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저 한국영화가 좋아서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여기 한국으로 온 이가 있다. 한국 이름으로는 권필수인 아일랜드인 피어스 콘란은 13년째 영화 평론가이자 베테랑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블로그 ‘모던 코리아 시네마(Modern Korean Cinema)’를 운영하며, 누구보다 진심으로 열과 성을 다해 한국영화를 알려왔다. 그의 다른 이력을 보면 한때 누벨바그 영화감독 프랑수아 트뤼포가 말한 것으로 잘못 알려졌던 때 묻은 ‘영화광 3대 법칙’(영화 다시 보기, 글로 쓰기, 만들기)이 다시금 떠오른다. 이 법칙에 따르면 그는 이미 영화광 마지막 단계에 이른 것. 그의 굳건한 영화 사랑은 영화에 대한 글을 쓰는 것도 모자라 그로 하여금 직접 영화를 만들게 했다. 피어스 콘란은 이상우 감독의 영화 프로듀서를 맡았으며 때때로 직접 각본을 쓰기도 했다. 최근에는 고양이 배우 매니저라는 이색 이력까지 추가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한국영화 곁에 머물러 왔다. 이토록 다재다능한 그가 처음으로 책을 집필했다. 그의 첫 책 『필수는 곤란해』는 2000년대 초반 한국영화의 르네상스 시기부터 2023년까지 한국영화가 걸어왔던 시간들을 모두 아우르는 ‘한국영화 회고록’이다. 오랜 시간 한국영화를 사랑한 마니아 피어스 콘란을 만나 그의 책과 한국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오랫동안 영화기자로서 한국영화와 드라마에 대한 글을 쓰고 다양한 작업을 해오셨는데, 책은 처음 집필하셨습니다. 첫 책을 낸 기분이 어떠신가요?
제가 평소에 글을 써와서 그런지 별다른 느낌은 없었어요. 다만 많은 양의 글을 한꺼번에 쓴 점과 영화, 드라마 평론과는 다른 스타일로 쓴 점이 좀 달랐어요. 또 평소 제 글을 읽는 독자는 해외에 있어요. 보통 해외 독자를 대상으로 글을 작성하는데 이번에는 처음으로 한국 독자에게 제 글을 선보이게 됐어요. 영화계의 아는 사람들이 제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어서 기분이 이상했어요.
이번 글은 평론보다는 에세이처럼 쓰신 건가요?
네. 책을 시작하기 전에 에세이를 써본 적이 없어서 많이 고민했어요. 처음 쓴 장이 ‘투신자살하는 회사원’인데, 제가 기존에 썼던 피처 기사들과 비슷하게 나왔어요. 그렇게 쓰다가 에세이처럼 스타일을 바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톤을 조정했어요. 다른 장을 쓸 때도 이 점을 유의했고요.
책 제목이 재밌습니다. 왜 『필수는 곤란해』라고 지었나요?
제가 책 제목을 떠올린 건 아니에요. 박찬욱 감독님이 추천사를 쓰다가 이 제목을 떠올리시고 제안해 주셨어요. 박찬욱 감독님은 말놀이를 너무 좋아하시는 분이에요. 저도 그런 스타일이어서 감독님이 이 제목을 들려주셨을 때, 되게 마음에 들었어요.

책에는 고양이 집사의 삶이 드러나는 장도 있습니다. 키우는 고양이 '미슈까'와 '몽키'에 대한 애정이 가득 담겨 있었는데, 혹시 표지의 고양이 사진도 함께 사는 친구인가요?
표지에 있는 고양이는 파리에 사는 ‘누미’라는 고양이예요. 지난여름에 파리에서 한달살이를 할 때 머물렀던 집 근처에서 만났어요. 누미 친구들도 저희 집에 자주 놀러 와서 사진을 많이 찍었어요. 고양이를 좋아해서 여행할 때 길거리를 배회하는 고양이 사진을 많이 찍어요.

