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영화감독조합(DGK)이 주최하는 ‘벡델데이’는 매년 성평등한 작품을 만드는 데 기여한 인물들을 ‘벡델리안’으로 선정한다. 올해 시리즈 부문의 감독상으로는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LTNS>의 전고운, 임대형 감독이 선정되었다. <LTNS>라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프리티 빅브라더’라는 팀명으로 뭉친 두 감독은 이전에는 어디에서도 본 적 없던, 파격적이고 재밌는 시리즈를 만들어냈다.

올해 1월에 공개된 <LTNS>는 금기시되던 소재 ‘섹스’를 전면에 배치한 도발이 엿보이는 작품이기도 하지만, 전형적인 성별 고정관념의 전복이 곳곳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시리즈이기도 하다. 다가오는 ‘벡델데이2024’를 앞두고, 바른손스튜디오 사무실에서 두 감독을 만나 <LTNS>의 탄생 비하인드와 작품에 담긴 성평등 요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 내내 그들이 <LTNS>의 캐릭터, 디테일, 전사까지 얼마나 꼼꼼하게 설계했는지를 다시금 확인하게 되어 N번째 정주행을 마음먹은 지금, ‘프리티 빅브라더’와 진행한 인터뷰의 전문을 옮긴다.


두 분의 팀명 ‘프리티 빅브라더’라는 이름이 인상적이에요. 전고운 감독님의 ‘고운’(pretty), 임대형 감독님의 ‘대형’(big brother)에서 착안해서 만드신 거죠?
임대형 감독 팀명 회의를 많이 했어요. 각자 이름을 쓰는 것보다, 팀으로 같이 활동을 하는 것으로 보이고 싶었어요.
전고운 감독 저희의 베이스가 영화 쪽이다 보니까, ‘부캐’가 필요했어요. 네이밍이란 게 진짜 영혼을 지배하더라고요. 저희가 진지해지려고 할 때마다, (‘프리티 빅브라더’라는 팀명을 생각해서) 조금 더 자유롭게 되고.
<LTNS>로 ‘벡델데이2024’의 시리즈 부문 벡델리안으로 선정되셨습니다.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임대형 감독 제 첫 장편 영화가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인데요. 그것을 찍고 나서 벡델 테스트를 알게 돼서, 제 영화에 적용을 해봤어요. 그런데 제 영화는 해당이 안 되는 거예요. 찍을 때는 제 나름대로 고심한 부분이 있었는데, 테스트 통과가 안 되니까. 그게 저에게는 내가 영화를 이런 식으로 찍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어요. 그래서 그다음 영화를 찍을 때는 무조건 벡델 테스트를 고려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 후에 ‘벡델데이’ 행사가 만들어졌어요. 앞으로 이런 행사가 있다면 꼭 참여해야겠다 싶었고, 그래서 재작년에는 벡델데이 트레일러도 만들었어요. 또 올해는 저희 작품 <LTNS>가 초청을 받으니 기분이 좋죠.
전고운 감독 저희가 <LTNS>를 쓸 때, 젠더 트위스트를 하는 것에 되게 쾌감을 많이 느꼈어요. 그래서 글을 쓸 때 되게 즐거웠어요. 사실, 그렇게 잘 맞는 동료를 만나는 게 쉽지가 않잖아요. 저희가 그런 걸(젠더 트위스트나 성평등 등) 꽤 많이 염두에 두고 쓴 작품인데, 그걸 알아봐 주셔서 그 어떤 상보다 좋았어요.

<LTNS>의 남자 주인공의 이름, ‘임박사무엘’(안재홍)이라는 이름을 짓기 위해 많이 고심하셨다고 들었어요. ‘사무엘’이라는 이름도 독특하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성을 동시에 쓰는 걸 보면 젠더감수성이 뛰어난 인물이라는 설정인 것으로 보이는데요.
임대형 감독 사무엘 캐릭터가, 기독교 집안에서 나고 자란 막내아들이라는 설정이니까, 기독교식 이름을 찾다가 그렇게 됐어요.
전고운 감독 저희끼리는 그런 디테일한 인물 설정이 너무 중요했어요. 또, ‘임박사무엘’이라고 직관적으로 인물 이름을 설정해 놓으면, 저희의 고민을 빨리 캐치할 사람은 빨리 캐치할 거고요. 그 인물이 나중에는 훨씬 섬세하고, 감성이 있는 사람이라는 게 밝혀지니까요. 또, ‘우진’(이솜)과 글자 수의 대비도 되고요.
