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로에서 ‘여자’(이명하)는 과거 연인이었던 ‘남자’(하성국)를 우연히 만난다. 영화 모더레이터를 하러 서울극장을 가야 하는 여자는 길을 못 찾고, 남자는 여자와 동행한다. 두 남녀는 청계천, 을지로 공구상가를 지나며 이순신 장군 동상에 얽힌 시답지 않은 대화를 나누다 헤어진다. 그리고 남자는 ‘현재의 연인’(정수지)을 만나, 방금 전 연인과 걸었던 길을 걷는다. 몇 년 후, 여자는 회식 후 서울극장에서 만난 ‘팀장’(박봉준)과 종로의 밤길을 걷는다. 전 연인과 했던 대화의 소재들이 다시 등장한다. 시간이 흘러 여자와 남자는 인천에 있는 친구의 장례식장에서 다시 만난다. 두 사람은 그들이 함께였던 시절 단골이었던 종로의 한 바로 향한다.
흘러가는 시간, 변하는 공간, 그리고 그 속에서 만남과 재회, 이별을 되풀이하는 두 남녀의 일상을 담담하게 스크린에 옮긴 <미망>(감독 김태양)이 11월 20일 관객을 만난다. 서울 광화문 일대를 배경으로 그려낸 로맨스 영화는 뜯어볼수록, 생각할 거리가 풍성해지는 영화다. 마치 달팽이 무늬처럼 돌고 돌아 묵묵히 쌓여가는 시간의 나이테 속에서 변화하는 종로의 모습을 담아내며, 제자리로 돌아온 것 같지만 변화의 길로 나아가는 두 남녀의 모습을 성공적으로 그려냈다. 그렇게 영화는 돌고 돌아 제자리인 것 같지만, 무언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남자와 여자의 시간처럼, 우리네 매일매일도 생동의 시간임을 일깨워준다.
자칫 무모하게 보일 법한, 신인 감독의 치기 어린 도전으로 남을 뻔했던 이 구성을 완성시킨 건 어쩌면 코로나 팬데믹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통상 적은 회차에 밤샘 촬영으로 완성하는 독립영화들에서 시간과 공간의 변화를 느끼긴 어려운데, 팬데믹으로 촬영이 지연되는 동안 공사 중이던 곳에는 새 빌딩이 들어섰고 서울극장은 실제로 폐관됐다. 공간적으로의 변화가 자연스럽게 영화에 묻어났고, 3년이라는 기간 동안 성숙한 배우들의 연기는 시간의 깊이를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영화가 첫선을 보인 제48회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는 남녀가 공간을 걸으며 수많은 대화를 나눈다는 점에 주목해 “‘비포 시리즈’에 대한 한국의 답장”이라고 평했다. 제26회 우디네극동영화제에서는 퍼스트 타임 디렉터상을, 제14회 바르셀로나 국제작가영화제에서는 대상을 수상했으며 ‘Filmexplorer’는 “영화계를 밝힐 젊은 감독의 탄생!”이라고 극찬했다.
“모든 것들은 돌고 돌아 제자리로 돌아온다. 언제나 제자리인 것 같은 우리의 일상도 매일 공사를 하고 있는 도시의 공간처럼 부서지고 지어지고 있다. 많은 것들이 변화하지만 남아있는 것들이 있고 그 안에서 우리는 반복과 차이를 통해 어딘가로 나아간다”는 의미를 변화하는 시간과 공간 속에 담고 싶었다는 김태양 감독을 만나 <미망>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입봉 축하드립니다. 개봉 앞둔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영화에 대사가 많습니다. 시나리오를 쓸 때 영화가 시처럼 느껴지길 바라서, 은유적 중의적으로 쓴 대사들이 많아요. <미망>은 해외 영화제들에서 먼저 자막으로 관객을 만났어요. 좀 아쉬운 점이 있었는데, 이제 국내 개봉을 하니, 한국 관객들이 이 대사들을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가장 궁금하고 기대가 됩니다.
해외에서 <미망>을 ‘한국의 <비포 선라이즈>’라고 했다면서요?
