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래디에이터 Ⅱ>(이하 편의상 2로 표기한다)는 폴 메스칼의 루시우스가 사건의 중심에서 극을 이끄는 역할을 하지만, 그와 얽히게 되는 수많은 인물들이 있기에 이 대서사시가 채워진다. 루시우스에게 복수심의 단초를 제공하며 이야기의 도화선이 되는 아카시우스, 루시우스에게 협력하는 듯하면서 뒤에선 다른 판을 짜는 마크리누스, 그리고 돌아온 루시우스를 보며 다시금 과거의 상처를 대면해야 하는 루실라 등 <글래디에이터 2>는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한 명배우들의 시너지가 빛난다. 리들리 스콧 감독과 폴 메스칼의 이야기를 들었던 1부에 이어 이번엔 페드로 파스칼, 덴젤 워싱턴, 코니 닐슨의 이야기를 만나보자.
아카시우스 役 페드로 파스칼
“리들리 스콧의 세계는 너무나 완벽하다”

페드로 파스칼의 합류는 <글래디에이터> 속편 소식에 모든 이들의 눈길이 쏠리는 계기가 됐다. 최근 드라마 <만달로리안>, <더 라스트 오브 어스>를 연이어 히트시켜 현재 할리우드에서 작품 선택이 좋은 '믿보배' 중 한 명이 된 페드로 파스칼의 합류는 간만에 돌아온 속편에 대한 불안감을 날려버리기 충분했다. 실제로 그는 정치적 계략이 판을 치는 로마에서도 강직한 아카시우스의 성품을 온전히 드러낸다.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 기분이 어땠는가?
배역은 상관없었다. 어떤 역할을 맡든 적어도 리들리 스콧 감독을 만날 수 있다는 건 확실하니까. 내가 정말로 가장 좋아하는 감독 중 한 명이자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감독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더라. <에이리언>(1979)은 사실 당시 나이로는 안 되는 영화였지만 나의 어린 시절에 그 영화는 정말로 존재감이 엄청났다. 그다음에는 <블레이드 러너>(1982)를 봤고 고등학교 때 <델마와 루이스>(1991)를 봤고 대학을 졸업할 즈음에 <글래디에이터>(2000)를 봤다. 이 모든 영화가 나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그래서 그냥 그를 만나 이야기라도 나누고 싶었다.
각본을 처음 읽었을 때의 감상은 어땠나.
각본을 읽고 나를 정말 흥분시킨 게 두 가지였다. 첫째, 아카시우스가 오프닝씬에 나온다는 것. 나는 훌륭한 오프닝씬을 정말로 사랑하는데, 오프닝씬에 나오게 되다니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다. 둘째는 아카시우스가 로마와의 첫 번째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아키시우스는 관객들을 우리가 전편에서 본 로마로 다시 데려간다. 비록 로마가 전편과 매우 달라진 모습이긴 하지만. 그리고 그는 유일하게 살아있는 전편 캐릭터 루실라와 우리를 연결해주는 사람이기도 하다. 이런 것들이 내 마음에 와닿은 부분들이었다. 그리고 갑옷과 의상을 착용하고 헤어와 메이크업을 받고 그 모든 것이 합쳐져 시각적 경험이 완성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아카시우스가 복잡한 캐릭터라는 것도 좋았다.
덴젤 워싱턴이 마크리누스를 맡았다. 그와 함께 연기하면서 어땠는가?
리들리 스콧 감독과 덴젤 워싱턴, 두 사람이 내 인생에 끼친 영향력을 합치면 정말 믿기 어려울 정도다. 덴젤과는 <더 이퀄라이저 2>(2018)를 함께한 적이 있어서 어떻게 보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그때 내가 본 그의 모습 그대로더라. 그는 스타 그 자체이고 예술가다. 내게 덴젤 워싱턴은 스타와 예술가가 똑같이 합쳐진 사람이다.

