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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럭키, 아파트〉 강유가람 감독, “로제의 ‘APT.’가 히트하는 시대에 우리는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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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키, 아파트〉 강유가람 감독 (사진제공=(주)인디스토리)
〈럭키, 아파트〉 강유가람 감독 (사진제공=(주)인디스토리)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가 상승세다. 로제의 ‘APT.’ 차트 순위도, 서울의 아파트 시세도 떨어질 줄을 모른다. 그러니 ‘영끌’을 해서라도 자가 아파트만 있으면 모든 게 달라질 줄 알았다. 아니, 모든 게 달라지긴 했다. 보다 안 좋은 방향으로. 9년 차 동거인, 레즈비언 커플 선우(손수현)와 희서(박가영)는 막 아파트를 샀다. 문제는, 아랫집에서 올라오는 악취!다. 강유가람 감독의 <럭키, 아파트>는 선우가 코를 찌르는 그 악취의 근원을 찾는 동안 마주치는 ‘언 럭키’한 상황과의 마주침이다. 선우가 냄새를 좇으면 좇을수록, 오랜 연인 희서와 관계는 점점 악화되고, 성소수자를 향한 아파트 주민들의 혐오와 차별은 도드라진다. 집값 떨어질까 문제를 덮으려고만 하는 주민들과 ‘문제 일으키지 않고’ 살려는 희서의 만류 앞에서 선우의 공포는 점점 극대화된다.

악취의 원인인 아랫집 노인의 고독사, 그리고 노인의 정체성에 관한 질문은 결국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서 제도적 보호장치 없이 살아갈 선우와의 동일시이자, 불안을 증폭하게 만드는 기폭제다. 공들여 한 인테리어가 무색하게도, 이 사회가 품고 있는 ‘진짜’ 악취는 감출 수 없다. 모두가 그만하라고, 조용히 살라고 하는 가운데, 선우가 끝까지 이 냄새를 바로잡으려고 하는 것은 결국 공포의 해소와 맞닿아 있는 풀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된다.

<기생충>의 반지하가 하층민의 정서를 장르적 장치로 엮어 냈다면, 강유가람 감독은 중산층의 상승 욕구를 대변하는 아파트를 기반으로 이 사회가 가지고 있는 혐오의 근원을 찾아나가고자 한다. 그러고 보면 강유가람 감독은 데뷔작 <모래>(2011)에서도 강남 아파트를 바탕으로 가족사를 풀어 낸 주거의 문제를 짚어 왔다. 이후 용산 기지촌 여성 3인의 삶을 따라 간 <이태원>(2016), 촛불시위에서의 혐오 문제를 다룬 <시국페미>(2017), 영페미니스트들의 현재를 그린 <우리는 매일매일>(2019)까지, 그간 다큐멘터리에서 보여 준 관심사는 극영화라는 장치를 통해서도 여전히 살아 있다. 강유가람 감독을 만나 선우와 희서의 아파트를 점검해 보았다.


〈럭키, 아파트〉 포스터
〈럭키, 아파트〉 포스터

 

아파트로 이사오고 나서 제목의 ‘럭키’와 너무도 멀어진 불행한 상황에 맞닥뜨린 커플의 이야기인데요. 오히려 그래서 럭키!라는 단어를 고수하고자 의지가 감독의 느껴지는 제목이었어요.

처음에는 ‘너와 나의 집’ 이런 식의 제목을 생각했어요. 그런데 한국 사람들에게 아파트를 사면 내가 어떤 기준치에 도달했다 이런 심리가 있잖아요. 이들도 자기가 원하는 삶의 어떤 영역에 도달하고 싶은 욕망이 있었을 테고 아파트를 사고 나서는 그게 이루어진 거라고 처음엔 생각했을 거라서 럭키!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거서 보니까 그때부터 언럭키한 상황이 많이 펼쳐지는 거죠. 그런 것들이 좀 반어적인 느낌을 주는 것 같아서 그 느낌을 살리는 제목을 쓰게 됐어요.

 

마침 로제의 ‘APT.’가 글로벌 차트 기록을 세우는 럭키! 한 상황이네요. 검색에 용이하죠.(웃음) 한국을 대표하는 주거형태인 아파트가 이제 다양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데요.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를 주 소재로 접목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도 이제 40대가 되고 보니까 주변에서 아파트를 사는 것이 확실히 화제에요. 이 나이 때쯤이면 주거를 바꾸거나 청약문제를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되죠. 희서는 중산층이잖아요. 그동안 자신이 누려왔던 삶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을 거고, 그걸 연인인 선우랑 같이 이루어야 된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런데 실직을 한데다, 자신의 집안 형편도 좋지 못한 선우는 계급적으로는 희서와 기반이 다르죠. 희서처럼 아파트를 사고 그걸 유지하는 게 선우에게는 부담일 수 있어요. 아파트를 사는데 자신이 크게 경제적으로 기여를 못하는 만큼, 구매를 할 때 과연 찬성을 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파트라는 공간에 대한 이중적인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부담이 되면서도 가져야 한다는 생각, 그런 심리를 이 커플의 아파트 입성기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어요.