'미슈까'는 <외계+인>1, 2부와 <유령>에 출연한 고양이 배우이기도 합니다. 미슈까가 연기할 때 돌발적으로 벌어졌던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미슈까가 <외계+인>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때 일단 오디션을 봐야 했어요. 상암에 있는 ‘덱스터스튜디오’ 본사에 가서 오디션을 봤어요. 다른 고양이들도 오디션을 보려고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고양이를 CG로 만들려면 여러 앵글에서 찍어야 해서 수십 대의 카메라가 있었어요. 그 카메라들 사이에 탁자가 하나 놓여 있었고요. 고양이가 탁자 위에 가만히 있어야 촬영을 할 수 있는데, 다행히 미슈까가 가만히 잘 있었어요. 탁자 위를 걷게 하는 테스트도 했는데, 미슈까가 다른 고양이들보다 잘했어요. 다른 애들은 많이 실패해서 결국 미슈까가 오디션에 합격했어요.
그리고 영화 <유령>의 엔딩크레딧에 제가 캣 매니저라는 타이틀로 올라가 있어요. 사실 저는 고양이 훈련사라는 타이틀을 얻고 싶었는데, 이해영 감독님이 고양이 매니저로 가자고 하셔서 결국 미슈까 매니저가 되었죠. (웃음)
십 대 때부터 책과 DVD를 모아오셨는데, 현재 영화 DVD와 블루레이는 몇 편 정도 소장하고 있으세요? 그중 한국영화의 비율은 어느 정도인가요. 그리고 스트리밍 시대에도 여전히 블루레이를 소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개인적으로 저는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블루레이는 2,500편을 갖고 있고,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중 한국영화는 200편가량 있어요. 특히 제가 좋아하는 감독의 블루레이는 다 가지고 있어요. 예를 들면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 블루레이는 다 소장하고 있어요. 제가 좋아하는 감독들의 컬렉션을 만드는 거죠.
그런데 무엇보다도 블루레이를 수집할 때 새로운 영화를 발견하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커요. 스트리밍 서비스만으로는 새로운 영화를 발견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에요. 제 컬렉션 중에서도 소수만 스트리밍 서비스가 되어요. 제가 고전 영화를 많이 수집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영화는 한국에서 수입조차 되지 않았어요.

영화 소비 방식을 언급하면서 미래의 씨네필에 대한 걱정을 내비치셨습니다. 영화를 소비하는 방식이 비디오 → DVD/블루레이 → IPTV/VOD 그리고 스트리밍 서비스로 바뀌면서 더 편리해졌지만, 볼 수 있는 영화의 수가 줄어든 것은 역설적입니다. 이런 상황에 대한 아쉬움이 많은 것 같아요.
제가 자랄 때는 영화 잡지나 책을 통해서 고전 영화와 새로운 영화 모두를 많이 알게 되었어요. TV 채널 중에 ‘TCM’(Turner Classic Movies)이라고 서양에서 아주 유명한 고전 영화채널이 있어요. 이 채널 덕분에 TV만 켜면 많은 고전 영화를 볼 수 있었어요. 박찬욱, 봉준호 감독님이 어렸을 때는 한국 TV채널 중에 ‘AFKN’이란 주한미군 채널이 있었어요. 이 채널에는 많은 미국 영화가 방영되었어요. 특히 ‘뉴 할리우드’ 영화들도 많이 볼 수 있었고요. 두 감독님은 AFKN 채널을 통해 이런 영화들을 접할 수 있었어요. 이처럼 옛날에는 다양한 취향을 아우르는 큐레이션을 해주는 채널이 있었는데 지금은 많이 없어졌어요. 스트리밍 시대는 스트리밍 서비스가 되는 영화나 시리즈는 많이 볼 수 있는데, 저와 같은 취향인 사람들에게 맞는 영화를 찾기는 좀 힘들어요. 트렌드에 따라서 유튜브와 밈, 스트리밍 서비스 등이 중요한 것은 맞지만, 이런 상황에서 고전 영화가 설 자리는 없는 것 같아요.
저에게 『필수는 곤란해』는 작가의 유쾌한 유머가 돋보이는 생활 에세이이면서 지구 반 바퀴를 돌아 한국에 온 이방인의 입장에서 이 나라를 바라보고 느낀 생각을 써 내려간 문화 비평서, 또 깊이 있는 영화 비평서이기도 했습니다. 책을 집필하실 때, 이 책이 독자에게 어떤 인상으로 남기를 바라며 쓰셨나요?
