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기사 카테고리

Movie & Entertainment Magazine from KOREA
>영화

너무 엇나가서 난리 난 속편 3 ②

성찬얼기자

“여백이 부족해서 여기 적지 않는다”라는 문장을 들어보았는가. 수학자 피에르 드 페르마는 어떤 명제의 '증명법을 발견했다'면서 저렇게 써놓고 그 증명법을 알리지 않았다. 그게 그 유명한 수학계의 난제(였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다. 갑자기 왜 여백 운운하냐 하면 지난번에 '너무 엇나가서 난리 난 속편'을 쓰면서 사실 몇몇 영화를 더 적고 싶었는데, 주어진 조건이 녹록지 않아 아쉽게 마음에 묻어두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금 이 주제로 원고를 쓸 수 있게 되었으니 "여백이 충분하여" 마저 적어볼까 한다. 원작의 연장, 확장이 아니라 원작의 전복으로 도리어 역풍을 맞은 속편들을 소개한다.

* 해당 속편 영화들은 초반부 전개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다.


<퍼시픽 림> - <퍼시픽 림: 업라이징>

묵직함은 사라지고 실망은 오래갈 거야

〈퍼시픽 림〉
〈퍼시픽 림〉
〈퍼시픽 림: 업라이징〉 
〈퍼시픽 림: 업라이징〉 

2013년,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퍼시픽 림>은 어떤 이들에겐 '꿈의 영화'였다. 지구에 커다란 균열이 생겨 거대한 괴수 '카이주'들이 출몰하고, 두 명의 파일럿이 거대 로봇 '예거'를 조종해 막는다는 내용은 일본 애니메이션이 세운 메카물의 정수를 할리우드로 옮긴 셈이었다. 할리우드가 여러 괴수물이나 재난영화에 도전하는 와중에도 '거대 메카물'은 거의 전적이 없었는데, '성공한 덕후'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이것을 스크린에 실현한 것이다. 영화는 딱 본전만 건지는 정도로 성공했지만 <퍼시픽 림>은 전무후무 유일무이한 '할리우드산 메카영화'로 사랑을 받았다.

아무래도 그렇게 드문 장르영화라 흥행 실패에도 속편을 기대하는 팬들이 많았는데, 2018년 마침내 속편 <퍼시픽 림: 업라이징>이 공개됐다. 그리고 팬들은 알았다. 기예르모 델 토로가 아니면 '그 맛'을 못 살린다는걸. <퍼시픽 림: 업라이징>의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너무 밝아졌다는 것. 하나는 당시 할리우드가 중국몽에 빠져있었다는 것. 전작 <퍼시픽 림>에 마니아들이 열광한 이유는 CG로도 메카닉의 묵직한 맛을 잘 살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카이주의 등장에 절체절명으로 내몰린 인류의 위기감이 영화 곳곳에 묻어났다. 반면 2편은 메카닉의 움직임이 경쾌하다 싶을 정도로 가벼워졌고, 등장인물의 서사도 전편만큼 깊게 다뤄지지 않았다.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 클라이맥스가 각각 밤과 낮인 것부터가 두 영화의 간극을 정확히 보여준다고. 본래 2편도 기예르모 델 토로가 연출할 예정이었으나 제작사측에서 영화의 기획 방향을 '중국 배경'으로 바꾸면서 델 토로도 사실상 영화에서 손을 뗐다. 당시 할리우드가 중국 시장을 겨냥한 작품을 한참 내놓는 시기였기에 <퍼시픽 림: 업라이징>도 그 타깃이 된 것. 상업영화 연출이 처음인 스티븐 S. 드나이트는 그 난장판에서도 처음치고는 그럭저럭 괜찮은 결과물을 내놓았으나(물론 액션 장면 한정으로), 전작의 깊고 깊은 '오타쿠'맛을 본 관객들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퍼시픽 림〉의 메카다운 감성을 잊지 못한 팬들은
〈퍼시픽 림〉의 메카다운 감성을 잊지 못한 팬들은
〈퍼시픽 림: 업라이징〉의 예거 디자인에도 실망했다.
〈퍼시픽 림: 업라이징〉의 예거 디자인에도 실망했다.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 - <킹스맨: 골든 서클>

본부 터지듯 날아간 기대감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
〈킹스맨: 골든 서클〉
〈킹스맨: 골든 서클〉

 

​앞서 1부에 라이언 존슨 감독이 있다면 여기엔 매튜 본 감독이 있다. 매튜 본 감독은 그야말로 '통통 튀는 맛'에서 둘째가라면 서럽다. 기존의 영국식 누아르를 경쾌하게 비튼 <레이어 케이크>나 매운맛 히어로 코믹스를 영화화한 <킥 애스: 영웅의 탄생> 모두 간담을 서늘케 하는 폭력 속에서 유쾌한 감성을 짚어내 주목받았다. 어딘가에서 본듯한 설정이나 구성을 잘 버무려 독창성을 획득하는 매튜 본의 재능은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에서 만개했다. <킥 애스: 영웅의 탄생>처럼 마크 밀러의 코믹스를 원작으로 에그시(태런 에저튼)가 해리(콜린 퍼스)를 만나면서 첩보요원으로 거듭나는 이야기를 다뤘다. 폭력적인 이야기와 냉소적인 유머는 매튜 본의 손에서 'B급 같은 A급'으로 거듭났다. 전 세계 4억 달러를 벌어들인 것은 물론이고 특히 한국에서 청소년 관람불가 외화로는 600만 관객 돌파라는 쾌거를 이뤘다.

