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제목을 압도하는 '나는 오늘 출근하지 않았다'라는 글귀와 후경에 설산이 자리한 <산이 부른다>의 포스터를 보며 누군가는 장삼이사들의 현생 탈출물(<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2013))을 기대할지 모르겠다. 혹은 산이 배경이라는 점에서 고립된 산골마을을 오르내리며 쌓은 두 남자의 친교를 그린 <여덟 개의 산>(2022)과 같은 플롯을 예상할지도. 그러나 <산이 부른다>에는 거대한 국면에 맞서 자신을 찾아가는 동화적 샐러리맨도, 산안개 같은 불확실한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험난한 능선을 타고 오르는 젊은 날의 초상도 없다. 이것은 평범한 산악 영화가 아니다. <산이 부른다>는 인간과 자연 사이의 새로운 대화가 어떤 모습일지 일종의 샤머니즘 의식을 수행하고 자연과 초자연적 세계 간의 미묘한 경계를 탐구한다. 그렇게 오롯한 자신을 발견하려 돌연 산으로 향한 한 인간의 여정은 어드벤처로 시작해 환상의 세계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갑작스러운 산의 부름

완벽하게 정돈된 차가운 금속 소재의 주방. 싱크대 가장자리, 삐딱하게 놓인 에스프레소잔이 흔들린다. 표정 변화가 없는 피에르(토마스 살바도르)를 대신해 카메라는 깨질 준비가 된 일상의 숨막힘을 흔들리는 에스프레소잔으로 포착하며 영화의 문을 연다. 피에르의 과거를 재구성하지 않은 영화는 그가 회사원이라는 사실 외에 별다른 정보를 주지 않는다. 단지 고도로 산업화된 피에르의 직업이 자연과 대비되며 피로도가 강조된다. 경로를 계산해 오차 없이 움직인다는 로봇 팔을 개발하는 엔지니어 피에르는 출장으로 간 알프스 산간 지역 도시에서 문득 창밖으로 보이는 산에 강렬하게 끌린다. 며칠 뒤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홀연 산으로 떠난 피에르의 일탈은 길어졌고 휴가를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퇴사를 감행한다. 품어주는 자연의 평온함에 매료되었지만, 그가 오른 산이 언제나 아름다운 것은 아니었다. 머리 위로 낙석이 떨어지고, 등산 초심자는 빙하에 미끄러져 다치기 일쑤다. 텐트 속 추위는 대비할 수 있지만 밤사이 휘몰아치는 눈바람은 적응해야만 하는 변수다. 빙하의 눈을 녹여 커피를 타 마시고, 설거지도 하는 불편한 생활. 가족들은 현실로 돌아오라 간청하지만 고집스럽게 움직이기를 거부한 이 파리의 엔지니어는 알파인 빙하 위에 꼿꼿이 텐트를 친다.
자연주의에서 환상주의로

설산의 절경, 울창한 숲, 구름 위를 걷는 듯한 몽환적인 풍경 등 몽블랑이 지닌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이 스크린에 펼쳐지지만 영화는 단순한 등반 기록을 넘어 인간과 자연의 관계, 삶의 의미를 깊이 있게 담아낸다. 특히 늦은 밤 피에르가 낙석이 떨어진 산을 홀로 오르며 직면한 신비한 체험은 영화를 일순 미스터리 판타지로 변모시킨다. 자연과 융합하려는 열망이 절정에 달했던 피에르는 알려지지 않은 생명체의 모습을 목격한다. 녹은 용암처럼 꿈틀거리며 낙석의 틈과 틈 사이를 유영하는 기묘한 생명체. 미지의 그것과 조우해 그 자신이 용암 인간이 된 피에르는 잠재력을 해방하고 포용력을 꽃피운다. 스스로가 발열체가 되어 빙하 속을 유영하고 물아일체의 경지에 이르러 산이라는 미스터리를 온몸으로 흡수한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신화적 탐구는 낯선 감정으로 가득 찬 영화적 경험을 제공해 관객을 불안과 경탄의 극단을 오가게 한다.

스스로 택한 고립이지만 우연한 기회에 피에르는 등산객으로 북적이는 식당의 요리사 레아(루이즈 부르고앵)와 가까워진다. 대신 엽서를 부쳐주고 신발 끈을 단단히 조이는 법을 알려주고 음식을 챙겨주는 레아. 자연으로 사라진 피에르를 찾아내 쓰러져있는 그를 구해내고 발광하는 그의 손도 기꺼이 받아들인 낯선 이. "세상으로부터 도피해 자신의 실제 모습을 발견하려고 삶의 끝에 도달하는 위험을 무릅쓰는 인물의 여정을 다뤘다"라고 영화를 소개한 감독의 말처럼 예상치 못한 만남과 미스터리한 경험은 피에르의 삶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철저한 고립은 인간 고통에 대한 치료법이라는 신화에 등을 돌리고, 감독은 삶은 다른 곳에, 즉 타인과 부대끼며 쌓는 감정과 욕망의 순환 속에 있다고 제안한다. 환하게 빛나는 손을 한 채로 속세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피에르는 자유를 구속하는 도시와 무한의 자유에 잠식당해버릴 위험이 있는 자연 사이에서 이제 균형을 찾을 것이다. 자연주의에서 환상주의로 미끄러진 영화는 그렇게 현실로 하산한다.
지구 온난화에 관한 생태학적 우화

영화는 생태학적 우화를 통해 지구 온난화로 인해 파괴되는 몽블랑의 현실을 곳곳에 드러낸다. 단단했던 얼음 동굴은 녹아가고, 키를 넘어 쌓이던 눈도 이제는 옛말이다. 보송한 눈으로 가득 차 맑고 투명하게 빛나야 할 산등성이는 흉물스레 흙바닥을 드러낸다. 미끄럼 사고로 병원을 찾은 피에로에게 간호사는 말한다. 산은 한 덩어리가 아니며 바위가 겹겹이 층을 이루고 있는 것이라고. 얼음이 시멘트와 같은 역할을 하며 그 층을 잡아주고 있는데 얼음이 녹으면 바위가 떨어지고 종국엔 산이 무너질 것이라고. 결국 문제는 열이라 말하며 간호사는 피에르의 체온을 재고 저체온증을 경고한다. 인간과 산이 살아남기 위한 최적의 온도는 몇 도일까. 30도를 웃도는 9월은 아닐 것이다. 여름 같은 9월을 지나는 우리만큼이나 몽블랑의 잦아지는 낙석 사고를 걱정하는 프랑스인들의 오늘도 꽤나 더워 보인다. 영화는 떨어지는 낙석과 무너지는 산으로 지구 온난화의 공포와 위협은 실재한다 말한다.
<산이 부른다>는 토마스 살바도르 감독이 <빈센트>(2014)에 이어 두 번째로 연출한 장편이다. <빈센트>에서 주연으로 출연했던 살바도르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도 주인공 피에르를 연기했다. 영화는 2022년 제75회 칸국제영화제에서 프랑스 비평가협회가 주관하는 감독주간에서 SACD상을 받았다. 감독주간은 데뷔작, 두 번째 작품을 발표한 감독들의 영화만을 초청해 소개하는 섹션으로 SACD상은 프랑스 작가조합이 선정한 프랑스어 영화 작품상에 해당한다.
<산이 부른다>는 큰 화면을 위해 설계된 작품이다. 독특한 시공간을 경험하고 싶다면 꼭 극장을 찾아 영화를 감상하자. <산이 부른다>는 9월 25일 개봉해 상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