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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에 다시 입점한 한국 코미디 명작 5편

성찬얼기자

구관이 명관이다. 코미디란 참 이상하게도 봤던 걸 또 봐도, 어디서 웃을지 알아도 또 보게 되는 재미가 있다. 잘 만든 코미디는 알면서도 빵 터지게 하고, 유행어를 탄생시킨다. 이번에 넷플릭스로 돌아온 이 영화들도 그렇다. 아래 소개할 한국 코미디영화 다섯 편은 아마도 안 본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봤다면 한 번 이상 봤을 것이다. 각종 케이블 채널에서 (옛날 말로) 테이프 늘어질 때까지 틀어줬었으니까. 그렇게 자주 방영하는데도 그때마다 보게 하는 마력이 있는 코미디 영화들을 넷플릭스에서 다시 만나보자.


주유소 습격사건 (1999)

〈주유소 습격사건〉
〈주유소 습격사건〉

 

이 영화의 장점은 극도의 심플함이다. 젊은 남자 4명이 주유소를 턴다. 왜? 재밌으니까. 노마크(이성재), 무대포(유오성), 페인트(유지태), 딴따라(강성진) 네 사람은 주유소를 털고, 사장(박영규)과 알바생들(정준, 이정호, 이요원)은 이들의 인질이 된다. 지금 같은 시대였으면 기획 단계에서 "미쳤냐" 소리 들었을 이 영화는 1999년 최고의 히트작 중 하나이다. 특히 무대포가 시도 때도 없이 외치는 "대가리 박아~!"는 이 영화가 청소년 관람불가였음에도 청소년들 사이에서 유행했을 정도. 한정된 시간(심야)과 공간(주유소)을 가지고도 우발적인 상황을 계속 맞물리며 전개하는 과정 또한 영리하다.

돌이켜보면 이 영화가 단순히 웃겨서 유행했다고 단정할 순 없다. 망나니들의 일탈기인 듯하지만 네 사람의 과거에 비춰보면 1999년 당시 IMF를 지나는 한국인들의 절망감이 이렇게 승화되고 있었음을 느낄 수 있다. 실력은 있지만 환경에 부딪혀 포기해야 했던 네 사람은 어떻게 보면 지금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포기와 분노와도 일치한다. 재밌지만 씁쓸하고, 쓰지만 동시에 달기도 한 <주유소 습격사건>은 어떻게 보면 '단순무식' 도파민 분비에 치중한 요즘 유행에도 꽤 잘 어울린다.

〈주유소 습격사건〉 지금 보면 아는 얼굴이 많이 나온다. 유해진(왼쪽)과 이종혁(가운데)
〈주유소 습격사건〉 지금 보면 아는 얼굴이 많이 나온다. 유해진(왼쪽)과 이종혁(가운데)

황산벌 (2003)

〈황산벌〉 포스터. 차별점을 확실히 알리고 있다.
〈황산벌〉 포스터. 차별점을 확실히 알리고 있다.

이준익 감독을 '시대극의 거장'으로 만든 영화 중 하나는 <황산벌>이다. 계백이 이끄는 백제군과 김유신이 지휘하는 신라군이 맞붙은 660년 황산벌 전투를 영화로 옮겼다. 이렇게만 보면 흔하디흔한 사극영화 같은데, 이 영화가 선택한 차별점은 '사투리'다.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백제와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신라, 두 국가의 신경전은 여느 사극처럼 무겁지만 거기에 사투리로 생기는 소통의 오해와 여러 상황들은 관객을 웃게 한다. 몇몇 장면은 선 넘는 개그로 살짝 불쾌할 수 있지만(몸으로 하는 섹드립 등) 우스꽝스러울 수 있는 사투리 상황극을 배우들은 깊이 있는 연기력으로 풀어내며 진지함과 코미디 사이를 자유롭게 오간다.

이 영화의 매력은 결코 가볍지만도, 무겁지만도 않다는 것. 나라의 명운을 짊어진 전투이지만 먹고사는 것이 가장 중요한 병사들에겐 동료나 적과 농담 따먹기 하는 시시콜콜한 일상이 되기도 했다가 자신의 목이 날아가는 지옥이 되기도 한다. 장군이라고 또 다른가. 대의를 위해 스스로와 주위의 삶을 포기하는 모습은 영웅보다는 비겁한 도망자의 모습처럼 비치기도 한다. <황산벌>은 이렇게 '희비극'이란 조준경으로 관객들을 겨냥해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다.

