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왁킹 댄서이자 트랜스젠더인 신명(해준)은 수술비를 마련하려 댄스대회에 참가한다. 우승이 절실한 그에게 심사위원은 “너만의 색깔이 없어!”라고 말한다.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댄스대회장을 벗어난 신명은 연을 끊고 지내던 농악 명인 아버지 덕길(기주봉)의 부고 전화를 받는다. 어린 시절 함께 농악을 배웠던 친구 우기(김우겸)는 추모굿을 올려주면, 숨겨둔 유산을 주겠다고 말하고, 신명은 수술비 마련을 위해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고향으로 내려간다. 그곳에서 신명은 뜻밖의 비밀들을 마주하게 되는데….
10월 23일 개봉하는 영화 <공작새>(감독 변성빈)의 소재는 ‘퀴어’다. 차별과 편견 속에서 살아가던 왁킹 댄서가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자신만의 색깔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렸다. 여러 단편에서 섬세한 연출력을 보이며 ‘대한민국 인재상’을 받은 충무로의 샛별, 변성빈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변 감독은 <공작새>를 “우리가 서로를 이해할 때 불타는 마음도 가라앉고, 상처도 아물며, 함께 손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벽을 허물고 싶어서 만들었다”라며 <공작새>를 단순한 퀴어 영화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영화로 탄생시켰다. 그렇다. <공작새>에는 가부장제와 성 고정관념이라는 문제점은 물론, 갈등하고 화해하는 가족, 역경과 고난을 넘어서는 청년 예술인들의 성장, 차별과 혐오의 시선을 넘어서는 연대가 골고루 녹아 있다.
여기에 변 감독은 전통적인 농악과 현대적인 왁킹 그리고 EDM이라는 다양한 문화적 요소들을 충돌시키면서도 조화에까지 이르는 과정을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 실제로 왁킹과 보깅 장르를 주 종목으로 활동하는 대한민국 대표 스트릿 댄서 해준이 신명 역을 맡아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아우라를 보여준다. 스승인 덕길의 고향에서 농악을 이어가는 인물 우기 역에는 <다음 소희>(감독 정주리, 2023), <한국이 싫어서>(감독 장건재, 2024)에서 얼굴을 알린 김우겸 배우가 맡아 극의 중심을 든든히 잡아준다. 여기에 기주봉, 김진수, 황정민 배우의 앙상블이 영화를 더욱 탄탄하게 만든다.
<공작새>는 이미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왓챠상 수상, 제6회 무용영화제 최우수작품상, 제1회 남도영화제 감독상 및 배우상, 제15회 필라델피아 아시안 아메리칸 영화제 대상 등 수상을 비롯해 제12회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 개막작, 제48회 서울독립영화제, 제66회 샌프란시스코국제영화제, 제19회 취리히영화제, 제22회 샌디에고 국제영화제 초청 등 전 세계 총 29개국 62개 영화제 수상 및 초청을 기록하며 탄탄한 작품성을 검증받았다. <공작새>의 김우겸, 해준(HAEJUN) 배우를 함께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배우 더블 인터뷰는 처음이라 제가 긴장이 더 되네요. 두 분 대화하시듯 즐겁게 이야기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우선 개봉 전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김우겸 배우 저는 이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이 되게 궁금해요. 기존에 있던 영화들과는 조금 다른 재미가 있을 거 같고요, 또 새롭게 받아들여지는 부분도 있을 거 같아서요. 그런 부분이 좀 기대되면서 떨리기도 합니다.
해준 배우 저도 마찬가지예요. 평상시에 볼 수 있는 영화에 비해서는 색다른 소재가 많고 영화의 결도 다르다 보니 관객들 반응이 궁금합니다. 우겸 배우는 선배라 여유가 있는데, 저는 ‘초짜’ 배우라 연기력에 대해서도 관객들이 어떻게 봐주실지 개인적인 고민이 커요.
변성빈 감독의 데뷔작이긴 하지만, 세 분은 전작들(<신의 딸은 춤을 춘다>(2020), <신의 아이들은 연기가 어렵다>(2022))에서 이미 변 감독님과 호흡을 맞추셨죠.
