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크 질렌할의 신작 <데몰리션>은 지극히 이성적인 투자 분석가 데이비스가 갑작스럽게 아내를 잃고 그녀에게 무심했던 스스로를 돌아보는 과정을 그립니다. 주인공이 홀로 남겨진 채 지난 부부생활을 돌이켜 본다는 점에서, <데몰리션>은 부부관계란 무엇인지 새삼 곱씹게 하는 영화입니다. 오늘은 <데몰리션>과 함께 볼 만한 '부부영화' 6편을 소개합니다. 정확히는 부부 금슬을 쑥쑥 키워줄 작품 3편과 멀쩡하던 관계마저 쪼개놓을 작품 3편으로 나눴습니다. 물론 웃자고 뽑은 리스트라는 거 아시죠? :)

금슬이 쑥쑥! ^0^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
(Mr. & Mrs. Smith, 2005)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키워드는
'부부싸움'입니다.
네?
여기, 사랑이 샘솟는 영화
소개하는 곳 아니냐고요?
맞습니다!
왜, 오히려 싸우면서 사이가
더 탄탄해지는 부부도 있다잖아요.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야말로
딱 그런 부부를 다룬
유쾌한 코미디입니다.

존(브래드 피트)과 제인(안젤리나 졸리)은
모두 킬러입니다.
것도 아~주 유능한 실력을 자랑하죠.
두 사람은 우연히 콜롬비아에서 만나자마자
사랑에 빠져 곧 부부가 됩니다.
하지만 둘 다 서로가 
상대 조직의 킬러라는 사실을 모릅니다.
결혼 6년이 지난 후,
그들은 권태기에 빠져 있습니다.
그러던 중 존과 제인은
조직에게서 임무를 부여 받습니다.
암살현장에서 두 사람은 상대 킬러가
바로 자신의 배우자임을 알게 됩니다.

그 후 이야기는 예상 가능하죠?
두 사람은 서로를 지키기 위해
살벌한 작전을 펼칩니다.

이 달달하고 유쾌한 러브스토리의 수혜자는
바로 주인공을 연기한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입니다.
두 사람은 이 영화를 찍으면서
바로 사랑에 빠지게 됐고
금세기 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부
'브란젤리나'가 되었죠
영화를 보는 관객도
마음을 뺏길 정도로 아름다운 두 사람이
목숨을 건 화끈한 부부를 연기하니,
서로 사랑하게 되는 건
차라리 당연해 보일 정도입니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2014)

백년해로(百年偕老)
부부의 연을 맺어 평생을
함께 즐겁게 지낸다는 말입니다.
흔히 떠올리는 이상적인 사랑의
전형 같은 모습일 겁니다.
다큐멘터리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백년해로의 막바지를 걷는
노부부의 사랑을 따뜻하게,
절절하게 담은 작품입니다.

98세 조병만 할아버지와
89세 강계열 할머니는
어딜 가든 두 손을 꼬옥 잡고
화사한 한복 커플룩을 자랑하십니다.
76년 동안
봄, 여름, 가을, 겨울
함께 시간을 보내셨죠.
그러던 어느 날 애지중지하던 강아지 꼬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그를 묻고 온 날부터 할아버지의 건강은
점점 나빠져 갑니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라는 제목은
강계열 할머니가 조병만 할아버지에게
전하는 말일 겁니다.
눈이 부실 만큼 고운 색동한복을
입고 온 동네를 다니시는
모습을 따라다니던 카메라는,
시간이 지날수록 병색이 심해지는
할아버지의 육체와
그 곁을 지키는 할머니의 모습에
초점을 맞춥니다.

두 분의 예쁜 사랑을 담은
이 작품은 남녀노소
모든 관객들의 눈시울을 적시며
전국 관객 480만 명이라는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 작품이 독립 다큐멘터리로
제작된 점을 떠올리면
더더욱 경이로운 기록이었죠.

<비포 미드나잇>
(Before Midnight, 2013)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연출과
(당시 청춘스타였던)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가 열연한
<비포 선라이즈>(1995)는
로맨스 영화의 영원한 고전입니다.
유럽 횡단 열차에서 우연히 만나
비엔나에서 꿈같은 하루를 보내는
제시(에단 호크)와 셀린느(줄리 델피)의
사랑 이야기는 9년 후
속편 <비포 선셋>이 제작됐고
그리고 그로부터 다시 9년 후,
<비포 미드나잇>으로 이어졌습니다.

<비포 미드나잇>에서
제시와 셀린느는 이제 부부입니다.
다른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두 사람은
여행을 떠납니다.
<비포 선라이즈>의 비엔나,
<비포 선셋>의 파리에 이어
그리스의 해변마을 카르다밀리로 향합니다.

'선라이즈', '선셋'과 달리
'미드나잇'은 상당히 현실적입니다.
두 전작이 여행지에서 만나는 커플이기에
판타지에 가까운 로맨스가 그려졌다면,
<비포 미드나잇>은 (18년간 이어진)
닳고닳은 관계의 면면을
자세히 보여줍니다.

