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플랫폼에서나 숏폼 동영상이 대세인 시대. 호흡이 긴 드라마도, 가장 재미있는 부분만 소위 ‘짤’로 소비하는 요즘 세대에 가장 걸맞은… 아니 다음 세대의 코미디를 미리 내다본 드라마가 등장했다.
어느 부분을 잘라도 ‘짤’로 만들기 적합한 <닭강정>은 ‘류승룡과 안재홍의 연기 차력쇼’라는 시청자들의 평을 낳을 정도로, 두 주연배우의 연기력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작품이다. 두 사람이 아니었으면 ‘딸이 닭강정으로 변한다’ ‘사람의 모습을 한 외계인들에 맞서 싸운다’ 등의 황당무계한 설정이 설득력을 갖췄을 리 없다.

그동안 <LTNS> <소공녀> <족구왕> 등에서의 ‘생활 연기’로 주변에 있을 법한 인물을 실감 나게 표현해 온 안재홍은 <닭강정>의 ‘고백중’ 역으로 ‘만화 같은 연기’, ‘연극 같은 연기’에 도전했다. 작년에도 웹툰 원작의 넷플릭스 시리즈 <마스크걸>의 ‘주오남’ 역으로 이미지를 챙기지 않는 명연기를 보여줘 한차례 ‘은퇴설’에 휩싸일 만큼 혼신의 힘을 다한 연기를 선보였던 안재홍. 그는 다시 한번 웹툰을 원작으로 한 작품의 캐릭터를 연기하며 ‘2D를 4D로 만드는 배우’라는 수식어를 온전히 안재홍의 것으로 만들었다. 20일, 배우 안재홍을 직접 만나 그의 연기 철학에 대해 자세히 들어보았다.


<닭강정>의 ‘고백중’ 캐릭터에 대한 반응이 뜨거워요. 처음 작품을 제안받았을 당시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또 독특한 ‘고백중’ 캐릭터를 어떻게 만들고 싶으셨는지 궁금해요.
캐릭터가 굉장히 돋보이는 작품이었어요. 모든 캐릭터가 다 조금씩은 이상하고, 또 조금씩 사랑스러운 느낌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이 작품이 굉장히 만화적이고, 연극적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는 '고백중'이라는 만화적인 인물을, 웹툰에서 실사로 튀어나온 듯한 느낌으로 구현하고 싶었어요. 사실 저에게는 굉장히 큰 도전이었어요. 왜냐하면 <닭강정>은 정말 기존에 지금까지 없었던 코미디고, 저도 해본 적도 없었고, 저도 모든 게 처음인 작품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톤과 화법을 구축해서 그대로 흔들리지 않고 나아가야지 이 세계관이 형성이 된다고 믿었어요. 그래야만 관객분들이 이 작품 속으로 들어와서 이 작품만이 가진 마성의 힘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말씀하신 것처럼 <닭강정>은 캐릭터 쇼처럼 보이기도 하고, 캐릭터들의 연극적인 톤이 돋보여요. 안재홍 배우가 앞서 다른 작품들에서 했던 연기와는 다소 다른데요. <닭강정>의 코미디 연기를 하며 주안점을 두었던 부분이 있다면요.
코미디는 좀 더 정확하고 세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배우가 조금 더 재미를 유발하기 위해 감정선보다 더 큰 것을 들이면, 정말 그대로의 재미가 형성되지 않는다고 느껴요. 다른 작품에서 저는 자연스러운 연기를 추구하는 편이었는데요. <닭강정>에 임할 때는 그 가치를 내려놓고, 오히려 다른 것, 이 작품만의 화법을 찾으려 했어요. 몇 톤이 업되어 있다던가. 저는 보통 작품을 할 때는 대사를 받았을 때, 대사가 조금 입에 맞지 않으면 조금씩 제 입에 맞게 바꿔가는 식이었어요. 그런데 <닭강정>은 대사가 주는 힘과 맛을 잘 살리고 싶어서, 그대로의 스트레이트한 맛을 충실하게 구현하고 싶었어요. 왜냐면 그렇게 해야만 이 작품의 매력이 두드러지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고백중의 연극적인 화법이나 높은 톤도 그렇지만, 고백중 캐릭터의 시선 처리나 걸음걸이 등의 디테일이 특히나 돋보여요. 고백중 캐릭터의 디테일은 어떻게 잡으셨나요.
이전에 찍었던 <LTNS>와 <닭강정>을 비교를 하자면, 두 작품은 워낙 결이 다른 작품이에요. <LTNS>를 촬영할 때는, ‘연기하지 않는 듯한 연기’, 그러니까 정말 옆집 사람의 이야기인 듯한 감흥을 드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연기하는 듯한 느낌을 최대한 덜어내는 과정이 필요했는데, <닭강정>은 반대였어요. 오히려 ‘연기하는 듯한 연기’를 강렬하게, 강단 있게 가져갈수록 작품의 세계관이 구축이 된다고 믿었어요. 이를테면, 정호연 씨가 연기한 ‘홍차’와의 에피소드에서는 고백중과 홍차가 서로를 빤히 쳐다보고, 절대 시선을 피하지 않았거든요. 그런 장면과 상황이 관객에게는 ‘아, 이 작품은 뭔가 다르구나’라는 생각이 들게끔 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고백중의 외향적인 부분도 많은 고민을 했는데요. ‘옐로 팬츠’, 고백중이 입는 노란색 바지도 사실 채도를 좀 낮게 한다던가 할 수도 있는데,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정말 개나리 같은 노란색이 필요한 작품이었고, 또 나중에 이 옐로 팬츠에 대한 서사(아버지와의 에피소드)도 부여가 되잖아요. 그래서 오히려 더 흔들리지 않고 밀어붙이는 게 맞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멜로가 체질>에 이어서 <닭강정>에서도 기타를 들고 노래를 했어요. 마치 셀프 오마주 장면 같기도 한데, 두 번이나 기타를 들고 노래한 소감은 어땠나요.
노래 장면을 준비할 때의 목표는, 작품에 대한 저의 목표와 맞닿아 있었어요. 물론 기타는 제가 실제로 연습을 해서 연주한 거였고요. 노래는 그러니까, 최선을 다해 부르고 진지하면서도 ‘킹받는’ 그런 느낌인 거죠. 마치 <닭강정> 첫 화에서 노래를 부르는 고백중을 보며 한 학생이 뱉은 “이상해. 보게 돼”라는 대사가 어떻게 보면 작품을 감상하는 안내서 같은 거였죠. 이상한데도 계속 보게 되는. 이병헌 감독님이 그 대사를 넣으신 건, 마치 <닭강정>의 사용 설명서 같은, ‘이 작품은 그런 작품입니다’라는 걸 미리 알려준 게 아닐까 싶었어요.
<멜로가 체질>에 이어 이병헌 감독님과의 두 번째 작품이잖아요. 이병헌 감독님의 디렉팅 스타일은 어땠나요?
<멜로가 체질>과 <닭강정>은 아주 다른 정서의 작품이지만, 이병헌 감독님의 디렉팅 스타일은 같았어요. 배우들이 자유롭게 뛰놀 수 있게 하면서도, 방향성을 잡아주는 느낌. 감독님은 연기자들을 가둬두면 코미디가 더 나오지 않는다는 걸 잘 아시기 때문에, 슬쩍 유도를 하시는 편이에요. 저는 그게 오히려 든든했어요.

