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태와 동희의 고교 시절로 간다! 지난 5월 15일 개봉한 <내 손끝에 너의 온도가 닿을 때>는 지난해 화제의 BL 드라마 ‘비연담’ 즉 <비의도적 연애담>에서, 두 명의 메인 주인공 윤태준(차서원)과 지원영(공찬) 못지않게 큰 인기를 끌었던 고호태(원태민)와 김동희(도우)의 풋풋한 학창 시절을 담은 스핀오프 영화다. 티빙에서 독점 공개했고 현재 왓챠에서 볼 수 있는 <비의도적 연애담>은 글로벌 플랫폼 아이치이(iQIYI)와 일본 OTT 라쿠텐에서도 동시 방영되며 해외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으며, 라쿠텐 ‘한국 드라마 부문’에서 공개 당시 월간 1위를 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폭발적 반응에 힘입어 <비의도적 연애담>의 스핀오프가 만들어지게 된 것.


프리퀄이라고 할 수 있는 <내 손끝에 너의 온도가 닿을 때>의 이야기는 이렇다. 몇 년 전, 서울로 이사를 간 호태(원태민)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엄마와 함께 동희(도우)가 살고 있는 강릉으로 돌아온다. 오랜만에 재회한 두 사람은 한 지붕 아래에서 함께 지내게 된다. 어려서부터 형제처럼 자라왔기에 동희에게 호태는 친형제 같은 존재지만, 동시에 자신의 첫사랑이기도 한 호태를 보며 다시 설렌다. 학교에서 수영부 호태는 고백하며 다가오는 여학생들에게 늘 가방으로 얻어맞기 일쑤고, 동희는 미술실에서 미래를 꿈꾼다. 그런 가운데 호태가 자신에게 진지하게 다가올 때마다 “형이라고 불러”라며 선을 그어보려 하지만, 그 마음을 억누르기 쉽지 않다. 호태도 오랜만에 만난 동희에게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넘버쓰리픽쳐스가 드라마에 이어 영화 제작을 맡았고, 극본 역시 <비의도적 연애담>의 신지안 작가가 썼다. 연출은 바뀌어서 척수장애인 청년의 로맨스를 그린 단편 <당신이 내리는 밤>(2022)으로 한중국제단편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 전주국제단편영화제 감독상, 안산단원국제문화예술영상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양경희 감독이 맡았다. 앞서 레즈비언이 겪을 법한 현실적인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려낸 단편 <다섯 번째 계절>(2018)로도 주목받은 바 있다. 물론 최근의 양경희 감독은 네 번의 생을 모두 기억하고 살아낸 주인공과, 그와 연애해야만 생을 유지할 수 있는 신의 아이가 만나 서로에게 얽힌 저주를 풀기 위해 진짜 사랑을 찾아가는 로맨틱 코미디인 10부작 웹드라마 <밥만 잘 사주는 이상한 이사님>(2022), 소멸의 길을 걷고 있는 뱀파이어와 순혈의 피를 가진 인간이 만나 벌어지는 로맨스를 그린 8부작 웹드라마 <깨물고 싶은>(2022), 그리고 도시 남자와 시골 청년의 로맨스를 그린 8부작 웹드라마 <트랙터는 사랑을 싣고>(2023) 등을 통해 이제는 BL 장르 팬들의 유명 인사가 됐다.

<비의도적 연애담>의 팬이라면, 드라마 속 호태와 동희의 못다 한 이야기를 보여주는 스핀오프이자 프리퀄 격의 장편영화인 <내 손끝에 너의 온도가 닿을 때>가 반가울 수밖에 없다. 실제로 호태와 동희는 드라마에서 달항아리 공방의 사장이자 도예가인 윤태준(차서원)과 지원영(공찬) 커플 못지않게 엄청난 팬덤을 보여줬다. 무엇보다 <비의도적 연애담>에서 태준과 원영의 사랑이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계기를 마련해준 장본인이 바로 호태였다. 호태가 없었다면 사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비의도적 연애담> 6부에서 원영은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호태의 공부를 봐주고 있는데, ‘사장님’이기도 한 태준과의 관계를 고민하고 있는 원영은 공부 도중 느닷없이 호태에게 묻는다. “호태 씨는 여자친구도 사귀어보셨는데, 어떻게 동희 형을 좋아하는 걸 받아들이게 됐어요? 인정이라고 해야 하나? 착각일 수도 있잖아요?” 그러자 호태는 당황스럽고 불쾌한 표정으로 “받아들이다니? 무슨 개소리야!”라고 반문하고는 곧장 “좋아하는 건 마음이 하는 건데 인정이라느니 착각이라느니, 왜 자꾸 머리가 하는 걸 물어봐? 내가 단순해서 모르는 건가. 다들 막 그게 따로따로인가? 뭐 어쩌라고? 난 그냥 김동희가 좋다니까!”라고 말한다. 그런 다음 원영의 질문의 요지를 파악한 호태는 웃으면서 “너 그릇집 형 좋아하지? 아직 말도 못 꺼냈지? 그냥 고백해버려!”라고 말하고, 그 말에 용기를 얻은 원영이 실행에 옮기게 된다. 물론 태준 사장님을 거침없이 ‘그릇집 형’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호태의 중요한 매력 포인트.


