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브컬처 팬들끼리는 그런 말이 있다. 이 녀석이랑 저 녀석이랑 서로 너가 망했다, 너가 망했다 하면서 싸우는데 그건 진짜 망한 게 아니라고, 진짜 망한 건 아예 거론조차 되지 않는 그 녀석이다…. 지금 연말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한 영화를 보며 그 말이 떠올랐다. 처음부터 2부로 제작한 대작이자, 화려한 출연진을 구성하면서 기대를 받았던 영화. 그러나 12월 22일 공개 후에는 뭔가 화제에서 더 멀어진 영화. 물론 수치상으론 한국 포함 86개국에서 1위 중이라는데, 이상할 정도로 반응이 미적지근한 그 영화. <Rebel Moon(레벨 문): 파트1 불의 아이>(이하 <레벨 문>)의 이야기다.

영화를 본격적으로 언급하기 앞서, 필자 개인의 이야기를 먼저 해야겠다. 필자는 이 영화를 언론시사회로 봤다. 잭 스나이더 감독의 스타일을 무척 좋아하기 때문에 더 기다리지 못하고 언론시사까지 참석했다. 잭 스나이더 감독은 분명 단점이 뚜렷한 감독임에도 필자는 그가 만드는 이미지를 정말 좋아한다. 특히 <왓치맨>이나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같은 영화에서 보여준 극한의 이미지, 영웅을 영웅으로 보이게 하는 그 화려한 이미지를 선호한다. 전작 <아미 오브 더 데드>는 실망스러웠지만, 그래도 이번 영화는 SF 스페이스 오페라인데 건질 만한 건 있겠지 싶었다.
그리고 시사회를 보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그에게 무슨 일이 있던 걸까. 아니, 내게 무슨 일이 있는 걸까? 까놓고 말하면 그의 단점은 <레벨 문>에서도 고스란히 남았다. 그래도 뭐 명장면만 잘 뽑아준다면야! 문제는 거기에도 실패했다는 점이다. <레벨 문>은 명백하게 잭 스나이더의 장점 대신 단점으로 꽉 찬 영화다. 영화를 보면서 필자가 느낀 점을 고스란히 옮기자면 '영화관에서 보는 나도 이런데 넷플릭스 시청자들이 과연 이 영화를 안 끄고 볼 수 있을까?'였다.