신인 감독인데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과 견줘서 이야기해주신 부분은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웃음) 토론토영화제에서 처음 나온 기사였는데요. <미망> 형식이 트릴로지처럼 되어 있고, 또 주인공들이 계속해서 걷는 영화다 보니, 평론가, 프로그래머들이 <비포 선라이즈>를 언급한 거 같긴 합니다. 저야 워낙 좋아하는 영화고요,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세계관도 좋으니까요. <비포> 시리즈가 오랜 시간을 두고 만든 영화라는 점에서 <미망>이 착안한 부분도 있긴 합니다.
다만 조금 우려되는 지점이 있어요. 마케팅적으로는 분명 <비포 선라이즈>가 큰 타이틀이 되겠지만, <미망>은 ‘한국판 <비포 선라이즈>’라기보다는 ‘<비포 선라이즈> 시리즈에 대한 한국판 답장’이거든요. <비포 선라이즈>를 기대하고 온 관객들이 실망할까 조금 걱정이 되긴 해요. 새롭다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비포 선라이즈> 시리즈에 대한 한국판 답장’이란 말씀이시군요. 알겠습니다. <미망>은 단편들을 이어서 만들었다고요.
우연한 사건이 있었어요. 2019년, 영화 속 주인공처럼 제가 종로에 드로잉 수업을 들으러 가는 길에 누가 툭툭 두드리더라고요. 돌아보니 같이 영화를 공부한 친구였어요. 서울극장 가는 중인데 길을 잘 모르겠다면서요. 영화 첫 파트처럼 제가 길을 가르쳐줬죠. 오랜만에 만나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받았습니다. 헤어지면서는 감독 지망생, 배우 지망생이 의례 하듯 “우리 다음에 영화 꼭 찍자”라고 인사했고요.
그날 밤 일을 곱씹어 보니 인상 깊더라고요. 일기를 썼어요. 일주일 뒤에 시나리오를 써서 한 달 뒤에 촬영에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찍으면서 나머지 파트가 떠올랐는데, 코로나 팬데믹이 터지면서 2, 3편은 아예 작업하지도 못한 채 3년이 지나가 버렸습니다. 이 영화는 금방 끝날 수도 있는 영화였는데, 언제 끝날지 모르는 프로젝트가 되어버린 거죠. 3년이 흐르면서 실제로 배우도 성숙해졌습니다. 공간도 바뀌었어요. 공사 중이던 곳에 빌딩이 세워졌고요. 실제 서울극장이 폐관되면서 시나리오가 수정되기도 했습니다. <미망>에서 제가 표현하고 싶어했던 부분들이 바로 그런 점인데요. 3년이라는 시간 안에서 변화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것들요. 그렇게 조금씩 시나리오를 수정하면서 최종적으로 완성했습니다.
처음부터 장편으로 찍을 생각은 안 하셨어요?
제작비를 조달하기 어려웠거든요. 코로나 시국이 되면서, 먼저 찍은 걸 단편으로 공개하고, 성과가 생기면 나머지 이야기를 제작 지원이나 투자 받겠다는 전략으로 간 거죠. 그렇게 첫 단편 <달팽이>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됐고요. <서울극장>도 그렇게 투자 받았고, 세 번째 파트도 투자를 끌어내서 찍게 된 겁니다.

아까 잠깐 말씀하셨는데요. 영화에 대사가 어마어마하게 많아요. 시나리오도 금방 쓰셨다고 했는데, 참고한 작품이 있는 건지, 아이디어가 바로바로 떠오르는 건지 궁금합니다.
처음 구상했던 트리트먼트는 있었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면서 수정이 좀 많아졌어요. 글 쓰는 부분에 있어서는, 제가 작가로도 일하고 있다 보니, 글 쓰는 속도가 조금 빠른 편인 거 같아요.