<LTNS>의 우진(이솜)도 그렇고, 민수(옥자연)도 굉장히 중성적인 이름을 지닌 캐릭터예요. 여성 캐릭터에게 중성적인 이름을 쓰신 이유가 있다면요.
전고운 감독 남자 캐릭터에 전형적인 남자 이름, 여자 캐릭터에 여자 이름을 쓰는 것에 조금 매력을 못 느끼는 것 같아요. 사실, (성별에 맞춰 전형적인 이름을 주면) 대본을 읽을 때 남자 여자가 확실히 구분이 돼서 더욱 편하기는 하지만, 그게 별 매력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사무엘과 우진의 가정 환경을 보면, 전형적인 남녀 부부의 고정관념이 완전히 전복돼요. 집에서 사무엘이 바느질을 한다던가, 깍두기를 담근다던가. 또, 잠깐 스쳐 가는 장면, 예를 들면 사무엘의 차가 고장 나서 정비소에 갔는데, 아주 잠깐 나오는 정비공이 여자라던가 하는 부분도 눈에 띄어요. 그런 디테일도 계산을 해서 넣으신 건가요?
전고운 감독 그럼요. 그런데 깍두기는, 임대형 감독님 고향이 금산인데, 제가 같이 간 적이 있거든요. 그런데 임 감독님 아버지께서 친구가 왔다며 깍두기를 담가주시는 거예요. 저는 저희 아버지가 부엌에서 요리하는 것을 본 적이 없는데, 아버지가 깍두기를 담가주시는 그 광경이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임 감독님은 그게 일상이니까 인상적이지 않겠지만, 저는 일상이 아니니까. 그게 엄청 충격이었어요.
<LTNS>는 여자는 감정적인 사랑을, 남자는 육체적인 사랑을 원한다는 전형적인 성별 고정관념을 전복합니다. 우진은 전 남자친구와 육체적인 바람을 피우고, 사무엘이 옆집 여성과 감정적인 바람을 피우는 것처럼요.
전고운 감독 저희가 전형적인 것에 두드러기가 있는 사람들이라서. (스토리상) 부부가 싸워야 하는데, 남자가 그렇게 하고, 여자는 그렇게 하고. 단지 고정관념을 트위스트 하는 게 목표였다기 보다, 그러면은 작품으로서의 매력이 없고, 그림 자체가 재미없다고 생각했어요. 또, 주변을 봤을 때, 여자가 성적 욕망이 센 사람이 있고, 남성이 감정적인 사랑을 원하는 사람들이 다 있기 때문에 너무 자연스러웠던 설정이었어요.
임대형 감독 맞아요. 의도는 분명히 있었지만, 그게 다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에요.
임대형 감독님의 전작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나 <윤희에게>는 절제된 톤의 영화예요. 반면 <LTNS>와 같은 고자극의 코미디를 쓰는 건 또 다른 도전이었을 거 같은데요.
임대형 감독 저는 코미디를 워낙 좋아하고, 그중에서도 캐릭터 코미디를 좋아해요. 그래서 항상 시도를 해보고 싶었는데요, 제가 원체 전고운 감독님의 <소공녀> 팬이었기도 하고요. 전고운 감독님과는 딱 만났을 때, 이 감독님과 함께라면 무슨 시도든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기고, 빠져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같이 작업하면서 좀 더 에너지를 많이 받았어요.
전고운 감독 제가 여자라서 이런 것을 할 때 오히려 더 프레임이 생기는 지점도 있고, 임대형 감독님도 본인이 남성이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러워하는 지점이 있었어요. 그런데, 저희가 여자, 남자 한 팀으로 하다 보니까 조금 더 저지를 수 있었던 거 같아요.

<LTNS>는 말 그대로 ‘고자극’을 표방하는 코미디 드라마인데요. 가장 파격적일 수 있는 소재인 섹스를 다루기로 한 이유가 궁금해요.
임대형 감독 너무나 보수적인 사회고, ‘섹스’라는 단어조차도 금기시되는 사회에서 성 담론을 얘기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나름대로 노력해서 시도를 많이 했는데, 그래도 한계는 있었어요. 뭔가 더 할 수 있는데, 더 갈 수 있는데, 작품이 공개되는 과정에서, 뭔가 좀 더 표현을 눌러야 한다거나. 그런데, 성에 대하고 쉬쉬하고 금기시할수록 부작용들이 더 생기는 것 같아요. 이렇게, 오히려 성 담론에 대해서 터놓고 얘기할수록 사회가 더 건강해지는 것 같아요.
