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스트리아의 감독 예시카 하우스너의 영화 <클럽 제로>가 1월 24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클럽 제로>는 먹지 않아도 살 수 있는 특별한 식사법을 설파하는 영양 교사 ‘미스 노백’과 그를 맹신하는 엘리트 학교 학생들의 섬뜩한 이야기를 다루었다. 제76회 칸영화제의 경쟁작으로 초청되었고, 공개 직후 대담한 스토리텔링에 대한 호평이 이어졌다. 국내에서도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되어 국내 관객들의 호평을 끌어냈다. 예시카 하우스너 감독은 전작 <리틀 조>에서 사악한 변형 식물을 소재로 다루며 믿음과 인간의 소외감에 대해 다루었다. <클럽 제로>의 주제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감독은 <클럽 제로>를 통해 조금 더 직접적으로 현대적 신앙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보여준다.
‘의식적 식사법’을 교육하는 미스 노백(미아 와시코브스카)이 엘리트 기숙 학교의 보육 교사로 부임된다. 노백이 설파하는 식사법은 간단하다. 먼저 음식을 바라보며 깊게 심호흡을 하고, 코로 숨 쉬고 입으로 내뱉는다. 두 번째 머릿속 생각을 뒤로하고, 나 자신과 음식만 생각한다. 몇몇의 아이들은 환경 보호, 체지방 감소, 자기 통제 등의 이유로 그녀의 특별한 가르침을 받기로 한다. 시간이 갈수록 노백은 아이들에게 더 극단적인 식사법을 알려주지만, 그녀에 대한 아이들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는다. 학부모들은 점차 야위어 가는 아이들을 걱정하며 노백을 학교에서 내보내려고 한다.
사실은 조금의 다정함을 바랐던 아이들

허리를 곧게 펴고 미소를 살짝 머금은 채 교정을 당당히 거니는 노백. 그녀에게는 조금의 결핍도 들어설 자리가 없어 보인다. 수업 시간에는 각종 의학적 근거를 대며 힘주어 주장을 펼치고, 수업 외의 시간에도 아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인다. 힘들 때 찾아오는 아이들에게는 아낌없이 조언을 해주는 다정한 선생님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그런 그녀의 차분한 카리스마에 빠져든다. 그러나 영화는 줄곧 그녀가 혼자 사는 여성임을 일러준다. 노백은 기숙 학교 규정상 학생과의 개인적인 접촉은 금지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생 프레드와 함께 학교 밖으로 나와 미술관과 오페라 공연장에 간다. 또 노백은 아이들에게 무조건적인 신뢰를 바라고, 복종을 요구하기도 한다. 사실 그녀는 자신의 외로움을 아이들의 절대적인 사랑으로 충족하려는 불완전한 사람일 뿐이다.

아이들도 저마다의 결핍을 안고 있다. 프레드는 노백에게 심리적으로 가장 많이 의존한다. 그는 가족과 떨어져 홀로 기숙사 생활을 한다. 프레드의 부모는 프레드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는 그 나이 때 응당 받아야 할 부모의 신뢰와 사랑을 받지 못하고, 노백에게서 받지 못한 사랑을 채우려 한다. 라그나는 모든 일에 사사건건 관심을 가지는 부모에 대한 반항심으로 가득하다. 부모의 과잉보호 아래 자라난 라그나는 누구보다 노백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싶어 하지만, 자기 통제에 어려움을 느낀다. 엘사는 매사에 자신만만한 태도로 사람들에게 자신을 증명하려 한다. 그녀는 남들에게 늘 흐트러짐 없고 우수한 모습을 보이고 싶어 한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벤은 싱글맘의 아들로 풍족하지 않은 집안 형편 때문에 전액 장학금을 받기 위해 노력한다. 벤에게는 자신의 감정을 돌볼 현실적인 여유가 없다.
탈진실이 진실을 압도하다! 포스트 트루스 시대에 대한 알레고리

노백은 학부모회의 임용으로 학교에 오게 되었다. 라그나의 아빠는 노백과 노백의 의식적 식사법에 대한 정보를 웹사이트에서 발견하고, 그녀를 라그나가 다니는 학교의 영양교사로 추천한다. 기숙 학교의 교장 선생님은 노백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그녀가 가르치는 의식적 식사법이 최신 유행인 것 같다고 말한다. 처음부터 노백을 둘러싼 주변 사람들은 그녀를 별다른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그녀는 어떠한 검증도 받지 않고 아이들의 영양을 책임지게 되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내세운 교사 노백에게 빠져들며 전적으로 신뢰하게 된다.
노백의 의식적 식사법이 학교의 정식 수업으로 용인되고, 아이들의 신뢰를 얻는 작중의 상황은 가짜 뉴스와 음모론이 넘쳐나는 포스트 트루스 시대의 현실을 떠올리게 만든다. 포스트 트루스는 “실제 일어난 일보다 개인적인 신념이나 감정이 여론형성에 더 큰 영향력을 미치는 현상”이다. 이는 사실이 아닌 의견이나 감정이 사실 관계를 대체하거나 사실로 작용하는 것이다. 엘사는 누구보다 노백의 가르침을 적극적으로 실천한다. 엘사는 노백에 대한 무한한 믿음으로 인해 ‘살기 위해 먹어야 한다’는 명확한 사실까지 거짓으로 인식하게 된다.

포스트 트루스 시대가 도래한 여러 원인 중에는 가짜 뉴스가 만들어지기 쉬운 인터넷 환경이 한몫을 한다. SNS와 커뮤니티에는 거짓 정보들이 자체 검열 없이 돌아다닌다. 심지어 인터넷은 익명의 개인들이 퍼뜨리는 음모론을 용납하게 만든다. <클럽 제로>의 기숙 학교 교장과 학부모, 아이들도 최신 유행을 무비판적으로 따르고, 인터넷 정보를 그대로 수용한다. 아이들의 믿음이 커져가면서 가려져 있던 정황들이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러나 진실은 그럴듯한 거짓에 가려져 있고,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클럽 제로'의 폐쇄적 연대, 사이비 종교가 유지되는 메커니즘

<클럽 제로>는 사람들의 외로운 마음을 파고들어 허황된 소속감을 심어주는 이단 종교의 메커니즘을 보여준다. 노백과 아이들의 모습은 점점 사이비 종교 집단에 가까워진다. 그녀에 대한 아이들의 믿음은 컬트적 숭배와 같으며, 그들의 관계는 폐쇄적으로 변한다. 더 이상 노백의 수업을 듣지 말라는 부모의 만류는 통하지 않고, 노백은 아이들에게 절대적인 존재가 되어간다. 그럴수록 그녀는 아이들에게 더 심한 강도의 실천을 요구하고, 부모와 다른 학생들에게 수업 내용을 말하지 말고 비밀을 지키라고 당부한다. 또 아이들로 하여금 세상이 무너지고 살아남을 소수에 포함될 수 있다며 구원 희망을 품게 한다. 그리고 마침내 먹지 않고 살아가는 집단 ‘클럽 제로’에 가입한 아이들은 크리스마스 다음 날 노백과 함께 사라진다. 그들은 자신들을 믿어주지 않는 현실에서 벗어나 그들의 믿음이 방해받지 않는 대안적 세계로 숨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