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르물의 매력은 아마 파도 파도 끝이 없다는 점일 것이다. 그래서 유명한 작품이나 프랜차이즈에는 (해당 분야에 학위가 있다면) 석박사를 딸 만큼 진심으로 파고드는 팬들이 있긴 하다. 그렇게 진심인 사람들은 가끔 가볍게 접근한 팬들에게 '그거 아닌데?'를 시전하다가 따가운 눈총을 받곤 한다(왜 아는지는 묻지 마라). 과연 어떤 영화, 혹은 캐릭터가 그런 이유로 찐팬들과 라이트팬들 사이의 골을 만드는지 한 번 모아봤다.
그거 로봇 아닌데 vs. 주제곡이 로봇이라는데요?

<트랜스포머> 시리즈는 보통 '로봇영화'로 자주 호명된다. 사이버트론에서 온 오토봇과 디셉티콘의 전쟁을 그리는 <트랜스포머> 시리즈. 근데 이 부분에서 팬들이 의외로 발끈하는 부분이 있는데, 바로 '로봇'이란 표현 때문이다. 일반인(일명 머글) 입장에서 보면 그게 뭐가 잘못됐나 싶지만, 팬들이 풀이하기론 '기계생명체'가 옳다는 것이다.
보통 트랜스포머, 로봇이라고 부르는 이들은 행성 사이버트론에서 온 사이버트로니안이다. 겉보기엔 다 달라보여도 어쨌든 하나의 종이다. 프랜차이즈가 장기화됐고, 매체마다 그 내용이 다르기 때문에 하나로 규정할 수 없지만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설정은 강력한 에너지나 상위 생명체에게서 창조됐다는 것이다. 하나의 종이지만 각자의 개성이 있는 것. 누군가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점. 이런 점을 미루어보아 단순한 기계나 로봇으로 보면 안되고 정확하게 생명체라는 표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찐팬 사이에서도 이 부분에서 의견이 갈리는데, 왜냐하면 <트랜스포머> 프랜차이즈의 가장 유명한 주제곡에서도 '로봇'이란 단어를 사용했기 때문. 1986년에 공개해 <트랜스포머>를 대표하는 노래, '라이온'(Lion)의 테마곡엔 Robots in disguise(로보트 인 디스가이스, 변장한 로봇)라는 가사가 있다. 공식에서도 로봇이라고 명시하는데, 굳이 이런저런 설명을 붙이는 거야말로 거추장스럽다는 팬들도 있다. 그렇지만 현재 개봉한 <트랜스포머 ONE>을 보면 로봇이라기엔 보다 생명체로서의 묘사가 많고, 반대로 생명체라기엔 확실히 기계처럼 부품에 관련한 묘사가 있고… 좀처럼 정답이 없는 부분이니 각자 판단에 맡겨보겠다.


그거 마블 아닌데? 소니와 마블은 다르다고!! (feat. 웹슈터 만드는 건데요)
스파이더맨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슈퍼히어로 중 하나일 것이다. 1962년 첫 선을 보인 후, 2002년 첫 실사화된 후, 2016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등장한 후 스파이더맨은 세월의 흐름에도 거듭 도약하며 수많은 슈퍼히어로 중에서도 가장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다만 그 유명함 덕분에 스파이더맨 팬들, 그리고 영화 팬들 입장에선 종종 골머리를 앓는데 스파이더맨 관련 영화를 모두 '마블 영화'라고 칭하는 것 때문이다.

