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를 향해 목숨을 건 1만 2,000km의 탈출기. <비욘드 유토피아>(감독 매들린 개빈)는 거짓의 유토피아 북한에서 자행되고 있는 인권의 실태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비욘드 유토피아>는 북한을 낙원이라고 믿고 자란 이들, 당장 자신의 밥 한 끼보다 수령님의 기쁨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세뇌 받은 이들이 낙원이라고 믿고 자란 땅을 탈출하는 위험한 여정을 숨 가쁘게 보여준다.
<시티 오브 조이>(2016)로 미국 독립영화계의 새로운 물결로 존재감을 드러낸 매들린 개빈 감독은 “<비욘드 유토피아>를 준비할 때만 해도 북한에 대해 잘 몰랐다. 영화를 위해 조사를 시작하면서 북한 사람들의 소식을 듣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게 되었다. 나는 여기에 분노해 북한 주민들의 목소리를 전 세계에 알리는 것을 이 영화의 목표로 삼았다”라고 밝혔다. 20여 년 전 북한을 탈출한 이현서 씨의 에세이 ‘일곱 개의 이름을 가진 소녀’를 읽고 영화를 만들 결심을 했다.
이미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비욘드 유토피아>에 대한 관심은 뜨겁다. 2023 선댄스영화제 관객상 수상을 필두로, 2023 시드니영화제 최우수 국제 다큐멘터리 관객상, 2023 우드스톡영화제 최우수 다큐멘터리 장편 부문‧최우수 편집상으로 2관왕, 2023 햄튼국제영화제 2관왕, 2024 디스커싱필름비평가협회상 베스트 다큐멘터리상 등 수상 릴레이를 펼치고 있다. 매체 ‘버라이어티’는 <비욘드 유토피아>를 2024년 제96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제 장편 다큐멘터리 부문 유력 후보로 손꼽기도 했다.
<비욘드 유토피아>는 탈북민 이소연 씨가 북에 남은 아들을 탈북시키는 이야기와 중국 국경에서 한국에 들어오기를 소망하는 노씨 가족의 이야기를 병치해서 진행한다. 노씨 가족의 탈북에는 50명 이상의 브로커가 여러 국가에 걸쳐 관여했다. 생생한 탈북 현장을 스크린에 옮기는 데는 탈북민들의 희망, 한국의 ‘쉰들러 목사님’으로 불리는 갈렙선교회 김성은 목사를 빼고 이야기할 수 없다. 김 목사는 북한이탈주민 선교를 목표로 중국과 제3국에서 국적이 없어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탈북자들의 인권 회복에 힘쓰는 인권운동가이기도 하다.
김 목사가 북한이탈주민을 돕게 된 계기는 1990년대 중반 중국으로 선교활동을 가면서다. 압록강에 떠다니는 북한 주민의 시신을 본 그는 이들을 돕기로 결심했다. 두만강 빙판에 넘어져 목에 철심을 박기도 했고, 중국 공안에 체포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24년간 그가 탈북시키고 구조한 사람은 1,015명. 용산에서 김성은 목사와 실제 밀림을 함께 건너며 촬영한 최대원 PD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영화 기획의 출발점이 궁금합니다.
최대원 PD 정확하게 언제부턴지 말하기는 어렵고요. 처음 미국의 ‘아이들파트너스프로덕션’에서 연락이 왔어요. 탈북인 이현서의 에세이 ‘일곱 개의 이름을 가진 소녀’를 보고 감동 받았고, 영화로 제작하고 싶다고 한 것이 이 영화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실제 촬영은 언제부터 얼마나 하셨나요?
최대원 PD 2018년부터 2022년까지요. 코로나가 거의 끝나는 시점까지 한 거죠.
김성은 목사 한 달만 늦었어도 노씨 가족들은 한국에 못 왔을 겁니다. 국경이 봉쇄되었으니까요.
수많은 탈북민 중에 노씨 가족과 이소연 씨 아들의 이야기를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최대원 PD 김성은 목사님 의중이 가장 컸는데, 초반에 이소연 씨 아들 이야기로 하자고 하셨어요. 당시 미국 제작사 측에서는 이현서 탈북인의 에세이를 중심으로 영화를 만들고, 실제 탈북 과정은 영화에 조금만 담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 실패하면서 다시 촬영을 해야 하는 상황에 부딪혔어요. 목사님은 이미 여러 탈북민들을 구출하고 계셨는데, 다음으로 구출할 가족인 노씨 가족을 촬영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추천하셨죠. 그런데 한 명도 아니고 다섯 명이니 너무 위험하고 비용 부담이 커서 고민이었습니다. 그때 목사님께서 ‘고민 같은 거 하지 말라’고, 자신은 ‘일단 구출하러 가겠다’ 하셔서 ‘알겠습니다’ 하고 따라갔습니다. 그렇게 촬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탈북 과정이 영화의 중심 이야기가 되더라고요.
