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상식에 ‘열일상’이 만들어진다면, 올해의 수상자는 단연 현봉식이 아닐까. 현재 극장에 걸려있는 영화 <빅토리> <파일럿>, 그리고 최근 공개된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노 웨이 아웃: 더 룰렛>,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스위트홈 3>, 임영웅의 단편영화 <인 옥토버>까지. 장르도, 감독도, 출연진도 모두 다른 이 작품들의 교집합은 배우 현봉식이다. 2014년 데뷔해 현재 11년 차 배우인 그는 이제 막 전성기를 지나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스크린은 물론이고 브라운관, 뮤직비디오, 광고까지 점령했으니 말이다.
노안이 곧 경쟁력

1984년 10월 20일생, 만으로 39세인 현봉식은 제 나이에 비해 노안인 외모를 지녔다. 그래서인지, 현봉식은 본인 나이보다 20살쯤 많은 배역도 거뜬히 소화한다. 최근 그가 출연한 작품만 봐도 그렇다. 영화 <빅토리>에서 부녀지간으로 등장하는 혜리(1994년생)와는 불과 10살 차. 더불어 그는 <파일럿> 속 한국항공의 상무 역으로 특별출연했는데, 그가 맡은 배역의 구체적인 나이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직책을 고려했을 때 중년 정도로 예상된다. 그러나 사실 그는 조정석(1980년생)보다 4살 어리다. 현봉식은 자신의 얼굴 덕분에, 본인 또래 배우들이 할 수 없는 역할까지도 맡을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미지와 찰떡인 이름, 현봉식은 사실 예명

‘현봉식’이라는 이름은 유난히도 사람 냄새나는 연기를 찰떡같이 해내는 그에게 더없이 어울리는 이름이다. 사실, ‘현봉식’이라는 이름은 예명이다. 그의 본명은 현재영인데, 그의 어린 시절 이름은 ‘현보람’이었다고 한다. 유치원 때 또래에게 놀림을 당해, 작명소에서 200만 원을 주고 ‘현재영’이라는 이름을 받아왔다고 한다.
‘현봉식’이라는 예명은 그가 존경하는 아버지와 삼촌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와서 지었다. 지금은 두 분 다 돌아가셨지만, 현봉식은 그의 아버지처럼 카리스마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 또 그의 삼촌처럼 잡기에 능했으면 하는 바람에 두 분의 이름을 따서 활동하고 있다.
상황극에서 재미를 느껴 연기를 시작하기까지

현봉식은 고등학교 때까지 유도선수였다. 그 와중, 부상 등으로 인해 운동을 그만뒀다. 그 후 현봉식은 PC방 아르바이트, 주유소 직원, 택배 기사, 화물차 운전, 유도사범 등 돈 벌 수 있는 일들을 가리지 않고 하다, 설치 기사 일을 하게 된다. 설치 기사 일을 하기 위해 간 연수 도중, 고객에게 대처하는 법을 익히기 위한 상황극 프로그램을 하며 현봉식은 연기의 매력을 느낀다. 현봉식은 이때 즉흥에서 진상 고객 연기를 했는데, 동료들의 반응이 좋았고, 스스로도 재미를 느꼈다고 한다.
2013년, 현봉식은 부산에서 상경해 이리저리 보조 출연 자리를 알아보러 다녔는데, 당시 그는 ‘얼굴이 튄다’ ‘주인공 뒤에 서 있으면 시선이 뺏긴다’라며 단역 출연도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그렇게 현봉식은 아침에는 헬스장에서 알바를 하고, 밤에는 치킨 집에서 닭을 튀기고, 낮에는 오디션을 보고 연기 연습을 했다.
그러다, OCN 드라마 <뱀파이어 검사>에서 조폭 역할의 엑스트라로 짧게 출연하게 됐는데, 그 이후 현봉식은 ‘(이쪽 역할로는) 각질이 있고, 버짐이 핀 얼굴을 좋아하는구나. 그래, 너희가 이런 걸 원한다면 이런 쪽으로 파주겠다’라고 생각하며 본인의 노선을 정한다. 그래서 그 이후, 오디션 때는 자유연기로 깡패 연기를 준비했다고. 현봉식은 영화 관련 구인구직 사이트 ‘필름메이커스’에서 연기 스터디를 구하고, 아기 사진관을 운영하는 친구에게 부탁해 사진을 찍고 프로필을 돌리던 와중, 영화 <해적: 바다로 간 산적>(2014)의 여월파 쌍수 역 오디션에 붙었다.
그렇게 2014년부터 지금까지, 현봉식은 크고 작은 배역을 가리지 않고 출연하며 대세로 등극했다. 현봉식은 지금은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아니고 연기만 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한 바 있다.
술을 한 방울도 못 먹는 그