이병헌 감독은 소위 대사빨, 말맛이 좋은 극본을 쓰기로 유명한데요. 대사량이 많은 것이 특징이기도 하죠. 안재홍 배우는 <멜로가 체질>에 이어 이번에도 많은 대사량을 소화했는데, 어떻게 준비하셨나요?
<닭강정>에서 제가 했던 제일 긴 대사는, 2화에 나오는 닭강정의 유래에 대한 대사인데요. “닭강정이라는 음식은요 대중화된지 그리 오래된 음식이 아닙니다. 옥수수유나 면실유같이 저렴한 식용유가 공업적으로 대량 생산된 것도 1960년대 이후…” 지금도 줄줄 읊을 수 있을 정도로. 그게 사실 내레이션으로 재녹음을 한 게 아니라, 현장에서 한 번에 촬영하고 OK가 난 대사거든요. 그랬더니 감독님도 “이걸 어떻게 외웠어?”라는 얘기를 하셨던 게 기억이 나요. 제가 생각해 보니까, 긴 대사와 많은 대사량은 <멜로가 체질> 때 이미 트레이닝이 되어서 가능했던 거 같아요. 어느 드라마와 비교해도 압도적으로 대사량이 많았으니까요.
그런데 <닭강정>의 대사에 상당히 다양한 결의 유머가 아주 정교하게 짜여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단순히 웃기려고 쓰인 대사는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하나하나의 말들이 사실은 다 단서였고, 혹은 어쩌면 맥거핀이었고. 그래서 이병헌 감독님이 어디까지 생각을 하고 이 대사를 구성하셨는지 가늠이 안 될 정도로.

이병헌 감독이 안재홍 배우가 너무 잘생겨져서 ‘고백중’ 캐릭터로 캐스팅하기 망설였다고 했어요. 생각해 보면, 안재홍 씨는 <마스크걸>의 ‘주오남’ 캐릭터도 그렇고, 실제로는 그렇지 않지만 ‘못생김을 연기하는 배우’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에 대한 본인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지만, (웃음) 저는 제가 연기하는 인물은 (배우 안재홍과는 별개로) 그 자체로 보이길 바라는 마음이 제일 커요. <마스크걸>의 주오남은 주오남대로, <닭강정>의 고백중은 고백중대로.
<닭강정>은 공개된 이후에 ‘극호’ 혹은 ‘불호’ 등으로 호불호에 대한 평가가 나뉘고 있어요. 작품을 촬영할 때도, <닭강정>이 호불호가 나뉠 거라는 생각을 하셨나요?
저는 (작품을 찍을 때에는)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그런 마음이 커서, 굉장히 맛있고 신나는 것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임했어요. 그래야 작품들이 보다 다양해지는 데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호불호에 대한 반응도 정말 감사한 마음이고요.

