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성공하면 '못 먹어도 고'가 정석이다. 성공은 곧 인기를 뜻하니, 그 인기를 새로운 성공으로 이어가는 것이 맨바닥에서 시작하는 것보다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인기가 성공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인기가 많다는 건 어디까지나 그 원작을 사랑하는 것이기에, 때때로 원작의 연장이 아닌 새로운 시도를 했다간 도리어 인기의 역풍을 맞을 수 있으니까. 이처럼 근래 영화계는 몇몇 속편들이 원작의 인기를 이어가고자 시도했다가 역으로 엄청난 혹평을 받기도 했다. 최근 개봉해 이런저런 입방아에 오른 <조커: 폴리 아 되>를 비롯해 영화사상 누구도 넘보지 못할 성공에 아쉬운 마침표를 찍은 영화들을 정리했다.
* 해당 영화들의 결정적인 스포일러는 없으나 특정 장면에 대한 묘사가 있다. 더불어 필자는 이 영화들 모두 그럭저럭 반갑게 봤던 편이므로 안티의 시각보다는 원작을 좋아하는 팬의 입장에서 서술하는 것임을 알아주길 바란다.
<조커> - <조커: 폴리 아 되>
드라이한 드라마에서 화려한 뮤지컬 쇼로


10월 1일 개봉한 <조커: 폴리 아 되>는 2019년 개봉한 <조커>의 속편이다. <조커>는 그해를 흔들었다 설명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성공을 거뒀다. 코믹스 기반 캐릭터 영화 중 최초로 세계 3대영화제에서 최고상을 받았으며(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R등급 영화 최초로 전 세계 10억 달러를 돌파했으며, 한국에서도 500만 명 넘게 영화를 관람했다. 연출자 토드 필립스가 처음엔 속편 생각이 없다고 밝혔음에도, 속편의 제작은 당연한 수순처럼 보였다.
그리고 <조커: 폴리 아 되>는 2024년 81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 출품돼 마침내 세상에 모습을 보였다. 출품 당시만 해도 '원작 이어 수상' 얘기가 나올 만큼 많은 기대를 받았는데, 공개 직후 반응은 좋지 않았다. 평단의 반응이 안 좋아도 대중 반응은 좋을 수 있지 않나 희망적인 목소리가 있었지만 시사 반응도 썩 좋지 않아 팬들의 마음은 점점 조급해졌다. 개봉 후 대중 반응도 전편에 비해 확연히 나빴다. 1편이 '아서 플렉이 조커로 거듭난 얘기'로 보였는데, 2편에서도 아서 플렉이 조커라는 정체성을 제대로 수긍하지 못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관객 후기 중 대부분은 "'조커'가 아니고 '아서 플렉'으로 제목을 바꿔야 한다"고 말할 정도. 거기에 조커의 세계와 아서 플렉의 세계, 그 간극을 극대화하기 위해 선택한 뮤지컬은 예상보다 그 분량이 너무 많아 관객들을 당황하게 했다. 현재 북미에선 아직 개봉 전이지만, 박스오피스 예상 수치가 점점 낮아지고 있다고.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
큰 그림 없는 시리즈의 위험성 (+팬들을 분노하게 한 단 하나의 장면)


