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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희봉이란 한국영화계의 이름과 얼굴

성찬얼기자
변희봉의 유작 영화 〈양자물리학〉
변희봉의 유작 영화 〈양자물리학〉


영화사에 하나의 얼굴로 남는 것. 배우에게 그것은 크나큰 영광일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위대한 건 얼굴이 남되, 하나로 규정되지 않는 것이다. 수많은 배우들이 하나의 이미지를 확립하며 스타가 된다면, 훌륭한 배우는 작품마다 다른 인물을 자신에게 덧씌워 그 얼굴이 남되 하나로만 기록되지 않는 성취를 거둔다. 딱 1년 전쯤,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배우 변희봉이 바로 그런 배우이다.



거창하게 글을 열었지만 본인의 무지를 먼저 고백하려 한다. 아마 대다수 독자가 그렇겠지만, 변희봉 하면 떠오르는 기억은 2000년대부터 시작된 그의 스크린 활동일 것이다. 그는 1970년대부터 배우 활동을 시작했고, 그보다 먼저 1965년 성우로 방송계에 발을 디뎠다. 그가 세상을 떠난 2023년까지, 반세기를 그는 배우로 살았으니 우리가 기억하는 변희봉은 인생에서 4분의 1이고 배우 활동에서 절반일 뿐이다. 그 2000년대 이전까지 들여다보면 좋겠지만 필자가 그 당시 꼬꼬마여서 기억하고 있는 드라마가 없거니와 그 시절 드라마를 모두 섭렵하기도 무리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플란다스의 개〉
〈플란다스의 개〉


그러나 그전의 활동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에 송구스러울 따름이지, 2000년 이후 펼쳐진 변희봉의 활약상만 하더라도 적을 것이 차고 넘친다 . 봉준호 감독의 <플란다스의 개>에서 경비원으로 출연한 건 배우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됐다. 영화와는 영 인연이 없었던 변희봉이었지만(직전 영화 출연이 1986년이었다) 기필코 그를 캐스팅해야만 했던 봉준호 감독은 미팅 자리에서 그의 명장면을 직접 따라하기까기 했다. '아파트 지하에서 보신탕 해먹는 경비원'이란 다소 괴상한 캐릭터에 변희봉은 거절하려 했지만 봉준호의 일장연설을 듣고 출연을 결심했다. 훗날 봉준호 감독은 <플란다스의 개> 시나리오가 막혔을 때, 경비원 캐릭터를 만들면서 시나리오가 풀렸고 그 캐릭터에겐 무조건 변희봉이 필요하다 생각했음을 고백했다.

그렇게 출연한 <플란다스의 개>는 흥행에서 실패했다. 그러나 변희봉이란 배우의 궤적에선 훌륭한 이정표가 됐다. 평범한 경비원의 모습에서 피 묻은 칼을 든 섬뜩한 인물이 됐다가, 보일러 김씨 이야기를 읊조리며 동네에 있을 법한 꽤 재밌는 할아버지가 됐다. 어떻게 보면 '잃어버린 개 찾기'라는 이야기 중심에서 한참 엇나간 듯한 이 장면, 관객들이 눈을 떼지 못하게 한 건 변희봉의 존재감 덕분이었다. 이를 계기로 <화산고> <국화꽃 향기> <선생 김봉두> 등으로 변희봉의 영화 출연이 이어졌고, '봉변' 조합은 2003년 <살인의 추억>으로 그 파트너십을 이어갔다.
 

봉변 조합의 마지막 만남〈옥자〉
봉변 조합의 마지막 만남〈옥자〉

 



유일한 슬픔의 얼굴 
 

〈괴물〉
〈괴물〉


변희봉의 명장면을 뽑으라면 다양한 답변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의 연기는 캐릭터를 매 순간 빛나게 하는 원천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단 한 장면을 뽑아야만 한다면, <괴물>의 그 장면이 아닐까 싶다. 여기서 왜 하필 그 장면인지 조금 설명을 덧붙이고 싶다. 봉준호 감독의 연출 특징은 복합성이다. 그는 일상적인 가운데서 이질감을 유발하거나 슬픈데 웃음이 나는 순간, 혹은 그 반대의 감성을 굉장히 잘 짚어낸다(오죽하면 그의 유머는 늘 '삑사리'라는 말로 대체되겠는가). 그렇기에 그의 영화 속 명장면 또한 대체로 하나의 감성보다 다각적인 감상을 유발하는 것이 많은데, 개인적으로 유일하게 하나의 감정으로 응축되는 장면이 이 장면이라 변희봉의 명장면으로 뽑을 만하다 싶다.