이 부분은 현재 스파이더맨 영화화 관련 권리가 어떻게 성사됐는지를 아는 이들만 목의 생선뼈처럼 걸리는 부분이다. 스파이더맨을 만든 건 마블, 그렇지만 영화화 권리는 소니픽처스. 이렇게 나뉘어있다. 마블은 결코 독단적으로 스파이더맨 영화를 만들 수 없는데, 반대로 소니는 오직 '스파이더맨' 관련 캐릭터만 영화에서 다룰 수 있다. 이 상황에서 소니픽처스는 스파이더맨만 마블에 다시 대여해주고 마블은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을 탄생시켰다. 그 와중에 소니픽처스는 마블에서 스파이더맨 서사를 마무리 지으면 그 배턴을 이어받기 위해 작품을 만들어 공개한다. 그게 <베놈>, <모비우스>, <마담 웹> 등이다.
이렇게 나름 구분되는 지점들이 분명히 있음에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대중화되자 '히어로영화=마블영화'라는 공식이 대중에게 자리 잡고 만다. 상대 진영 DC코믹스의 대표주자 배트맨마저도 '마블영화'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으니, 소니영화라고 다를쏘냐. 앞서 말한 소니픽처스의 영화를 '마블영화'라며 평가하는 모습이 슈퍼히어로, 영화팬들의 이를 악물게 만든 것. 특히 화제성이나 이목을 끌기 위해 영향력 있는 매체나 인플루언서들도, 하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본가가 하향세인 것과 연관 지어 '마블 영화 다 망했다!!'는 식의 표현을 쓰면서 팬들의 이마를 짚게 만들기도.


스파이더맨 관련 '그거 아닌데?'를 하나 더 설명하자면, 거미줄이 어디서 나오느냐다. 국내에선 샘 레이미 감독의 <스파이더맨> 삼부작으로 입덕한 사람이 많아 '당연히 몸에서 나오는 거 아녀요?' 하겠지만, 스파이더맨은 대대로 '웹슈터'라는 기계와 직접 제조한 액체로 거미줄을 쏘는 게 전통이다. '아무리 거미인간이래도 거미줄을 쏘겠냐'는 최소한의 현실성과 피터 파커의 천재성을 보여주는 대목인 셈. 그래서 샘 레이미판 토비 맥과이어 스파이더맨이 특이 케이스. 그렇지만 해당 영화에서 피터 파커의 스트레스를 거미줄 분비로 잘 묘사했기에 이 버전을 좋아하는 팬들도 여전히 많다. 기존 영화판 스파이더맨이 다 모인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서 관련 농담이 나오기도.
그냥 독수리 띄우면 되지 않음? vs. 그거 비행기 아니라고♂️♀️

피터 잭슨의 <반지의 제왕> 삼부작은 판타지영화의 금자탑이 되었다. 그러나 원작 소설이 워낙 방대해 영화에서 설명을 다 하지 못한 부분이 많았기에 영화만 본 관객 중 일부는 커다란 물음표를 품은 채 극장문을 나섰다. 왜 '굳이' 반지를 사람 손으로 옮겨야 했을까.
이런 의문을 품게 된 건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의 막바지, 쓰러진 프로도 일행을 독수리를 타고 온 간달프가 구하는 장면 때문이었다. 여기까지 독수리가 올 수 있다면, 처음부터 독수리를 타고 와서 반지를 파괴하는 것이 더 빠르지 않았겠냐는 합리적 의심을 하게 했던 것. 사실 영화만 보면 이런 추론도 충분히 할 만한데, 원작 소설을 독파한 톨키니스트(원작자 톨킨 작품의 팬덤명)는 이런 얘기를 들으면 또 입이 근질근질할 수밖에 없다.
먼저 독수리가 직접 파괴 작전에 투입하지 못한 건 두 가지 이유다. <반지의 제왕>의 독수리는 보는 것과 같이 단순한 동물이 아니기에 무작정 적진 한복판으로 끌고 갈 수 없으며, 설령 독수리가 동행하더라도 그 또한 반지의 유혹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중간계 대륙이 생각보다 훨씬 커서 독수리가 그냥 날아서 갈 만한 거리도 아닌 것도 이유(원작에서 간달프가 반지의 정체를 조사하기 위해 대륙을 도느라 20여 년이 걸렸다). 소설에선 대사나 설명으로 이런 의문을 남기지 않지만, 영화에서 이 모든 걸 설명하기엔 시간이 부족하니 생략했고 그 결과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이 꼭 가능한 것처럼 그려졌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