서울 종로구, 중구가 주 배경입니다. 혹시 해당 구청의 지원을 받기라도 한 건가요?(웃음)
서울시에 촬영 협조를 요청했죠.(웃음) 공문을 받아서 거리에서 촬영은 할 수 있게 됐는데, 개별 가게들은 허가가 나는 부분이 아니다 보니, 일일이 찾아가서 허가를 구했어요. 공구상가 사장님들은 촬영하는 걸 은근히 즐기시더라고요.(웃음) 사전에 길거리를 지나가는 분들에게 뒷모습이 나올 수 있다고 고지도 했습니다. 저희가 촬영한 길들이 좁고, 유동 인구도 많아서 도둑 촬영을 할 수는 없었거든요.
<미망>은 공간이 중요한 영화인 것 같아요. 서울극장, 청계천, 공구상가 골목 등의 장소들은 어떻게 특정한 건가요?
실제로 제가 드로잉 했던 공간들입니다. 제가 원래 종로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서 더 많이 관찰했죠. 배우 동선을 생각하면서 계속 걸어 다녔습니다. 그러다 영화 마지막 파트에 나오는 작은 바 ‘소우’를 발견하기도 했어요. 포털에 검색도 잘 안되는 곳인데요, 섭외하려고 1년 정도 다녀서 단골이 됐습니다.(웃음) 그런 가게들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었던 작업이었어요.

영화의 진짜 주인공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순신 장군님 왼손잡이 사연’은 왜 이렇게 되풀이해서 나오는 건가요?(웃음)
그게 또 에피소드라면 에피소드인데요. ‘남자’ 역의 하성국 배우가 제 대학 동기예요. 둘이서 종로를 그렇게 돌아다녔어요. 음식도 싸고요. 하성국 배우가 여행을 가면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해요. 얕고 넓게 지식이 많아요. ‘여기는 어디 터였다’ 같은 이야기들요. 하성국 배우가 이순신 장군 이야기를 하길래, 너무 재미있어서 시나리오에 쓰겠다고 했죠. 진짜 촬영을 앞두고 조사를 해봤더니, 반대더라고요. 하성국 배우한테 말했더니 기억도 못 해요.(웃음) 그런 것들이 재미있어서, 영화에 넣었습니다. 어쩌면 <미망>에는 제 일상이 버무려져진 것 같기도 해요.
그렇군요. 영화에서 유일하게 서울을 벗어나는 장소가 세 번째 파트입니다. 저는 설마 ‘조계사’가 나오려나 조금 조마조마하기도 했습니다만.(웃음)
조계사도 생각했는데요. 영화에 나오는 절은 인천에 있는 ‘약사사’입니다.(웃음) <미망>은 영화 안에서 인물들이 미로처럼 헤매는 일을 반복해요. 그런 걸 이미지적으로 구현해보고 싶었죠. 절을 검색하는데, ‘법성계’라는 게 있더라고요. 처음 들어간 길에서 미로처럼 한 바퀴를 돌면 제자리로 돌아오는 길이 절 안에 있는 건데요. 우리나라에는 진도와 인천 이렇게 두 군데에 있다고 하더라고요. <미망>에는 커다란 사건이 발생하지도 않고,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도 없어요. 그렇지만 이런 디테일들이 쌓이다 보면 그 안에 의미들도 함께 쌓일 거로 생각했고, 그런 부분들을 카메라, 인물 동선에 녹였습니다.

방금 말씀하신 부분이 이 영화의 주제와 연관되는 것 같습니다. 되풀이되지만 사라지는 일상, 그러면서 흘러가는 시간과 변해가는 공간. 독특한 작업 방식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조금 더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영화에 그런 요소들이 있어요. 영화 첫 파트에서는 낮에서 밤으로 가죠. 여자가 “팀장님이 저녁에 술 먹자고 해”라는 대사를 해요. 두 번째 파트는 밤에서 시작해요. 그런데 몇 년이 흐른 밤입니다. 서울극장이라는 공간에서는 제자리에요. 그 서울극장을 지나 새로운 남자와 길을 걷습니다. 첫 파트에서 전 남자친구와 걸었던 그 길을 반대 방향으로요. 그러면서 비슷한 이야기를 하죠. 인물은 다르지만 같은 공간과 제자리로 돌아가는 느낌이랄까요? 두 사람은 다른 시공간에 있고, 서로를 인식할 수도 없죠.