김우겸 생각해보니 그러네요. 해준이랑 변 감독님과 작업한 게 벌써 세 편이나 된다는 걸 지금 질문을 받고 깨달았어요. <신의 딸은 춤을 춘다>에서 해준이랑 첫 촬영이었기도 했네요. 음, 저는 전작 두 편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어요. 첫 영화는 제작 지원을 받고 스태프들을 꾸려서 촬영한 형식화된 프로젝트였다면, 두 번째 영화는 저희들끼리 놀 듯이 굉장히 즐겁게 찍었던 작품이에요. 양극단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작업들을 같은 멤버들이 겪다 보니, 세 번째 작품인 <공작새>에서는 좀 더 편한 마음으로 임할 수 있었던 거 같습니다.
해준 비하인드 스토리가 좀 있어요. <공작새> 전에 원래 변 감독님이랑 준비하던 장편이 있었거든요. 비공식적 장편이었고, 저는 그때도 캐스팅됐었어요.
김우겸 나도 그때 있었거든?(웃음)
해준 아 맞아요. 그때는 관심도 없어서.(웃음) 현장에서 김우겸 배우를 만나면서 ‘저 선배는 왜 여기 있지?’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독립영화계에서 너무 유명한 분이니까요. 알고 보니 변 감독님과 단편을 많이 했더라고요. 제 불안정한 연기를 잡아주니 의지도 됐죠. 그런 경험들이 조금씩 쌓이고, 영화가 잘 돼서 그 경험이 <공작새>를 위해서 온 거라는, 운명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 번째 영화 <공작새> 시나리오를 읽고 어떤 느낌이었나요?
김우겸 막상 대본을 보니 제가 꽹과리 치고 농악을 해야 하는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접근을 해야할지 막막했어요. 사실 학교에서 사물놀이하는 친구들만 봤지, 농악은 몰랐거든요. 그러니까 두 마음이 같이 있었죠. 이걸 어떻게 해낼 수 있을까, 그리고 너무 기대된다! 하는 마음요. 변성빈 감독님 아니면 누가 내게 이런 역할을 줄까, 꽹과리를 쳐본 적도, 농악을 해본 적도 없는 저를 믿어준다는, 제가 잘 알아갈 거라는 믿음으로 대본을 준 것 같아 고맙기도 했습니다. 또 농악이랑 ‘왁킹’이 어떻게 어우러질까도 기대가 됐어요. 대본에는 되게 멋지게 적혀 있었는데, 글로만 판명하기는 어렵잖아요. 변 감독님이 이걸 어떻게 구현해낼지 궁금해졌죠.
해준 <공작새>는 제가 주연인 첫 장편 영화인데요. 77씬으로 구성된 영화에 제가 77번 다 나와요. 이런 영화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감독님의 욕심이 다 들어갔고, 그걸 감내해야 했어요. 정말 운명이었구나, 받아들여야 하는 거구나, 자신감을 갖고 더 열심히 해내야만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초고는 고창농악 아니고 경기농악이었대요. 그런데 제가 댄서로 나오면서 설정값이 달라진 거죠. 그래서 대본을 봤을 때 편했습니다. 최대한 제가 자유롭게 날뛸 수 있도록 만들어주셔서요. 점점 대본이 좋아졌고, 좋으면 좋을수록 이 좋은 걸 어떻게 해내야 할지 부담이 좀 있었어요. 그래서 감독님을 많이 괴롭혔어요. “이건 왜 이래요?”, “왜 이렇게 해야 해요?”라며 질문을 많이 했죠.
그렇군요. 김우겸 배우님은 변 감독님과 인연이 꽤 오래 되셨죠?
김우겸 2014년쯤이니까, 10년? 징그럽네요.(웃음) 학교에서는 다른 과였어요. 감독님 졸업작품에 참여하면서 만났습니다. 저는 사실 독립영화가 있는 줄도 몰랐고, 단편들을 모아 상영한다는 것도 몰랐어요. 그냥 학교에서 열심히 수업 듣고, 과제처럼 카메라로 연기를 찍는 건 줄로만 알고 현장에 갔어요. 그런데 <뿔>라는 졸업작품 시나리오가 너무 흥미롭더라고요. 변 감독님과 대화를 많이 나눴죠. 감독님은 영화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던 시기였고, 저는 영화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시기에 만난 거예요. 변 감독님과는 단편을 5편 넘게 한 거 같네요. 심지어 <손과 날개>라는 단편에서는 배우를 하면서 조연출도 했습니다.(웃음) 해준 배우도 소개할 아주 특별한 변 감독님과의 인연이 있어요!
