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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피하거나, 집착하거나. 뒤틀린 모성을 그려낸 영화들

씨네플레이

두산백과에서는 모성을 ‘여성이 출산과 입양을 통해 아이의 보호자가 되고, 가족과 사회를 구성하는 한 구성원으로 아이가 성장할 수 있도록 책임져 보살피는 양육과 관련된 자질'을 의미한다. 주목할 점은 ‘모성'에는 ‘사랑’이 반드시 수반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모성'의 목적은 아이를 보호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책임지는 그 행위 자체에 있다. 그 과정에서 사랑은 자연스럽게 생길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 있다. 모성과 모성애를 혼동하여 “나는 아이를 사랑하지 않아”라는 말과 함께 책임을 유기하는 경우도 드물게 보인다. 

 

또한 ‘보호’와 ‘책임’이라는 개념을 개개인마다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아이가 나무에서 떨어질 뻔했다. 그렇다면 모성을 가진 어머니는 어떻게 아이를 ‘보호’해야 하는가. 일반적으로는 아이에게 ‘나무에 올라가면 위험하다’라고 알려주겠지만, 보호의 의미를 왜곡되게 해석한다면 아이에게 나무를 보여주지 않는 걸 택할 수 있다. 나아가서는 아이를 위협한다고 판단하는 존재는 모두 없애버릴 수 있다. 

 

오늘 소개할 영화들은 왜곡된 모성을 저마다의 해석으로 그려냈다. 회피하거나, 집착하거나, 혹은 상상 못할 새로운 방향으로 튀어나가는 이야기를 소개한다. 


<마더스> - "집착과 과대망상의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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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스〉(2024)

 

<마더스>는 절친한 이웃이었던 셀린(앤 해서웨이)과 앨리스(제시카 차스테인) 중 한 명이 사고로 아이를 잃으면서 관계가 무너지는 이야기로, 엄마의 집착과 편집증이 극의 중심축이다. 동갑내기 아들을 키우는 이웃사촌, 셀린과 앨리스는 극 초반에서 매우 가까운 사이로 그려진다. 마치 다정한 연인처럼 보이기까지 한 두 사람의 관계는 셀린의 아들, 맥스가 집 발코니에서 떨어져 사망하면서 틀어지게 된다. 발코니 난간에 있던 맥스를 발견한 앨리스는 덤불을 헤쳐 그를 구하려 했으나 역부족이었고, 셀린은 “왜 그를 구하지 못했냐”며 앨리스를 원망하게 된다. 그래서 둘의 관계가 대놓고 틀어졌다면, 영화는 그저 그런 공포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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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스〉(2024)

 

<마더스>가 특별한 점은, 셀린이 태도를 고치고 앨리스와 다시 관계를 맺고 친구로 돌아가서부터다. 앨리스는 셀린이 다시 친구가 된 것에 처음엔 안심하지만, 이내 자신의 아들 테오 주변을 맴도는 그의 행동이 거슬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전에 편집증 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기에 주변도, 스스로도 그의 의심을 확신하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테오가 셀린의 집 발코니에 서 있는 걸 목격한 앨리스가 기겁을 하며 덤불을 헤쳐 그에게 소리쳤다. 이어서, 실망한 표정의 셀린을 발견한 그는 셀린이 복수를 위해 ‘그날'을 재현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더스>는 ‘셀린의 집착’인지, ‘앨리스의 과대망상’인지를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결정적인 힌트를 던지기보다, 인물의 시선을 따라가며 감정 변화를 통해 관객이 추론하게 만든다. 덧붙여, 아카데미 수상자인, 앤 해서웨이의 서늘한 광기와 제시카 차스테인의 히스테릭한 연기도 놓칠 수 없는 관람 포인트. 


<마더>(봉준호) - "위협을 모두 없애는 괴물 같은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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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2009)


봉준호의 <마더>는 모성에서 ‘보호’와 ‘죄책감’을 기이할 정도로 확대했다. 끝까지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 엄마(김혜자)는 도준(원빈)의 엄마로서만 존재한다. 인간은 도구가 아니기에 쓸모가 정해진 채 태어난 게 아니라고 하지만, 이름을 잃은 ‘도준 엄마’는 마치 처음부터 ‘도준 엄마’로 태어난 것처럼 보인다. 망치가 더 이상 망치의 역할을 하지 않으면 버려지기에 도준 엄마는 처음부터 끝까지 도준의 엄마로서 도준을 통제한다. 심지어는 그의 목숨까지도 책임지기 위해 농약을 먹고 동반 자살(사실 도준은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존속 살해이다)를 시도하지만 실패하고, 그로 인해 영원히 어린아이가 된 도준을 돌본다. 도준이 여고생을 살해한 범인으로 몰리자, 필사적으로 진범을 찾는 엄마의 모습은 한 번 실패했던 ‘보호’를 다시 실패하고 싶지 않다는 몸부림처럼 보이기도 한다. 