이번 영화의 세트장은 실제 사이즈의 일부만큼 제작했다고 들었다. 콜로세움이나 궁전 세트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
더할 수 없이 소중했다. 이런 경험은 정말 처음이었다. 이 정도는 아녀도 대규모 세트장을 경험할 때마다 매번 놀라움이 커지는 법인데, 이 영화 같은 세트장은 정말이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언젠가 내가 세트장에 앉아 있는데, 그때 리들리 스콧 감독은 스턴트 팀과 함께 해상 씬을 점검했다. 폴 메스칼하고도 했던 것 같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더라. ‘이건 두 번 다시없을 경험이니까 잘 봐두자.’
리들리 스콧 감독이 훌륭한 감독인 이유는 무엇인가?
무엇보다 기술적으로 탁월하다. 그는 카메라 여러 대로 찍는다. 한 장면을 그 많은 카메라에 각각 담으려면 정말로 복잡한 과정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그가 구축하는 세계는 너무 완벽해서 놓친 게 하나도 없다. 리들리 스콧은 문자 그대로 세계를 건설한다. 그의 세트장은 하나의 온전한 세계다. 첫 촬영 3일 동안은 오프닝의 전투신에 집중되었다. 노 젓는 사람들과 궁수들이 탄 거대한 배들, 불을 쏘는 장치, 물을 뿌리는 장치, 도개교, 수백 명의 엑스트라가 있었다. 도개교는 실제로도 작동했다! 배우들이 상상력을 발휘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모든 게 실제로 다 있었으니까. 어렸을 때 꿈꿨던 것을 리들리의 세트장에서 직접 경험했다. 사실 실제로 영화계에서 일하다 보면 영화 찍는 과정이 상상과 다르다는 걸 알게 되는 법인데, 오히려 리들리의 세트장은 어릴 때 꿈꾼 그대로다.
폴 메스칼이 비슷한 연령대 중에서 가장 재능 있는 배우 중 한 명이다. 같이 출연한 배우의 관점에서 그의 연기가 훌륭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내가 캐스팅되기 전, 영화 제작 발표와 폴 메스칼이 캐스팅되었다는 이야기를 먼저 들었는데, 그 얘길 듣고 정말 딱이라고 생각했다. 완벽한 캐스팅이었다. 왠지 그가 이 영화에 캐스팅될 것 같았는데 실제로 캐스팅되다니 신기했다. 솔직히 놀라지도 않았다. 그가 얼마나 연기를 잘하는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폴 메스칼과 리들리 스콧이 아니었다면 이 영화가 절대로 잘 만들어질 수 없었을 거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여전히 놀랍긴 하다. 둘의 조합은 정말 완벽해서 실현되는 모습을 보는 게 정말 좋았다.
관객들이 이번 영화의 어떤 부분을 기대하길 바라는가?
재미를 기대하면 될 것 같다. <글래디에이터 2>는 가장 순수한 형태의 오락이니까.
마크리누스 役 덴젤 워싱턴
“폴 메스칼, 자신만의 빛을 달고 있는 배우”

덴젤 워싱턴의 출연 소식은 기대와 불안을 동시에 불렀다. (물론 실존인물을 모티브로 했음에도) 로마 시대 배경에서 흑인이 활약하는 모습은 쉽게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일 텐데, 극중 마크리누스로 출연한 덴젤 워싱턴은 이 인물이 어떻게 태생적 한계를 넘어선 입지전적 존재가 됐는지를 연기로 보여준다. 강자에겐 달콤함을, 약자에겐 억압을 무기로 사용하며 로마를 제 손안에 쥐는 일련의 모습은 덴젤 워싱턴의 능수능란함이 없으면 하나의 인물로 표현되지 못했을 것이다.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 어땠나. 특히 유명한 작품의 속편인데.
리들리 스콧 감독이 연출하는 <글래디에이터 2>라고 듣자마자, 리들리 스콧 감독의 글래디에이터 영화라니, 당장 시나리오를 보내달라고 했다. <글래디에이터>를 좋아하지 않은 사람이 과연 있었을까? 나도 당연히 팬이다! 속편 시나리오를 읽고 마음에 들었다. 언제 가면 되겠느냐고, 언제 시작하냐고 재촉하고픈 기분이었다.
