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두까기' 데드풀의 귀환. 극장에서 상영 중인 <데드풀과 울버린>의 라이언 레이놀즈는 매편 자신마저 까는 모습으로 관객들에게 웃음을 자아낸다. 2편에서 스스로를 죽이더니, 이번에도 마스크가 아닌 본인 얼굴로 '나이스풀'를 연기해 극장에 웃음을 채웠다. 자기표현이 확실한 서구문화에선 이렇게 출연작에 자조적인 발언을 서슴치 않는 경우가 적잖다. 스스로의 흑역사를 개그로 승화한 라이언 레이놀즈급은 아니지만, 공식 석상에서 자신의 흑역사를 언급한 배우들을 소개한다.
“이런 영화를 잘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던 시절”
벤 애플렉

<데드풀과 울버린>로 서두를 열었으니, 이 배우의 발언부터 언급하려 한다. <데드풀과 울버린>에서 다양한 카메오들이 출연한 가운데, <데어데블> 벤 애플렉은 등장하지 않았다. 일말의 기대감을 자극했지만 아쉽게도 출연 제의가 없었거나 본인이 거절한 것으로 보인다. 그도 그럴 법한 게 벤 애플렉은 이전에도 <데어데블>에 대한 실망감을 밝힌 바 있다. 그는 “<데어데블>은 제대로 되지 않았다”라고 회상하며 영화가 마음에 들지 않았음을 표현했다. 그는 당시 할리우드가 “이런 영화(히어로 영화)를 잘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던 시절”이었다며 “‘붉은 가죽 옷을 입은 남자가,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나쁜 놈들을 잡는 걸로 돈이나 벌어야지’ 정도의 생각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슈퍼히어로 장르의 전체적인 퀄리티가 올라간 이후 슈퍼히어로 영화에 재도전했으나, 그 영화는 너무 힘 준 덕에 실패하고 말았다…

좀 더 예쁘게 울 순 없냐는 말에…
제시카 알바

제시카 알바도 <판타스틱 4>에 출연하던 시절을 진저리치도록 싫어한다. 벤 애플렉과 사례는 다르지만, 제시카 알바의 이야기를 들으면 비슷한 맥락을 읽을 수 있다. <판타스틱 4> 시리즈는 사실 제시카 알바가 아름답게 담겨 그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영화인데, 반대로 그는 그런 시선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 제시카 알바는 <판타스틱 4: 실버 서퍼의 위협>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을 촬영할 당시를 잊을 수 없다고 했다. 해당 장면을 촬영한 후 감독은 제시카 알바에게 ‘연기가 너무 현실적이고 고통스러워 보인다. 좀 더 예쁘게 울 순 없냐’ 식으로 말했고, 제시카 알바는 이 황당한 말에 연기를 그만둬야겠다는 생각까지 해 실제로 공백기를 가졌다.
“솔직히 이 영화 *나 싫다”
채닝 테이텀

상남자스러운 외모와 달리, 채닝 테이텀은 망가지길 두려워 하지 않는 배우다. 그는 <매직 마이크>로 자신의 어려웠던 시절을 대중에게 다시 꺼내들기도, <21 점프 스트리트> 시리즈 같이 기존의 이미지를 완전 전복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도 아픈 손가락이 있는데 바로 <지.아이.조 - 전쟁의 서막>이다. 그의 필모그래피 중 첫 억대 제작비의 대작인데, 그럼에도 그는 처음부터 이 영화를 하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각본이 별로였고, 어린 시절 매일 아침 <지.아이.조> 드라마를 챙겨본 팬이었기에 더욱 하고 싶지 않았지만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고. 특히 스스로 지.아이.조의 일원이 되고 싶은지조차 확신이 없었다고. 그래서인지 그가 더 인기를 얻은 후 출연한 2편에선 초반에만 등장하고 곧바로 시리즈에서 물러났다.
“애들한테 벌로 10번 보라고 한다”
아놀드 슈왈제네거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출연작 중 1985년 영화 <레드 소냐>를 글자 그대로 '극혐'한다. 어느 정도냐면 아예 “내 영화 중 최악”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할 정도. 얼마나 싫어했는지 그는 자신의 자녀들이 선 넘을 때 '<레드 소냐> 10번 보기'로 벌을 줬단다. 덕분에 그는 자녀들과 한 번도 심각한 트러블이 없었다며 자조적인 유머로 <레드 소냐>를 기억했다.
“태양계 최악의 영화 중 하나”
실베스터 스탤론

