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아직 우리가 보지 못한 수많은 영화가 있다. ‘오늘은 무슨 영화를 볼까’라는 행복한 고민에 빠진 이들을 위해 쓴다. ‘씨네플레이’는 ‘씨플 재개봉관’이라는 이름으로 재개봉하면 당장 보러 갈 영화, 실제로 재개봉하는 영화들을 소개해왔다. 이번에 만나볼 영화는 미셸 공드리 감독의 <수면의 과학>(1월 11일 재개봉)이다.

수면의 과학
감독 미셸 공드리 출연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샬롯 갱스부르, 알랭 샤바, 미우 미우, 엠마 드 칸니스 개봉 2006년 12월 21일 재개봉 2018년 1월 11일 상영시간 106분 등급 15세 관람가

수면의 과학

감독 미셸 공드리

출연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샤를로뜨 갱스부르

개봉 2006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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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스럽지만 사랑할 수 없다. <수면의 과학>은 그런 영화다. 동의하지 않는다고? 그럴 수 있다. 누군가에게 이 영화는 또 하나의 ‘인생영화’일 가능성이 있다. 다만 누군가에게 <수면의 과학>은 미셸 공드리 감독의 끊임 없는 상상력은 사랑스럽지만 <이터널 선샤인> 같은 정서를 발견하지 못해 아쉬움이 많은 영화다.

<이터널 선샤인>! <수면의 과학>이 특히 이목을 끌었던 이유도 저 영화에서 비롯됐다. 개봉 포스터에도 재개봉 포스터에도 ‘<이터널 선샤인>의 미셸 공드리 감독 작품’이라는 문구가 보인다. <이터널 선샤인>은 재개봉 영화 가운데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작품이기도 하다. 개봉 당시 약 16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으나 재개봉 때는 이보다 두 배에 가까운 관객이 극장을 찾았다. 여기서 한 가지. 알아야 할 점이 있다. <수면의 과학> 이전 미셸 공드리 감독의 작품 <휴먼 네이처>와 <이터널 선샤인>에는 각본가 찰리 카우프만이 있었다. <수면의 과학>은 온전히 미셸 공드리의 세계를 담고 있다.

판타스틱한 공드리 월드
‘공드리 월드’는 낯설고 환상적인 세계다. 미셸 공드리 감독은 자신이 무의식을 탐구하는 초현실주의자라는 걸 영화를 통해 공공연히 보여준다. 그의 또다른 자아는 멕시코 출신의 배우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이 연기했다. 멕시코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스테판(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은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시자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온다. 창의적인 일을 하고 싶어하고 발명가를 꿈꾸는 그는 어머니의 권유로 지루하기 짝이 없는 달력 회사에 취직한다. 어머니(미우 미우)의 말에 따르면 스테판은 “여섯 살 때부터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했다.”

꿈을 만드는 스튜디오에서 영화가 시작된다. 그곳에서 ‘스테판 TV’라는 쇼가 만들어진다. 물론 호스트는 스테판이다. 스테판은 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요리처럼 설명한다. 큰 솥에 온갖 기억과 음악 등을 집어넣으면 꿈이 시작된다. 꿈과 현실이 오가는 <수면의 과학>은 다소 유치해보이기도 한 수공예 소품으로 가득하다. 키치적인 상상력이라고 표현해도 좋겠다. 펠트 천으로 만든 인형, 두꺼운 박스 종이로 만든 팝업 동화책 느낌의 배경, 방 안에 떠 있는 솜으로 만든 구름, 1초 타임머신과 같은 장난감이 등장한다.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기법도 보인다. 수도꼭지를 틀면 투명한 셀로판지로 만든 물이 흘러 나오기도 한다. 이 모든 건 모두 CGI가 아닌 사람이 일일이 손으로 만든 것들이다.

이런 영화적 장치와 상상력은 분명 유쾌하고 사랑스럽다. 여기에 음악도 적절하게 사용했고 편집도 자유롭고 대범하다. 비록 감독 자신의 연출했던 비욕, 케미컬 브러더스, 푸 파이터스, 벡 등 유명 아티스트의 뮤직비디오에서 봤던 이미지이긴 하지만 크게 문제가 될 건 없어 보인다. 미셸 공드리 감독의 상상력과 연출 기법은 칭찬 받아 마땅하다. 그는 <수면의 과학>에 대해 “왜라고 질문하지 않으면서 나의 아이디어, 이미지, 컨셉들을 표현하고 싶었다. 제한받지 않고 내 머릿속을 탐험해보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다.

소년의 사랑은 아련하지 않다
문제는 상상이 아닌 현실에 있다. 스테판은 옆집에 이사온 스테파니(샬롯 갱스부르)를 사랑하게 된다. 그녀의 마음을 얻기는 쉽지 않다. <수면의 과학>은 <이터널 선샤인>의 성공 와중에 여자친구에게 버림받았다는 감독의 경험을 반추한 이야기라고 전한다.
 
미셸 공드리 감독은 아니 스테판은 어째서 사랑에 실패했을까. 어째서 이름도 비슷한 스테판과 스테파니는 아름다운 연인이 되지 못할까. 그건 아마도 피터팬 증후군이라고 의심되는 스테판에게 책임을 돌려야 할 것 같다. 스테판은 여전히 아이용 침대에서 알록달록한 아이용 이불을 덮고 잠에 든다. 그 침대에서 꾸는 꿈은 결코 어른의 꿈이 아닐 것이다.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보다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게 스테판의 사랑에 더 큰 결함일지도 모르겠다. 스테판이 자신의 감정에 솔직할수록 관계는 멀어지기만 한다.
 
다시 찰리 카우프만을 소환해야 할 때가 됐다. 왜 많은 관객들은 <이터널 선샤인>을 기억하고 <수면의 과학>은 <이터널 선샤인>의 감독 영화로 기억하는가. <이터널 선샤인>과 <수면의 과학>은 어떻게 다른가. <이터널 선샤인>은 현실의 기반에 두고 무의식이 개입했고 <수면의 과학>은 무의식에 기반하고 현실에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사랑은 현실인가, 무의식인가. 이 질문에 정답은 없다. 다만 ‘사랑은 어른의 감정’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찰리 카우프만이 창조한 <이터널 선샤인>의 조엘(짐 캐리)은 어른이고 “나는 언제나 열두살이었다”라고 말하는 미셸 공드리가 창조한 <수면의 과학> 속 스테판은 여전히 소년이다. 미셸 공드리의 무의식은 잘못한 게 없지만 그가 그린 사랑에는 공감하기 힘든 이유가 여기 있다. <이터널 선샤인>의 현실 속 어른들의 사랑은 아련하고 쉽게 설명하지 못하는 정서를 만들어냈다. 반면 <수면의 과학>의 소년이 겪는 사랑의 아픔은 무의식이 만들어낸 색다른 이미지의 여운만 남았다. 그 여운은 사랑스럽지만 지독하게 사랑할 수 없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신두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