김성은 목사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되나 모르겠는데, 제작사가 돈이 없는 거예요.(웃음) 미국인들은 탈북 과정이 얼마나 위험한 줄도 모르는 데다가, 그냥 공짜로 찍으려고 하길래 처음엔 거절했어요.(웃음) 그러다가 제작비가 없으니 한 명 구출하는 걸 찍자, 돈을 보태겠다 해서 이소연 씨 아들 탈북 과정을 찍기로 한 거죠. 당시 북한에서 나오는 비용이 탈북민 한 명에 오천만 원 정도였거든요. 그런데 중간에 브로커가 고발하는 바람에 다시 북송되고 말았죠. 계속해야 하나 하던 순간에 노씨 가족이 나타난 겁니다. 그런데 이 가족들은 사실 현지 브로커들 사이에서는 아무런 값어치가 없는 가족입니다.

다섯이나 되는 생명인데 왜 아무런 가치가 없는 건가요?
김성은 목사 솔직하게 말씀드릴게요. 탈북민 중에 여자는 시집을 보내거나 사창가, 노래방에 팝니다. 그런데 노씨 가족은 할머니에 꼬마 여자애 둘에 부부예요. 브로커들에게는 투자할 가치가 하나도 없는 가족인 거였죠. 하지만, 우리는 구출해야 하는 사람들이잖아요. 제작사에게 다섯 명을 구출해야 한다고 하니 그냥 ‘멘붕’인 거예요. 돈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아까 최 PD가 말한 것처럼 나는 돈 상관없이 구출하러 갈 테니, 따라와서 찍으려면 찍으라고 하고 간 거죠. 사실 최 PD가 없었다면 이 영화는 나오지 못했을 겁니다. 젊은 친구가 인생에 한 번은 이런 경험을 하고 싶다고 따라와 줬어요.
영화에서 보면 목사님은 메콩강까지 노씨 가족을 데려다주고 다시 돌아가서 정식 루트로 입국을 하신 건가요? 그 밀림을 돌아서요?
김성은 목사 밀림 넘는 데 걸린 시간만 12시간입니다. 불법이죠. 그렇게 노씨 가족들을 데려다주고, 저희는 다시 돌아가는 겁니다. 정식 출입국 절차를 밟아서 태국으로 가야 하는 거죠. 탈북하는 사람들도 고생이지만, 제작진은 두 배의 고생을 한 거예요. 비하인드 스토리가 너무 많습니다. 카메라 장비는 좀 무겁습니까? 최 PD를 비롯해서 이 영화의 뒤에서 땀 흘린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밀림 장면은 영화로 보기만 해도 아찔하더라고요.
김성은 목사 최 PD가 밀림을 건너는 과정에서 찍은 영상들을 미국에 보냈는데, 나중에 매들린 개빈 감독과 제작진들이 보고 경악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나서야 미국 스태프들이 현지로 날아왔어요. 안가에서 인터뷰도 진행했고요.

목사님께서 처음 탈북시킨 분이 사모님 맞나요?
김성은 목사 네. 제가 탈북시킨 탈북인 1호입니다. 기독교 용어로 말하면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가 있었던 거고, 세상 말로 하면 여자 하나 때문에 콩깍지 씌어서 개고생 한 거죠.(웃음)
영화에서도 그 고생이 생생히 전달되더라고요.
김성은 목사 수많은 사람을 살렸지만 내 몸이 어떤지 보세요. 비만 오고 날씨 흐리면 몸이 쪼개져요.
최대원 PD 목사님이 안전벨트를 안 매고 운전하시더라고요. 왜 그런가 여쭤봤더니 철심이 목에 박혀있어서 어차피 사고 나면 죽는다고 하시는데….