출연작을 선택할 때 영감을 주는 감독의 작품이어야 한다는 점을 중요시한다고 말한 바 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어떤 점에서 영감을 주는가?
리들리 스콧 감독은 능력 있는 감독이다. 최고의 감독이고 거장이다! 좋은 각본에 출연 제의도 들어왔으니 그거면 충분하다. 리들리 스콧 감독과 예전에 함께한 <아메리칸 갱스터>(2007)도 큰 성공을 거두었고. 그래서 리들리 스콧 감독이 만드는 <글래디에이터 2>에 각본도 좋으니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게 없었다. 사실 나는 과정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뭐냐고 물을 때마다 ‘내가 다음에 찍을 영화’라고 답한다. 하지만 영화를 만드는 과정은 흥미롭다. 영화 제작은 감독의 매체다. 리들리 스콧의 영화니까 그가 원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 것이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기여를 하면 되는 거다. 내가 편안한 마음으로 어떤 작품에 출연하겠다는 결정을 내릴 수 있으려면 그 영화를 끌고 갈 조종사를 믿을 수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오랫동안 연기를 해왔지만 내가 정말로 믿고 비행할 수 있는 조종사는 소수뿐이다.

촬영할 때 가장 좋았던 장면은 무엇인가?
루시우스(폴 메스칼)와 마크리누스가 함께 나오는 장면들은 정말 훌륭하다. 힘과 에너지가 느껴진다. 하지만 촬영하면서 가장 즐거웠던 장면은 콜로세움 관객석에 앉아 술잔을 들고 젊은이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싸우는 모습을 구경하는 장면이었다! 그늘이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깃털 부채도 없었다. 어쨌든 그 장면이 가장 좋았다.
배우의 관점에서 폴 메스칼의 연기가 특별한 이유는 무엇인가?
폴 메스칼이 맡은 임무가 막중했다. 폴 메스칼은 자연스러운 남성다움과 겸손함, 강인함, 정직함의 균형이 아주 잘 어우러졌다. 제작진이 어떤 캐스팅 과정을 거쳤는지 모르지만 리들리는 적임자를 잘 뽑았다. 폴 메스칼은 이후로 더 크게 성공할 거다. 자신만의 빛을 가지고 있는 배우다. 그런 배우들이 있다. 자기만의 빛을 달고 다니는 배우들. 폴 메스칼도 그런 배우다.
마크리누스와 쌍둥이 황제 게타와 카라칼라는 어떤 관계인가?
마크리누스는 로마를 다스리는 두 형제가 그 자격을 스스로 얻어낸 게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마크리누스가 가진 모든 것은 직접 그의 힘으로 얻은 것이다. 그래서 그는 두 황제에 대해 ‘주어진 걸 받아먹는 것 말고 아는 게 뭐가 있는가’라는 식의 태도를 가지고 있다. 그가 가게 되는 길을 선택하게 된 것도 바로 그 생각 때문이다. 마크리누스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누구라도 이용할 사람이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글래디에이터 2>가 그가 만든 최고의 영화라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리들리 스콧 감독 최고 영화의 순서가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이 영화에 출연해서 정말 기쁘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출연한 영화들에 대해 감상에 젖는 사람은 아닌데, 그 누구도 리들리 스콧 감독보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없다. 그 나이에도 여전히 일에 대한 열정이 넘친다. 나도 이 나이에 그런 모습을 보는 게 여전히 설렌다. 그가 일하는 모습은 영감을 준다. <글래디에이터 2>는 내가 출연한 가장 거대한 영화이고 리들리 스콧은 거장이다.