해준 감독님이랑 같은 부대 출신이에요. 저는 일반 병사고 감독님은 보훈장교로 부대 안 행사를 담당하는 업무를 하셨죠. 부대원 중에 제가 춤 잘 춘다는 정도는 알고 계셨는데, 제가 멤버를 꾸려서 부대를 돌면서 공연하는 대회에 나가게 된 겁니다. 성적이 너무 좋아서 상급 부대로 올라가고 그랬죠. 그때 절 좀 알아보신 것 같아요. 춤에도 이런 세상이 있구나 하는? 그때 제게 “나중에 작품 들어가면 같이 작업 한번 하자”고 하셨어요. 제대하고 연락이 온 거고요.
김우겸 변 감독님 이야기를 좀 부연하자면요, 장기자랑에서 해준이가 춤추는 모습을 보고 ‘꼭 영화로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대요. 춤을 출 때 느껴지는 에너지를 카메라로 담으면 정말 좋겠다고요. 그래서 전작들을 기획한 거 같기도 해요. 해준이의 춤추는 모습을 영화화해서 보여주고 싶은 욕망이 있었던 거죠.
해준 좋게 이야기하신 건데요. 감독님은 제가 살짝 미쳐있다고 하더라고요.(웃음) 감독님이 절 잘 몰랐을 때, 그러니까 제가 일병 이럴 때였거든요. 그때 부대를 개방하고 장기자랑했는데, 수상하면 휴가도 주고요.
김우겸 얼마나 에너지가 넘쳤겠니, 휴가 따내야 하니.(웃음)
해준 그랬죠. 후배들 불러서 춤을 췄어요. 대대장님이 보고 계시는데, 경례를 하면서 춤을 췄다니까요?(웃음) 대대장님이 열려계신 분이었어요. 후에 들은 이야기로는 “저 아이는 진짜 ‘또라이’라고, 건들면 안 된다”라는 말이 돌았다고.(웃음) 다들 놀랐는데, 변 감독님은 “음, 미친 사람 발견! 나와 같은 사람이 또 있군!”이라고 생각했대요.

<공작새>를 다 보고 나면 주제를 다르게 느끼겠지만, 소재가 퀴어라 조금 부담스럽지는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해준 저는 긍정적인 편이라서요. ‘이런 신인배우가 나타났다!’라는 거에 제가 할 수 있다면, 새로운 길을 열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어요. 오히려 저는 반대로 제 이미지가 어떻게 보면 퀴어를 대표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감히 제가 대신하는 건 아니지만, 그런 이미지로 노출될 수밖에 없으니 더 잘해야겠다는 부담은 있었죠. 과연 제가 얼마나 더 전달할 수 있을지, 관객들이 부담스럽게 느끼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같은 부분들이죠. 그래서 동성 커플이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를 많이 찾아보고, 트랜스젠더 친구들도 만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대도시의 사랑법>(감독 이언희, 2024)도 개봉하자마자 봤고요. 그런데 <공작새>는 한 발 더 나아간, 새로운 카테고리 같은 느낌이라 관객들이 더 특이하게 볼 것 같아요. 더 잘 전달하려면 설득력 있는 연기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죠.
주변 트랜스젠더 친구들은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또 연기에는 어떻게 녹이려고 했고요?
해준 만남에 대한 어려움은 없어요. 주변에 많으니까요. ‘MTF(male-to-female) 트랜스젠더 호르몬 치료(HRT)’ 케이스에 대해서는 저도 경험이 없으니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호르몬 투여할 때 케이스가 다 다르니까 일반화할 수는 없잖아요. 감독님과도 그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우리 영화가 잘못된 인식을 줄 수 있으니, 다양한 정보를 전달하는 게 제일 좋겠다고요. 예를 들면 ‘수술했을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공공기관에서 성별을 적을 때 어떤 개선이 있으면 좋겠는지’ 같은 부분들요.
