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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의 직장인을 대변한 블랙코미디 같은 〈손해 보기 싫어서〉, 공감 갔던 포인트들

김지연기자

〈손해 보기 싫어서〉
〈손해 보기 싫어서〉

 

tvN X TVING 오리지널 드라마 <손해 보기 싫어서>가 지난 1일 12회를 마지막으로 종영했다. <손해 보기 싫어서>는 ‘손보싫’이라고 불리며 첫 방송 이후 점차 입소문을 타 화제성과 시청률이 점차 상승했다.

 

공식적인 장르는 ‘로맨틱 코미디’라지만, 진 장르는 블랙코미디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손해 보기 싫어서>는 사회 풍자적 성격이 강한 드라마다. ‘회장님 혼외자’, ‘계약결혼’ 등 로맨틱 코미디의 숱한 클리셰를 모두 사용했음에도 유독 <손해 보기 싫어서>가 신선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그 지점에 있다. <손해 보기 싫어서>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요즘 세대가 한국 사회, 직장, 결혼 제도에 갖는 피로감을 날카롭게 짚은 작품이다.

 

젊은 직장인들은 ‘MZ 세대’라고 불리며 MZ를 향한 조롱이 유행하는 시대, <손해 보기 싫어서>는 가장 ‘MZ스러운’ 드라마다. 드라마는 소위 ‘MZ스럽다’고 불리는 스테레오타입을 모두 차용한다. 요즘 MZ는 인간관계에서도 손익을 따지며, 회사에서는 상사에게 할 말 다 하고, 업무에서건, 개인적인 삶에서건, 외부의 시선은 아랑곳 않고 자기만의 길을 찾아간다는 등. 그러나, 그러나 <손해 보기 싫어서>는 소위 ‘MZ스러움’을 우스꽝스럽게 인물화하는 대신, 왜 ‘MZ’가 철저하게 손익을 따지게 됐는지를 짚는다.


〈손해 보기 싫어서〉
〈손해 보기 싫어서〉

 

“황금 같은 주말에 차 막히는 강남에서 불편한 옷 입고 비싼 밥이 먹고 싶어서”

“이것은 청첩장인가 고지서인가. 댓 이즈 더 퀘스천.

“그래도 자긴 아직 테이크 할 기회가 있잖아. 난 말 그대로 기부야. 기부. 도네이션.”

- <손해 보기 싫어서> 1화, 직장 동료 안우재(고욱)의 결혼식에 참석한 은영(김혜화)의 말

 

“낸 만큼 받고, 받은 대로 내는 것이 국룰. 언뜻 공평해 보이지만, 여긴 함정이 숨어 있다.

결혼 시기에 따른 물가 상승률, 식장 위치에 따른 교통, 숙박비는 반영되지 않는다.

내 축의를 받아 갈 인간이, 내가 받을 때까지 이직, 이민, 혹은 사망하지 않고 나와 친분을 이어갈 것인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 그 불확실성에 배팅해야 하는 축의금은 먼저 내는 사람이 무조건 손해다.”

- <손해 보기 싫어서> 1화, 전 남자친구 안우재의 결혼식에 참석한 손해영(신민아)의 내레이션

 

언제부턴가 결혼식이라는 행사는 본래의 의미에서 조금은 빗겨났다. 청첩장을 받은 사람은 상대와의 친분 정도를 면밀히 따져 축의금으로 환산하고, 황금 같은 주말에 내가 나의 노동력과 시간을 들여 갈 만큼의 가치가 있는지를 따져 참석 여부를 결정한다. 결혼식을 하는 당사자는 또 어떤가. 결혼을 하기로 마음먹은 예비부부는 청첩장을 어디까지 돌려야 할지, ‘청모’(청첩장 모임)에서 몇 만원 정도 하는 밥을 사야만 적당히 구색을 맞출 수 있을지, 그리고 하객들이 적당히 만족할 수 있는 결혼식 뷔페는 어디로 골라야 할지. 결혼을 하는 사람과 축하하는 사람들 모두가 계산의 연속이다.

<손해 보기 싫어서>의 주인공 손해영(신민아)는 철저하게 손익을 따지며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하는 선택은 하지 않고, 손익분기점을 가뿐히 넘길 선택이라면 주변의 시선 따윈 아랑곳 않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가짜 결혼’을 하기로 마음먹은 것 역시 마냥 납득이 불가능한 건 아니다.


〈손해 보기 싫어서〉 현장 포토. 사진 제공=〈손해 보기 싫어서〉 공식 홈페이지
〈손해 보기 싫어서〉 현장 포토. 사진 제공=〈손해 보기 싫어서〉 공식 홈페이지

 

“이 대리, 1년 동안 결혼 두 번 해서 연봉 600 올릴 동안, 자기 열일해서 연봉 얼마 올랐니?