시리즈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롱테이크는
이 작품에서 제시와 셀린느의 대화를
붙잡는 데에 활용됩니다.
여행지의 화려한 풍경보다
두 부부의 길고 긴 대화에 집중하며
싸우고, 싸우고, 싸우고,
결국 아무렇지 않게 화해하는
사랑의 '한밤'같은 순간을
오랜 호흡으로 보여줍니다.
분명 많은 사람들이 그릴
판타지는 개입될 틈이 없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로맨스의 속편'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금슬이 뚝뚝 ㅠㅠㅠㅠ

<건축학개론>
(2012)

최고 흥행작은 아니었지만
<건축학개론>은 분명
2012년 가장 많이 화제를 모은
한국영화 중 하나입니다.
감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저마다 가슴에 새겨놓았을
첫사랑을 그렸기 때문입니다.
남자들,
특히 어릴 적 바보처럼 쭈뼛대다
사랑을 놓쳐본 남자들이라면,
<건축학개론>에 깊은 공감을
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네, 제 얘기입니다.

건축학과 신입생 승민(이제훈)은
건축학개론 수업에서 만난
음대생 서연(수지)에게 반합니다.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같은 동네에 살고
전람회의 노래 '기억의 습작'을 같이 들으며
금세 친해지지만
승민의 짝사랑은 실패합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서른다섯이 되어
다시 만납니다.

첫사랑의 추억과 미련을 그린
<건축학개론>은
"두 사람이 손 잡고 극장에 들어갔다가
잡은 손을 풀고 나오는 영화"
로 불리기도 합니다.
그만큼 보는 이에게
옛사랑에 대한 추억에 잠기게 하는
힘이 크다는 뜻이겠죠.
게다가 현재의 승민(엄태웅)과 서연(한가인)은
옛 추억을 그대로 추억으로만
남겨 놓지 않기 때문에
관객들의 마음은
뒤숭숭해질 수밖에요.
영화를 보고 페이스북에
'그' 혹은 '그녀'의 이름을 검색해보거나
옛날 이메일을 뒤적거려본
써본 사람들,
아마 무지하게 많을 겁니다.
네, 제 얘기입니다.
잘 지내니, 은영아


<레볼루셔너리 로드>
(Revolutionary Road, 2008)

<타이타닉>(1997)의 커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이
11년 만에 <레볼루셔너리 로드>로
다시 만났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잭과 로즈가 아닌,
프랭크와 에이프릴 윌러 부부입니다.
다른 건 이름뿐이 아닙니다.
재난 속에서 서로를 구하려던
<타이타닉>의 커플과 딴판으로,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두 사람은
서로를 피 말려 죽일 듯이
몰아붙이며 파국으로 향합니다.

프랭크와 에이프릴은 첫눈에 반해
뉴욕 근처의 교외지 '레볼루셔너리 로드'에서
보급자리를 꾸립니다.
안정되고 평화로운 가정이지만,
두 사람 모두 모든 걸 버리고
파리로 이민할 계획을 궁리하죠.
하지만 프랭크는 승진을 권유 받습니다.
안정된 삶에 기운 프랭크와 달리,
에이프릴은 이민을 고집하죠.
그리고 두 사람의 갈등은
삽시간에 퍼집니다.

에디터 개인적으로 
<레볼루셔너리 로드>를
공포영화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결혼 생활에 대한 희망은
찾을래야 찾을 수 없는
지옥도 그 자체입니다.
각자 안정과 모험을 꿈꾸는
두 사람의 가치관 차이로 시작된 갈등이
파국을 향해 수직으로 내리꽂히는
과정은 모골이 송연할 정도로 끔찍합니다.
안 그래도 작품마다
혼신의 에너지를 쏟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의
연기가 가장 밝게 빛나는 영화이기 때문에
관객들에게 전해지는 날선 기운은
베일 듯 날카로울 따름이죠.

<바람난 가족>
(2003)

"2003년 가장 문제적 영화"
<바람난 가족>의 카피입니다.
배우 문소리의 포즈가
인상적인 포스터만 봐도
영화가 지닌 도발적인 에너지가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영화를 들여다 봐도
그 감상은 변하지 않습니다.
<바람난 가족>은
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까지
한국영화계의 악동으로 불리던
임상수 감독의 삐딱한 시선이 
가장 확연한 작품입니다.

영작(황정민)은 돈 안 되는 일도
도맡아하는 꽤나 정의로운 변호사입니다.
그의 아내 호정(문소리)은
한때 무용수였지만 지금은
동네 무용학원에서 취미로 춤추는 게
전부인 전업주부죠.
두 사람은 더 이상
서로에게 흥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각자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키워나갑니다.
영작의 부모 창근(김인문)과 병한(윤여정)
역시 건조한 부부이긴 마찬가지죠.

<바람난 가족>은 차가운 영화입니다.
황정민과 문소리 두 배우 모두
펄펄 끓는 에너지로 열연하지만
그 기운은 모두 중산층 가정의
위태로운 관계를 드러내는 데에 바쳐집니다.
단순히 불륜을 저지르는 부부의
아슬아슬한 치정을 그리는 데에 그치지 않고,
어쩌면 한국 사회 전반에 깔려 있는
건조한 내면을 까발리기 때문에
<바람난 가족>의 도발은
더더욱 생생합니다.
어쩌면 서사의 뒷전에 놓인
이산가족인 영작의 아버지가
피를 토하며 죽는 장면 이후로
영화의 밝기가 확연히
어두워진다는 점은,
이 영화의 목적이
가정의 불화를 현실적으로 그리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을 반증하는 지표입니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