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우렌의 결혼>은 어딘가 엉성하다. ‘세련된 연출’, ‘화려한 CG’, ‘탄탄한 구성’ 등의 수식어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다우렌의 결혼>을 보며 미소 짓게 되는 건 이상하리만큼 순수한 꿈에 대한 믿음과 카자흐스탄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전달하겠다는 열정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다듬어지지 않아 더욱 빛나는 <다우렌의 결혼>이 오는 12일 관객을 맞이한다.
승주(이주승)는 입봉(특정 분야에서 데뷔하는 것을 뜻하는 은어)을 꿈꾸는 다큐멘터리 조연출이다. 입봉만 하면 엄청난 작품을 만들 것이라 큰 소리를 치지만 기회는 쉽사리 찾아오지 않는다. 어느 날 승주에게 솔깃한 제안이 들어온다. 카자흐스탄에 가서 다큐멘터리 <세계의 결혼식>을 위한 고려인의 결혼식 장면을 촬영해오면 입봉을 시켜주겠다는 것. 그렇게 승주는 촬영감독 ‘영태’(구성환)와 함께 카자흐스탄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승주와 영태는 <세계의 결혼식>의 연출을 맡을 고려인 감독 유라(박루슬란)를 만난다. ‘카자흐스탄은 내 나와바리’라며 큰소리치는 유라를 보며 승주는 묘한 불안함을 느낀다. 제작비를 흥청망청 쓰며 유흥을 즐기던 유라는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하고 설상가상으로 촬영 예정이었던 결혼식에 늦으며 승주와 영태는 곤경에 처한다. 한국에서는 어떡하든 고려인 결혼식을 촬영해오라는 말뿐. 결국 두 사람은 유라 감독의 소개로 게오르기 삼촌(조하석)을 만나 결혼식을 올릴 고려인을 찾아 나선다.
게오르기 집에 머물며 촬영 준비를 하는 승주와 영태. 그러나 다큐멘터리에 적합한 예비부부를 찾지 못하고 결국 게오르기는 가짜 결혼식을 올리자는 아이디어를 낸다. ‘진짜’를 추구하는 다큐멘터리의 본질에 어긋나는 이야기에 승주는 난색을 표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승주는 ‘다우렌’이라는 이름으로 고려인 행세를 하게 되고 어머니의 병간호를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 아디나(아디나 바잔)가 그의 짝이 되어 가짜 커플이 된다. 모두를 속이는 가짜 결혼식 준비를 하며 승주는 아디나의 강인해 보이는 외면에 감추어진 순수한 꿈을 발견한다.
<다우렌의 결혼>은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글로벌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작된 영화이다. 이 프로젝트는 해외(아시아) 로케이션 및 해당 국가의 인력을 활용해 문화 다양성의 가치를 증진하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 목표이다. 이에 연출을 맡은 임찬익 감독은 낯선 땅 카자흐스탄을 담기로 했다. 그는 현장 편집을 담당했던 <나의 결혼 원정기>(2005) 촬영 당시 우즈베키스탄을 방문해 4~5시간 동안 도로를 달리면서 끝없는 대륙의 아름다움을 감동했다고 한다. 그러나 여건상 우즈베키스탄 촬영이 어려웠고 옆 나라 카자흐스탄에서 영화를 촬영한 경험이 있는 고려인 영화감독 박루슬란을 만나며 촬영지를 카자흐스탄으로 결정했다.
임찬익 감독은 여기에 MBC 관찰 예능 ‘나 혼자 산다’에서 찐친케미로 활약을 펼치던 배우 이주승과 구성환을 캐스팅했다. 티격태격하면서도 찰떡 호흡을 보여주는 이들의 모습 그대로를 렌즈에 담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카자흐스탄을 방문한 임 감독은 초기 대본을 구현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들어 완전히 대본을 갈아엎는 파격적인 선택을 했다. 그것이 지금의 <다우렌의 결혼>이다.