전고운 감독 저희가 접하는 콘텐츠들을 봤을 때, 다 함께 보기 좋은 착한 이야기를 하는 콘텐츠가 많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 사회는 그런 것들도 필요하지만, 펄프 픽션처럼 ‘싸구려 문학’이 필요하다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그게 문학과 예술이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것들이 너무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서, 성인들끼리 낄낄거릴 수 있는 성인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LTNS>에서는 그간 미디어에서 흔하게 보지 못했던 커플들의 섹스가 등장합니다. 예를 들면 난임 부부라든지, 퀴어 커플이라든지, 노년 커플 등. 다양한 커플들을 다루고 싶었던 이유가 있다면요.
임대형 감독 우리가 다양한 커플, 다양한 인간 군상과 그들의 섹스에 대해서 다루려다 보니까, 지금 주변, 동시대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적극적으로 담고 싶었어요. 난임 부부 역시 주변에 흔하고, 퀴어 커플도 당연히 그렇고요. 그런데 미디어에서는 잘 보지 못하는 커플이잖아요. 그래서 그런 얘기를 최대한 가감 없이, 진솔하게 표현을 해보자고 했어요.
한편, <LTNS>에서 결혼의 모순을 말하는 부분도 눈에 띕니다. 예단 돌려막기라던가, 결혼 후에는 마치 ‘밥통’ 취급을 받는 중년 여성이라던가, ‘뉴욕에서 박사 딴 사람도 이리저리 휘두르는 게 대한민국 시댁’이라는 부분 등. 결혼 이야기는 왜 하게 되었나요?
전고운 감독 저희 작품의 목표가 ‘섹스 얘기하자’가 아닌 사회 풍자 블랙코미디를 만드는 거였어요. 그래서 다양한 사회상, 지금 동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쟁점과 화두를 다 모으다 보니까 그렇게 됐어요.
요즘의 어른들의 성생활을 다룬 작품들은 소위 ‘잘나가는 사람’, 돈이 많거나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과 남성의 섹스를 다룹니다. 그게 가장 잘 팔리는 소재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LTNS>는 택시기사 등 평범한 소시민, 아파트를 ‘영끌’하고 빚을 내서 사는 그런 소시민들의 섹스 얘기를 하고 있다는 게 새로운 지점인 것 같은데요. 보통 미디어에서 그려지는 가난한 소시민들은 돈 이외의 다른 욕망이 없는 것처럼 그려지기 일쑤니까요. 두 분의 전작도 그렇고,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는 데에 관심이 있으신가요?
임대형 감독 저는 하이 클래스의 삶에 대해 잘 몰라요. 그래서 기본적으로 글을 쓸 때, 내가 모르는 이야기를 쓸 때 디테일이 더 떨어지게 되고. 그러니까 이제 아무래도 가까이 있는 얘기를 글로 쓰려고 했었던 것 같고 그게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았나 싶어요.
전고운 감독 그런 인물들을 많이들 다루니까. 우리는, 우리가 이입하기 쉬운 인물을 다룰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LTNS> 2화에 나오는 저축은행 사내 커플의 이야기도 굉장히 새로웠던 부분인데요. 직장 설정이 ‘저축은행’이라는 점이 독특해요.
임대형 감독 아무래도 모든 연애가 돈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얘기를 해보고 싶어서 구상하다가 직업 설정을 저축은행의 직원으로 했어요. 점심시간에 잠깐 나와서 패스트푸드를 먹으면서 사랑을 즐기고, 마치 패스트푸드 같은 사랑이니까요.
그 화에서 ‘내 사랑은 무이자였어’라는 대사가 나와요. 그 대사도 그렇고, 우진이 ‘씹새 천국에서 나라고 달랐겠어?’라고 하는 대사 등, <LTNS>에는 ‘찰지다’라는 표현이 걸맞은 대사들이 유난히 많았는데요. 그런 대사는 어디서 영감을 얻으셨나요.
임대형 감독 그런 대사들은 다 소울이 있는 대사들이에요. 고운 감독님의 삶의 경험으로부터 비롯된. 그러니까 영감이 필요가 없고, 그냥 거의 래퍼 같았어요. 한국 사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려면, 거의 랩하듯이 그냥 키보드 앞에 앉으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거였어요. 힙합 같은 것처럼요. 영화는 대사를 계속 쳐내고 몇 줄만 남겨야 하잖아요. 그래서 <LTNS>를 할 때는 더 신나는 게 있었고, 저 혼자 썼으면 되게 절제하고, 누르고, 조심하고 이럴 수 있는데 전 감독님과 같이 하니까.