<마더>(오모리 타츠시) - "무엇도 베풀지 않는 착취적인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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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2020)

 

그리고 봉준호의 <마더>와는 또 다른 형태의 왜곡된 모성을 보여주는 엄마가 있다. 바로 오모리 타츠시의 <마더>다. 봉준호의 <마더>에서 엄마는 이름을 잃어버린 사람이었지만, 오모리 타츠시의 <마더>에서 엄마는 오로지 자신의 이름만이 중요한 엄마다. 주인공 미스미 아키코(나가사와 마사미)는 미혼모로 아들 슈헤이(오쿠다이라 다이켄)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홀로 슈헤이를 키우고 있다'라고 썼다가 영화에서 아키코가 슈헤이를 키우는 장면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기에 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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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2020)

 

“내 아들이니까 내 맘대로 해도 되잖아”라는 아키코의 말은 영화를 관통하는 핵심 대사다. 러닝타임동안 아키코는 단 한 번도 슈헤이에게 모성을 실천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린 아들에게 돈을 훔쳐 오라고 시키며 기생한다. 영화는 끊임없이 퍼주는 모성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착취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극단으로 치달은 광기 어린 모성애보다 기괴하게 느껴지는 지점이 있다. 아들은 그런 엄마를 버리지 못하고, 오히려 그를 사랑한다고 말하며 엄마를 책임진다. 결국 돈 나올 구석을 만들기 위해 아들에게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죽여달라'고 부탁한다. 조금의 책임도 지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는 아키코’의 모습과 아무런 표정 없이 아키코를 따르고 그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슈헤이의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는 건 괴로운 일이다. <마더>는 2014년 3월, 일본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을 토대로 한 ‘실화 기반 영화’라는 점이 더 괴롭게 만든다.


<보 이즈 어프레이드> - "통제하는 엄마의 집착과 억압된 아들의 죄책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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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 이즈 어프레이드〉(2023)

 

공포영화 <유전>과 <미드소마>로 단숨에 스타 감독이 된 아리 애스터는 팬과 대중의 기대를 완벽하게 뒤로한 채, 초현실 블랙 코미디 장르의 영화 <보 이즈 어프레이드>(이하 <보>)를 내놓았다. 편집증을 앓는 보(호아킨 피닉스)에게는 그에게 과도한 애정을 쏟는 엄마 모나(패티 루폰)가 있다. 중년이 된 보는 엄마를 만나러 가는 길에 현실과 환상이 뒤섞이는 경험을 하게 되며, 영화는 이를 초현실적으로 표현한다. 난해하고 어려운 표현에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렸는데, 감독은 이를 두고 “영화가 어렵다, 혼란스럽다는 이야기를 들 을 때 사실 이해가 가지 않는다. 영화는 단순하다. <보>는 한 줄로 말하자면, 제대로 살아보지 못한 삶에 대한 이야기다”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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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 이즈 어프레이드〉(2023)

 

여기서 ‘제대로 살아보지 못한 삶’이란 보를 의미한다. 보는 아버지를 모른다. 그는 오르가즘을 느끼며 사정을 하면 아버지처럼 죽을 수도 있다는 불안 때문에 성욕을 억눌러왔다. 연애도, 섹스도 심지어는 자위행위도 해보지 못한 보는 아버지에 관한 질문을 묻지 못하게 하는 엄마로 인해 실제로 아버지가 섹스 때문에 죽었는지도 확신하지 못한 채 엄마에 의해 통제된 채 중년이 된다. 나이를 먹어 머리가 벗겨지고 주름이 지고 배도 나왔지만, 보는 여전히 어린 시절 억압된 채 그대로다. 감독은 ‘코미디 영화’라고 하지만 엄마가 사랑하지만 밉고, 벗어나고 싶지만 필요하고, 두렵지만 가까이 가는 그의 ‘루저 같은’ 모습을 보며 웃는 관객은 드물 것이다. 오히려 ‘엄마는 나를 이렇게 사랑하는데 왜 나는…’ 이라는 애증을 느끼는 아들의 죄책감을 느끼며 내내 불편함을 느낄 것이다. 그의 웃음 포인트에는 공감하기 어렵지만, 그럼에도 <보>는 뒤틀린 모성 아래 자라난 아들을 성공적으로 표현해냈다. 아리 애스터 감독 작품이라는 기대와 코미디일 것이다라는 예측만 빼고 보면 꽤 괜찮게 볼 수 있는 작품.