〈황산벌〉 은 거시기(이문식)를 내세워 장군의 이야기이자 민중의 이야기를 담았다
〈황산벌〉 은 거시기(이문식)를 내세워 장군의 이야기이자 민중의 이야기를 담았다

 


싸움의 기술 (2006)

〈싸움의 기술〉
〈싸움의 기술〉

 

"너, 피똥 싼다?" <싸움의 기술>이 유행시킨 희대의 대사. <싸움의 기술>은 마냥 웃긴 영화가 아니다. 매일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송병태(재희)가 의문의 싸움고수 오판수(백윤식)에게 싸움을 배워 가해자들에게 복수한다는 내용은 유명 드라마 <베스트 키드>(원제 <가라데 키드>)의 한국판 같다. 폭력을 그리는 방식도 코미디 영화치고 그렇게 가볍지 않다. 그렇지만 원래 당사자에게 비극이면 제삼자에게 희극이라고 했던가. 판수의 겉모습만 보고 까불던 덩치들이 무너질 때, 그리고 병태가 갈고닦은 기술을 제대로 쓰지 못할 때 관객은 자신도 모르게 웃게 된다. 슬랩스틱이란 코미디 장르가 있듯, 때때로 육체적인 고통은 코미디가 되는 걸 <싸움의 기술>은 잘 알고 있다.

〈싸움의 기술〉 백윤식의 수많은 명대사 중 이 대사도 빠질 수 없다 (사진 출처=JTBC 방송 캡처)
〈싸움의 기술〉 백윤식의 수많은 명대사 중 이 대사도 빠질 수 없다 (사진 출처=JTBC 방송 캡처)


화산고 (2001)

〈화산고〉
〈화산고〉

<화산고> 같은 영화가 요즘 말로 하면 '민트초코' 혹은 '파인애플피자'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분명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것은 아닌데 흔들리지 않는 열성 소비층이 있는. 무협물과 학원물을 섞은 <화산고>는 누구에겐 견딜 수 없이 오글거리는 유치한 영화이지만, 반대로 이 영화 말고는 다른 어떤 영화에서도 만날 수 없는 신묘한 재미를 선사한다. 여기저기서 사고 쳐서 화산고로 전학 온 김경수(장혁)는 학교를 장악하려는 교감 장학사(변희봉)와 장량(김수로)의 계략이 휘말려 다시 한번 싸움판에 뛰어들게 된다. 지금 보면 흔히 말하는 '일진물'의 한 분류 같은데, 무협의 요소들을 충실하게 녹여내 <화산고> 만의 액션과 코미디를 만드는 데 성공한다.

〈화산고〉 무협과 현대학원물의 특징을 고루 섞었다.
〈화산고〉 무협과 현대학원물의 특징을 고루 섞었다.

플란다스의 개 (2000)

〈플란다스의 개〉
〈플란다스의 개〉

아마도 오늘 소개한 코미디 영화 중 이 영화의 유머 코드가 가장 독특하지 않을까. 일명 '삑사리' 개그를 구사하는 봉준호 감독의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는 교수가 되지 못한 시간강사 윤주(이성재), 아파트 경비실 경리 직원 현남(배두나) 두 사람이 아파트 내 강아지 실종에 얽힌다는 내용. 포스터에선 두 사람이 사이좋게 실종된 개를 찾아 나선 얘기처럼 보이지만,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시종일관 개 짖는 소리에 개를 가둔 '가해자'이자 아내의 개를 잃어버린 '피해자' 윤주와 그저 '용감한 시민상'을 받고 싶어서 개를 찾는 다소 단순한 동기의 현남이 대비된다. '개'가 전면에 나서긴 했지만 영화는 현실에 부딪혀 한계를 느끼는 윤주와 현남 두 사람의 상황을 조명하는 데 중심을 둔다. 이 안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우연들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쓴웃음을 짓게 한다. 어쩌면 누군가에겐 웃음조차 나오지 않는, 심각한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블랙코미디가 보통 이런 식이라곤 하지만, 현실에 너무 착 붙어있는 윤주와 현남의 모습은 웃음보다는 연민이 더 많이 들기도.

〈플란다스의 개〉
〈플란다스의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