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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결혼, 하겠나?〉 속 우정이처럼 순수하고 강인한 배우 한지은 “순진함은 잃어도, 순수함은 잃지 말자!”

김지연기자
〈결혼, 하겠나?〉 캐릭터 포스터
〈결혼, 하겠나?〉 캐릭터 포스터


‘짠내풀풀 생계형 코미디’를 표방하는 <결혼, 하겠나?>는 이 땅에 발붙이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선우(이동휘)와 우정(한지은)은 눈 오는 한 겨울에 핑크뮬리가 가득한 야외에서 결혼식을 올릴 것을 다짐하는 예비부부다. 그러나 그들에게 닥친 현실은 마냥 ‘핑크빛’이지만은 않다. 선우의 아버지(강신일)는 갑작스레 뇌출혈로 쓰러지고, 선우는 경제적인 부담 탓에 우정과의 결혼을 망설인다.

 

배우 한지은. 사진제공=그램엔터테인먼트
배우 한지은. 사진제공=그램엔터테인먼트


한지은은 사실 경력이 오래된 배우다. 2006년 단편영화 <동방불패>로 데뷔해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조·단역을 거쳐온 그는 87년생, 30대 후반에 접어든 나이임에도 이제 막 연기의 재미에 푹 빠진 신인 배우처럼, 연기를 향한 열정이 가득하다. 그러나 한지은의 순수함은 단지 ‘현실을 몰라서’ 품을 수 있는 순진함이 아닌, 현실을 알기에 가질 수 있는 강인한 낙관에서 비롯됐다.


영화 <결혼, 하겠나?>는 지난 23일(수) 개봉했다. 아무리 모진 길이라도 ‘핑크빛’을 꿈꾸는 <결혼, 하겠나?>의 우정이와 유난히도 닮은 배우 한지은과 21일 오전,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그리고 인간 한지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배우 한지은. 사진제공=그램엔터테인먼트
배우 한지은. 사진제공=그램엔터테인먼트


한지은 배우를 영화로 인터뷰하는 건 처음인 것 같아요. 항상 드라마로 뵀었는데, 오랜만에 영화로 복귀하셨어요. 드디어 영화 <결혼, 하겠나?>의 개봉을 앞둔 소감은요.

작년에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상영이 됐고, 저번 주에 <결혼, 하겠나?> 언론배급시사회로 영화를 선보였는데, 감사하게도 다들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개봉하고 많은 대중분들이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메시지나 내용이, 요즘에 꼭 필요한 영화라고 생각하거든요.
 

말씀하신 대로, <결혼, 하겠나?>는 2023년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됐어요. 처음으로 본인이 출연한 영화로 영화제에 가셨는데요. 당시, 레드카펫도 처음 밟으셨고요. 관객과의 대화 중, 기억에 남는 관객의 말이 있으신가요?

대체로 많이 공감하면서 봤다고 하신 것 같아요. 우신 분들이 많더라고요. 원래 작품 보면서 잘 안 우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 울었다는 분들도 있었어요.
 

앞서 <결혼, 하겠나?>의 메시지가 요즘에 꼭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왜 요즘에 특히 필요한 영화라고 생각하셨나요?

우리 영화는 ‘현실 재난’ 영화잖아요. 선우와 우정이가 결혼하는 과정은, 현실과 이상이 부딪히는 이야기예요. 그건 예비부부가 맞닥뜨리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현실과 이상의 충돌은) 내 안의 이상, 현실과의 싸움일 수도, 남자 여자가 아닌 다른 관계의 문제일 수도 있잖아요. 왜, 요즘 사람들이 꿈이 없다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하잖아요. 그런 걸 들으면 저도 공감이 되면서도 너무 마음이 아파요. 우리는 살아갈 날이 많은데, 어린 나이부터 도전을 두려워하는 마음이요.

 

〈결혼, 하겠나?〉스틸컷
〈결혼, 하겠나?〉스틸컷


지난 16일 진행된 <결혼, 하겠나?>의 기자간담회에서는 우정이가 너무 이상적이거나, 철없고 무모해 보일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는요.

