을 연주한다. 명상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는 이 스튜디오는 보름달을 연상케 하는 조명을 통해 아침에서 밤으로의 전환을 보여준다. 일주일에 걸쳐 녹음하기로 한 소라의 결정은 단순한 내러티브에 시간적 깊이와 각각의 곡이 가진 정서적 울림을 더욱 깊게 해준다. <마지막 황제>의 그 유명한 OST는 물론 그의 화려한 경력을 아우르며,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와의 선구적인 음악을 도모하던 시절, 알바 노토와의 실험적인 협업까지 재조명하는 선곡은 우리를 단숨에 사카모토가 외로이 피아노 한 대로 세계와 마주하고 있는 현장으로 데려간다. 깊고도 강렬한 감정과 여리고 서정적인 멜로디가 공존하는 곡을 흑백의 4K 영상으로 만나는 건 이미 알고 있는 곡을 재발견하게 하는 새로운 경험이 된다.
소라는 촬영감독 빌 커스타인과 함께 콘트라스트가 선명한 흑백의 4K로 사카모토의 표정과 손등의 주름, 근육의 움직임까지 세세하게 담아냈다. 이 영화는 반드시 음향이 좋은 관에서 볼 때 그 진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일본 최고의 음향 시설을 갖춘 것으로 알려진 녹음 스튜디오에서, 이제는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는 흑단 소재 검은 건반의 야마하 피아노로 들려주는 연주는 음표 하나하나의 표정을 읽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착각이 들 만큼 생생하며, 음표뿐 아니라 음의 울림, 잔향, 여운까지 포착해 몰입감 넘치는 청각적 경험을 선사한다.

영화 전반에 걸쳐 사카모토는 자신이 작곡한 곡을 그대로 연주하거나 또는 재해석하는 방식으로 핵심 멜로디가 갖는 순수한 음악적 힘을 가만가만히 들려주듯 연주한다. 종종 실수를 하거나 반복하며 테이크를 다시 가거나, 다소 좌절을 겪는 부분에서 숨 막히게 혹독한 자세로 구도자처럼 외로이 걸어가는 거장의 인간적인 면모를 본다. 자신의 음악적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완벽에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다른 음악가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영화가 끝날 무렵, 사카모토는 자신의 가장 유명한 곡들을 엄숙하게 연주하며 자신의 커리어 피크를 차지하는 그 곡들에 완결성을 부여해준다. 작곡가가 스스로 자신의 작품을 연주할 때에만 가능한 특별한 열기와 기이할 정도의 집중력, 이 곡들을 살아 있는 듯한 소중한 존재로 귀하게 대하는 경건함과 숭고함이 우리를 압도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연주는 1999년 솔로 피아노 앨범 「BTTB」에 수록된 ‘Opus’로 절정을 이룬다. 이 곡은 잔잔한 멜로디와 함께 사카모토의 영원한 음악적 유산을 은유하듯, 사카모토는 사라지고, 피아노만 남는다. 건반만 움직이며 연주가 지속되는 마지막 장면으로 이어진다. 그는 떠났지만 그의 음악은 영원히 남아 있다는 걸 이보다 더 절절하게 담아낼 수 있을까. 이 장면은 영화의 적절한 결말일 뿐만 아니라, 음악이 우리에게 얼마나 오랫동안 남아 지속적으로 영혼을 울리는지, 그 영향력을 증명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는 단순한 마지막 공연의 기록에만 그치지 않는다. 우리 시대 가장 영향력 있고 중요했던 한 음악가의 삶과 예술에 대한 태도를 가장 절제된 방식으로, 가슴 뭉클하고 몰입감 넘치게 마주할 수 있도록, 사카모토의 음악의 정수를 포착하고 미래 세대가 영감을 얻으며 그 음악적 유산을 이어 나갈 수 있도록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어준다. 영화관에서 만나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라면 이토록 지독하게 절제된 방식으로, 순수하게 음악과 음악가만을 남긴 채 나머지를 모두 배제하는 것이 가능했을까?
야마하 피아노 한대와 그 앞에 앉은 류이치 사카모토만 존재하는 이 다큐는, 외부적 개입을 배제한 채 음악가로서의 사카모토만을 집요하게 담아낸다.
한 세기를 풍미한 예술가를 시각적, 청각적으로 담아내는 것을 가능하게 한 이 영화는 사카모토의 삶과 창작 과정, 음악과 예술에 대한 그의 엄청난 헌신과 열정을 기념하는 데 성공했다. 예술의 아름다움과 소멸하는 존재의 덧없음을 강력하게 상기시키며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이 작품을 모든 사카모토의 팬들이 꼭 상영관에서 만나기를 바란다. 휘영청한 달빛 아래 홀로 고요하고도 기이할 정도로 몰입한 구도자와 같은 류이치 사카모토의 모습이 영원히 우리의 눈과 귀에 각인처럼 새겨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