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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정지혜의 새로운 비평가담, [플로모션]: 배우 옥자연과 나눈 ‘몸-씀’에 대하여

씨네플레이

좋은 영화에는 해석의 충동에서 언제나 우리를 완전히 해방시키는 직접성이 있다.

(...) 해석학 대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술의 성애학이다.

수전 손택 「해석에 반대한다」 (이후, 2002)

정말 좋은 영화는 우리를 해석에서 해방한다. 해석할 필요를 느끼지 못할 만큼, 온 몸으로 껴안는 영화를 만났을 때의 감동만큼 순수한 것은 없다고 느껴진다. 좋은 영화는 그 자체로 완전하고, 관객이 그 순간에 온전히 머무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해석이라는 것이 영화에 불필요한 것은 아니다. 각기 다른 이들의 해석의 다양성이야말로 영화와 사람들 사이를 잇는 중요한 연결 고리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화에서의 해석은 영화 비평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가끔 영화 비평이란 것은 우리에게 오해와 낯섦이라는 이름이 되기도 한다. 나아가 어디에선가는 영화 비평의 필요와 쓸모에 대해서까지 말하고 있을 것이다. 영화 비평의 위치와 효용은 점차 대중과 멀어지고 있다는 투로 말이다.

하지만 영화 비평은 수많은 영화 속에서 뒤쳐지거나 가려질 수밖에 없었던 작품들의 존재 가치를 발견해 주는 역할을 하고, 새로운 해석으로 영화에게 숨겨졌던 가치를 부여해 주는 등 여전히 바쁘게 지낸다. 가깝지 않아 잘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우리가 흔히 '나만 알고 싶은 숨겨진 명작'같은 리스트를 찾아다니며 영화를 감상하는 일이, 사실은 '비평'이라는 오명을 쓴 친구가 해오던 일이었던 것이다. 즉, 그러니까 우리도 이미 ‘영화 비평에 가담’하고 있다.

 

이러한 영화 비평의 임무를 저변에서 묵묵히 해온 영화평론가 정지혜의 기획 프로젝트, 플로모션(flowmotion)이 8월 17일 동교동의 한 북카페에서 열렸다.

대개 한 편의 영화로 출발해 영화와 현실의 관계맺기로 이어지는 것이 일반적인 영화 비평의 접근방식이라면, 플로모션은 비평(특히 쓰기)하는 정지혜를 가운데에 두고 비평 주제와 몇 편의 영화를 연결하는 과정을 거치는 새로운 방식이다. 그는 ‘그간 비평 활동을 하면서 스스로 고민이 됐던 지점들, 더 독립적이면서도 주체적으로 영화에 대한 글을 쓰고 말할 수 있는 방법을 고심해 왔었는데, 플로모션을 통해 자리를 모색하고, 현실화하는 첫 시간을 갖게 되었다’고 밝혔다.

영화평론가 정지혜 (사진 제공 = 플로모션, 모쿠슈라)
영화평론가 정지혜 (사진 제공 = 플로모션, 모쿠슈라)

 

영화평론가 정지혜는 씨네21 기자를 거쳐 서울독립영화제,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했고, 부산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등에서 한국단편경쟁 예심위원으로도 활동했다. 꾸준하게 극장, 미디어센터, 영화제로 이어지는 영화 비평 활동을 하고 있는 그에게 플로모션은 첫 비평 워크숍이다. 또한 협력으로 영화사 모쿠슈라의 장건재 감독, 김우리, 윤희영 프로듀서가 함께 참여해 첫 플로모션의 자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힘을 보탰다.

플로모션의 에피소드 01은 ‘흐르다: 영화-몸-물의 그물망’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1부는 영화평론가 정지혜의 강연으로, 2부는 옥자연 배우와의 대담으로 이어졌다. 영화-보기, 영화-읽기, 영화-쓰기에서 나아가 ‘영화-감각하기 ’로 이어지는 그의 영화 비평 과정은 흥미로운 접근으로 시작된다.

1부에선 자신의 ‘몸’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영화 비평의 첫 시작이라고 운을 뗀 뒤, ‘어쩌면 비평은 바로 ‘몸의 시간’이다. 몸을 쓰고, 활용하는 모든 시간까지 포함’된다고 설명한다. 그는 “쓰기의 몸짓은 늘 해방의 몸짓이었다.”는 실비 제르맹의 「페르소나주」 (1984BOOKS, 2022)의 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나를 다른 세계로 데려다주고 내 안의 욕구를 풀어내줄 수 있는 ‘몸짓으로서의 글쓰기’라는 것에 대해 많은 시간 생각하고, 실천으로 옮겨보고자 했다’는 말로 쓰기와 몸을 연결한다. 이어 ‘무언가를 쓸 때 몸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를 면밀하게 생각해 본다면 그것이 쓰기 활동에 새로운 감각’으로 영향을 줄 것이라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뤼미에르 형제 [항구를 떠나는 배], 마야 데렌 [뭍에서], 린 램지 [스위머] 순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뤼미에르 형제 [항구를 떠나는 배], 마야 데렌 [뭍에서], 린 램지 [스위머]  순