김성은 목사 탈북자들 돕다가 두만강 빙판에 넘어져서 목이 돌아가 꺾였어요. 죽는구나 했는데 대수술을 받고 살아났죠. 밀림을 오가다 다쳐서 세 번 수술을 했고요, 쓸개도 적출했습니다. 농담으로 ‘저는 쓸개 빠진 놈입니다’라고 하죠. 제 몸은 이 정도지만, 가족들 볼 낯도 없어요. 탈북자들을 돕다가 친어머니가 중국에서 감옥에 갇히기도 하셨고요, 중국에서 사업하던 여동생은 탈북자 자금을 대주다가 쫓겨났습니다. 북경대 다니던 조카는 탈북자를 차에 태워 운반하다가 결국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고요. 막내동생도 중국에 유학 갔다가 쫓겨났습니다. 이루 말할 게 없죠.

그중에서도 가장 큰 아픔은 영화에서도 나오지만, 아들의 죽음이었을 것 같습니다.
김성은 목사 제 아들이 일곱 살 때였어요. 탈북자 돕느라고 아들을 먼저 하늘로 보냈습니다. 그때가 가장 슬프고 힘들었어요. 이 일이 그래요. 그 많은 사람 살려서 보람 있는 일이라고 사람들이 편하게 이야기하지만, 나는 늘 미안하고 죄스럽고 그래요. 마치 양날개 같달까요? 영화에서 노씨 가족들처럼 탈출시켜서 자유를 찾는 모습을 보면 기쁘지만, 이소연 씨 같은 경우 보면 너무 가슴 아프거든요. 내가 눈 감아 버리면 살릴 필요도 기뻐할 필요도 슬퍼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잖아요. 또 저는 목회자니까요. 늘 희비가 엇갈립니다.
아들의 죽음이 탈북인을 구하자는 소명이 된 것이군요.
김성은 목사 그 일 때문에 지금까지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었던 거죠. 당시 아내는 곡기를 끊었습니다. 죽겠다는 마음이었죠. 북한에서 한국으로 와서 내 핏줄로 하나밖에 없는 아이였잖아요. 나머지 가족은 다 북한에 있으니, 유일한 위안이었는데, 아니, 남들 살리려다가 내 자식 먼저 보낸 것이니 죽겠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하나님 은혜로 다시 살 수 있었지만요.
저희 부부가 내린 결론은 정말 내 아이의 생명도 이렇게 귀한데 탈북자들의 수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다면, 그 아이의 7살 이후의 남은 인생만큼 더 우리가 사람 살리는 데 이 길을 가자고 한 거죠. 매번 탈북시키러 갈 때마다 너무 힘들어서,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하고 갔어요. 그러다 24년이 흐른 겁니다. 그만큼 많이 살려왔지만, 이 영화로 그 과정이 끝난 것도 아니죠. 일주일 뒤면 또 일곱 명을 구출해서 옵니다. 그런데 이제는 제가 너무 알려져서 좀 겁나요. 비행기를 탔더니 옆 사람이 “목사님 아니세요? 또 탈북자 구하러 가시는 건가요?”라고 묻더라고요.
천차만별이겠지만, 통상 한 명 탈출 비용과 기간은 어떻게 되나요?
김성은 목사 <비욘드 유토피아>를 찍을 당시에는 인당 5천만 원이었어요. 그런데 달라요. 북한 국경 넘는 비용, 중국 국경에서 한국 오는 비용 등등이요. 지금은 북한에서 한국 오려면 성공을 담보하지도 못하는 데 1억입니다. 과거 2천만 원 하던 것이요. 24년 전에 이 일을 처음 시작할 때 브로커에게 한국 돈으로 5천 원 줬어요. 1만배가 오른 거죠? 가격이 올랐다고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그만큼 위험해졌다는 의미죠.
코로나 이전에는 중국에서 300만 원이면 데리고 올 수 있었어요. 그런데 코로나가 끝나니 3천에서 5천으로 가격이 치솟더라고요. 지금은 2천만 원 정도입니다. 중국 경기가 워낙 안 좋은 상황에서 5천만 원을 부르면 아무도 올 수 없으니까 가격이 내린 거죠. 방금 말씀드렸던 일곱 명이요. 그 돈으로 지금은 일곱 명을 구했지만, 과거에는 70명을 구할 수 있었어요. 그만큼 어렵고 힘들어졌어요.

자금은 어떻게 마련하세요?