〈괴물〉
〈괴물〉


한강에 갑자기 나타난 괴물에게 현서(고아성)를 납치당한 박강두(송강호) 가족. 괴물을 잡고 현서를 찾기 위해 할아버지 박희봉(변희봉)은 자신이 가진 재산을 탈탈 턴다. 암거래로 산 트럭과 총을 가지고 한강을 향한 박강두 가족 앞에 괴물이 나타나고, 박희봉은 박강두와 총을 바꾸며 총알 수를 재차 확인한다. 하지만 강두가 말해준 것과 실제 희봉의 총은 총알 하나 차이가 있었고, 마지막 한 방이 불발되자 희봉은 체념한 채 가족들에게 도망가라는 손짓을 하며 괴물에게 죽음을 당한다.


이 시퀀스, 시퀀스 전체를 봐도, 변희봉의 그 짧은 순간만 봐도 참 아름답다. 이전부터 느긋하게 웃음 지으며 뭐든 잘 넘길 것 같은 할아버지 희봉이 괴물을 보자마자 반드시 잡아야 한다고 눈빛이 돌변하는 순간, 배우 변희봉의 그릇이 얼마나 방대한지 단번에 알 수 있다. 그러다가 딸 남주(배두나)를 보자마자 곧바로 가족을 아끼는 아빠의 얼굴로 돌아서고, 결국 총알이 바닥났음을 알고 난 직후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부침으로 얼룩진다. 이야기를 잘 쌓아올린 건 배우보다 제작진의 몫이지만 (황정민의 말마따나) 잘 차려진 밥상을 맛있게 먹는 건 배우의 몫이다. 변희봉이 손을 휘저으며 가족에게 마지막 작별을 건네는 순간은 30여 년 넘게 배우 경험을 착실하게 쌓은 변희봉, 그만이 보여주는 극도의 집중력이 있기에 완성된 장면이다. 봉준호 감독이 탄생시킨 명장면은 여럿이나, 하나의 강렬한 감정으로 기억되는 장면은 많지 않다. 슬픔, 그 하나의 감정으로만 기억되는 이 장면은 변희봉의 얼굴이 각인돼있다.
 


 

변희봉이란 하나의 이름, 수많은 얼굴


배우 변희봉의 궤적은 단순히 요약할 수 없는데, 워낙 전방위적으로 작품 활동을 이어왔기 때문이다. 보통 드라마나 영화나 한 분야에서 자리를 잡는다면 그 분야를 깊게 파고드는 경우가 많은데, 변희봉은 영화판에 뿌리를 내린 후에도 드라마계를 떠나지 않았다. 신작 영화를 내놓으면서도 일일드라마나 미니시리즈 등에서 그의 얼굴을 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살아생전 그에게 이런 칭호가 자주 붙지 않았는데, 사망 이후 그의 족적을 따라가보면 자연스럽게 '국민배우'라는 말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그만큼 변희봉은 연기력의 깊이만큼 출연작의 폭도 넓었기 때문이다.

 

〈더 게임〉
〈더 게임〉


동시에 그를 2000년대 한국영화계의 활발한 실험정신의 얼굴로도 볼 수 있다. 2008년 영화 <더 게임>은 그가 처음으로 포스터에 전면으로 선 주연작이다(이전에도 '주연'으로 명시한 영화는 있으나 포스터에까지 나온 작품은 <괴물> 정도가 유일하다). 신하균과 호흡을 맞춘 이 영화는 죽음이 가까워진 노인 강노식이 젊은 사내 민희도와 내기를 해 몸을 바꾼다는 설정이다. 바디 체인지는 대체로 코미디에서나 사용하는 다소 허무맹랑한 설정이고, 배우들에게도 '코미디'라는 안전망이 있어야 소화하기 쉬운 연기이다. 그렇지만 <더 게임>은 이 설정을 스릴러의 장치로 차용했고, 변희봉은 신하균과 합을 맞춰 강노식이자 민희도를 연기했다. 배우 본인에게도 도전이었겠지만, 한국영화계 또한 노인의 야심을 담은 스릴러라는 도전이었고, 그 파트너로 변희봉을 선택한 것이다. 영화는 여러 이유로 큰 호응을 얻지 못했지만, 활기차고 도전정신 있는 당시 한국영화계를 단적으로 보여주지 않았나 싶다.


그렇게 2010년대까지 열정적으로 활동하던 변희봉은 2019년 췌장암 판정을 받아 휴식기를 가졌다. 초기에 진단받은 덕분에 완치 판정을 받았지만, 암 중에서도 생존율이 낮아 독하기로 유명한 췌장암은 끝내 재발했고, 우리에게서 배우 변희봉을 데려갔다. 2023년 9월 18일, 변희봉의 별세 소식이 알려졌고 대한민국 문화계는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배우 인생 반세기, 그 어떤 배우보다 우리에게 가깝게 있었던 변희봉이 떠난 지 1년이 지났다. 그의 수많은 출연작, 그 속에 기록된 연기는 항상 생기가 있어 언제라도 배우 변희봉이 다시 돌아올 것 같단 착각을 하게 한다. 누구에게나 다정할 것만 같았던 인간 변희봉이 특유의 소탈하게 웃는 모습으로 당장이라도 돌아오지 않을까, 헛된 생각이 요즘 들어 자주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