또한 ‘물’과 영화를 연결하는 시도에서는, 단순히 ‘물이 나오는 영화를 좋아한다’는 영화평론가 정지혜의 개인적인 취향에서 출발한다. ‘어떤 영화는 의식적으로 또 무의식적으로 물과 같은 상태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며 ‘영화의 흐름, 즉 영화적 운동성 자체가 자신의 몸에 물의 진동으로 다가오는 듯한’ 영화에 대해 설명한다. 그리고는 뤼미에르 형제의 <항구를 떠나는 배>, 마야 데렌의 <뭍에서>, 린 램지의 <스위머> 등의 영화를 예시로 들며, 영화 속 물의 상태, 움직임과 율동성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어나갔다. 마지막으로 그는 ‘결국 영화 비평의 역할이라는 것은 다양한 영화를 보고, 작품의 가치를 발견해 주는 것이다’라는 말과 함께 비평가로서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를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배우 옥자연, 영화평론가 정지혜 (사진 제공 = 플로모션, 모쿠슈라)
배우 옥자연, 영화평론가 정지혜 (사진 제공 = 플로모션, 모쿠슈라)

이어지는 2부에선 옥자연 배우와 함께 ‘배우의 몸-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옥자연 배우와는 영화 <사랑의 고고학>을 통해 가까워진 ‘영화 동료’라 칭하며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여기서 정지혜 영화평론가와 옥자연 배우가 나눈 몸-씀에 대한 대담을 풀어서 소개한다.

 

정지혜 배우는 연기하는 직업, 누구보다 몸을 많이 쓰는 직업이잖아요. 배우는 연기, 즉 감정을 쓰는 몸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에요. 제가 말하고자 했던 주제의 어떤 연장선에서 같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고 옥자연 배우님을 초대했습니다.

옥자연 이번에도 플로모션에 제안을 주셨을 때, 좋아하는 영화 이야기하면 되나? 하고 흔쾌히 수락했는데요. 배우의 몸-씀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다고 주제를 주셨을 때 조금 당황했지만, 저에게도 좋은 시간이 될 거라 생각하고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연극영화과를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이론적인 부분이나 이런 게 많이 부족한 편인데, 그동안 배우 생활을 하면서 경험한 것들을 조금 다듬어서 얘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고요. 연기 매커니즘이나 배우의 모습에 대해 재미있게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정지혜 제가 이전에 옥자연 배우님과 만났을 때, 몸을 잘 쓰는 배우가 누구라고 생각하는지 물어봤었어요.

옥자연 그 질문을 듣고 생각해보니 바로 떠오르는 배우가 없더라고요. 왜 그럴까 생각해봤더니, 연기를 잘하는 사람 중에 몸을 못 쓰는 사람이 없어요. 우리가 ‘저 사람 연기 정말 잘한다’라고 했을 때, ‘대사는 잘하는데 몸이 조금 어색해’ 이런 사람이 없더라고요. 그 이유는 몸과 대사, 감정 등 모든 것이 다 하나로 이어져 있기 때문이라는 것은 다들 잘 알고 계실 거고요. 연기를 정의한다고 했을 때 가장 쉬운 방법으로는 개인의 심리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죠. 그런데 이 표현이라는 건 결국은 신체적 표현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연기 = 몸 연기’라고 저는 생각해요. 여기에서 조금 더 부연하고 싶은 것은, 사실 이 정의는 사실주의 연기에 한정된다는 것인데요. 물론 사실주의 연기라는 개념이 정립되기 전에는 심리 표현이 중심이 아닌 연기도 많이 있었어요. 예를 들어 팬토마임이나 곡예처럼 장인에 가까운 종합 예술가들의 기술과 기예도 연기니까요. 제가 조금 더 관심을 두고 있는 연기는 텍스트나 캐릭터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닌 인간의 정동을 더 포괄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인데요. 요즘에는 영화보다는 연극에서 더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배우 옥자연, 영화평론가 정지혜 (사진 제공 = 플로모션, 모쿠슈라)
배우 옥자연, 영화평론가 정지혜 (사진 제공 = 플로모션, 모쿠슈라)

옥자연 시나리오와 캐릭터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준비가 된다면, 신체적 표현이 완벽하게 될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절대 아니라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우리가 머리로 알 것 같고, 마음으로 알 것 같은 것들도 신체적 표현으로 드러나기가 쉽지 않아요. 그래서 배우들이 끊임없이 훈련을 하는 것일 테고요. 예를 들어서 저는 분노의 표현이 정말 어려워요. 왜냐하면 저희 집안 자체가 화를 잘 표출하지 않는 집이에요. 그런 것들을 물려받다 보니 화를 삭히는 것이 익숙하거든요. 그렇지만 저도 가끔 정말 화가 날 때도 있죠. 그럴 때 화를 내면 저 스스로 화를 내는 내 모습이 어색하다는 걸 바로 인지하게 돼요. 그런 면에서 배우는 감정을 꺼내는 신체적 훈련이 정말 많이 필요하다고 느껴요.