호태와 동희의 팬에게는 <내 손끝에 너의 온도가 닿을 때>에서 프리퀄의 흔적을 찾는 것도 흥미롭다. <비의도적 연애담> 5부에서 호태가 동희에게 “나랑 한 달만 사귀자. 형, 동생 그런 거 말고 뽀뽀도 하고 자기도…” 라고 얘기를 꺼냈다가 동희에게 한 방 맞는 장면이 있다. 그런 다음 원영이 커피 배달을 가서 시장 아주머니들이 ‘둘리뼈해장국집 아들’ 호태에 대해 얘기 나누는 걸 듣게 된다. 다들 얼핏 보아 무서운 인상의 호태에 대해 다가가기 어렵다고 입을 모으는데, 심지어 한 아주머니는 “한번은 (호태 청년이) 커피 배달을 잘못 가져온 적 있는데, 겁나서 그 얘기를 꺼내지도 못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호태 청년이) 오토바이 타고 다니면서 엄마 속 많이 썩였고, 크게 사고가 난 적도 있대”라고도 덧붙인다. 바로 그 오토바이 사고가 바로 <내 손끝에 너의 온도가 닿을 때>와 연결되는 에피소드다. 고교 시절, 이루어질 것 같지 않은 사랑에 절망한 호태가 오토바이를 타고 텅 빈 거리를 질주했었다. 그런 다음 원영은 “너랑 사귀어봐야겠는데, 협조 좀 하지?”(호태), “호태야, 우리 이러지 말자”(동희) 라며 골목에서 싸우는 호태와 동희를 보면서 둘의 관계를 알게 된다. 앞서 묘사한 것처럼, 그렇게 이어진 6부에서 원영이 호태에게 진지하게 연애 상담을 하게 된 것.

<비의도적 연애담> 9부에서는 아예 고교 시절을 묘사하는 플래시백이 등장했다. 마치 운명적으로 <내 손끝에 너의 온도가 닿을 때>가 이후 만들어지게 될 것을 예감이라도 한 것처럼, 교복을 입은 동희가 등장한 것. 아버지의 폭력을 트라우마처럼 가지고 있는 동희가 멍이 든 채로 집 앞에 앉아 있고, 이모는 “난 네가 남자를 좋아하든 여자를 좋아하든 상관하지 않는다”고 했었다. 그렇게 <비의도적 연애담>의 네 인물 중 가장 밝아 보였던 동희의 과거는 예상과 달라 궁금증을 자아냈었다. <내 손끝에 너의 온도가 닿을 때>는 현재와 사뭇 달랐던 동희, 반면에 예나 지금이나 똑같았던 호태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내 손끝에 너의 온도가 닿을 때> 촬영지
삼척시 도계중학교, 동해시 묵호등대와 망상해수욕장
<비의도적 연애담>과 <내 손끝에 너의 온도가 닿을때>의 공간적 배경은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으로 설정돼 있지만, 실제 촬영은 삼척시와 동해시에서 이뤄졌다. 먼저 두 사람이 다니는 춘분고등학교로 등장한 곳은 바로 삼척시 도계중학교다. 울창한 뒷산이 교정을 따뜻하게 감싸 안은 느낌이 인상적인 학교다. 놀랍게도 이곳은 과거 최민식 주연으로 실화를 영화화했던 <꽃피는 봄이 오면>(2004)에서, 현우(최민식)가 부임해온 관악부가 있는 실제 도계중학교 촬영지다. 그리고 멀리 바다 풍경이 멋진, 호태와 동희가 사는 동네에서 야경으로는 동해시 묵호등대가 보인다. 한편, 두 주인공 뒤로 ‘상상 그 이상 망상’이라는 문구가 적힌 빨간 시계탑이 눈길을 끄는, 호태와 동희가 답답한 마음을 풀고자 수시로 거닐었던 곳은 바로 동해시 망상해수욕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