그렇군요. 김우겸 배우는 퀴어 소재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이셨어요?
김우겸 일단 저는 이 영화를 퀴어 관점보다는 상식적인 사랑 이야기, 보편적으로 우리가 겪을 수 있는 감정을 다룬다고 봤어요. 오히려 어떤 삶과 받아들임인 거죠. 퀴어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받아들인다는 건 어려운 일이면서도 보편적인 문제라 생각해서 그런 쪽으로 접근했던 거 같아요. 이 영화가 전체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도 그런 거 같았고요. 핵심은 보편적인 부분이지만 표현되는 건 다른 방식이라 그 부분이 관객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기대가 되는 거고요.
두 배우님들이 말씀하신 것처럼 단순한 퀴어 영화인 줄 알았는데, 삼대에 걸친 전통과 농악에다가 성소수자까지 레이어가 겹쳐 있더라고요. 해준 배우님은 ‘신명’ 캐릭터를 잡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해준 처음부터 신명이라는 인물에 대한 이해가 빨리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왜냐면 감독님의 신명에 대한 설정값이 있는데, 아무래도 저는 타인이다 보니 이해 안 되는 부분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감독님께 계속 물어봤어요. 전화도 했고요. 그런데 뚜렷한 답을 주진 않으시더라고요.(웃음) 신인인데, 제가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는 상황이었죠. 마치 주방 요리사에게 ‘흑백요리사’가 되길 원하는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저는 신명이란 인물을 이해하기 위해서 신명에게 편지도 썼어요. 너는 왜 이런 식으로 행동하니, 너는 지금 어떤 감정선이니 이런 것들을 쓰면서요. 그 안에서 신명에게 저와 닮은 부분을 투영하기도 했지만, 저랑 너무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만들어나갔습니다. 연출의 입장에 맞도록요.

구체적으로 어떤 장면에서 어떻게 구현됐는지 예를 들어주신다면요?
해준 다 같이 모여서 대나무로 굿에 쓸 장비를 만드는 장면이 있었어요. 잘 지내던 고창 사람들이 그 장면에서 신명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내요. 그런데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그 성숙함이 너무 좋더라고요. 우기(김우겸)와 대나무밭에 가서도 화남을 아무것도 아니게 만드는, 우문현답하는 성숙함, 센스랄까요? 저도 그런 성격을 추구하다 보니 좀 더 연기에 몰입이 되더라고요. 우기가 신명의 변한 모습을 보면서 “춤이 바뀌었다”라는 대사를 하는데, 저도 영화가 끝나면서 성격이 좀 바뀌었어요. 좀 더 성숙해지는? 주변 사람들도 그렇게 이야기하고요.
해준 배우님은 수술비를 마련하려 내려온 신명이 변화되는 계기가 되는 사건은 무엇이라고 보셨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비밀을 알게 된 후 자신만을 위해 살던 신명이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모습으로, 한 단계 성장했다고 봤습니다만.
해준 그렇죠. 거기에 좀 더 연기를 좀 더 부여한 거죠. 저도 그런 사람으로 변한 것도 있고요.
그때부터 연기가 확 바뀌면서 몰입이 더 되더라고요. 댄서 출신으로 알고 있는데 연기를 너무 잘하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따로 연기를 배우셨나요?
해준 연기를 따로 배우는 게 없어요. 선배들이 많이 도와줬어요.

김우겸 배우께 질문드릴게요. 왜 우기는 고모부(김진수)가 안 된다고도 막았는데도, 신명에게 연락을 했다고 생각하세요? 거짓말까지 하면서요.
김우겸 사실 그 장면을 말씀드리면요. 저는 우기를 대표적으로 설명하는 감정이 ‘질투’와 ‘시기’라고 생각했어요. 그 감정들 때문에 다 일어나는 일인 거죠. 신명과 연락을 안 하다가 그제서야 연락을 하게 된 이유도 질투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감독님과 배경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나눴어요. 덕길 선생님(기주봉)에게 인정받기 위해 우기는 너무도 애썼던 사람이에요. 거짓말하면서까지 신명을 부른 이유는, ‘덕길 선생님이 너무 찾았다’, ‘니가 굿을 치면 좋겠다’는 마음과 동시에, 신명이 아니라 이제 자신이 앞으로 여길 이끌어가는 상쇠(농악의 지휘자로 꽹과리를 주로 다룬다)가 됐다는 걸 마을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그 두 가지 감정이 있었던 거 같아요.