작품에서의 경험을 예로 들어 이야기하면, <LTNS>라는 작품에서 저는 사무엘(안재홍)의 옆집 이웃인 민수 역을 맡았는데요, 민수 역은 다른 작품에서의 옥자연이라는 배우와 다른 인상을 받으셨을 수도 있을 거예요. 왜냐하면 제가 민수라는 인물을 신체적으로 바꿔 표현하려는 노력을 많이 했기 때문이에요. 배우들은 이것을 ‘중심 옮기기’라는 말로 설명하기도 하는데, 이걸 무게 중심이라고 할 때도 있어요. 신체적 중심에 심리적인 중심까지 포함해서요. <LTNS>의 민수라는 역할에서는 중심을 눈에 뒀어요. 왜냐하면 이 사람은 바깥에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거든요. ‘안녕하세요’ 같은 짧은 대사를 할 때도 눈과 몸의 모양을 바꿈으로써 그 인물의 성격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해서요.

배우 옥자연
배우 옥자연

정지혜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요. 배우의 어떤 연기 방법에 대해서 얘기해 주셨는데, 배우 옥자연은 지금 어느 상태이신 것 같나요? 연기의 방법론에 대한 것들에 어떤 변화의 과정이 많이 있었을 것 같아요.

옥자연 저는 큰 변화들이 몇 번 있었어요. 처음에는 연극으로 시작했고요. 5년 정도 연극을 해오며 황홀경 같은 상태를 무대에서 몇 번 경험하면서 연기가 너무 좋다고 생각했어요. 그 후에 매체로 넘어오게 되면서 연기의 어려움을 많이 겪었어요. 연극과 다르게 영화는 매 컷마다 끊기고 내가 충분히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 전 컷의 자의식이 계속 남아 있는 상태로 연기를 이어서 해야 하는 부분들이 힘들기도 했고요. 또 상대 배우와 마주 보고 연기해야 하는 장면이지만, 카메라에 보이는 시점 때문에 카메라 옆에 점을 찍어두고 그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연기를 해야 하는 컷도 있거든요. 또 신체적 표현은 잊어버리고 지나치게 심리적 표현에 매달리며 연기하기도 했어요. 그런 과정을 많이 겪었는데, 지금은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신체적 접근도 더 적용해보며 그런 부분들을 많이 노력하고 있는 상태인 것 같아요.

정지혜 이전에 저희가 나눴던 이야기 중에 ‘나를 떠남이자 나를 드러내는 것이 용기’라고 생각한다고 이야기 해 주셨어요. 앞서 제가 이야기했던 영화의 상태, 몸의 상태, 정동의 상태라는 것이 저는 옥자연 배우가 이야기한 것과 이어진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를 떠나 있지만, 나를 드러내는 것. 그리고 내가 여기 존재한다고 인지하지만 또 내가 여기 없다고 느끼는 감각의 순간. 사실 그것은 언어화할 수 없는 어떤 순간이고 애매하고, 어중간하고, 모호한 어떤 상태라고 느껴지는데요. 이것이 옥자연 배우가 연기할 때 드러나는 몰아 상태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옥자연 제가 연기에 이렇게 처음 매력을 느꼈던 것은 나를 떠남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다른 인물이 되는 것은, 현실에서 나를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더라고요. 나의 힘든 것들을 다 잊어버리고, 연기에 몰입해 집중하는 것들이요. 하지만 ‘나를 떠남’ 그것만 가지고서는 연기가 잘 되지 않아요. 그것에는 한계가 있어요. 나를 잘 들여다보고 다른 인물이 되더라도, 나로부터 출발하고 또 나로 다시 돌아가고 하는 이러한 과정들이 계속 필요하더라고요. 사실 저는 나 스스로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제가 이렇게 누군가 앞에 나서는 것도 정말 싫어했고, 옥자연으로 누군가 앞에 서는 게 너무 싫었어요. 그래서 연기를 하면 캐릭터 뒤에, 텍스트 뒤에 숨을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어요. 그런데 결국 내 삶을 꺼내지 않으면 안 되는 게 연기인 것 같더라고요. 연기뿐만 아니라 어떤 일이든 열심히 하고 재미있게 하면 그 사람의 성격이 변하잖아요. 요즘은 조금씩 내가 변하고 있는 걸 느끼고 있어요.

 

앞으로 플로모션은 영화 강연, 비평 워크숍, 집담회, 상영회를 아우르는 자리가 되며 정기적으로 개최될 예정이다. 비평을 넘어 영화에 대한 깊은 이해와 새로운 관점을 찾고 있는 이들에게, 매 에피소드마다 달라지는 주제와 영화평론가 정지혜만의 관점을 기대해봐도 좋을 것이다.

 

씨네플레이 양시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