최선만 역의 류승룡 배우에 따르면, <닭강정>에서 안재홍 배우와 호흡하는 신들은 보다 리얼한 웃음을 위해 따로 리허설을 하지 않았다고 했어요. 류승룡 배우는 안재홍 배우를 두고 ‘곰인척하는 여우’라고 하기도 했고요. 실제로 둘 간의 호흡은 어땠나요?
전체 리딩하기 전에, (류)승룡 선배님과 이병헌 감독님과 함께 소규모로 제작사에 모여서 대본을 한번 읽어봤어요. 제가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닭강정>의 대본을 받고, 이 작품은 작품에 걸맞은 적합한 화법이 구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거는 승룡 선배님도 마찬가지셨던 것 같아요. 이미 거기에 대한 고민을 하셨고, 이미 이 작품에 대한 맞는 ‘최선만’의 톤을 만들어 오셨다는 이미 그래서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처음 딱 대사를 맞추는 순간부터 딱 맞아떨어지는 느낌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오히려 현장에서는 리허설을 아꼈죠. 본 촬영에 들어갔을 때, 처음이 주는 재미와 쾌감을 담아내려고 에너지를 농축시켰다고 하면 맞을 것 같아요. 액션-리액션을 구분해서 장면을 계획했다기보단, 온전히 그 순간을 흡수하고 받아들이면서 류승룡 선배님과 정말 춤을 추듯이 유기적으로 움직였어요. 그리고 승룡 선배님이 신을 만들 때, 리듬감을 만들면서 저를 끌어주셨다고 생각해요.
<마스크걸> 때부터 세간에서 안재홍 배우를 두고 “넷플릭스에 약점이 잡혔나” “은퇴작이냐”라고 할 만큼 놀라운 연기력에 대한 호평이 이어지고 있어요. ‘은퇴설’ 밈의 시초가 되셨고, ‘안재홍 장르’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질 정도로 안재홍 배우는 독보적인 영역을 만들어 나가고 있는 듯한데요. 소감이 어떠세요.
우선은 저는 너무나 제가 했던 캐릭터에 대한 찬사라고 느껴져서, 사실 배우로서는 너무 감사하고 가장 기쁜 반응인 것 같아요. 제가 연기한 캐릭터 그대로 몰입해 주셨다는 의미니까.
조금 재미있었던 건, 해외에 저희 작품이 공개가 될 때 다른 나라의 성우님들이 더빙을 해주시잖아요. 그런데 <닭강정>의 고백중을 목소리 연기한 성우분들의 대다수가 <마스크걸>의 ‘주오남’을 맡으셨던 분인 거예요. 다양한 나라 버전의 ‘고백중’이 노래 부르는 장면이 유튜브에 있어서 봤는데, 너무 감사하고 신기한 게 저의 톤을 너무 잘 살려주시는 거예요. 언어는 다르지만, 언어를 몰라도 어떤 캐릭터인지 단박에 알 수 있을 정도로. 심지어 미국 성우님은 고백중의 노란 바지, 분홍 셔츠, 파란 조끼와 보라색 넥타이를 똑같이 착용하시고 인증샷을 찍으셨더라고요. 저도 어디서 저 바지를 구하셨지, 싶을 정도로 정말 고백중과 같은 노랑이었어요. 그래서 기회가 된다면 한번 뵙고 싶을 정도로 너무 감사한 경험이었습니다.


지난 <LTNS> 때 한 인터뷰에서 “항상 ‘이 작품 찍고 은퇴하는 거냐’라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매 작품 모든 걸 다 걸고 연기를 하고 싶다”라고 말씀하셨어요. 그 다짐은 아직도 변함이 없나요?
사실 늘 갖고 있는 마음이고요. 항상 어떤 캐릭터를 연기할 때, 정말 온 마음 다해서, 정말 이 인물을 생생하게, 깊이 있게 그려내고 싶다는 마음은 늘 한결같아요. 조금씩 시간이 지나면서 그 마음들이 더 커지고 분명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더 더 잘해내고 싶고 더 다양해지고 싶고 더 진실되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있어요.
극중 고백중의 예명인 ‘옐로 팬츠’ 이름으로 ‘닭강정 랩소디’ ‘고백의 주문서’ 등의 음원이 음원 사이트에 공개되었어요. 이번 <닭강정>의 음원이 <멜로가 체질>의 ‘흔꽃샴’(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향이 느껴진 거야) 만큼의 차트 성적을 거둔다면, 혹시 공약 같은 게 있으실까요.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 했네요. (웃음) B급 같은데 고퀄인 멜로디를 즐겨주세요.
씨네플레이 김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