한때 아놀드 슈왈제네거와 액션계를 양분한 '록키' 실베스터 스탤론이 뽑는 최악의 영화는? 늘 묻어두려고 하는, 데뷔 직전 출연한 에로영화일까? 아니다. 그가 '록키'와 '람보'로 할리우드의 중심에 선 이후 촬영한 영화가 흑역사다. 1992년 영화 <엄마는 해결사>라는 코미디영화를 두고 실베스터 스탤론은 "우리가 아직 못 본 외계의 영화를 포함해, 태양계 최악의 영화 중 하나일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스탤론은 이 영화에 관심이 없다가 당시 비슷한 포지션이었던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출연 희망한다는 소문을 듣고 영화 출연을 결정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아놀드는 실베스터 스탤론이 이 영화에 출연하게끔 '관심 있는 척' 한 것이었다고. 이 영화가 어느 정도로 엉망진창이었는지 엿볼 수 있는 일화가 하나 더 있는데, 에스텔리 게티는 영화에 총이 나오는 것 때문에 출연을 꺼려했는데 총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제작진의 약속에 출연을 결정했다. 그리고 보시다시피 포스터에서부터 총이 나온다.

친구 아델의 말 들을걸
제니퍼 로렌스

제니퍼 로렌스는 친구의 충고를 듣지 않을 걸 후회한다. 2016년 영화 <패신저스>에 출연 이후, 그는 배우 활동를 돌아보고 숙고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만큼 <패신저스>는 그의 성에 차지 않았고, 대중 반응도 썩 좋지 않았다. 제니퍼 로렌스는 훗날 가수 아델이 <패신저스> 출연을 말렸다고 밝혔다. 아델은 “우주 영화들은 꼭 새로운 뱀파이어 영화 같다”며 출연을 말렸다고. <패신저스>는 본전은 뽑는 데 성공했지만, 제니퍼 로렌스는 이후 자신의 존재만으로 대중이 즐거워하지 않는 걸 체감하고 배우로서의 항로를 탐색했다. 당시까진 <헝거게임>의 성공 등으로 1년에 두 편 이상 출연하는 다작 배우였는데, 이후 다작 대신 제대로 연기할 수 있는 영화를 고심하는 쪽으로 활동 중이다.
내가 왜 출연한다고 했지…
오스카 아이삭

<엑스맨: 아포칼립스>에서 오스카 아이삭이 겪은 고생은 팬이라면 다 알 것이다. 아포칼립스 역을 수락할 때까지만 해도 <엑스맨>에 출연하는 많은 동료들을 만날 수 있는 생각에 신났던 오스카 아이삭은 촬영을 거듭할수록 “내가 왜 출연한다고 했지”라며 후회했단다. 아포칼립스를 연기하기 위해 분장과 착의에 시간이 많이 든 건 기본이고, 심지어 분장을 지우고 의상을 벗을 때도 몇 시간이 걸렸다고. 특히 의상이 문제였는데, 무게만 18kg여서 무거운 데다 움직일 때마다 소음이 나서 대사를 다 다시 녹음해야 했다. 플라스틱이라서 통풍이 안되니 별도의 냉방 장치도 달았고, 그러다보니 고개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어 그가 바라던 '동료들과의 행복한 시간' 같은 건 거의 없었다고 한다. 휴식뿐만 아니라 촬영 중에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다 보니 연기를 하기에도 무척 까다로웠다며 후회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무도 이런 얘기를 하지 않더라
비올라 데이비스

마지막은 다소 특이한 케이스로 마무리하겠다. 비올라 데이비스는 2011년 <헬프>에 출연을 후회한다고 한다. 아니, 왜? 그는 이 영화에서 에이블린 클라크 역으로 명연을 펼치며 미국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도 올라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었다. 그럼에도 그는 이 영화가 결국 본인의 의도와 달랐다며 후회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1963년에 백인들을 위해서 일하면서 아이들을 양육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영화를 본)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는지를 알고 싶"어서 영화에 출연했으나 “영화 관련해서 이런 것을 하나도 듣지 못했다”며 씁쓸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