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기사 카테고리

Movie & Entertainment Magazine from KOREA
>영화

특급배우들도 피하지 못한 할리우드 인종차별적 모멘트

성찬얼기자
〈〉
〈레드 원〉  루시 리우

11월 6일 <레드 원>이 개봉했다. 납치된 산타클로스를 찾기 위한 요원들의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에서 드웨인 존슨, 크리스 에반스라는 슈퍼스타 사이에서 루시 리우가 유독 반갑다. 2000년대 <상하이 눈>, <미녀 삼총사>, <킬 빌> 등으로 할리우드의 동양인 배우 저변을 넓힌 그는 이제는 할리우드의 슈퍼스타로 인증을 받은 지 오래다. 하지만 그와 동양인 배우들의 활약에도 사람들 사이에 깊게 뿌린 내린 편견은 때때로 인종차별의 형태로 배우들에게 상처를 입히곤 했다. <레드 원>으로 돌아온 루리 리우를 반기며 할리우드 곳곳에서 전해졌던 동양인 배우 인종차별을 짚어본다.


이병헌 “<행오버> 잘 봤다고 말하더라”

〈〉
이병헌이 출연한 할리우드 영화 〈매그니피센트 7〉

 

가장 먼저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한국 배우의 할리우드 진출 신호탄을 쏜 이병헌이 직접 밝힌 일화를 전한다. <지.아이.조: 전쟁의 서막>의 스톰 쉐도우를 맡으며 할리우드에 진출한 이병헌은 <레드: 더 레전드> <터미네이터 제니시스> <매그니피센트 7> 등에 출연했다. 그렇게 블록버스터에 출연하며 얼굴이 알려진 그조차도 인종차별을 겪었다고 하는데, 한 번은 카페 아르바이트생이 이병헌을 알아보는 듯했으나 "<행오버> 잘 봤다"고 말했단다. 이병헌은 당연히 <행오버> 시리즈에 나온 적이 없었고, 다만 이 영화 1편에 한국계 미국인 배우 켄 정이 나왔다. 누가 봐도 다른 두 사람을 헷갈린다는 건, 다분히 '동양인은 다 똑같이 생겼다'는 인종차별적 편견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것. 심지어 켄 정은 한국계일 뿐, 미국에서 태어나 의사로도 일했던 토종 미국인이니 그 아르바이트생은 이병헌과 켄 정 모두 무시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병헌이 누구인지 밝히진 않았지만 진출 초기엔 악수조차 해주지 않는 배우도 있었다고.

 

〈〉
이병헌(왼)과 〈행오버〉  시리즈의 켄 정.

마틴 프리먼 “루시 리우 매력 없어”

〈〉
셜록 홈즈의 동료 왓슨. 〈셜록〉의 마틴 프리먼(왼)과 〈엘리멘트리〉의 루시 리우

 

루시 리우는 동료에게 대놓고 모욕 발언을 들은 적이 있다. 직접 들은 건 아니지만 상대가 인터뷰에서 이런 발언을 했으니 일종의 '공개 뒷담화'라고나 할까. 그 상대는 <셜록> 시리즈와 <호빗> 시리즈로 유명한 마틴 프리먼이다. 마틴 프리먼은 <셜록>에서 왓슨을 연기했는데, <셜록> 시즌 2를 방영한 2012년엔 '셜록 홈즈'를 현대 미국 배경으로 옮긴 <엘리멘트리>라는 작품이 공개됐다. 이 드라마는 파격적이게도 셜록의 파트너 왓슨을 '존 왓슨'이 아닌 '조안 왓슨'으로 그렸는데, 루시 리우가 조안 왓슨 역을 맡았다. 마틴 프리먼은 이후 <엘리멘트리>를 봤느냐는 질문에 실제로도 루시 리우를 만났었다며 "매력적이지만 못생겼다" "매력이 없는 여성이다"라는 식으로 대답해 논란을 빚었다. 특히 "개"(she's a dog)이란 말을 써서 특히 아편전쟁 때부터 이어진 영국식 인종차별 아니냐는 비난까지 받았다. 문자로만 봐선 의심의 여지 없는 모욕인데, 워낙 지독한 영국식 유머를 구사하는 마틴 프리먼이 한 말이라서 '문자 그대로 하는 말이 아니라 일부러 더 오버해서 루시 리우를 띄운 것'이라는 반응도 있긴 했다. 물론 아무리 그래도 언론에서 이런 식의 발언은 문화 차이나 유머로 볼 수 없는 실례다라는 쪽에 힘이 실렸지만. 루시 리우는 이 '농담'을 받아들였는지, 아니면 대꾸할 가치도 없는 '인종차별'로 받아들였는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마틴 프리먼과 달리 다른 왓슨과의 비교에 대해 "저 자신을 (다른 왓슨과) 비교하지 않는다"며 존중을 표했다.