우정이는 선우의 힘든 현실도 같이 헤쳐 나가고 싶어 해요. 다른 사람들 입장에서는 우정이를 조금 답답하다고 느낄 수도 있어요. 우정이 곁에 있는 사람들은 다 말리잖아요. 그래서 우정이에게 “너 지금 현실을 못 보는 거야”라고 말할 수 있지만, 우정이는 나름대로 자신의 꿈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 친구예요. 그 꿈이 허황된 게 아니고, 하나하나씩 꿈을 향해 단계별로 가고 있는 친구라고 생각했어요. 자신의 카페를 차리기 위해서 바리스타가 되려고 하고, 커피숍에서 일을 배우고 있고, 천천히 대회를 준비하고. 막연하게 사랑만 찾는 인물이 아니고, 어린아이처럼 말만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삶도 열심히 사는 인물이라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결혼, 하겠나?>는 23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모라동>이라는 제목으로 상영됐어요. 제목이 <모라동>에서 <결혼, 하겠나?>로 바뀌었는데, 어떤 제목이 더 좋으세요?

<모라동>이라는 제목도 좋았어요. 김진태 감독님의 자전적인 이야기니까요. 그런데 바뀐 제목도 좋아요. <모라동>이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는, 영화가 무거울 거라는 생각이 들 수 있으니까요. 실제로 영화는 무거운 이야기이긴 하지만, (무거운 사연을) 무겁지 않게 다뤘다는 게 이 작품의 큰 장점이니까요. <결혼, 하겠나?>라는 제목으로 바뀌면서, 우리 영화의 장르가 설명이 되지 않나 싶어요. 그래서 대중들이 이 제목을 접했을 때 조금 더 영화를 궁금해하지 않을까 싶어요.

 

〈결혼, 하겠나?〉스틸컷
〈결혼, 하겠나?〉스틸컷


선우 역의 이동휘 배우와 함께 결혼을 앞둔 커플을 연기하셨습니다. 이번 작품에서 이동휘 배우와의 호흡은 어땠나요?

이동휘 배우는 말이 많은 스타일은 아니에요. 촬영장에서 이동휘 오빠는 되게 바빠요. 자신만의 준비 방법인 것 같아요. 어딘가에 계속 집중을 하고 있고요. 처음에는 조금 낯을 가리더라고요. 현장에서는 서로 진중한 시간을 많이 가졌고요. 왜나하면, 저희가 사투리라는 큰 숙제를 가지고 있고, 거기다가 감정선까지 표현을 해야 하니까.
 

말씀하신 것처럼, <결혼, 하겠나?>의 공간적인 배경은 부산의 모라동이기에, 모든 인물들이 사투리를 사용합니다. 한지은 배우는 <결혼, 하겠나?> 촬영 두 달 전부터 사투리 수업을 받았다고 했어요. 또, 사투리 선생님이 보내준 녹음 파일을 수없이 들으면서 연습을 했다고요.

제가 어릴 때 대구랑 포항에서 총 6년 정도를 살았어요. 그때도 사투리를 쓰긴 했는데, 대구 사투리랑 부산 사투리가 아예 다르잖아요. 그래서 부산 사투리의 강세를 새로 배웠어요. 그런데 그게 또 규칙적이지가 않더라고요. 외국어를 배우는 느낌이라서 되게 어려웠어요. 한국말이나, 영어에는 어순이 있지만 저희가 실제로 생활하면서 어순을 항상 지켜서 말하지는 않잖아요. 그런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강세 배우는 게 규칙 속에서 불규칙을 찾는 거였어요. 애드리브도 하고 싶은데, 되게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어요.
 

