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들리 스콧 감독의 <글래디에이터>가 24년 만에 돌아왔다. 2000년에 개봉한 <글래디에이터>는 질투심 많은 로마 황제, 콤모두스(호아킨 피닉스)의 배신으로 노예가 된 막시무스(러셀 크로우)의 이야기를 그려내며 대중적인 흥행은 물론 아카데미 작품상, 남우주연상을 포함해 여러 영화제에서 47개의 상을 수상했다. <글래디에이터 2>는 1편 이후 약 20년이 지난 시점을 배경으로 로마군에게 모든 것을 잃고 노예가 된 루시우스(폴 메스칼)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1편과 마찬가지로 로마 제국 시대의 실제 역사적 인물을 바탕으로 했지만, 실제 역사와는 차이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오늘은 <글래디에이터 2> 보러 가기 전 미리 알아두면 좋을 역사적 배경과 영화와의 차이점을 소개한다.
<글래디에이터 2>는 어떤 이야기?

<글래디에이터 2>는 전작에서 막시무스의 죽음 이후 약 20년이 지난 시점을 배경으로, 콤모두스 황제의 조카이자 루실라(코니 닐슨)의 아들인 루시우스(폴 메스칼)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배경은 쌍둥이 황제 게타와 카라칼라가 지배하고 있던 로마 제국으로, 두 사람의 폭압 통치 아래 제국은 심각한 혼란에 빠져 있었다. 한편, 암살 위협을 피해 누미디아로 피신했던 황제의 손자, 루시우스는 아카시우스 장군이 이끄는 로마군에 패배하여 아내를 잃고 노예로 전락하고 만다. 그리고 마치 막시무스의 운명을 따르듯, 글래디에이터가 되어 로마에 돌아와 복수를 다짐하는 게 <글래디에이터 2>의 주요 전개다.

모든 걸 잃은 채 복수를 꿈꾸는 남자가 글래디에이터가 되어 복수한다는 내용은 1편과 다소 유사해 보이지만, ‘막시무스의 복수극’이라는 심플한 1편의 전개와 달리 <글래디에이터 2>는 개인적인 복수뿐만 아니라 로마 제국의 정치적 혼란과 권력 투쟁을 함께 다루고 있다. 루시우스의 이야기 외에도 폭압에 의해 몰락 위기에 놓인 제국,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아카시우스 장군과 그의 아내 루실라가 새로운 로마를 재건하기 위해 은밀히 움직이는 스토리가 축으로 작동한다. 어느 날 황제가 주최한 콜로세움 검투사 경기에서 루시우스를 마주하게 되고, 그 순간 누군가를 떠올리며 루시우스의 출생 비밀이 밝혀진다. 이때 루실라의 존재가 루시우스와 로마 제국 스토리를 연결하는 고리 역할을 하게 되는데, 막시무스와 다른 점은 바로 여기 있다. 개인적인 복수심, 분노가 원동력이었던 그와 달리, 루시우스는 복수심으로 시작했으나 ‘로마 재건’이라는 ‘대의’를 만나면서 그와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감독은 “그 당시 로마의 냄새가 날 정도로 고증에 공을 들였다”라고 할 정도로 그 당시 로마를 완벽하게 구현했는데, 제작비만 무려 3억 1000만 달러(약 431억 원) 이상 투입되었다고. 실제 콜로세움의 60퍼센트 크기로 세트장을 지은 후 그 안에 물을 채워 배를 띄웠다는데, 영화 속 전투 장면 스케일이 압도적이게 느껴지는 건 이유가 있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로마의 건축, 의상, 생활 양식까지 세세하게 조사해 역사적 정확성을 추구했다”라고 말하며 자부했다.
<글래디에이터>도 역사와 달랐다

<글래디에이터 2>는 당시 로마 시대의 모습을 철저히 고증한 작품이지만, 스토리는 실제 역사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이는 1편에서 이미 역사와 달라진 점이 많기 때문이다. 1편 주인공인 막시무스 데시무스 메리디우스는 가상의 인물로, 실제 역사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신임을 받았던 특정 장군이 후계자로 지명되었다는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폭군 콤모두스 역시 영화에선 질투심에 눈이 멀어 아버지를 살해하고 권력을 찬탈하는 인물로 그려지지만, 실제로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생전에 콤모두스를 후계자로 지명한 후 자연사했기에 정당하게 제위를 물려받은 황제인 셈. 즉위한 이후에도 원로원의 지지를 받으며 정상적으로 통치했으나, 누이인 루실라가 자신을 암살하려고 하자 극심한 충격을 받고 우리가 익히 아는 폭군의 모습으로 변해갔다.

루실라의 모습도 영화와의 괴리가 상당하다. <글래디에이터>에선 선한 역할로 로마의 미래를 걱정하는 인물로 그려지나, 실제로는 원로원과 결탁하여 동생 콤모두스를 암살하고 자신의 남편을 로마의 새로운 황제로 올릴 계획이었다. 하지만 암살 계획은 실패하고, 믿었던 누이에게 배신 당해 충격을 받은 콤모두스가 그를 죽이고, 콜로세움에 검투사로 참가하는 등 기행을 저지르기 시작했다.