영화 작업을 하면서 보니, 실제 농악하는 분들은 잘 알려지지 않아요. 댄서들은 SNS로 스스로를 알리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이분들은 정말 도를 닦듯, 한 곳에서 자기 악기를 연마해야 합니다. 매 순간 바로 판단이 내려지고, 그렇게 자신을 구성원에게 인정받아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상쇠는 그 지역에 딱 한 명이기도 하고요. 실력도 있어야 하지만, 운도 있어야 해요. 군번줄처럼 잘 풀려야 한다고 봐야 할까요. 잘 되려면 모든 것들이 맞아떨어져야 하죠.
다시 영화로 돌아가면, 우기는 존경하는 덕길 선생님의 재능 넘치는 신명을 부러워하면서도, 농악을 잘하고 싶은 마음도 있는 캐릭터로 생각했어요. 신명에 대한 빈자리를 늘 메워야 한다는 사람이면서도 자격지심을 가진 사람이죠. 그러다 보니 거짓말까지 하는 실수까지 저지르는 서사가 나오게 됐다고 봤습니다.
그렇군요. 농악은 처음이라고 하셨는데 영화에서 꽹과리도 너무 잘 치고, 상쇠 역할도 잘 어울리더라고요. 연습은 얼마나 하셨나요?
김우겸 영화에서 명칭은 ‘호창’이지만 진짜 지역은 전라북도 ‘고창’입니다. 촬영도 고창에 가서 했고요. 고창농악전수관이라고 고창 농악을 이어가는 분들이 계세요. 농악을 전수하고 알리기 위해 폐교를 전수관으로 만드셨죠. 상쇠분도 계시고요. 배우들, 스태프들과 다 같이 전수를 보면서 솔직히 ‘큰일났다!’는 마음이 제일 컸어요. 사부님들이 굿 치는 모습에 감동도 했고요. 사실 농악을 잘 모르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되겠지 했거든요. 정말 연습이 많이 필요하고, 저는 터무니없이 부족하구나 하는 게 느껴졌어요. SOS를 쳐야겠다는 생각에 아는 사람들에게 재워달라고 부탁도 하면서 저희끼리 연습을 정말 많이 했습니다. 촬영 전까지 한 6개월 정도 연습하면서 깊게 빠져들려고 노력했습니다.

“연기와 농악이 비슷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어떤 점에서 그런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김우겸 농악도 연기도 무형 문화잖아요. 어떤 사람이 어떤 악기를 다루느냐에 따라 소리가 다르듯 연기도 마찬가지인 거 같아요. 해준이 신명을 연기했을 때 해준만이 표현할 수 있는 캐릭터가 있듯이, 똑같은 꽹과리도 치는 사람에 따라 소리가 달라요. 그걸 농악에서는 ‘서음’이라고 하더라고요. 같은 장단이어도 느낌이 다르죠. 연기도, 농악도 매개체일 뿐이고, 그걸 치는 사람, 연기하는 사람의 마음이 어떤가가 정말 중요하다는 걸 꽹과리 치면서 깨달았습니다. 우기가 다른 곳에 있는 게 아니라 내 마음 안에 있구나 하는 걸 느낀 거죠. 교과서에 수없는 장단이 있지만, 그것들이 자신의 안에서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더 중요하게 여기시더라고요. 그런 부분에서 농악과 연기가 비슷하다고 느꼈습니다. 매개체가 다를 뿐 자신이 중요하다는걸요.
갑자기 든 생각인데, 왜 ‘굿을 친다’고 표현하는 건가요? 보통 ‘굿을 한다’고 말하지 않아요?
김우겸 굿을 하는 건 무속인들에 가까워요. 우리가 영화에서 하는 굿은 신앙과 아주 관계가 없는 건 아니지만, 농악, 농민과 더 가까운 사람이 굿을 하면 굿을 친다고 표현하더라고요.