그러나 2년 후 개봉한 <킹스맨: 골든 서클>은 1편 이상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에그시가 사망한 줄 알았던 해리의 단서를 찾고, 세계를 위험하는 비밀 단체 '골든 서클'에 맞선다는 이야기는 큰 기대를 모았지만 세세하게 들여다본 영화는 무리수가 이어졌다. 사실 개봉 전부터 1편에서 깔끔하게 퇴장한 해리의 복귀부터 불안감을 자아냈는데, 영화 도입부터 1편의 주요 인물 대부분을 퇴장시키며 특히 관객의 경악을 받았다. 가장 문제시된 건 1편보다 더 폭력적이고 선 넘는 요소들. 사람을 갈아서 만든 인육 버거나 골든 서클을 추적하기 위해 여성의 성기에 추적기를 삽입하는 장면은 논란을 빚었다. 결국 매튜 본만의 감성이 선을 넘으며 관객들의 호불호가 더욱 갈렸고, 결국 1편과 비등한 정도의 성적에서 만족해야 했다. 그래도 프리퀄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로 이어지며 시리즈의 활력을 얻어보려 했으나 코로나19 팬데믹의 기승과 영화가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해 현재로선 시리즈의 향방도 옅어졌다.

〈킹스맨: 골든 서클〉 이곳에서 그런 장면들이 나올 줄은 영화 보기 전까지 아무도 예상 못 했을 듯.
〈킹스맨: 골든 서클〉 이곳에서 그런 장면들이 나올 줄은 영화 보기 전까지 아무도 예상 못 했을 듯.

<터미네이터 제니시스> -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

원작자의 손으로 부활은커녕 부관참시

〈터미네이터 제니시스〉
〈터미네이터 제니시스〉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

'영화사상 최고의 속편'에서 늘 상위권에 있는 <터미네이터 2>를 배출한 <터미네이터> 시리즈, 하지만 시리즈 전체를 보면 사실 연이은 실패에 가까웠다. 미래에서 벌어지는 인간과 기계의 전쟁에서 승리를 가져올 지도자 존 코너, 그리고 그의 어머니 사라 코너를 걸고 인간과 기계 진영은 각각 보호자/암살자를 보낸다는 게 시리즈의 골자. 그중 <터미네이터 2>는 전편의 암살자가 보호자로 등장하는 파격적인 반전을 필두로 인간과 기계의 유대, 각 기계들의 특징을 이용한 액션 장면 등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1, 2편의 감독 제임스 카메론이 하차한 후 제작된 <터미네이터 3 - 라이즈 오브 더 머신>, 미래 전쟁의 풍경을 그린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 시리즈 전체 타임라인을 재배치하며 시리즈의 새로운 생명력을 꿈꾼 <터미네이터 제니시스> 모두 이전 작품들만 한 성과도, 인기도 얻지 못했다.

그렇기에 제임스 카메론이 제작자로 다시 합류한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는 기대가 남달랐다. 이전 세 영화와 선을 그으며 '정통 후속작'임을 천명했고, 시리즈의 주역이자 아이콘 아놀드 슈왈제네거와 린다 해밀턴의 복귀 또한 팬들의 환호를 받을 만했다. 거기에 <데드풀>을 성공시켜 각광받은 팀 밀러 감독까지. 시리즈의 소생이 눈앞에 있는 듯 보였다.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 린다 해밀턴(왼)과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반가웠지만…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 린다 해밀턴(왼)과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반가웠지만…

 

하지만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는 도리어 시리즈의 숨통을 끊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팬들에게 손절 당한 요소는 영화 초반, 존 코너의 향방이었다.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는 이제 존 코너가 아닌 새로운 상징을 세워야 한다고 판단했는지, 존 코너가 기계 진영이 보낸 암살자에게 살해당하는 걸로 시작한다. 만일 영화가 잘 나왔다면 이 선택이 무척 좋다고 할 수 있지만, 이 충격을 넘어설 만큼의 장점보다는 단점이 도드라져 도리어 기존 팬들마저 등 돌리게 만드는 결과가 됐다. 새로 합류한 그레이스(맥켄지 데이비스)나 REV-9(가브리엘 루나), 존 코너의 위치를 계승한 다니엘라 라모스(나탈리아 레이즈)의 개성도 모자라다는 반응. 이후 팀 밀러 감독이 제임스 카메론과의 여러 차례 충돌이 있었다, 제임스 카메론 또한 이런 충돌을 언급했다는 점을 보면 이번 영화를 책임져야 하는 감독과 시리즈의 총괄의 의견 불일치가 해당 영화라는 결과물이 됐다고 볼 수 있다. 돌고 돌아 원작자의 귀환이 시리즈의 막을 내리는 꼴이 됐으니 참 아이러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