처음 출판사로부터 책을 내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는 ‘왜 저한테 이런 제안이 왔을까’란 생각을 했어요. 아마 ‘외국인이 한국에 대해 갖는 인상을 알고 싶어서 그러지 않았을까’ 생각했고, 이를 책에 반영하려 했어요. 특히 제가 외국인이면서도 영화 평론가로서 한국영화에 대해 어떤 인상을 가지고 있는지를 밝히려고 했고요.
그런데 한국 예능에 나와서 유명해진 외국인 분들이 있잖아요. 그분들이 방송에서 한국에 대해 갖는 느낌을 많이 나누고 있는데 조금 우려되는 부분이 있어요. 한국 사람들이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모든 외국인이 그렇게 생각한다고 과잉 일반화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그런 점에서 제 책은 독자들에게 단순히 외국인이 쓴 글이 아니라 그냥 한 사람의 글이 되기를 바라요.
책 구성이 특이합니다. 장의 끝마다 그 장의 주제와 연관된 영화를 추천해주셨어요.
글을 쓰기 전에 먼저 좋아하는 영화의 리스트를 뽑았어요. 몇몇 장은 영화의 제목 그대로 가기도 했고요. 글로 쓸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겼을 때, 리스트를 찾아보면서 그 글에 어떤 영화가 알맞을지 고민했어요. 대부분은 알맞은 게 없었어요. 결국 포함하지 못한 영화들도 있고요. 예를 들면 부모님에 대해 쓰는 장에서는 영화 <먼 목소리, 조용한 삶>을 추천하고 싶었는데 제목이 맞지 않아서 못했어요. 제가 추천한 대부분의 영화들은 인기가 많지 않은 영화예요. 사실 이런 마이너한 영화들이 진짜 제 취향이에요. 이런 영화를 소개해 진짜 제 취향을 독자에게 알려주고 싶었어요. 또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영화를 추천해주고도 싶었고요. 슬프게도 제 책에 언급된 영화들은 거의 찾기 힘든 영화이긴 하지만요.(웃음)

한국의 비평가들은 영화의 미학보다는 의미를 파헤치는 경향이 있고, 관객들은 알레고리가 있는 영화를 찾아간다고 언급하셨습니다. 책에는 유독 알레고리라는 말이 많이 나오기도 합니다. 다른 나라의 영화에 비해 한국영화의 알레고리가 더 두드러져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다른 나라의 영화보다 한국 영화가 알레고리를 더 많이 사용한다고는 말할 수 없어요. 그런데 조금 다르게 사용해요. 20세기의 한국 사회에는 역사적으로 많은 사건이 있었어요. 그래서 아직 한국에는 사회적으로 해소되지 못한 마음이 많이 남아 있어요. 또 한국은 땅의 크기에 비해 인구밀집도가 높아서 사회적 압력이 가득해요. 이런 압력이 영화로 많이 드러나는 것 같아요. 처음 한국영화를 봤을 때는 이런 점을 좋아했어요. 역설적이게도 한국영화는 사회가 나빠서 좋아진 셈이죠. 한국 영화감독과 작가뿐만 아니라 한국 관객들도 이런 점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제일 인기 있는 영화들은 대부분 알레고리가 있어요.
다만 알레고리가 들어 있는 한국 영화의 색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 달라졌어요. 20년 전 알레고리가 담긴 한국영화들은 관객의 입장에서 더 힘든 영화였어요. 어떤 주제를 말하는 영화인지 알기 위해서 좀 더 노력해야 하는 거죠. 그런데 요즘은 <서울의 봄>처럼 직접적으로 역사적 사실을 말할 수 있어요. 지금은 20년 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알레고리가 덜 필요해진 거죠.
'투신자살하는 회사원' 장에서 '할리우드 영화라면 사람들이 대화를 통해 자살 시도를 포기하지만, 한국 영화에서는 자살을 시도하는 인물들이 놀라울 정도로 자주 뛰어내린다'고 쓰셨습니다. 대부분 의문을 품지 않는 부분인데 바깥의 시선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에 들 수 있었던 생각인 것 같아요. 영화를 볼 때 그 나라의 문화에서 비롯된 고질적인 문제나 사회 현상에 대해서 집중해서 보는 편인가요?