 

〈럭키, 아파트〉
〈럭키, 아파트〉

 

9년 차인 레즈비언 커플 선우와 희서에게 아파트 아랫집 노인의 고독사 문제가 엮여 드는데요. 실제 모티브가 된 사건이 있었나요.

​친구의 지인이 아파트를 구입했는데 아랫집에서 있었던 있었던 사례를 이야기해줘서 거기서 모티브를 좀 얻었고요. 선우 캐릭터는 주변 사람들의 특징들을 좀 조합했어요. 희서는 제약회사 다녔던 친구가 있어서 자문을 구하기도 했고요. 모두 특정한 인물을 참고했다기보다 제 주변의 사례나 캐릭터들을 조합해서 만들게 됐어요. 실제로 퀴어 커플이 어떤 순간에 딱 맞닥뜨리게 되면 그 안전망이 아예 없기도 하고 그랬을 때는 진짜 뭔가 사상누각처럼 다 무너지는 거잖아요. 둘 중에 한 명이 갑자기 아팠을 때 문제들이 드러나기도 하죠. 그런 법률적인 부분들이 너무 공포이기 때문에 미리 유언장 쓰기라든가 그런 단체들에서 그런 교육도 많이 하고 있고요.

 

아랫집에서 올라오는 악취가 이렇게 인물들의 저변에 깔려 있는 심리, 공포심의 기폭제가 되는데요. 흥미로운 건 악취에 민감한 선우와 달리 희서는 그 냄새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죠. 애써 무시한 것일 수도 있고요. 한 집에 살지만 둘의 다른 반응이 중요한 지점인데요.

​그 부분에 대해 처음엔 고민도 했었어요. 희서는 왜 선우에 비해서 냄새를 못 느끼는지 피드백을 받았거든요. 비염 설정을 더하기도 했었어요. 그러다가 희서는 선우에게, “그냥 참자”라고 하기도 했고, 의도적으로 무시할 수도 있겠다 싶었죠. 선우는 좀 사실 심리적으로 이 집에 대한 부채감이 너무 강한 상태잖아요. 자기가 이 집에서 뭔가를 하나라도 기여하고 싶은 마음에 냄새에 더 민감해진 부분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럭키, 아파트〉
〈럭키, 아파트〉

 

냄새의 원인을 찾아가는 선우는 사건에 적극적이고, 그래서 유사 탐정의 이미지를 가지는데요. 히치콕식 스릴러의 느낌도 초반에는 사뭇 느껴지고요.

​영화의 얼개 자체는 두 커플의 잔잔한 이야기다 보니 처음 시나리오를 개발할 때는 아파트 소동극처럼 해보면 어떨까. 선우가 말씀하신 것처럼, 좀 밝은 성격의 탐정처럼 원인을 찾아가는 식으로요. 그래서 장르물로 쓴 버전도 있었어요. 그런데 장르성을 강조하다보니 원래 제가 하고 싶었던 주제의식이 약해지기는 하더라고요. 초반엔 그 영향이 남아서 스릴러적인 부분들이 좀 보이는 것 같아요. 특히 현실적인 부분을 강조하기만 해도 이 커플이 겪는 일상이 좀 공포스러운 부분이 없지 않았어요.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오는 위협 같은 것들을 무시할 수는 없었던 거죠. 그래서 후반 부분에 음악 장치들을 통해 그런 느낌을 좀 보여주려 했어요.

 

장르를 넘어서, 선우의 행동은 사실 굉장히 실질적인 문제와 얽히게 되는데요. 동거를 하고 있지만 아파트 소유 지분도 희서에게 더 있으니, 둘의 관계에서 오는 불안이 선우에게는 집을 잃는 의미가 될 수 있을 테고요.

둘은 9년이나 사귄 커플인데요. 이성애자 커플들은 이제 사실혼 관계로 인정되어 지분 같은 걸 주장할 수도 있는데 선우는 차용증에 해당하는 금액 외에 지분을 주장하기는 어려울 것 같거든요. 아파트의 명의도 희서이다 보니 거기서 오는 불안이 있었을 것 같아요. 이 관계가 흔들리는데, 내가 희서와 헤어지면 나 어디로 가야 그래서 더 심리적인 압박을 느끼게 되죠. 희서와 관계가 소원해진 상태에서는 자기 자리가 아닌 것 같은 그런 느낌 때문에 냄새에 더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럭키, 아파트〉
〈럭키, 아파트〉
〈럭키, 아파트〉
〈럭키, 아파트〉

 

 

결국 아랫집 악취와 아파트 주민들의 이해관계가 상충되는데요. 고독사, 길고양이, 성소수자 등 사회의 축소 공간인 아파트에 소수자를 향한 혐오와 차별이 만연해 있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는데요.