김성은 목사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전 보상을 좀 많이 받고 싶어요. 아이와 신념 때문에 한 일이기는 하지만, 저희 교회가 탈북민 교회다 보니 헌금도 거의 없습니다. 제가 강의 나가고 TV 출연하고, 다큐멘터리 나가서 번 돈을 탈북자 살리는 데 다 씁니다. 어려움이 많죠. 강사료로 제가 얼마나 받겠어요. 그 돈으로 그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살릴 수 있나요? 이 일을 하면서 참 아이러니한 일이 있어요.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김성은 목사 탈북자 살려 오려면 돈이 필요하죠. <비욘드 유토피아> 같은 다큐멘터리를 찍으면 또 후원이 많아지겠죠? 그럼 사람들은 저희를 보고 ‘돈이 많겠네’라고 생각해요. 사실 후원은 조금 늘죠. 그런데 늘어나는 후원금보다 이제 우리 가족을 구해달라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속도가 훨씬 빠릅니다. 후원금은 1만 원, 10만 원으로 들어오는데, 그걸 모아서 5인 가족을 살리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후원해야 할까요? 알리면 효과는 있지만, 부담이 커지죠. 아까 말씀드린 대로 비행기에서 저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스스로 위험을 자초하기도 하고요. 늘 고민입니다.
24년간 구출한 탈북자가 1천 명이 넘는다고요.
김성은 목사 1,015명입니다.
저는 영화 보고 바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쉰들러 리스트>가 떠오르더라고요. 혹시 목사님 별명 있으세요?
김성은 목사 쉰들러 목사님요.(웃음)

모두 기억에 남겠지만, 그래도 잊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요?
김성은 목사 주성이라는 아이요. 아이의 부모가 노씨 가족과 같은 코스로 탈북했어요. 아들 둘만 북에 남겨 두고 먼저 탈북을 한 거죠. 며칠 후에 돌아올 테니 꼭 여기서 할머니랑 기다리라고 하고요. 그런데 정말 소름이 돋는 것이, 큰아들이 기다리는 동안 돈을 벌려고 전선을 자르러 전신주에 올라간 거예요. 뭐 북한에 전기가 잘 안 들어가니까요. 구리선을 팔아서 돈을 벌려고 한 거죠. 그런데 열세 살짜리 아이가 전선에 가위를 대는 그 순간 하필 전기가 들어와서 감전되어 죽은 겁니다.
5년이 흘러서 둘째를 힘들게 탈북시켰는데, 엄마가 기절하려고 해요. 분명 둘째를 데리고 왔는데, 5년 사이에 둘째가 너무 커서 형이랑 너무 같은 겁니다. 이 아이가 큰 애인지 작은 애인지, 그러면서도 계속 우는 거예요. 둘째를 데려와서 기쁜데, 큰애가 북에 묻혀 있잖아요. 기쁘면서도 슬퍼하는 모습이 한 가족 안에 있어서 그 모습을 보면서 감정이 복잡하더라고요.
탈북 자체로 끝은 아니죠. 탈북인들이 한국에서 정착은 잘하나요?
김성은 목사 사실 제가 많은 걸 하진 못해요. 구하는 것만으로도 힘드니까요. 다만, 아이들에게 매달 10만 원씩은 주려고 해요. 제가 탈북 고아, 꽃제비들을 가장 많이 데려온 사람입니다. 산속에 전원주택을 몇 채 지어뒀어요. 명절에 고향 가고 싶어도 못 가는 탈북민들과 모여 고향 음식도 해 먹고, 삼겹살도 구워 먹으면서 보내요. 힐링센터처럼요.
탈북민을 돕는 것이 중요하긴 한데요, 궁극적으로 통일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하시나요?
김성은 목사 탈북자가 안 오는 게 맞죠. 제가 이런 일을 안 하는 날이 오길 바란다고 말씀드려요. 남북이 오가야죠. 몇 시간도 안 되는 거리를 왜 1만 km가 넘는 길로 목숨 걸고 와야 하는 걸까요? 탈북자들이 이런 슬픔이 없는 세상에서 살길 바랍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까, 최소한 중국이 탈북자를 인정하는 날이라도 빨리 오길 바라요. 중국은 UN 상임이사국으로 인권을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탈북자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있는 거잖아요.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국제사회가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비욘도 유토피아>는 종교적인 색채가 적습니다. 탈북 이후 식사 자리에서 기도하는 게 전부죠. 의도적으로 이렇게 구성하신 건가요?
최대원 PD 사실 더 많았지만 덜어낸 부분도 많죠. 이미 목사님이라는 걸 알고 시작한 영화니까, 중요한 부분만 압축해서 넣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교회에서 탈북민 관련 예산 승인을 하던데, 어려움은 없나요?