아덴 조, 출연료 절반에 복귀 포기

〈〉
아덴 조 주연의 〈파트너 트랙〉

넷플릭스 오리지널 <파트너 트랙>은 한국문화의 위상을 그대로 보여준 사례로도 유명하다. 원작인 동명 소설은 대만계 주인공을 내세웠지만, 드라마로 옮기는 과정에서 한국계 미국인 배우 아덴 조가 주연으로 발탁돼 작중 한국문화에 대한 묘사가 빈번하게 그려졌기 때문. 아덴 조는 이 작품으로 주연급 배우로 자리매김하는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그런 그도 최근 인종차별로 보일 수 있는 일을 겪었었는데, 바로 <틴 울프: 더 무비> 출연료 문제였다. <틴 울프: 더 무비>는 2011년부터 2017년 방영된 하이틴드라마 <틴 울프>의 후속작으로, 원작 드라마의 출연진이 대거 복귀해 화제를 모았다. 아덴 조는 해당 드라마에서 시즌 3부터 시즌 5까지 주연급 멤버로 활약했었기에 <틴 울프: 더 무비> 복귀로 기대를 모았는데, 아쉽게도 복귀하지 않는 선택을 내렸다. 당시 매체 보도에 따르면 아덴 조는 크리스탈 리드, 홀랜드 로던, 셸리 헤닉에 비해 절반 정도의 출연료 제안을 받아 복귀를 거절했단다. 물론 아덴 조의 캐릭터 키라 유키무라가 작중 비중이 낮아 그렇게 제안했는지 몰라도, 다른 세 여성 배우에 비해 확연히 낮은 출연료는 인종차별 아니냐는 반응을 모았다. 그뿐만 아니라 딜런 오브라이언(스타일스 역)을 비롯해 몇몇 배우는 복귀를 포기했고, <틴 울프: 더 무비>는 그 빈자리를 메우지 못한 채 혹평을 받았다.

〈〉
〈틴 울프〉에서 아덴 조가 연기한 키라 유키무라
〈〉
당시 〈틴 울프〉 주연진에도 오를 정도로 비중이 컸던 캐릭터다.

클로이 베넷 “성 바꾸니 캐스팅 들어와”

징 루시 “동양인을 이렇게 보는구나 충격받아”

 

근래 다양성을 존중하는 바람이 불면서 영화에서 다루는 소재가 늘어나며 동양인 배우들의 영향력도 높아졌지만, 그전까지는 아무래도 아시아계에 대한 작품이 나오지 쉽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아시아계 배우들은 늘 출연할 수 있는 작품도, 맡을 수 있는 캐릭터도 적었다. 그런 사례를 들려준 것이 클로이 베넷과 징 루시다.

〈〉
클로이 베넷 〈내슈빌〉
클로이 베넷 〈에이전트 오브 쉴드〉
클로이 베넷 〈에이전트 오브 쉴드〉

 

먼저 클로이 베넷은 연예계 활동을 위해 이름을 바꿔야 했다. 아버지가 중국인인 그의 본명은 '클로이 왕'이다. 처음 연예계에 발을 들일 때는 본명 클로이 왕으로 활동을 시작했는데, 문제는 캐스팅이나 오디션 과정이 녹록지 않았던 것. 결국 그는 '왕'이란 성 대신 아버지의 이름 '베넷'을 성으로 삼은 예명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우연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렇게 예명으로 바꾸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디션 제안 전화가 점차 늘어났고, 드라마 <내슈빌>에 캐스팅되었다고 하니 이름에서부터 걸러지는 배우들이 적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갱스 오브 런던〉의 징 루시
〈갱스 오브 런던〉의 징 루시

 

<갱스 오브 런던>의 징 루시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하트 오브 스톤>, 드라마 <갱스 오브 런던> 등에 출연한 중국계 영국인 배우 징 루시는 처음 연예계 활동을 시작했을 무렵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동양인 배우에게 주어지는 배역이 정말 한정적이었기 때문. 당시 그는 불법 이민자, 테이크아웃 음식점 직원, 아니면 비자를 노리는 성 노동자 정도만 자신이 지원할 수 있는 배역이었다고 회상하며 '이 사람들은 우리(동양인)를 이렇게 보는 건가?'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법학 전공으로 나름대로 출신이 화려한 그에겐 이것이 일종의 '알람전화' 같은 시기였다고. 또 그는 넷플릭스 시리즈 오디션 도중 '의자와 성관계하는 연기'를 요청받은 적도 있다며 그때를 회상하면 스스로조차 안타깝게 느껴지곤 한다고 회상했다.

 

〈레드 아이〉의 징 루시
〈레드 아이〉의 징 루시

제임스 홍 “동양인 배우들 연기력 부족해? 우리를 봐라!”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제임스 홍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제임스 홍

마지막은 할리우드의 아시아계 배우 중 살아있는 전설이라 할 수 있는 제임스 홍의 발언을 인용하는 것이 적합해보인다. 2022년 미국 아카데미에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가 작품상을 받았을 때, 무대에 오른 제임스 홍은 70년 전만 해도 제작자들이 "아시아계 배우들은 연기력이 부족하고 티켓파워가 없다"는 이유로 백인배우를 분장시켜 출연시켰던 흑역사 시절을 언급하며 "지금 우리를 봐라!"라고 외쳐 아시아계 영화인들이 주축이 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가 거둔 성과를 상기시켰다. 그런 치욕스러운 인종차별이 만연한 할리우드에서 꿋꿋이 활동하며 이제 원로배우로 자리매김한 그는 2022년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입성했다. 어떤 면에선 그의 인생이 곧 할리우드의 동양인을 바라보는 시선을 고스란히 반영한 지표라도 봐도 무방하겠다.

동양인으로 분장한 백인 '옐로우페이스'의 대표사례 〈티파니에서의 아침을〉
동양인으로 분장한 백인 '옐로우페이스'의 대표사례 〈티파니에서의 아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