월트 디즈니 컴퍼니가 <스타워즈> 시리즈의 본가 루카스필름을 인수하고 나서 발표한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는 기대와 걱정을 한몸에 받았다. 시리즈의 마지막 영화 <스타워즈 에피소드 3: 시스의 복수> 이후 10년 만에 나온 작품인데다 '스카이워커 부자의 이야기'라는 확실한 그림은 막을 내렸으니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가 얼마나 <스타워즈>스럽겠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할리우드의 '성공한 덕후'로 유명한 J.J. 에이브럼스는 모든 <스타워즈>의 시작점, <스타워즈 에피소드 4: 새로운 희망>을 모티브로 21세기형 스타워즈를 정립하는 데 성공했다. "구 시리즈의 반복 아니냐"는 말처럼 지나치게 원작 시리즈의 레플리카 같다는 반응도 있지만, 전반적인 만듦새에 관해선 이견이 없을 정도로 완성도가 좋았고 그 결과 전 세계 20억 달러 수익을 올리는 대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이어 나온 8편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는 7편의 인기를 이어가지 못했다. 최초 평단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으나 팬들에겐 최악의 영화였던 것이다. 8편은 라이언 존슨 감독이 연출과 각본을 맡았는데, 그는 기존 작품에서도 독창적인 설정이나 전개로 주목받았던 전적처럼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에서도 다양한 '전통 파괴'적 요소를 넣었고 그게 팬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특히 팬들이 가장 싫어하는 장면은 추적 중인 퍼스트 오더의 군함을 하이퍼스페이스 점프로 격추시키는 묘사였다. 이 장면 하나로 '그럴 거면 데스스타도 하이퍼스페이스 점프로 파괴했으면 되지 않냐'라는 비아냥이 나오며 시리즈 전체의 근간을 흔든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거기에 시리즈 대대로 희망의 아이콘인 루크 스카이워커가 돌변하는 모습, 이번 삼부작의 보스처럼 그려진 스노크가 허무하게 퇴장하는 순간, 위급한 상황에서 사랑을 운운하는 과한 메시지 등 영화 전반에 무리수를 연이어져 <스타워즈> 팬들의 분노를 샀다. 이후 제작사는 7편의 감독 J.J. 에이브럼스를 다시 9편 감독으로 승인하며 수습에 나섰지만, 이 과정에서 처음부터 삼부작으로 계획해 놓고 큰 그림이 없었던 기획임이 밝혀져 팬들을 손절하게 만들었다.
<매트릭스 3: 레볼루션> - <매트릭스: 리저렉션>
만들기 싫었다고 티 내는 속편이 있다?


<매트릭스> 시리즈는 20세기 말부터 21세기 초까지 전 세계 관객의 사랑을 받았다. 인간은 가상현실을 현실로 알고 살지만, 현실은 이미 인간이 기계 세력에 패배해 배터리로서 재배되는 미래 세계를 기독교적 구원자 서사와 불교적 사상, 그리고 스타일리시한 영상미로 녹였다. 워쇼스키 형제(현재는 자매)는 이 시리즈로 단번에 영화계 스타가 됐고, 키아누 리브스는 불멸의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그렇게 영화는 1999년, 2002년, 2003년 세 편의 영화(와 이후 몇몇 미디어믹스)로 막을 내리는 듯했다.
그래서 2019년 4편 제작 발표는, 호불호는 있어도 네오의 서사에서 알맞게 마무리된 시리즈였기에 오랜만에 발표한 속편은 기대나 걱정도 아닌 얼떨떨한 반응을 낳았다. 그러나 원작자 중 라나 워쇼스키를 비롯해 키아누 리브스, 캐리 앤 모스 등이 복귀하며 그래도 조금은 기대감이 커지는 쪽으로 흘러갔다. 그렇게 2021년 개봉한 <매트릭스: 리저렉션>. 팬들은 황당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진지한 SF였던 전작들과 달리 <매트릭스: 리저렉션>은 극중 설정이 아닌 현실실을 비유하는 듯 메타적인 요소가 상당히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극중 기억을 잃은 네오가 제작한 게임 '매트릭스'를 빗대 "투자자들이 신작을 만들라고 한다"고 언급하는 장면은 이 영화가 의도적으로 1~3편을 파훼하려는 의도로 제작됐음을 의심케 한다(그런 점에서 키아누 리브스의 '존 윅' 외모도 일부러 유지한 것 아닌가 싶다). 작중 시리즈를 오마주하는 장면은 나름의 쾌감을 안겨줬지만 기존과 상당히 다른 분위기, 동어반복적인 스토리, 시리즈의 전매특허 쿵후 액션의 빈약함, 여러 차례 반복되는 메타적 유머 등 기존 시리즈보다 단점이 확연히 많아 팬들에게 씁쓸한 재회가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