김진태 감독님 말로는, 배우들이 다 부산 사투리에 적응을 해서, 촬영 쉬는 시간에도 사투리를 썼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아직도 부산 사투리가 툭툭 나오더라고요. 작품 할 때는 조금 부담감을 안고 있었는데, 지금은 부담이 없으니까 자연스럽게 나와요. 얘기할 때, 상대방이 사투리 억양을 보이면 저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나와요. 그게 맞는 건지 틀린 건지는 몰라도, 저도 뭔가 부산 사람 된 것처럼 가끔씩 섞여서 나와요. 재밌어요.
 

저는 사투리 네이티브가 아니라 잘 모르는데요, 부산 사투리와 대구 사투리의 차이는 뭘까요?

제가 배우기로는, 절대적인 공식은 아닌데, 큰 틀로 봤을 때 대구 사투리는 대체로 앞에 강세가 있고, 부산 사투리는 보통 끝 쪽 어미에 강세를 둔다고 해요.
 

생각해 보니, 이번 작품에서 함께 연기하신 혜영 역의 박소진 배우는 대구 출신이에요. 박소진 배우도 새로 부산 사투리를 배워야 했겠어요.

네 맞아요. 그래서 오히려 언니(박소진 배우)도 그런 지점들 때문에 어려웠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예 백지에서 시작하는 게 아니라, 자신만의 억양이 있는데 그거를 바꿔야 하니까요.

 

〈결혼, 하겠나?〉스틸컷
〈결혼, 하겠나?〉스틸컷


우정을 은근히 짝사랑하는 카페 사장님 태용을 연기한 허준석 배우와는 <멜로가 체질>에 이어 이번 작품에서 두 번째로 만나셨어요. 허준석 배우는 부산 출신이기도 한데요. 함께 연기하며 사투리에 대한 코칭도 받으셨나요?

현장에서 계속 물어보는 거죠. 또 감독님도 부산 네이티브이시니까, 계속 괴롭히고. 허준석 배우는 진짜 웃기거든요. 드라마 <멜로가 체질> 하면서 워낙 친해져서, 그 이후로도 계속 친하게 지내고 있었는데 같이 작품을 하게 돼서 너무 편했어요. 사실, 허준석 오빠는 보고만 있어도 웃겨요.
 

둘이 친한데, 영화에서 미묘한 러브라인을 표현해야 했기에 어색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게다가 사장님 태용은 웃음기 하나도 없는 진지한 역할이니까요.

맞아요. 좀 힘들었던 건, 진지한 상황인데 너무 웃겨가지고. 제가 웃는 것 때문에 NG를 잘 내는 스타일이 아니고, 나름 웃음을 잘 참는다고 생각하는데, 보기만 해도 웃겨서 그게 잘 안되는 사람이 몇 명 있어요. 그중 한 명이 허준석 오빠예요. (웃음)
 

그럼, 웃음을 참기 힘든 인물이 또 누가 있나요.

내년 상반기 공개되는 드라마 <별들에게 물어봐>에서 함께 연기한 오정세 배우요. 친해지다 보면, 연기할 때의 모습을 떠나서 사람 자체의 모습이 너무 재밌어요. 오정세 배우, 허준석 배우, 이동휘 배우 세 명의 공통점은 다 낯을 가린다는 거예요. 다 내성적인 분들인데, 말 한마디 하면 다 웃기는. 그런 센스들이 있으신데, 제가 그런 포인트를 좋아하나 봐요.
 

〈결혼, 하겠나?〉스틸컷
〈결혼, 하겠나?〉스틸컷


한지은 배우님도 발랄하고, 외향적이고, 짠내나기도 하는 그런 코미디 연기를 많이 하셨잖아요. 그런데, 실제로 지금 만나보니 진중하고 차분하신 편 같아요.

맞아요. 생각보다 제가 텐션이 그렇게 높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놀라시는 분들이 많긴 하더라고요. 저도 분명 작품에서와 같은 지점들을 가지고 있긴 해요. 저도 흥이 좀 많긴 해가지고. (웃음) 그런데 그건 어떤 상황에서만 오르는 흥이고, 평소에는 조용하거나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내성적인 지점이 많은 것 같아요.
 