아마도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는 구성에 있을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잭 스나이더 감독과 이 영화의 구성이 결코 좋은 시너지를 내지 못한다. <레벨 문>은 우주를 지배하는 '마더 월드'가 한 마을을 착취하려 들자 그곳에 있던 코라(소피아 부텔라)가 마을을 지키기 위해 동료들을 모으는 이야기다. 영화에 조예가 깊은 시청자라면 시놉만 봐도 <7인의 사무라이>와 그것을 리메이크한 여러 영화들이 떠오를 텐데, 맞다. 잭 스나이더는 자신만의 'SF판 7인의 사무라이'로 <레벨 문>을 내놓은 것이다.
중요한 건 그 명작이라는 <7인의 사무라이>도 3시간 27분이다. 그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도 이 내용을 3시간 반에 담았는데, 잭 스나이더는 1부만 2시간 28분을 할애한다. 혹시 인물들의 캐릭터성이나 관계를 더 심도 있게 그리지 않았을까. 그럴 리가. 잭 스나이더는 자신의 스타일, 슬로모션과 필요하지 않지만 꽤 멋있는 장면들로 영화를 채웠다. 그 과정에서 필요한 장면(액션의 리액션)이나 심리 묘사는 얕디얕다. 분명 이 순간 이 공간엔 수많은 인물이 있는데도, 영화를 보면 거의 2인극이나 3인극처럼 보일 지경이다. 군중을 다루는 데 미숙한 그의 단점이 여전한 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는 캐릭터성의 부재로 이어진다. 이 영화는 <7인의 사무라이>(와 기타 리메이크들)에 기인하고 있다. 관련 영화를 보면 적어도 한 인물 정도는 바로 떠오를 것이다. 여기 인물들은 명백하게 다른 성격을 가졌고, 그렇기에 생기는 화학작용 또한 또렷하다. <레벨 문>의 문제는 캐릭터들의 과거를 대사로 설명하거나, 아니면 2부를 위해 아껴놓는다는 것이다. 주인공 코라의 과거 정도만 플래시백으로 보여주는데, 그 외의 인물들은 현재 시점에서도 매력적으로 그려내질 못한다. 코라와 가장 오랜 시간 다니는 군나르(미치엘 휘즈먼)는 영화 속 사건의 가장 큰 단초가 되었음에도 그가 어떤 인물인지 기억에 남지 않는다. 영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이 인물들이 누군지 안다기보다 키쿠치요(미후네 토시로), 베르나도 오라일리(찰스 브론슨) 등 기존 영화들의 캐릭터들이 더 그리울 뿐이다.
이렇게 캐릭터를 그리는 것에 취약하니, 영화는 거대한 서사극보다는 여러 장르의 단편을 연작처럼 엮은 듯 보인다. 도입부부터 그렇다. 코라가 마을을 구하겠다고 마음먹기 전까지는 마더월드의 권위주의를 보여주고자 폭력적인 상황이 이어지는데, 그게 보는 입장에선 이렇게 자세히 묘사할 필요가 있나 싶다. 스나이더 감독은 이 영화의 '18세 버전 감독판'도 준비 중이라는데, 이처럼 필요 이상의 폭력에 집착하는 이유를 도통 알 수 없다. 이어지는 장면들도 액션이나 배우들의 멋들어진 면모는 빛나는데, 영화 전체 구성의 빈약함으로 매 시퀀스마다 몰입감을 소진하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레벨 문>이 단점뿐인 영화는 아니다-물론 여기까지 읽었다면 이 말을 못 믿겠지만. 이 영화를 단편을 엮은 연작 같다고 표현한 건, 그만큼 다양한 장르의 맛을 보여준다는 의미이다. 초반부는 누아르처럼 폭력으로 억압하려는 세력과 이에 반발하는 다크히어로의 구도를 깔끔하게 옮겼다. <킹스맨>, <스타트렉 비욘드> 등으로 이미 액션감을 보여준 소피아 부텔라는 그 다크히어로의 아우라까지 훌륭하게 소화한다.
이어지는 장면들도 그렇다. 웨스턴, 어드벤처, 미스터리, 대규모 액션 등등 각 시퀀스는 자신들이 맡은 바 책임을 다한다. 잭 스나이더가 상상하는 세계, 지옥 같은 세계에서 어떻게든 발버둥 치는 사람들의 모습은 <레벨 문>에서도 매혹적일 만큼 에너제틱하게 그려진다. 처음 <스타워즈> 스핀오프로 이 영화를 구상했다는 말처럼, 초미래적인 시대에 여전히 구닥다리스러운 광경들이 이어지며 무법지대의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그리고 역시 배우 캐스팅만큼은 언제나 일류라는 평가를 받는 잭 스나이더답게, 배우들의 매력은 <레벨 문> 최고의 장점일 것이다. 소피아 부텔라는 여성 전사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분량이 굉장히 적은데도 디몬 하운수는 특유의 존재감을 남긴다. 외모 때문에 유독 악역을 많이 맡는 에드 스크레인도, 역시 명품 악역의 아우라를 과시한다. 예고편 공개 당시 한국 관객들이 가장 기대했을 네메시스(배두나)는 강렬한 만큼 분량이 다소 적은 편이라 아쉬울 정도(2부에선 대폭 늘지 않을까 기대한다).

그러나 이런 장점도, 현재 파트1 시점에선 그렇게 유효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레벨 문>을 관람한 대중 반응 또한 시원찮은 편. 이제 남은 건 파트2, <Rebel Moon(레벨 문): 파트2 스카기버>가 1부의 부족한 부분을 얼마나 충족시켜주는지에 달렸다. <아미 오브 더 데드> 때처럼, 잭 스나이더는 <레벨 문>을 향한 큰 그림을 펼쳐나가고 있다. 자신이 그리는 큰 그림의 발목을 잡는 게 스스로가 되지 않도록, 파트2는 좀 더 심기일전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