루실라 役 코니 닐슨
“세트장에 들어서면서, 내 집에 왔다 생각했다”

<글래디에이터> 1편 주역 인물 중 2편까지 얼굴을 비친 루실라. 코니 닐슨은 1편에 이어 2편에서도 루실라로 돌아왔다. 작중 막시무스-루시우스로 이어지는 서사에서 루실라는 결코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강인한 여성 캐릭터를 그리는 데 일가견이 있는 리들리 스콧은 이번 영화에서도 루실라를 혼탁한 로마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인물로 그려내고, 코니 닐슨도 루실라의 올곧고 영리한 면모를 카리스마 있게 담아낸다. <글래디에이터> 서사를 전체적으로 돌아봤을 때 루실라가 갖는 존재감은 상당한데, 24년 만에 다시 돌아와 전편과 마찬가지로 명연을 펼치는 코니 닐슨에게 엄지를 치켜세우게 된다.
루실라는 1편의 주연 캐릭터 중 다시 돌아온 유일한 캐릭터다. 다시 콜로세움으로 돌아오는 기분이 어떠한가?
솔직히 세트장에 발을 들여놓기 전까지는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세트장에 들어서는 순간, 과거로 돌아온 것처럼 모든 게 생생해졌다. 전편의 내 도시, 내 집, 내 경기장, 내 궁전으로 돌아왔다. 지난 20년 동안 변하지 않은 나의 감독도 거기에 있었다. 하나도 변하지 않으셨더라. 그뿐인가, 프로덕션 디자이너 아서 맥스, 의상 디자이너 잔티 예이츠, 촬영 감독 존 매디슨과 프로듀서들 등 조명 담당자들까지 그대로였다! 문자 그대로 정말 집에 돌아온 것 같았다.
리들리 스콧 감독이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그는 어떤 감독인가?
리들리 스콧 감독은 공정하다. 그는 배우들이 아이디어를 내놓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그러기를 원한다. 그는 배우들이 예상치 못한 아이디어로 자신을 움직이기를 바란다.
루실라 이야기를 해보자. 전편 이후로 그녀의 상황은 어떻게 바뀌었는가?
루실라는 황금 우리에 갇힌 죄수라고 할까. 게타와 카라칼라, 쌍둥이 황제가 본인들에게 없는 정통성을 획득하기 위해 루실라를 이용하고 있다. 두 황제는 루실라의 아버지이자 현명한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리차드 해리스)와는 완전히 거리가 멀다. 현재의 로마는 한 사람이 백성 전체의 필요와 가치를 구현할 수 있다는 생각과 멀리 떨어져 있다. 그래서 권력의 계급에 정통성이 없으니 루실라를 억지로 잡아두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일련의 상황이 루실라라는 캐릭터를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현재 루실라는 매우 실질적인 의미에서 볼 때 생존자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막시무스)의 죽음을 이겨내고 살아남았다. 아들(루시우스)을 지키기 위해 멀리 보내기도 했다. 권력이 안정되고 시민들에게 돌아갈 때까지 잠시 동안 아들을 멀리 보낸 것이다. 아들과 다시 만났을 때 루실라는 루시우스가 살아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는다. 어린 아들에게 숨겨야 하는 진실이 있었으니 루시우스가 오해하고 있는 것도 당연하지만 아들에게 자신에 대한 애정이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같은 배우로서 이번에 루시우스 역을 맡은 폴 메스칼의 연기가 어떤 점에서 흥미로운 캐릭터를 탄생시켰다고 보는가?
이전의 작품들에서 폴 메스칼은 전혀 영웅이 되고 싶은 마음이 없는 캐릭터들을 연기했다. 이번에 특히 훌륭하고도 특별한 점이라면, 그동안 주로 예술 영화에서 복잡하고 심오한 캐릭터들을 보여주었던 그가 바로 그 연기력을 영웅의 투쟁, 즉 영웅적인 경험으로 더욱더 명료하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정말 차분하고도 매우 훌륭한 연기라고 생각한다. 영웅은 어떻게든 투명해야 한다. 관객은 영웅의 동기를 명확하게 이해하고 운명이 그 앞에 가져다 놓는 장애물을 볼 수 있어야만 한다. 폴은 그런 연기를 정말 잘 해내고 동시에 깊고 강렬한 감정까지 더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