연봉 올리는 데엔, 고과보다 결혼이라니까”

- <손해 보기 싫어서> 1화, 은영이 해영에게 건네는 말 중

“이 결혼식의 목표가 뭐야. 최소비용, 최대 매출.”

- <손해 보기 싫어서> 2화, 해영과 자연(한지현)이 나누는 대화

 

손해영이 꼭 결혼을 해야만 하는 이유는 그뿐만이 아니다. 손해영이 다니는 회사는 ‘꿀비교육’으로, “대한민국의 출생률은 곧 꿀비교육의 성장률”이라는 모토로 모든 복지가 결혼, 출산, 육아에 집중돼 있다. 식을 올리면 결혼 축하금 300에 신혼여행 휴가 2주, 식장 꽃 장식, 하객 전세 버스, 배우자 의료비 지원, 결혼기념일 꽃바구니, 결혼 5주년마다 2박 3일 휴가, 임신을 하면 축하금 100만 원에 태아보험, 태어나면 자녀 생일에 케이크, 자녀 생일 당일 휴가 등등까지. 기를 쓰고 열일해서 연봉을 3% 올리느니, 결혼을 해서 복지를 누리는 편이 이득이다. 그래서 손해영은 신랑을 말 그대로 편의점에서 구한다. 동네 편의점 알바생 김지욱(김영대)가 바로 가짜 신랑이다. 말하자면, 식에 손잡고 입장만 하면 되는 대역 배우를 구한 셈이다.


〈손해 보기 싫어서〉 현장 포토. 사진 제공=〈손해 보기 싫어서〉 공식 홈페이지
〈손해 보기 싫어서〉 현장 포토. 사진 제공=〈손해 보기 싫어서〉 공식 홈페이지

“너는 괜찮겠지. 근데 나는? 나는 그냥 회사에서 손해영 팀장이고 싶어. 누구의 아내 말고.

들키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네가 회사에서 아침을 먹잖아? 그럼 내가 무능해서야.

네가 옷을 거지같이 입지? 그럼 내가 무능해서야. 네가 실수하잖아? 누가 무능해? 내가.”

“아니, 집에서 먹으면 다 집밥이지, 누가 차려줘야 집밥이야? 그리고 바깥일은 나도 하는데, 왜 네 아침을 내가 먹여?”

- <손해 보기 싫어서> 5화, 해영이 지욱에게 건네는 말 중

“아니, 연하 남편! 좋아 좋아. 연상연하가 좋지. 정신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밸런스가 맞거든.

얼른 애부터 가져야겠다. 손 팀장 나이도 있는데, 노력은 하고 있지?”

- <손해 보기 싫어서> 6화, 사내 부부임이 발각되자 임원들이 해영에게 건네는 말 중

 

그러다 가짜 남편 김지욱이 꿀비교육에 입사한다. 손해영은 그들이 (가짜) 부부라는 사실을 숨기고 싶어 하는데, 그 이유인즉슨 그들이 사내 부부라는 것을 알려서 좋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친절한 오지랖으로 포장된 차별의 언어들은 대개 손해영을 향할 터. 특히나, 연상연하 부부(여자가 남자보다 더욱 나이가 많은 부부)는 더욱이 관심으로 가장한 간섭에 직면하기 일쑤다.

그리고 그들이 부부임을 알린 순간, 우려는 현실이 됐다. 예전이었다면 좋게좋게, 유들유들하게 넘어갔을 말들에 “기혼의 성생활은 사생활이 아니야?”라며 의문을 가지는 손해영의 말은 수많은 기혼 직장인들의 물음을 대변할 터. <손해 보기 싫어서> 속 손해영의 말과 행동은 그가 정말 계산적인 인물이라서 손익을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손익을 따지고 살게 되었다는 사실을 내포한다.


〈손해 보기 싫어서〉 현장 포토. 사진 제공=〈손해 보기 싫어서〉 공식 홈페이지
〈손해 보기 싫어서〉 현장 포토. 사진 제공=〈손해 보기 싫어서〉 공식 홈페이지

 

<손해 보기 싫어서> 프로그램 소개의 말마따나, “계산적이어야 야무진 거고, 착함은 호구와 동의어인 경쟁과 이기의 시대. 모두가 한쪽 다리가 부러진 채 굶지 않고, 먹잇감이 되지 않으려 애를 쓰며 살고 있”는 시대에는 모두가 득실을 따질 수밖에 없다. 기성세대가 너무나 계산적이고 당돌하다며 혀를 끌끌 차는 ‘요즘 애들’은 사회의 요구를 충실히 수행할 뿐이다.

 

그래서 손해영이 마침내, 가장 손익 계산과는 거리가 먼 ‘사랑’이라는 행위를 비로소 시작했다는 사실은 시청자들에게 묘한 감동과 위로를 준다. 손익을 따져야만 삶을 굴릴 수 있는 이 팍팍한 사회 속에서, 손익을 따지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감정에 본인을 내맡기는 것이 얼마나 용기 있는 행동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