<런>

〈런〉(2020)
〈런〉(2020)

 

PC와 모바일, CCTV 화면으로 러닝타임 전체를 구성한 서스펜스 영화, <서치>(2018)로 전 세계에 자신의 이름을 알린 아니쉬 차간티 감독은 차기작으로 정통 서스펜스 장르를 선택했다. <런>은 그의 두 번째 장편으로, 선천적 하반신 마비와 병을 앓고 있는 딸 클로이(키에라 앨런)는 건강 이슈로 홈스쿨링을 하며 엄마 다이앤(사라 폴슨)과 둘이서 외딴 집에서 살고 있다. 다이앤은 딸을 지극정성으로 돌보고 클로이 역시 엄마의 사랑을 알고 있기에 두 사람은 서로를 애틋이 여기며 각별하게 지내왔다. 그러던 어느 날, 클로이는 엄마가 매일 주는 약이 ‘심장 질환제’가 아닌, 개에게 먹이는 근육 이완제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사람이 그 약을 먹으면 하반신 마비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도. 가장 안전하다고 믿었던 집을 의심하게 되면서 클로이는 집을 벗어나고자 하고, 다이앤은 그런 그를 놓아줄 생각이 없다.

 

〈런〉(2020)
〈런〉(2020)

 

전작 <서치>에 비해 <런>은 익숙한 플롯을 갖고 있다. 서스펜스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반전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런>의 진정한 재미는 반전에서 오지 않기 때문에 문제 되지 않는다. 오히려 옭아매는 엄마의 품을 어떻게든 벗어나려는 딸의 분투가 영화를 이끄는 주요한 포인트다. 왜곡된 모성에서 오는 불편함보다는 이를 소재로 활용한 장르적 재미를 느끼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세비지 그레이스>

〈세비지 그레이스〉(2009)
〈세비지 그레이스〉(2009)

 

<세비지 그레이스>는 1972년에 있던 베이클랜드가 살인사건을 다룬 영화로, 베이클랜드가 살인사건은 런던의 고급 아파트에서 자신의 어머니 바바라 베이클랜드를 아들 안토니가 식칼로 여러 차례 살해한 사건이다. 베이클랜드가는 플라스틱을 발명한 부호 가문이지만, 안토니는 어머니를 살해한 후 태연하게 중국 음식을 배달시킨 상태였다. 조사 과정에서 우아하게만 보이던 베이클랜드가의 진실이 드러나며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영화 <세비지 그레이스>는 그들의 삶을 관찰자의 시선으로 찬찬히 궤적을 살펴보고 있다. 

에디 레드메인의 처연미가 가장 폭발한 시기기도 하다. 〈세비지 그레이스〉(2009)
에디 레드메인의 처연미가 가장 폭발한 시기기도 하다. 〈세비지 그레이스〉(2009)

 

베이클랜드가는 전형적인 상류층 가문이었는데, 바바라(줄리아뉴 무어)는 가난했지만 결혼을 통해 그 세계로 편입하게 된다. 하지만 상류층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자 남편에게 기대려 하지만 남편은 이를 거절하고 바바라는 점점 히스테릭해진다. 기댈 곳이 없어진 바바라는 곁에 있던 아들 안토니(에디 레드메인)에게 남편의 역할을 요구하게 되고, 영화는 두 사람의 뒤틀린 모자 관계를 꼼꼼하게 재현한다. 안토니 입장에서 베이클랜드가는 그야말로 콩가루 집안이다. 아버지는 아들의 연인을 꼬셔 살림을 차리고, 엄마는 아들의 동성 연인을 유혹한다. 결국 아들과 엄마, 그리고 그들의 연인이 뒤엉켜 몸을 섞고 이후엔 엄마와 아들이 근친상간까지 저지른다. <세비지 그레이스>는 그런 그들의 모습 위로 햇살을 드리운다. 부서지는 햇살 속, 황폐해져가는 둘의 관계에 기묘한 아름다움을 끼얹었다. 그래서 보고 나면 ‘그래서 어쩌라고?’ 라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자연스러운 생각이다. 미와 스타일에 집착한 감독 덕분에 결벽에 가까운 미쟝센이 영화를 지배하고 관객은 그 영상미를 감상하면 된다. 신인 시절, 에디 레드메인의 처연하고 위태로운 연기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