<멜로가 체질>에서도 일명 ‘오빠오빠’ 씬이 ‘짤’이 되어 많은 화제가 되었잖아요. 그것처럼, 이번 영화 <결혼, 하겠나?>에서도 우정이가 술 취해서 ‘씨발!’ 하는 씬이 짤이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재밌는 장면이었는데요. 내성적인 성격이시라, 코미디 연기를 하면서 부끄러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 건 없어요. 그런데 <멜로가 체질>이 (부끄러움을) 깨준 것 같아요. <멜로가 체질>에서 ‘오빠오빠’ 하는 씬을 드라마 초반에 찍었거든요. 스태프분들과 다들 친해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현장을 누비면서 ‘오빠오빠’ 하려니까 마음이 힘든 거예요. 그래도 ‘에라, 모르겠다’ 하면서 해놓고 ‘컷’ 하자마자 부끄러워서 구석에 가서 ‘집에 가고 싶다’ 이랬어요. 그런데 그다음부터 오히려 욕심이 나더라고요. 할 거면 제대로 하자,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저도 모르게 은근히 즐겼던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더 풍부하게 표현을 할까.
 


<결혼, 하겠나?>에서 우정이가 선우에게 “너만 욕할 줄 알아?”라며 욕을 하는 장면이 큰 웃음 포인트였어요.

그때는 사실 웃기려는 생각보다는 우정의 감정에만 충실했어요. 우정이는 선우가 욕을 해서 상처를 받았고, 그게 너무 속상해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표현을 하고 싶은 건데, 저는 우정이가 욕을 많이 해본 적이 없는 친구일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자기 딴에는 진지하게 욕을 하는데, 당연히 어설플 수밖에 없어요. 누가 봐도 많이 안 해본 사람이니까. (웃음)
 

그래서 너무 귀여웠어요. 그 장면이 웃기기도 하지만, 감동적이기도 해요. 둘이 화해를 안 할 것 같다가도, 우정이가 풀어주는 거잖아요. 선우와 우정이의 관계는, 계속 싸우더라도 한쪽에서 풀어주고, 그렇게 서로를 잘 이해하는 관계 같아요. 한지은 배우가 생각한 둘의 관계는 어땠나요.

우정이는 기본적으로 되게 순수한 사람이에요. 현실과 타협하지 않을 수 있는 강인함은 순수함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주변에서 다 헤어지라고 할 때도 선우를 잡을 수 있었고. 우정이는 ‘내가 마음에 끌리면 하는 거야’라고 생각하는 친구예요. 그리고 선우는 유난히도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고요. 그래서 자신의 상황을 우정이에게 떠넘기고 싶지 않아서 도망치려고 했던 건데, 그런 부분들이 우정이에게는 서운하게 느껴질 수 있죠. 선우는 우정이를 싫어해서 그런 게 아니라, 오히려 너무 사랑해서 그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결국, 서로가 서로를 너무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이 있어서 관계가 유지되지 않았나 생각해요.
 

배우 한지은. 사진제공=그램엔터테인먼트
배우 한지은. 사진제공=그램엔터테인먼트


실제로도 한 배우님은 주변에서 다 말리고, 사람들의 반대에 부딪힐 때도 자신의 확신을 밀고 나가는 편이신가요? 우정이가 본인과 닮았다고 생각하시나요.

완전요. 제가 앞서 <결혼, 하겠나?>가 꼭 사랑에 관한 이야기만은 아니라고 한 것처럼, 저 역시 모든 면에서 우정이가 공감이 많이 됐어요. 그래서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몰입이 많이 됐어요. 저도 제가 꽂힌 거, 마음에 가는 거는 주변에서 뭐라고 해도 해야 하는 성격이에요. 그런 성격 때문에 연기도 지금까지 할 수 있었던 거고요. 그래서 우정이랑 닮은 지점들이 많은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입버릇처럼 내 삶의 모토라고 한 말이 “어른이 되어서 순진함을 잃을 수는 있지만 순수함을 잃지는 말자”라는 거였거든요. 그런데 우정이는 그런 지점이 비슷해요.
 

