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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럭키, 아파트〉 배우 손수현, “혐오와 마주한 현실 스릴러의 생얼”

씨네플레이
배우 손수현 (사진제공=(주)인디스토리)
배우 손수현 (사진제공=(주)인디스토리)

숏컷의 짧은 머리가 이렇게 잘 어울리는 배우였던가. 중저음의 목소리는 한층 더 낮고 단단해졌다. 데뷔 초 소녀 감성의 이미지로 손수현을 기억한다면, 10년 차 배우로 독립영화에서 활약하고 있는 이 배우에게 <럭키, 아파트>의 ‘선우’는 아마도 그가 가장 멀리 돌아 새롭게 완성한 도전이자 이미지일 것이다. <럭키, 아파트>에서 손수현은 9년 차 레즈비언 커플 선우를 연기한다. 연인인 희서(박가영)와 함께 최근 막 아파트를 장만했지만 아래층에서 전해오는 원인불명의 악취로 럭키할 거라 믿었던 ‘현재’는 없다. 때마침 실직한데다, 다친 다리에 깁스를 하고도 선우는 바쁘게 움직인다. 악취의 원인을 찾아야 해서, 고독사 한 고인의 사연을 외면할 수 없어서, 아파트 주민들의 혐오 발언에 맞서야 해서.

 

모두가 제발 분란을 일으키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데도 선우는 끝까지, 지치지 않고 움직인다. 선우가 이 불행한 ‘죽음’의 냄새에서 맡은 건 성소수자로 살아가며 법적, 제도적 장치 없이 차별과 혐오에 노출된 자기 자신의 불안과 공포를 향한 감각이기 때문이다. 선우는 어떤 대가도 없이, 탐정 같은 호기심으로 직진하고, 공감의 감정으로 타인을 감싸 안아 관객을 애도의 마음으로 이끌어 주는 캐릭터다. 현실에서라면 흔치 않은 공감형 캐릭터의 등장이다. 아파트의 층수만큼이나 쌓여 가는 분노와 혐오의 시대에, 손수현의 색깔로 만들어 낸 선우를 만나는 건 우리에게 참으로 럭키비키다.


배우 손수현 (사진제공=(주)인디스토리)
배우 손수현 (사진제공=(주)인디스토리)

올여름 <양치기> GV 행사 때 같이 토크하고 오랜만인데요. 그때 퍼즐맞추기가 취미라고 했던 게 인상적이었어요. 요즘도 퍼즐 열심히 하나요?

그날 샀던 퍼즐도 완성했어요. (웃음) 그런데 요즘엔 좀 안 하고 있어요. 퍼즐 자체에 먼지가 많아요. 종이 먼지가. 요즘이 환절기라서, 제가 비염이 심해서 그래서 못하고 있어요. 이 시기가 지나야 할 수 있어요.

 

마침 <럭키, 아파트> 개봉으로 한창 바쁜 타이밍이죠?

작년 여름에 찍은 작품이에요. 진짜 더울 때 찍어서 더 기억에 남아요. 너무너무 더웠던 기억이 가장 먼저 나네요. (웃음)

 

〈럭키, 아파트〉
〈럭키, 아파트〉

 

그 사이 커트머리를 한 선우와 달리 머리가 많이 길었고요. 작품 때문에 이렇게 짧게 자른 건 처음이죠? 숏컷 헤어스타일이 인상적이었어요.

네, 이 정도 짧게는 처음이었어요. 감독님이 “선우는 무조건 잘라야 합니다” 처음부터 요구하셨어요. 그때 마침 머리를 기르고 있던 때였는데. (웃음) 작품으로 머리 자르는 건 언제든 환영이고 그래서 아주 기꺼이 잘랐습니다. 처음엔 감독님이 생각한 것보다 제가 너무 짧게 자르고 와서 문제였어요. 오히려 촬영 땐 조금 기르고 들어 간 거예요.

 

강유가람 감독과 작업은 어떻게 하게 됐나요. 다큐멘터리 작업을 지속적으로 해왔던 연출가라, 제안받고 신선함도 있지만 의외기도 했을 것 같은데요.

감독님이 만드신 극영화 단편 <진주머리방>(2017)을 봤었거든요. 좋아했던 작품이었고요. 감독님 다큐멘터리를 봐도 담아내는 방식이 섬세하세요. 다큐멘터리는 순간적인 포착이잖아요. 유연하게 상황을 잘 따라가야만 담아낼 수 있는 형식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걸 완벽하게 하는 감독이라면 미리 준비해서 만드는 극영화는 얼마나 더 잘하실까 기대가 있었어요. 뭣보다 늘 이런 이야기가 저한테 와주기를 기다렸어요. 캐릭터를 통해 세상의 이면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 그게 배우가 할 수 있는 매력적인 점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시나리오가 너무 좋았어요. 저한테 제안 주셔서 정말 감사했죠.

 

〈럭키, 아파트〉
〈럭키, 아파트〉

 

선우는 차별과 혐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레즈비언 캐릭터를 연기했는데요. 선우를 표현하기 위한 설정을 어떻게 잡아 나갔나요.