김성은 목사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죠. 좋은 일 있으면 나쁜 일도 있는 거고요. 힘들지만 보람 있기도 하고요. 한편으로는 ‘김 목사가 이거 해서 돈 벌었대’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상관하지 않고 싶은데, 저도 사람인지라 화도 나고 그래요. 그래, 나 돈 많이 벌었다. 돈 벌고 싶으면 밀림도 걷고 메콩강도 건너볼래?라고 말하고 싶기도 하고요.(웃음)
최대원 PD 돈이 되었으면 아마 다들 이거 하고 살았겠죠?(웃음)
김성은 목사 보람된 일을 하는 사람들을 격려하는 사회가 되어야 하는데, 안타깝습니다. 사실 저는 유명한 사람들이 자살하는 걸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그럴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도 듭니다.

안타깝습니다. 탈북민을 구하러 오가시다 보면 목회할 시간도 부족할 것 같아요.
김성은 목사 저희 교회가 특별합니다. 아내가 목사거든요. 한국에 정착해서 신학교를 다녔어요. 제가 현장에 가면 아내가 강단에 서고 기도합니다. 그 점은 남북한이 협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웃음)
앞으로도 탈북민을 도울 계획이시죠?
김성은 목사 장담 못 해요.(웃음) 항상 말합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그런데 … 또 하겠죠, 아마?
탈북민을 대하는 남한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김성은 목사 먼저 탈북자들 이야기부터요. 언어적인 문제부터 문화도 힘들다고 해요. 그런데 경상도 사람이 전라도 가면 말이 안 통하는 것과 같다고 봅니다. 약간 불편하지만 소통해야죠. 절대 어렵다고 하지 말라고 탈북자들에게 이야기해요. 아무리 어려워도 북한에 있는 사람들보다 힘들겠느냐고요. 남한 사람들도 마찬가지예요. 연변 같은 곳을 가보면 우리나라 1970년대 모습 그대로입니다. 남한도 지금은 발전했지만, 한때 저렇게 어려웠던 시절을 지나왔잖아요. 개구리 올챙이 적 시절 잊지 말아야 합니다. 탈북민에게 ‘당신, 이거 알아?’라며 가르치려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줬으면 해요. 그러면서 영화에 나왔듯이 ‘고향의 봄’, ‘오빠 생각’ 같은 노래 함께 부르면 소통이 될 겁니다.

마지막으로 <비욘드 유토피아>를 볼 관객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김성은 목사 영화를 보고 나면 노씨 가족이나 이소연 씨에게 관심이 집중되겠죠. 아까 말씀드렸던 주성이요. 영화가 나오고 교회로 연락이 엄청 왔어요. 후원해주고 싶다고요. 심지어 어떤 분들은 교회 문을 열고 들어와서 ‘주성이 없어요?’하고 돌아나가기도 했고요. 관객들에게 보인 탈북자들은 이들이 다니까 그 관심을 뭐라 할 수는 없지만, 지금도 중국에는 한국으로 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영화를 성숙하게 보는 시각은, 이 영화 뒤에 지금도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거겠죠. 지금도 200명이 대기 중입니다. <비욘드 유토피아>가 개봉하고 나면 몇 백 명에게 더 연락이 올 겁니다. 한 사람당 2천만 원만 잡아도 상상할 수 없는 비용이 들 거예요. 그러니, 많은 사람을 구하려면, 여러분들이 관심을 갖는 만큼 살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최대원 PD 우리가 ‘자유’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이번 촬영을 하면서 자유라는 단어의 조건, 의미에 관심이 생겼어요. 똑같이 밀림을 건너고, 산을 넘고 있지만, 만약 잡히면 이들은 북송되죠. 저는 한국이라는 국가에서 보호를 받으니 안전감이 있고요. 그러니까 국가 권력이 사적으로 남용되는 나라를 탈출하자마자 이분들의 상태는 그야말로 ‘자연 상태’입니다. 뭐가 자유일까요? 사회 구성원들의 합의 아래, 적절히 견제되고 통제되는 국가 권력의 울타리 안에서 구성원들이 합의한 가치, 그러니까 그것이 규칙이든 헌법이라면 그걸 깨뜨리지 않는 범위 안에서 하고 싶은 걸 하는 상태가 자유 아닐까요? <비욘드 유토피아>를 보는 분들도 이런 감정을 느끼면 좋겠습니다. 자유라는 가치를 지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처럼 탈북자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던 사람도 영화를 보고 그런 가치를 느끼면 좋겠습니다.
윤상민 씨네플레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