엔딩 시퀀스에서 굿이 왁킹으로 변하는 과정이 너무 멋지더라고요. 해준 배우님의 표정도 어느 경지에 도달한 느낌이고요. 어떤 마음으로 연기했는지 궁금합니다.
해준 그때를 다시 돌아보니 드라마를 말로 다 못해요. 다행히 감독님이 그 장면을 마지막 촬영으로 남겨두셨죠. 감정이 올라올 수 있게요. 마지막 굿 치는 장면을 위해서 정말 연습을 많이 했어요. 진짜 죽을 정도로요. 그런데 결국 제가 안 되는 거예요. 고통스러웠죠. 사부님들이 알려주신 것도 있고, 호되게 지도해준 부분도 있지만, 제가 원하는 모습이 안 나와서요. 지금까지 이런 적이 별로 없기도 했고요.(웃음)
저는 표현 욕구가 있는 사람이라 하고 싶은 걸 표현해야 하는데 하고 싶은데 안되니까…. 연습밖에 방법이 없었어요. 전수관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계속 연습했습니다. 왁킹이야 평상시 하던 거였고, 안무도 다 짰는데, 마지막 씬은 야외 촬영이어서 시간도 매우 바쁘게 찍었어요. 스태프들은 ‘해가 진다’ 이러지, 독립영화다 보니 빨리 찍어야 하는 분위기지, 게다가 원테이크였거든요. 나무에 불도 붙여야 하는데 다 타면 찍지도 못하잖아요. 진짜 급하게 ‘아라라~~’하면서 찍었습니다. 그냥 제가 연습하며 준비했던 대로 믿고 갔어요. 그래서 신명의 마지막 표정에 환희, 끝, 통쾌! 이런 감정들이 실렸던 거 같아요. 감독님의 큰 그림이었던 거 같아요. 그 장면 찍고 제가 정말 통쾌했거든요. 이제 끝났구나, 술 주세요! 이런 느낌?(웃음)
고되긴 했겠지만, 마지막 촬영을 마치고 뒤풀이도 재밌었을 거 같아요.
해준 전 스태프들이 몇 개월을 같이 먹고 자고 했으니, 너무 친해졌잖아요. 고모로 나오는 황정민 선배도, 김진수 선배도 막걸리 드시다가 소싯적에 해봤다며 북도 한 번씩 치고요.(웃음)
김우겸 이거 좀 웃긴 에피소드인데 이야기해도 되려나요? 저는 배우로 기주봉 선배를 이번 영화에서 처음 뵀어요. 덕길 선생님이 공작새를 안고 있는, 위엄이 느껴지면서도 환상적인 장면이었는데요. 갑자기 공작새가 똥을 쌌습니다!(웃음)
해준 그 공작새가 진짜 얌전한 애거든요. 관리자분 도움을 받아서 안전하게 정말 연기도 잘 하고 있었는데, “컷!” 하자마자 온데 똥을 분사했어요. 하필 기주봉 선생님이 위엄이 느껴지는 하얀 옷을 입고 있어서, 더 웃겼죠.(웃음)

영화가 잘 되려고 그런 에피소드가 생겼나 봅니다.(웃음) 긴 이야기를 해서 여기까지 왔는데요. 영화 제목 ‘공작새’에 대해서 궁금해할 관객들이 많을 것 같아요. 영화에서는 은유적으로 나오는 장면들도 있는데, 감독님과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여서 연기에 녹이려고 했는지 궁금합니다.
해준 제가 정확하게 파악했는지 모르겠지만, 제 눈이 공작새 눈이랑 닮았대요. 감독님은 사람들의 눈을 조금 다양한 시선 이미지로 보여주고 싶으셨던 거 같아요. 영화 안에서 신명의 눈이 굉장히 많이 나오고 눈 화장도 다채로워요. 눈에 대한 다양한 의미가 있었던 거죠. 제 해석은 그 눈들이 사람들이 바라보는 신명인 것 같아요. 트랜스젠더 여성인 신명을 바라보는 눈과 시선들? 화면에 그런 시선들이 가득 찼을 때, 마치 ‘관객들은 지금 어떻게 느끼고 있나요?’라고 묻는 느낌이에요.