<글래디에이터>의 핵심 재미인 콜로세움 검투사 경기 역시 규모나 잔혹성, 그리고 참여한 검투사들의 신분 등은 다소 영화적 허용이 가미되었다. 대부분의 검투사들이 노예나 전쟁 포로였기 때문에 막시무스처럼 고위 장군이었던 인물이 검투사가 되는 일은 거의 드물었다고.
카인과 아벨 같은, 로마의 형제 황제

<글래디에이터 2>의 배경이 되는 시대는 카라칼라와 게타 형제가 함께 즉위한 시대였다. 카라칼라와 게타는 로마 제국의 21대 공동 황제로, 그중 카라칼라는 극악무도하고 잔인한 행보로 인해 로마 역사상 가장 잔인한 폭군이라 불리는 인물이다. AD 211년, 그들의 아버지인 셉티미우스 세베루스는 임종 자리에서 두 사람을 공동 황제로 정했는데, 수많은 역사가가 이 선택을 로마 시대의 수많은 오판 중에서도 가장 큰 실수로 꼽는다. 임종 전 공동 황제로 임명했으나 통치 분할을 명시하지 않은 유언으로 인해 즉위 후, 서로 세력을 키우기 위해 치열하게 권력 다툼에 돌입하는데, <글래디에이터 2>는 그들이 함께 통치했던 혼돈의 로마에서 이야기를 펼친다.

즉위 전부터 사이가 좋지 않던 두 사람의 관계는 그야말로 ‘카인과 아벨’ 같았다. 기록에 따르면, 카라칼라는 어렸을 적부터 충동적이고 잔인한 성격이라 부모에게까지 무례한 행동을 서슴지 않았던 반면, 동생 게타는 효심이 깊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카라칼라가 부모에게 거칠게 행동할 때, 그를 통제하는 건 게타였는데 이러한 일이 반복되면서 카라칼라는 점차 그를 향한 증오와 복수심이 커져만 가는 상황이었다. 부모조차 게타를 편애하자 카라칼라의 질투와 적대감은 걷잡을 수 없어졌고 이는 즉위 이후, 동생을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직접 살해하고야 만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그는 게타의 흔적을 완전히 지우기 위해 모든 초상화에서 그를 지우고, 지지자들뿐만 아니라 게타 이름을 언급하는 사람마저 죽이는 잔혹한 행보를 보였다.
로마 제국에서 가장 잔인했던 황제, 카라칼라

잘생긴 편이었던 게타와 달리 추한 얼굴에, 누구의 인망도 얻지 못한 황제였던 카라칼라. 그는 로마 제국 전역의 모든 자유민에게 로마 시민권을 부여하고, 로마에 거대한 공중목욕탕을 건설하는 등 로마 제국 발전에 이바지도 하였으나 정당한 재판을 받을 수 있었던 로마 시민권을 무시하고 자신에게 항의하는 모든 사람을 재판 없이 처형해 결국 역사서에는 폭군으로 기록된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알렉산드리아 시민들을 대규모 학살하고 로마의 저명한 인사들을 사냥하듯 살해하자, 카라칼라의 평판은 땅으로 떨어진다.

친족 살해 사건으로 그는 떨어진 평판을 회복하기 위해 군인들의 연봉을 50퍼센트 인상하고, ‘모든 속주민들에게 로마 시민권을 부여한다’는 안토니우스 칙령까지 발표한다. 시민권을 갖게 되면 투표권부터 재판 청구권, 소득의 10퍼센트를 세금으로 내야 하는 속주세 면제권 등 특권을 얻을 수 있었는데, 시민권은 세습되기 때문에 많은 속주민들이 시민권을 얻기 위해 로마군단의 보조병으로 25년씩 근무하기도 했다. 로마군의 절반은 이렇게 모인 속주민으로 이뤄져 있었기에 로마는 ‘시민권’만 주면 끝나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군대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시민권을 갖게 되자, 속주민들은 더 이상 군대에 가지 않으려 했고 속주민세를 걷지 못하자 세금 역시 급감했다. 50퍼센트나 인상했던 군인들의 연봉을 감당하기 버거워지면서 불만은 커져만 갔고 로마는 쇠락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등 돌린 사람들의 민심을 사기 위해 펼쳤던 정책이 결국 마지막 기회까지 앗아간 셈이다.

극단적인 감정 기복과 잔혹한 행보, 눈앞의 이익 위주의 정치를 보여주었던 그의 삶은 ‘카라칼라’답게 끝났다. 그는 원정 행군 중 길가에서 노상방뇨를 하던 중 자신에게 불만을 품은 병사에게 암살되었다.
루시우스의 등장

1편에서 루실라의 아들로,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콤모두스 폼페이아누스(이하 ‘루키우스’)를 모델로 했던 소년 루시우스가 2편의 주인공 역으로 등장한다. 폴 메스칼이 맡은 <글래디에이터 2>의 루시우스는 아프리카 대륙의 누미디아 해안 도시에서 살고 있으며, 로마 혈통과는 멀어진 상태로 묘사된다. 그러나 도시가 로마 군대의 공격을 받고 포로로 잡혀 간 그는 1편 막시무스와 마찬가지로 글래디에이터로서의 삶을 강요받는다. 다만, 이는 실제 루키우스의 삶과는 차이가 크다.

실제 루키우스는 3세기 초에 활동한 로마의 원로원으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딸 루실라와 그의 두 번째 남편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폼페이아누스의 아들로, 콤모두스와 페르티낙스 황제 시대에 활약한 장군이었다. 어머니인 루실라가 형제 콤모두스를 암살하려는 시도가 실패한 후, 원래라면 아들인 루키우스도 처형 당해야 했으나 그의 나이 고작 다섯 살이었기에 살아남았다. 그러나 결국 그는 211~212년 카라칼라가 게타와 게타의 지지자들을 처형할 때 함께 처형당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