한 배우님이 연기를 시작할 때 주변에서 반대하셨나요? 중간에 연기를 그만두고 스피치 강사로 일한 적도 있다고 들었어요.

네. 집에서도 어마어마하게 많이 반대하셨어요. 제가 연기를 시작했다가, 그만두고 방황을 하던 시절이 3~4년 있었어요. 그때 스피치 강사를 했는데, 부모님은 정말 좋아하셨어요. 부모님 입장에서는 안정적으로 느껴지고, 비전도 있어 보이니까. 그런데 저는 오히려 연기에 대한 간절함이 커지더라고요. 딴 걸 한다고 방황을 했는데, 연기보다 더 좋은 걸 못 찾겠는 거죠. 그렇게 지내는 시간이, 내가 연기를 정말 얼마나 좋아하는지, 얼마나 연기를 하고 싶은지를 깨닫게 해준 시간이었어요. 그래서 다시 배우로 돌아왔어요. 저한테도 용기가 필요했어요. ‘다시 돌아가면 너, 평생 네가 책임지고 할 수 있어? 맨땅에 헤딩인데, 아무것도 없는데 할 수 있어?’를 스스로에게 정말 많이 물어봤어요. 그래도 해야겠는 거예요. 그래서 집에다 통보했죠.
 

그런데 스피치 강사 일이 잘 되었나 봐요. 부모님도 좋아하신 걸 보면요.

그래도 단기간에 잘 해가고 있었던 것 같아요. 공기업 같은 곳에 출강도 가고, 어린아이부터 직장인까지 다양한 연령대를 가르쳤어요. 그런데 제가 연기가 싫어서 그만둔 게 아니다 보니까, 다시 돌아왔죠. 제대로 해보지도 않고 그만둔 거니까, 내가 뭘 얼마나 했다고 그만두나, 내가 그냥 겁쟁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돌아왔어요. <귀>(2010)라는 작품을 찍고 연기를 잠시 그만두고, <수상한 그녀>(2014)로 복귀했어요.
 

〈결혼, 하겠나?〉스틸컷
〈결혼, 하겠나?〉스틸컷


<결혼, 하겠나?>라는 제목에 많은 사람들이 끌리는 건, ‘결혼’에 대해 요즘 청년들이 품은 공통의 의문 때문이기도 할 거예요. 저도 그렇고요. 한지은 배우님은 요즘 ‘결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계세요?

저도 비슷한 생각이에요. 저는 비혼주의자는 아니거든요. 어릴 때는 결혼과 가정에 대한 로망이 있을 정도로. 그런데 살아가다 보니까, 내 현실에 그런 일이 어울리는 게 맞나라는 생각은 들어요.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거지,라는 물음표가 생기는 것 같기는 해요. 아직까지는 저는 조금 더 자리를 잡고,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거든요. 그런데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가고.
 

한지은 배우는 어느새 30대 후반이 되셨는데, 아직도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현실을 잘 살아가려고 발버둥 치는 사회 초년생의 이미지가 있으신 것 같아요. <꼰대인턴>이나 <멜로가 체질> 등, 유난히 그런 인물을 많이 연기하시기도 했고요.

저를 바라보는 모습이 어떠신지 저도 궁금해요. (나이보다 어리게 보이는 건) 나름,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순수함을 품고 살아서 그런가. 저는 순진함을 잃어도 순수함을 잃지 않고 살고 싶거든요. 내가 순수함을 잃는 순간, 삶이 재미없을 것 같아요. 저는 호기심도 많은데, 순수함이 사라지는 순간 호기심이 사라질 것 같고, 그러다 보면 삶이 건조해질 것 같고.
 

드라마 <개미가 타고 있어요>에 출연하실 때는 직접 OST 트랙의 가사를 쓰기도 하셨잖아요. 그런 걸 보면, 새로운 분야에 대한 호기심도 있으신 것 같은데요.