전고운 감독 임 감독님이 찍어놓은 두 작품이 점잖아서 그렇지, 임 감독님이 무척 점잖으신 분이지만 사람이 그 면만 있는 게 아니니까 이 일을 하겠죠.

전고운 감독님의 <소공녀>나, 임대형 감독님의 <윤희에게>나, 나름의 팬덤을 보유한 영화인데요. 그런 팬덤이 있는 것 자체가, 어떻게 보면 여성 서사에 목말라 있는 관객들이 응답을 한 결과인 것 같기도 해요.
전고운 감독 저희가 나름 독립영화라는 프레임 안에서는 잘 된 거고요. 임 감독의 <윤희에게>는 12만이라는, 거의 독립영화계에서 있을 수 없는 스코어였고요. 저도 <소공녀>가 6만 관객을 동원해 당시에는 아쉬웠지만,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게 터진 스코어였어요. 그런데, 상업영화 기준으로 봤을 때는 이 관객 수가 턱이 없죠. (여성 주인공의 여성 서사인) 독립 영화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지만, 상업 자본으로는 연결되긴 어려울 수 있어요.
그렇다면, 두 분이 <LTNS>를 만든 건, 젠더 트위스트를 하고, 성에 대한 얘기를 하지만, 상업적으로도 잘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을까요?
전고운 감독 저는 그게 되게 컸어요. 이런 소재로도 재미있게 풀 수 있고, 그게 대중적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고요. 수요가 항상 있다고 생각하고, 세대가 바뀔수록 그 수요가 더 많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한국 사회는 변화가 빠르니까, 콘텐츠가 그 속도를 따라가야 하는데, 우리가 그걸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누군가는 리드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게 크리에이터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우린 그걸 좀 해보자. 우리가 꼭 독립 쪽에서만 다양성을 보여주지 말고, 넘어와야 한다는 것에 대한 갈증이 너무 많았고요. 또, (대중적으로 먹히려면) 자극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자극도를 높인 후에 투자를 받았어요. 나름 전략이었던 것 같아요.
<LTNS>가 지난 1월에 공개된 후 몇 달이 지난 지금, 작품의 각본집도 나오고, 작품의 디테일한 것도 캐치하는 시청자들이 생기며 나름의 팬덤이 형성된 것 같은데요.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LTNS>는 모종의 성과를 거뒀다고 보시나요?
전고운 감독 성공했냐고 물으신다면, 반반인 것 같아요. 성공했다는 측면에서는, 우리가 도전 의식으로 만든 것을 세상에 내놨다는 건 그 자체로 성공이라고 생각하고요. 성과에 있어서는 실패라고 생각했어요. 왜냐면 저는 기준이 훨씬 높았던 것 같아요. 드라마를 열심히, 자극적으로 찍어도 독립영화 같은 느낌인 거예요.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기쁘지만, 저희가 만들 때의 목표는 엄마도 보고, 아빠도 보고 그럴 줄 알았는데. 엄청나게 성공을 맛봤다기보다는, 조금 씁쓸했던 것 같아요.

가장 보수적인 나라 중 하나인 한국에서 이런 작품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파격적인 시도인 것 같아요. 그렇다면, 현재 한국의 많은 작품들이 전형적인 성별 고정관념을 답습하고 있다고 보시나요?
전고운 감독 분명히 나아지고는 있는 것 같아요. 여성 캐릭터도,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이전에 비해 훨씬 많이 나오고 있고요. 이런 크리에이터들이 점점 많아지면 조금씩 더 다양한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하고 저는 바라죠.
영화 작업에 비해, 시리즈물은 보다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하는데요. <LTNS>에도 다양한 개성의 캐릭터들이 등장합니다. 두 감독님에게, 그중에서도 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가 있다면요.
전고운 감독 노코멘트하겠습니다. 워낙 고민을 안 한 캐릭터가 없었어요. 생각해보면, 4화의 시어머니 캐릭터를 트위스트 안 하고 플랫하게 썼긴 했는데, 그 외에는 다 꼼꼼히 만들었어요. 고정관념을 뒤튼 캐릭터도 그렇고, 전형적인 캐릭터라면 전형적으로 만들되 레이어를 조금이라도 더 넣으려고 고민을 했어요.