개인적인 감상을 덧붙이자면, 공작새는 뭔가 신비로운 느낌이 드는 동물이잖아요. 현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동물이 아니기도 하고요. 그게 한국 사회에서 트랜스젠더를 보는 느낌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분명 이 세상에 존재하는데, 허구도 아니고, 화려하니 보고는 싶고요. 그런 것들이 공작새와 트랜스젠더를 비슷하게 느끼게 만드는 연결점인 거 같았어요.
김우겸 변 감독님 영화에는 항상 동물이 나와요. 염소, 거북이도 나왔고요. 동물에 메타포를 주거나, 의미를 부여하길 되게 좋아하는 감독 같아요. 저는 이번에 우기를 참새, 신명을 공작새라고 생각했어요. 우기는 초라하고 아무것도 없지만, 신명은 되게 화려한 사람이죠. 공작새가 화려하긴 하지만, 우기 입장에서 신명의 삶은 외로울 수도 있다는, 그런 걸 좀 알아가는 여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 더 부연하면, 공작새가 형형색색이잖아요? 그래서 어떤 의미 부여가 있는 것 같아요. 꽹과리 같은 하나의 악기를 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사람마다 가지각색의 매력이 있고, 이런 것들이 잘 어우러졌을 때 정말 좋은 굿이 나온다는 거요. 그럴 때 답습하는 농악이 아니라 발전하는 농악이 되지 않을까, 우기는 그런 꿈을 가진 인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시작은 질투와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었지만요. 사십구제에서는 ‘선생님께서 고집하던 굿이 신명이 가져온 왁킹과 다르지 않다’, ‘이것들이 섞여서 더 좋은 게 나온 거 같다’라고 말해주고 싶었고요.
마지막으로 관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김우겸 <공작새> 작업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농악을 알게 된 것이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농악이나 왁킹, 보깅 이런 것들이 관객에게 신선하게 다가가면 좋겠어요. 그 안에 저희가 진정으로 노력한 부분들도 있고요. 열린 마음으로 보시면 그런 부분이 전달될 거 같고요, 재밌게 보신다면 너무 행복할 거 같습니다.
해준 보깅은 아닙니다. 와킹만 했어요. 정정해주세요!(웃음)
김우겸 정정해주세요. 잘 몰라서요.(웃음)
해준 그럼요. 모르는 건 어쩔 수 없죠.(웃음) <공작새>를 촬영할 때가 제게는 인생이 좀 재미없을 시기였어요. 캄캄했달까요? 그런데 <공작새>를 통해서 신명처럼 컬러풀해졌습니다. 개인적으로 제 인생에서도 좋은 경험이었어요. 전수관에서 합숙 생활을 하면서 굿 전수를 받을 때도 정말 힘들었거든요. 우리 스태프들만 있는 게 아니라, 다른 곳에서 전수받으러 온 분들과 함께 생활을 해야 했으니까요. 저는 단체생활을 좀 어려워하는 편이거든요. 그런데 첫날 몸풀이 굿을 한 시간 넘게 했는데, 너무 재밌는 거예요. 개운하기도 했고요. 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막 들었죠. 정말 굿 배우러 온 학생처럼 배웠네요. 사부님들이 고창 일대도 함께 다니면서 이야기를 많이 해주시니, 자연스럽게 인물에, 영화에 더 빠져들 수밖에 없었고요.

그래서, 관객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요?(웃음)
해준 영화에서 은밀하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봐요. 냄새로 맡아질 수도 있고요. 제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없습니다. 감독님이 하시겠죠. 관객들이 이 영화를 즐겨주면 좋겠습니다. 저는 저대로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 이런 것들에 대한 이야기만 전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네요. <공작새>는 본인을 찾아가는 영화거든요.
김우겸 근데 진짜 웃겼어요. 처음 농악을 배우러 갔을 때 해준 배우 머리가 민트색이었거든요. 다 같이 소고를 치면서 둥글게 도는데, 너무 눈에 띄는 사람이 머리를 막 흔드니까, 사부님들도 되게 신선하잖아요. 이런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너무 재밌던 기억이 갑자기 떠올랐습니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