좋아하는 걸 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제가 글을 잘 쓰는진 모르겠지만, 글 쓰는 걸 좋아하고, 책 보는 걸 좋아하고, 음악계에 로망이 있어요. 음악 하는 분들이 멋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긴 글보다는 시 형식의 함축적이고 짧은 걸 쓰는 걸 좋아해서 끄적끄적을 많이 하는데, 작사를 되게 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김이나의 작사법」이라는 책도 읽고요. 원래 작사 학원도 다녀볼까, 생각하기도 했는데 괜히 학원 가서 배웠다가 틀에 갇히고 싶진 않았어요. 어쨌든 창의성이 발휘되어야 하는 일이니까, 내가 혼자 시도해 보기 전에 먼저 틀을 갖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연기도 그렇게 해왔던 거 같긴 해요. 입시할 때는 단기에 연기 입시 준비를 하긴 했지만, 그 이후에는 동료들끼리 연기 스터디를 많이 해보고. 전문적으로 배우지는 않고, 책에서 배우고 그랬어요. 그게 저만의 스타일인 것 같아요. 부족하더라도 내 것을 채워가고 싶다는 게 저의 생각인 것 같아요.

 

〈결혼, 하겠나?〉스틸컷
〈결혼, 하겠나?〉스틸컷


지난주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는 조깅을 하다가 <결혼, 하겠나?>를 요약할 한 마디가 떠올랐다고 말씀하시기도 했는데요. 평소에 조깅을 즐겨 하시나요.

한강에서 러닝 하는 걸 좋아해요. 그런데 러닝 할 때뿐만이 아니라, 평소에도 혼자 시간을 많이 보내는데, 가만히 앉아서도 생각을 계속하는 게 일상이에요. 그래서 몸은 되게 게으른데 머리는 항상 바빠요. 샤워할 때 그렇게 생각이 잘 나더라고요. 러닝 할 때는 혼자서 막 머릿속에서 동기부여를 해요. 앞을 보는 거야, 이건 인생이야. 멀리 봐, 이러면서.
 

MBTI N(직관형) 이시죠? (웃음) 스피치 강사를 단박에 그만둔 것 보면, J(계획형)보다는 P(인식형)이신 것 같기도 하고요. 자신의 직감을 믿고 거기에 이끌리는 성격이신 것 같은데요.

맞아요. 샤워할 때 혼자 인터뷰 많이 해요. MBTI는 INTP고. 저는 작은 결정을 할 때 좀 소심하고, 큰 결정은 대범한 것 같아요.

 

배우 한지은. 사진제공=그램엔터테인먼트
배우 한지은. 사진제공=그램엔터테인먼트


2006년에 데뷔한 이후, 벌써 경력이 약 18년이 됐어요. 오랜 시간 연기를 해 오셨는데요. 본인의 배우 인생을 지금 돌이켜 보면 어떠신가요.

여러 가지 생각이 많이 들죠. 너무너무 연기를 하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고, 너무 힘들어서 도망가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고. 여러 가지 오르막과 내리막이 많은데, 이제는 성숙하게 잘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꽤 오랜 시간 배우라는 일을 하고 있고, 감사하게도 나라는 배우를 찾아주시고. 나의 모난 부분과 다듬어지지 않았던 부분이 다듬어지는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배우라는 직업이 매력적인데, 다듬어지는 과정이 나 개인의 인생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다른 좋은 작품을 만났을 때 연기로써 보여줄 수 있잖아요. 그래서 앞으로는 더 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아무리 힘들다 해도, 계속할 수밖에 없는 매력이 있는 직업이에요. 저는 연기를 할 때, 아예 새로운 것을 갖다 쓰는 것보다 내 안의 한 지점을 꺼내서 쓰거든요. 제 안에 하나의 색깔만 있는 게 아니니까. 그런데, 일상에서는 꺼낼 수 없는 내 안의 지점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연기를 통해 작품에서 꺼내 볼 수 있는 게 얼마나 행운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