이 같은 제작 과정에서 알 수 있듯 <다우렌의 결혼>은 로케이션, 배우 등 각 요소가 영화에 선행한다. 일반적으로 작품의 방향성에 따라 제한적으로 기능하곤 하는 공간과 인물의 특성은 이로 인해 더욱 생생하게 존재하게 되고, 영화는 현상이 앞서는 다큐멘터리의 성격을 지닌다. 결과적으로 <다우렌의 결혼>은 다큐멘터리를 소재로 하면서 그 자체로 다큐멘터리의 장단점을 모두 안게 되었다.
관객과 인물 사이 높은 밀착도를 형성한다는 점은 영화가 취한 가장 큰 이점이다. 영화는 승주와 영태가 고려인 결혼식을 촬영하기 위해 카자흐스탄에 도착한 순간부터 촬영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기까지의 시간을 순차적으로 담아내며 관객들도 그 여정에 함께 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여기에 카자흐스탄의 아름다운 경관을 배경으로 인물들이 모여 먹고 마시며, 웃는 모습이 끊임없이 담아내 사람 냄새나는 로드 무비의 모습을 띈다.
한편, <다우렌의 결혼>의 기본적인 틀이 승주와 영태의 촬영기임에도 그 과정을 촘촘히 담지 않는다는 것은 아쉬운 지점이다. 영화는 시간의 각 지점들이 축약되어 이미지로 성기게 이어져있다. 승주와 영태가 그토록 기다렸던 결혼식 순간마저 ‘간주 점프’하듯 훌쩍 뛰어넘어 버리며 이야기의 무게감을 흩어놓는다. 때문에 영화를 감상하고 나면 작품의 서사보다는 카자흐스탄의 풍경을 담은 아름다운 영상미가 더욱 기억에 남게 된다.
<다우렌의 결혼>은 승주와 영태가 여러 고난을 극복하고 다큐멘터리를 완성했음에도 그것을 충분히 다루지 않는다. 대신 ‘과업’보다는 ‘인물’을 조명하며 관객의 시선을 승주의 외면에서 내면으로, 과거에서 미래로 옮겨놓는다. 영화가 궁극적으로 담고자 하는 이야기에 인간의 꿈이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지점이다. 임찬익 감독은 <다우렌의 결혼>에 대해 “나의 지난 청춘을 생각하며 그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은 영화”라고 밝혔다. “청춘들이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임 감독 역시 서른여덟의 늦은 나이에 <체포왕>(2011)으로 데뷔를 했다. 순탄하게 영화계에 발을 들인 그는 2013년 드라마 <처용>으로 위기를 맞았다. 배우 문성근의 캐스팅 문제로 하차하게 된 것이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그 시절이 슬럼프였다고 밝히며 이후 10년의 세월이 그냥 지났다고 전했다. 마침내 기회를 얻은 임 감독은 초심으로 돌아가 학교 다닐 때 찍었던 잔잔한 멜로의 영화를 찍고자 다짐했고 그렇게 <다우렌의 결혼>이 탄생했다.
오늘날의 청춘을 대변하는 얼굴 승주 역을 맡은 배우 이주승은 그간 영화 <방황하는 칼날>(2014), 드라마 <해피니스>(2021) 등 주로 속내를 알 수 없는 미지의 캐릭터를 연기했다. 선악이 공존하는 얼굴로 끔찍한 짓을 저지르는 악역을 맡으며 그는 “어느 순간 아침에 눈 뜨기가 힘들어졌다. 불안증이 생겼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다우렌의 결혼>의 중심을 잡는다. 그도 그럴 것이 승주는 MBC 관찰 예능 ‘나 혼자 산다’에서 그가 보여준 자유로운 모습 그대로이다. 이주승은 예능을 통해 한 번, 영화 <다우렌의 결혼>을 통해 또 한 번 여전히 무궁무진한 그의 가능성을 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