매번 영화 속에서 보이는 사회적인 것에 대해 생각해요. 저는 박찬욱 감독님의 <복수는 나의 것>으로 처음 한국 영화를 접했어요. 그 당시에는 일본 영화를 많이 봤어요.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영화 같은 거요. <복수는 나의 것> DVD 표지를 봤을 때, 너무 멋지고 잔인한 일본영화인 줄 알고 실수로 구매했어요.
그런데 그 영화를 보고 나서 받은 느낌은 완전히 달랐어요. 처음에는 그 영화를 미워했어요. 그렇지만 몇 주 동안 <복수는 나의 것>에 대해 계속 생각했고, 결국 다시 봤어요. 다시 본 후로는 완전히 사랑에 빠졌어요. 영화 속에 그려진 한국 사회를 보고 고통을 느꼈는데, 저는 그 사회를 잘 알지 못했어요. 그 후로 한국 사회를 알려고 노력했고, 그 영화가 한국과 저를 이어주는 계기가 되었어요. 한국영화는 한국 역사나 사회에 대한 문제를 잘 다루어서 유심히 살펴봐야 해요.
책에는 한국 영화의 신파에 대한 비판이 들어있습니다. 이는 한국 관객의 일부가 공감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반면 외국에서는 한국의 신파가 신선하다고 평가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피어스 콘란 씨가 이방인의 입장에서 처음 한국 상업 영화의 신파를 마주했을 때의 감정이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처음 본 한국 신파 영화는 기억이 잘 안 나요. 아마 <태극기 휘날리며>가 처음 본 한국 신파 영화였을 거예요. 그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는 재밌게 봤는데 최근에 다시 봤을 때는 덜 재밌었어요. 지금 한국 영화계에 다른 신파 영화들이 많이 생겨나서 마음이 복잡해진 것 같아요. 신파 영화여도 괜찮을 때도 있어요. <해운대>, <타워>와 같은 영화들은 신파를 활용하긴 하지만 나쁘지 않았어요. 이런 영화들은 큰 극장에서 많은 관객에게 어필하기 위해서 전략적으로 신파를 활용해야 해요. 솔직히 봉준호 감독님도 이런 점을 좀 이해하는 것 같아요. <괴물>에서도 신파가 나오지만, 더 예술적으로 표현해서 신파라고 보이지 않는 거죠. 신파가 적재적소에 필요하긴 하지만, 보통 신파 영화들이 어설픈 점도 많이 갖고 있어서 사람들이 ‘신파는 나쁘다’고 쉽게 말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저의 입장에서는 <명량>과 같은 영화를 보고 애국심을 갖기 힘든 문제도 있어요.
호러 영화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것 같습니다. '모던 코리아 시네마' 블로그에서 한국 호러 영화에 한해서만 베스트 40을 선정하기도 하셨어요. 한국 호러 영화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저에게 한국은 무서운 곳이에요. 한국 사회에는 모순점이 많아요. 사회는 너무 편리한데, 그 점 때문에 불편한 것도 많아요. 배달 문화도 너무 편하고, 스마트폰으로 거의 모든 것을 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 편한 사회의 수면 아래에는 무서운 것들이 좀 많은 것 같아요. 일례로 많은 사람이 서울에 모여 있지만, 여전히 그곳에 사는 이들은 외로움을 많이 느껴요. 공포 장르는 이런 모순점을 알레고리로 잘 사용하면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어요.
그리고 공포 영화를 통해서 새로운 목소리를 찾을 수 있어요. <여고괴담> 시리즈는 모두 다른 감독들의 데뷔작이에요. 다른 장르보다 호러는 예산이 적어서 조금 쉽게 만들 수 있어요. 또 좋은 호러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상상력이 필요하고, 새로운 스타일로 만들어야 해서 신진 감독이 잘 만들면 주목받을 수 있죠.

<지구를 지켜라>와 <킬링 로맨스>를 언급할 때는 컬트 영화에 대한 애정도 돋보입니다. 특히 <킬링 로맨스>는 SNS에서도 언급하셨고, 책의 한 장을 할애하기도 했습니다. 그토록 좋아하는 <킬링 로맨스>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또 추천할 만한 또 다른 컬트 영화가 있다면요?