퀴어들 중에서 오래된 파트너와 같이 살다가 명의를 가지신 분이 먼저 돌아가시면서 동거인이 쫓겨났는데 그분이 그 아파트에 다시 가서 자살한 사건이 있었어요. 그게 퀴어인들에게는 실질적인 공포로 다가올 수 있는 거죠. 누구에게나 보장될 수 있는 살 권리임에도 배제되어 있다는 데서 오는 공포죠. 그런 것들이 고독사와도 많이 연결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어요. 전 세대 퀴어들, 특히 ‘바지씨’(남성적인 레즈비언을 뜻하는 1970년대 은어)들이 노년에 혼자 계시거나 이런 사례들도 많고요. <불온한 당신>(2017)이나 <홈그라운드>(2023)같이 전세대 퀴어인들을 그린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이들의 이야기에 더 관심을 가졌어요. 이분들에게는 안전망이 너무 약하죠. 최근에 동성 부부간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등록이 인정이 됐지만, 그에 대한 백래시가 또 엄청나더라고요. 그분들의 존재를 알릴 수 있는 이런 이야기가 더 많이 나와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아파트 주민들의 시선과 대사들은 실제 사례가 바탕이 되었을 것 같은데요. 어느 정도 반영되었나요.

시나리오 쓰면서 취재를 많이 했는데 ‘우리 동네 아파트에 레즈비언 사는 것 같은데 뭐 신고 가능한가요?’ ‘조용하게 살면 괜찮은데 애들 보기에 조금 민망하네요.’ 같은, 아파트 단톡방 장면에서 나왔던 대사들이 너무 다 맘카페 같은 데 되게 많았어요. 오히려 영화에서는 좀 순화해서 쓴 편이에요.

 

 

〈럭키, 아파트〉
〈럭키, 아파트〉

 

 

이번 작품은 감독님의 첫 장편 극영화 연출작이라는 점에서도 새로운 시도인데요. 기존 다큐멘터리 대신 극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있나요.

현실이 더 영화같다잖아요. 그간 현실을 담아내기에도 벅찼어요. 그래서 다큐멘터리의 매력에 좀 많이 빠져서 살았던 시간이었던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방식의 이미지가 사람들한테 조금 더 가닿게 하는 걸까, 그에 대한 도전을 좀 해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배우들이 정말 잘 해주셨어요. 그리고 극영화로 만든 단편 <진주머리방>(2017) 배급사가 인디스토리였는데 그 작품을 보고 저한테 제안을 해주셨어요. 혼자였으면 포기하고 싶었을 텐데, 영화를 만드는 데 정말 큰 힘을 주셨어요.

 

디테일하고 사실적인 시나리오를 쓰는 데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의 방식이나 경험이 시너지를 일으켰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 영화를 두고 하이퍼 리얼리즘이다, 자기 커플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 공들여서 현실을 반영한 보람이 있다 생각이 들기도 해요. 그런데 쉽지는 않았어요. 너무 다른 영역인데 내가 너무 겁 없이 시작했나 싶더라고요. 사실 다큐멘터리는 출연자들이 많이, 다 해주시잖아요. (웃음) 그런데 그걸 극영화 시나리오로 옮기는 건 쉽지 않더라고요. 현실에서 정말 일어나는 일이긴 한데, 정말 잘 담아내고 싶은데 있는 그대로 옮기는 게 아니라, 막상 쓸 때는 무언가 가미를 해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상상해서 써야 하잖아요. 그동안 다큐멘터리 출연자분들이 저에게 정말 주옥같은 대사들을 그냥 무상으로 주셨구나, 난 출연자들한테 빚지고 있었구나 많이 느끼면서 대사를 썼어요.

 

〈럭키, 아파트〉 촬영현장의 강유가람 감독(가운데)
〈럭키, 아파트〉 촬영현장의 강유가람 감독(가운데)

 

주제의식이 너무 앞서나가는 건 주의해야 할 지점이기도 했을 텐데요.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와 달리 극영화를 만들면서 주의한 지점, 그리고 전달하고 싶은 점은 무엇이었나요.

처음 버전의 시나리오에는 선배 퀴어 세대들 이야기가 더 많았어요. 그런데 편집하면서 역시 선우랑 희서에게 집중하는 게 낫겠다라는 방향성을 잡고 편집감독님과 함께 많이 덜어냈어요. 사실 클리셰적인 상황들이 좀 많다고 생각이 될 수도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인물에 감정 이입을 하거나 아니면 아랫집에 있는 분의 삶을 좀 상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엔딩신의 감정을 잘 전달하고 싶었어요.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뭔가 희망이 될 수도 있고 연대가 될 수도 있는 감정을 주고 싶어서, 정말 공을 들여서 찍은 장면이었어요. 돌아가신 분에 대한 마음을 정리하면서 관객분들도 그 애도의 과정에 동참하는 느낌만 받을 수 있다고 한다면 이 영화를 만든 의미는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만든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