조직폭력배 두목, 마약상, 악질 군인, 형사 등 유난히도 강한 역할을 자주 맡아서일까. 현봉식 본체를 ‘주당’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현봉식은 술을 단 한 방울도 먹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26살 이후로 술을 아예 마신 적이 없다. 술자리에서는 콜라에 사이다를 9 대 1로 섞어, 맥주의 색깔을 만들어서 분위기에 취한다고. 술을 안 먹는 이유는 몸이 안 받아서라고 한다.
특기는 네일아트

현봉식의 프로필 특기 란에는 다소 이질적인 활동이 쓰여 있는데, 바로 ‘네일아트’다. 현봉식이 네일아트를 시작하게 된 건, 고등학교 때다. 고등학교 때 현봉식은 유도를 그만둔 후, 특별 활동으로 네일아트 반에 들었다. 이걸 배워야 여자친구를 사귈 수 있다는 친구의 말에 네일아트 반에 가입했다고 한다.
모든 캐릭터를 사투리로 연기하는 배우

현봉식 하면 단박에 떠오르는 건, 분장으로도 만들 수 없는 매력적인 덧니, 그리고 경상도 사투리가 아닐까. 현봉식이 연기한 모든 인물들은 사투리를 구사한다(물론, <경성크리처>에서는 일본인 옹성병원장 ‘이치로’ 역을 맡아 일본어를 구사했다).
그가 자신의 노안 외모를 개성으로 살린 것처럼, 사투리 역시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하는’ 그의 ‘현봉식적 사고’의 일환이다. 그는 처음에는 표준어로 오디션을 봤으나 다 떨어졌고, 어설픈 표준어를 쓸 바엔 자신만의 개성을 살리고자 했다. 그는 오디션장에서도 제작진에게 ‘저는 서울말이 안 됩니다. 하지만 사투리로는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다고. 그는 대본의 대사를 자신의 입에 맞는 사투리로 고쳐서 연기한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현봉식이 맡은 인물들이 모두 조폭이나 형사 등 험상궂은 인물에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미디어에서 그려지는 전문직은 보통 표준어를 구사하기 일쑤지만, 현봉식은 보란 듯이 그 편견을 깨부순다. 이를테면 김혜수와 함께 출연한 <하이에나>에서는 뛰어난 실력을 가진 변호사 역할을 맡아 그만의 개성을 부여하고 ‘사람 냄새’나는 인물을 만들어갔다.
공개 앞둔 차기작만 약 N 편

현봉식의 ‘열일’은 좀처럼 끝나지 않을 전망이다. 극장 개봉을 앞둔 영화나 공개를 앞둔 시리즈들이 줄을 잇고 있기 때문이다. 오는 9월 13일 개봉하는 영화 <베테랑2>, 10월 10일 공개되는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좋거나 나쁜 동재>, 이번 부산 국제영화제에서 첫 공개되는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강남 비-사이드> 에서도 현봉식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D.P.> <살인자ㅇ난감>에 이어 손석구 형(손석구는 현봉식보다 1살 많다)과 다시 한번 호흡을 맞춘 작품이자, <수리남>에 이어 윤종빈 감독과 다시 한번 재회하게 된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나인 퍼즐>은 2025년 공개를 앞두고 있다. 더불어 이해영 감독의 첫 시리즈 넷플릭스 <애마>, 김지운·박보람 감독이 연출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망내인>, 개봉 시기는 미정인 하정우 감독의 영화 <로비> 등, 스크린과 OTT를 오가는 현봉식의 활약은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씨네플레이 김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