임대형 감독 캐릭터 하나하나 되게 신경을 많이 써서 만들었어요. 우리가 어쨌든 (고정관념의) 트위스트를 하려면 기존 사회상이 필요해서 시어머니 캐릭터도 넣은 거고요. 그 캐릭터도 그냥 소비시키고 끝나지 않고, 캐릭터에 개성을 주려고 노력했어요. 저는 이 드라마의 단역 배우들까지도, 예를 들면 택배기사 캐릭터도, ‘돈가스 먹으러 가자’라는 별거 아닌 대사도 조금 더 사람처럼 느껴지게끔 만들려고 노력했어요.

미디어에서 섹스 등, 성적 욕망을 다룬다는 것의 의의는 무엇일까요?
전고운 감독 성적 욕망을 미디어가 꼭 다뤄야 한다는 것은 아니고, 항상 이 미디어 생태계에 이야기의 다양성은 있어야 하는데, 다양성이 없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또, 너무 대상화되거나 전형적인 캐릭터라기보다는 우리 주변의 캐릭터, 다양한 캐릭터가 다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섹스 담론이 다뤄져야 한다기보다는.
임대형 감독 저도 마찬가지고요. 기본적으로, 글을 쓰고 연출을 하려면 일단 만드는 본인부터 재미를 느껴야 하겠구나. 그런데, 다른 사람들의 구미를 다 맞춰서 만들려고 하다 보면 개성이 없어지고 재미가 없어진다고 생각해서, 일단은 나에게서 먼저 통과가 돼야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랑스럽게 보여줄 수 있는 거니까요.
벡델데이의 기준에 맞춰, 감독님들 본인이 최근에 인상 깊게 본 ‘벡델초이스’ 작품을 뽑아주신다면요.
전고운 감독 나탈리 포트만이 주연한 애플 tv+ <레이디 인 더 레이크>. 그리고 영화 중에는 <메이 디셈버>요. 저는 올해의 작품이 <메이 디셈버>예요. 또 책까지 추천하자면, 헝가리 작가 서보 머그더의 소설 「도어」예요. 이것도 올해의 작품이에요. 읽고 나서, 이거 진짜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임대형 감독 저도 <메이 디셈버> 흥미롭게 봤고요.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가여운 것들>이요.
전고운 감독 그리고 최근 1년 안에 나온 작품은 아니지만 한국영화 중에 <세 자매>가 너무 좋았어요. 금산 갔을 때 저희가 이 영화를 틀어 놓고 봤는데, 술 먹으면서 같이 눈물 흘리면서 봤어요. 이런 건 계속 ‘샤라웃’을 당해야 하는 작품이에요. 이런 여성 캐릭터를 계속 만드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앞으로도 ‘벡델데이’와 같은 행사가 꾸준히 이어져야 하는 이유에 대해 말씀해 주신다면요.
임대형 감독 창작자가 계속 자기 작품을 스스로 반추해 볼 수 있는 좋은 시금석인 것 같아요. 지금도 콘텐츠가 다양해지고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창작자가 이것을 시금석 삼을 수 있는 좋은 취지의 행사인 것 같아요.
전고운 감독 사실 저의 DNA 자체가, 소수에게 관심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스코어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일찍이 했어요. 사람이 뭘 만들면, 어쩔 수 없이 인정과 보상을 바랄 수밖에 없는데, 잊힐 만하면 자꾸 언급이 되는 게 창작자들한테는 꽤 큰 힘이 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벡델데이 같은 행사가 있어야만 저 같은 창작자가 다음 작품을 찍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또, 벡델데이에서 추려놓은 작품들을 보면, 굉장히 힙한 작품들이 모여 있거든요.
임대형 감독 또, 그런 작품들을 일일이 다 언급해 주는 곳이 없잖아요. 다 섬세하게 보시고 언급을 해주시는 것 자체가, 창작자들한테는 힘이 되니까.
전고운 감독 사실, 저도 직업을 계속하려면 남자 주인공으로 작품을 써야겠다는 고민도 저는 한 적 있어요. 그런데, 나는 계속 여성 주인공으로 쓰고 싶은 욕망이 있는데, 누가 한 번이라도 불러주면 이런 경험이 별거 아닌데도 되게 중요하잖아요. 투자자는 사실 관객들이 찾으면 투자를 하거든요. 아직은 관객들이 좋아하는 건 익숙해진 서사와 익숙한 자극이지만, (변화하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린다고 생각하고, 그 변화 안에 제가 쓰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