제가 퀴어 캐릭터를 여러 번 연기해서 딱히 특별히 다르게 접근하지는 않았어요. 단편 <마더 인 로>(2019)에서는 애인의 엄마가 찾아온 상황에서 캐릭터가 하는 행동을, 또 다른 단편 <가장 보통의 하루>(2022)는 멸망의 날에 내가 보고 싶은 사람을 보러 가는 것을 그리는 것들이었어요. 단편 안에서 캐릭터의 순간을 보여주는 거라, 그 안에서는 내가 퀴어 캐릭터라는 것을 인지할 필요가 없었지만, <럭키, 아파트>에서는 선우가 퀴어인 것을 주변 사람들의 시선으로 계속 인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거죠. 그게 결국 혐오와 맞닿는 이야기다 보니, 선우와 희서 커플이 상처받는 상황뿐만 아니라, 아랫집의 전 세대 레즈비언 커플의 비극적인 지점까지 생각을 계속 하게 됐던 것 같아요.

 

선우는 마치 탐정이나 형사처럼 아랫집에서 나는 악취를 해결하려는 나서는데요. 주변의 만류에도 멈추지 않는 모습이 한편으로는 왜 저렇게까지 할까 싶을 정도로 무모해 보이기도 하는데요. 선우의 행동이 선뜻 이해가 가던가요?

캐릭터에 가까워진다는 건 그걸 넘어서 그냥 선우의 상황을 이해하고, 선우니까 이렇게 한다는 걸 받아들이는 거라고 생각해요. 선우가 주변에서 제발 가만히 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건 뭐라도 해서 자기 자신을 증명받고자 하는 시도였을 거예요. 그 결론에 다다르니까 그 모든 상황들이 다 그냥 너무 당연했던 것 같아요.

 

〈럭키, 아파트〉
〈럭키, 아파트〉
〈럭키, 아파트〉
〈럭키, 아파트〉

 

반깁스로 거동이 불편한데도 악취의 원인을 찾아나서는데요. 이 제약이 선우의 행동을 더 갑갑하게 보게 만드는 장치로 작용하는데요. 처음부터 설정한 거였나요. 촬영 때 고생도 많았을 것 같아요.

원래 다친 다리가 설정이었어요. 하면서 감독님이 진짜 지독하다 싶었어요. 선우가 절대 운전도 못하게 다친 다리를 오른발로 설정하셨어요. (웃음) 사람들은 다리가 불편하면 당연히 그냥 집에 있어야 하고 뭔가 이 다친 다리로는 할 수 있는 게 없을 것이다 할 텐데 그 다리로 정말 움직임이 많죠. 더군다나 한쪽 발을 깁스를 하고 절뚝이며 걸으니 화면에서 보면 움직임이 되게 커지더라고요. 그래서 조금 덜 흔들리게 하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그래도 통깁스는 아니어서 다행이었는데. 내내 하고 있으니 꽤 힘이 들더라고요.(웃음)

 

9년 차 커플이지만, 선우는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성소수자 커플이라는 데서 오는 불안이 있는데요. 아파트 역시 희서의 지분이 더 크다는 데서 오는 불안도 크고요. 아랫집 노인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장면에서 선우의 공포가 극대화되는데요.

선우는 안정감을 느끼고 싶었던 것 같아요. 희서와 9년을 사귀었지만 법적으로는 뭔가 이들의 관계를 증명해 줄 게 아무것도 없고, 그럼 아랫집 노인처럼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 그게 촘촘하게 선우의 행동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꿈 장면에서 선우는 노인의 모습을 마치 자신의 미래처럼 보게 되는데요. 그 장면이 스릴러 같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선우에게는 사람들의 차별적 시선이 가득한 현실 자체가 스릴러일 수 있죠, 그야말로 현실 스릴러. 영화를 본 친구가, 퀴어가 아닌 사람들이 퀴어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었다고 하는 데 그 말에 의도가 전해졌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럭키, 아파트〉
〈럭키, 아파트〉

 

연기 외에도 단편 <프리랜서>(2020) <선풍기를 고치는 방법>(2020)를 연출해 왔는데요. 다음 출연작 만큼이나 이제는 다음 연출 계획도 궁금해지는데요.

 

늘 무언가 쓰긴 해요. 친구들 이야기를 듣다가 재밌겠다 싶은 건 개발시켜 보기도 하고 쟁여놓기도 하고요. 최근에는 <마더 인 로>를 같이 한 신승은 감독님이 장편을 찍었는데 제작부로 참여했어요. 배우로는 2회 차 정도 짧게 출연하고 나머지는 제작부 일을 열심히 하느라 그거 하느라 한동안은 정신이 없었어요. 한번 해 보니 또 하고 싶어요. 전 연기도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영화와 관련된 일이라면 다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연기를 좋아하는 것과 별개로, 나는 연기만 해야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너무 불행한 것 같아요. 365일 연기를 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냥 프리랜서라고 생각하면서 여러 가지 일을 하니까 더 오래 그렇게 생각하면 좀 더 오래 연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초조해하지 않고 오랫동안 꾸준히 이 일을 하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를 볼 관객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요.

감독님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혐오와 어떤 혐오적 시각과 여러 가지 상황들을 염두에 두고, 아파트라는 공간에 현재를 살아가는 퀴어 그리고 전 세대의 퀴어, 또 다음 세대의 퀴어 일수 있는 존재까지 촘촘하게 잘 쌓아놓으셨다고 생각해요. 혐오적 시선이 어떤 비극을 불러오는지, 그리고 그것에 대해 우리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이 영화 안에 가득 담겨 있어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 현실에서의 공포가 공포로만 끝나지 않는, 따뜻한 연대로 마무리된다고 생각해요. 감독님께서 ‘애도’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관객분들도 그 마음을 그대로 받아들여 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무도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자기의 공간에서 안전하길 바라요.

 


씨네플레이 이화정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