<킬링 로맨스>는 스타일이 너무 독특하고, 유머 감각이 아주 좋아요. 또 따뜻함도 많이 갖고 있어요. 한국 영화들이 갈수록 비슷해지는 가운데에 나온 아주 독특한 영화이기 때문에 더 소중한 것 같아요. 그런데 <킬링 로맨스>는 너무 많이 독특해서 관객들이 좀 힘들어한 것 같아요. (웃음) 제가 좋아하는 한국 영화의 수가 줄어들고 있어요. 걸작이 계속 나오지만, 조금 덜 나오는 것 같아요. 아마 큰 스튜디오나 영화사의 엄격한 구조 때문인 것 같아요. 정해진 구조 안에서 영화를 만들기 때문에 새로운 영화를 만들기 어려워졌어요. 20년 전에는 CJ 같은 회사가 젊은 감독을 믿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 해줬어요. 지금은 어려워요.

추천하고 싶은 다른 컬트 영화로는 <지구를 지켜라>, <김씨 표류기>도 너무 좋아하지만, 고전 영화를 추천하고 싶어요. 김기영 감독님의 <살인 나비를 쫓는 여자>(1978)와 고영남 감독님의 <깊은 밤 갑자기>(1981)라는 작품이 있어요. <살인 나비를 쫓는 여자>는 설명하기 참 어려운 영화인데, 김기영 감독님의 다른 영화보다 B급 감성이 조금 더 묻어 있어요. 김기영 감독의 영화는 의지에 대해 말하는데, 이 영화에서는 ‘살고 싶고, 살아야 한다’는 의지에 대해서 다루어요. 이 영화는 그냥 보기보다 체험해야 하는 영화예요. <깊은 밤 갑자기>는 한국 고전 영화 중에 아주 좋은 공포 영화예요. '귀신 들린 집'을 다룬 영화 중에 가장 완벽한 한국 영화입니다.

책에 '무엇이 우리를 감동시키는지 알 수 없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그것을 이해하기 위한 욕망이 가득하다. 이런 이해에 대한 갈망은 실제 소유보다 더 강력하다'고 쓰셨습니다. 오랜 시간 영화를 해석하는 사람으로서 살아온 시간이 응축된 문장인 것 같아요. 긴 시간 영화 기자로서 살아갈 수 있게 한 원동력이 있을까요?
저는 지금까지도 예술 작품을 볼 때 감동을 느끼고 싶어 해요. 그런데 어디서 새롭고 깊은 감동을 느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어요. 가끔 오래 작업하신 감독의 신작이 나올 때 그런 감동을 느끼긴 해요. 그러나 예상치 못한 영화를 통해 얻는 감동이 더 소중해요. 늘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싶어서 한국 독립영화와 감독들의 데뷔작까지 챙겨 보고 있어요.
그리고 제가 SF 장르나 한국영화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일부러 취향에 벗어난 영화들도 많이 봐요. 요즘에는 70년대 이탈리아의 스릴러 영화인 ‘지알로’ 영화를 많이 보고 있어요. 매번 새로운 장르의 영화를 찾아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개인적으로 저에게 영화는 탈출구 같은 거예요. 제가 아일랜드에서 다녔던 중학교는 기숙학교였는데, 그때 처음 집을 떠나서 사는 경험을 했어요. 그때 많이 외로웠어요. 친구도 많이 없었고요. 학교 옆에 멀티플렉스 극장이 있었는데 그곳에 자주 갔어요. 그때의 저에게나 지금의 저에게나 극장은 탈출구와 같아요.
마지막으로 피어스 콘란 씨에게 한국영화란?
제일 짧은 질문인데 제일 힘든 질문인 것 같아요. (웃음) 한마디로 한국영화에 대해 생각하면 제 인생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돼요. 제가 성인이었던 지난 20년 동안 한국영화의 발자취를 따라왔거든요. 시간이 갈수록 제 삶 안에 한국영화에 대한 부분이 더 커지고 있어요. 11년 동안 한국에 살았고, 하고 있는 거의 모든 일이 한국영화에 대한 일이에요. 한국에서 알게 된 사람들도 대부분 영화계 사람이고요. 이젠 한국영화는 제 삶 자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