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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로기완〉먼저 보니... '송중기,〈황야〉마동석 바통 이어받나'

이진주기자
〈로기완〉
〈로기완〉

2024년 1분기 넷플릭스 한국 영화의 거대한 줄기는 ‘살아남기’이다. 지난 1월 공개된 영화 <황야>가 대지진 이후 황폐화된 세상에서의 생존을 그린다면 오는 3월 공개되는 <로기완>은 낯선 땅에서 분투하는 이방인의 삶을 그린다. 제한된 공간, 특수한 상황 속에서 정작 두 영화가 주목하는 것은 관계이다.

<로기완>은 삶의 마지막 희망을 안고 벨기에에 도착한 탈북자 기완(송중기)과 삶의 이유를 잃어버린 여자 마리(최성은)가 서로에게 빠져드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영화는 탈북민 기완이 중국 연길에서 벨기에로 거처를 옮기는 과정을 순차적으로 보여준다. 기완은 벨기에에서 난민으로 인정받고자 하지만 녹록지 않다. 지지부진한 심사과정에 지쳐가는 기완 앞에 벨기에 국적의 한국인 사격 선수 마리가 나타난다.

〈로기완〉
〈로기완〉

연출을 맡은 김희진 감독은 <로기완>을 통해 장편 영화에 데뷔했다. <경희>, <MJ> 등 여러 단편 영화를 통해 섬세한 연출력을 보였던 김 감독은 특히 단편 <수학여행>으로 전주국제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에서 연이은 작품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았다.

“낯선 언어, 추위. 언제 난민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는지 기약 없는 기다림 속에 놓인 사람들이 느낄 막막함과 불안함. 그리고 쓸쓸함의 정도가 가늠이 안 되는 그런 감정을 담아내고 싶었다"라며 <로기완>의 제작 의도를 밝힌 김희진 감독은 원작의 강렬함을 유지하고자 했다고 덧붙였다.

소설 「로기완을 만났다」 (사진=출판사 창비)
소설 「로기완을 만났다」 (사진=출판사 창비)

영화 <로기완>은 조해진 작가의 장편소설 「로기완을 만났다」를 원작으로 한다. 2011년 출간되어 2013년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이방을 떠도는 탈북인의 운명에 대해 놀랄 만큼 차분한 공감을 자아내는 넉넉한 품과 세심한 결이 돋보인다’는 평을 받았다. 이후 2021년에는 KBS와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공동 선정한 ‘우리 시대의 소설 50’에 이름을 올리며 탄탄한 작품성을 기반으로 오랜 시간 사랑받은 작품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신인 감독이 현대 한국 문학계의 인정을 받은 작품을 영화화하기란 쉽지 않았을 터. 김희진 감독은 직접 각색 작업에 참여했다고 한다. 유럽에서 난민 지위를 받고자 애쓰는 실제 탈북민들을 취재하고, 케이트 에번스의 그래픽 노블 「그림으로 읽는 유럽의 난민: 구호 현장에서 쓴 생생한 기록」 등을 살폈다.

영화 <로기완>에는 원작 소설에서 사라진 캐릭터와 새롭게 등장한 캐릭터가 있다. 이것은 영화가 지향하는 지점을 증명하는 요소이다. 원작 「로기완을 만났다」의 화자는 로기완이 아니다. 탈북 난민인 로기완을 취재하는 방송 작가 ‘나’가 이 작품의 눈이자 입이다. 독자는 작가 ‘나’를 통해 로기완의 행적을 따라가게 된다. 김희진 감독은 영화화 과정에서 로기완의 일기를 통해 간접적으로 그를 추적하는 ‘나’를 삭제했다. 그리고 탈북 난민 로기완을 주인공으로 그의 삶을 직접적으로 그린다. 관객과 인물 사이 거리감을 좁히는 이러한 선택으로 이야기는 더욱 심플하고 선명해진다.

〈로기완〉마리(최성은)
〈로기완〉마리(최성은)

한편, 원작에는 없는 캐릭터 마리의 등장은 이 영화가 지향하는 바가 멜로드라마라는 것을 확실히 한다. 김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캐릭터 그 자체의 깊이와 매력, 그리고 그들 사이의 관계를 중시한다고 밝힌 바 있다. 영화 <로기완>에는 각자의 아픔을 가진 이들이 등장한다. 마리의 아버지 이윤성(조한철)은 오랜 투병 생활을 하는 아내 정주(이일화)를 떠나보냈고, 기완의 정육 공장 동료 선주(이상희)는 조선족으로 타국에 정착도 못한 채 아이들을 위해 끊임없이 일을 한다. 이처럼 다양한 인물과 사연을 뒤로하고 영화는 기완과 마리의 사랑에 집중하며 다층적인 서사를 ‘고난 속에서 꽃 피는 사랑’이라는 프로토타입으로 만들어낸다. 그렇게 ‘살고자 하는 남자’ 기완과 ‘죽고자 하는 여자’ 마리의 삶은 사라지고 절절한 사랑만이 남는다.

탈북민 로기완역의 배우 송중기는 그간 영화 <화란>(2023), <군함도>(2017) 등에서 거칠고 어두운 인물을,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2022), <빈센조>(2021) 등에서 스마트하고 유연한 인물을 연기했다. 주로 영리하게 자신의 운명을 헤쳐나가는 캐릭터로 등장했던 송중기는 이번 영화를 통해 속절없이 사건에 휘말리며 사회로부터 점차 소외되는 과정의 혼란스러움을 표현해낸다. 약 6년 전 <로기완>의 대본을 처음 받아보았다는 송중기는 “신선하고 먹먹했다”고 하면서도 “공감이 안되는 부분이 있어 거절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후 <재벌집 막내아들> 촬영 당시 다시 대본을 받아보았다며 인연이라고 생각해 출연하게 되었다고 전했다.

2019년 <시동>으로 첫 상업영화 주연 데뷔를 한 최성은은 사격선수 마리를 맡았다. 데뷔 직후 안정적인 연기력을 인정받아 2020년 춘사영화제 신인여우상을 수상했고 이후 제57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신인연기상, 제58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신인연기상에 연이어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다. 영화 <로기완>에서는 깊은 상처로 인해 자멸의 길로 들어서는 여자 마리의 불안함을 안정적으로 연기했다.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에 빠졌다며 출연 계기를 밝힌 최성은은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건 어떤 종류든 사랑이라고 생각해서 그 기점이 좋았다. 기완과 마리가 살아가려고 하는 모습에서 인간적인 매력이 느껴졌다”라고 덧붙였다.

〈로기완〉
〈로기완〉

특히, 기완의 공장 동료 선주 역을 맡은 이상희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조선족 노동자 선주는 투박한 외면과는 다르게 낯선 땅에서 헤매는 기완을 성심껏 챙긴다. 난처한 상황에서 부러 나서 일을 해결하기도 하고 끼니를 꼬박 챙겨주며 정을 나눈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 기완을 배신한다. 영화는 선주에 대해 그리 많은 설명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상희는 표정과 눈빛만으로 선주가 겪어왔을 고난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넷플릭스 〈황야〉
넷플릭스 〈황야〉

2024년 넷플릭스 한국 영화의 포문을 연 <황야>. 혹평이 이어지는 국내와는 달리 글로벌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개봉 3일 만에 글로벌 TOP10 비영어 부문 1위를 등극했을 뿐 아니라 넷플릭스 최초로 3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이 같은 <황야>의 세계적인 흥행의 뒤를 이어 공개되는 <로기완>이 그 바통을 받아 좋은 성적을 거둘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