어쩌면 우리 인생에서도 인연들이 그렇게 엮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 파트와 두 번째 파트가 낮과 밤으로 마치 하나처럼 이어지길 바랐고, 세 번째 파트에서는 낮과 밤이 반복되도록 했습니다. 첫 파트에 남자가 을지로에서 버스에서 밀리듯 내려오잖아요. 버스는 안 보이지만요. 세 번째 파트에서 카메라는 사람 대신 떠나가는 버스를 비춥니다. 마치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처럼요.
그렇게 순환한다는 일상 속에서 드러내고 싶었던 이야기는 뭔가요?
모든 것들이 반복되는 것 같고, 매일 같은 일상 같아도, 뭔가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고 그 안에서 뭔가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들이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담았습니다. 광화문의 이순신 장군 동상처럼 이전, 철거한다고 했는데 결국 살아남아있는 것들이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아닐까요? 결론을 내린다기보다는 제가 생각하는 삶의 가치관을 관객과 나누고 싶었어요.

영화 속에 삽입된 영화가 있습니다. 박남옥 감독의 <미망인>이죠. 어떤 의미를 담아 선택한 영화인가요?
박남옥 감독님은 한국 최초의 여성 감독입니다. 밥하고, 아기 업고 연출을 하셨대요. 첫 연출작이자 마지막 작품이 바로 이 <미망인>입니다. 영화에서 여자주인공이 설명했듯 결말은 유실됐어요. 최근 국내에 여성 영화제들이 많아지면서 다시 박남옥 감독을 회자하고 있습니다. 임순례 감독도 박남옥 감독을 소재로 다큐멘터리를 한 거로 알고 있어요.
제가 <미망인>을 처음 접한 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였어요. 영상자료원, 극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옛날 영화들을 많이 접하게 됐는데요. 1955년 영화인데 너무 세련된 겁니다! 영화에 트램들도 다니고, 우리나라 같지 않았어요. 공교롭게도 그 영화에서 남녀 주인공이 서울 거리를 배회하고 다니는 거예요. 저도 그런 영화를 찍고 있는데 말이죠.
그래서 첫 파트에서 여자가 자신은 영화 모더레이터라고 했으니, 모더레이트하는 영화는 박남옥 감독 영화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거죠. 고전영화다 보니 저작권 문제에서도 자유로웠고요. 또 영화에서는 서울극장 폐관 전이라는 설정이라서, 박남옥 감독님이 서울의 마지막 모습을 담은 필름을, 서울극장에서 상영하는 것도 일맥상통한다고 봤습니다.

저는 “나이가 들어도 마음은 늙지 않는다”는 대사도 마음에 와닿더라고요.
저는 몸만 늙는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영화를 하다 보니, 어른을 만나도 제 역할이 감독이면 스태프든 배우든 저를 연출자로 대하면서 나이로 인한 차이가 아니라 역할로 존중해줘요. 그러면 나이 차이는 생각보다 크게 느껴지지 않아요. 그들에게도 젊었던 시절이 있었고, 저 역시 시간이 지나면 늙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마음이 통하는 걸 보면, 과연 그 마음 자체가 늙는다는 게 가능할까 하는 생각인 거죠. 어른들이 흔히 “철이 없어야 오래 산다”고 하시잖아요? 그런 말들에 공감하던 시기이기도 했어요.
그런 부분들이 영화에서도 많이 묻어나는 것 같아요. 공간들도 그렇고, 아까 말씀드린 이순신 장군 동상도 그렇고요. 우리는 이순신 장군이 살았던 시대를 살지 않았지만, 지금도 이야기들이 생성되는 것처럼, 나이를 먹어도 나는 똑같은데, 내 외형 때문에 나를 어른으로 대접해주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을지로에 가면 50년이 넘은 가게들도 많잖아요. 젊은 친구들이 새로운 가게를 열기도 하는 힙한 공간이 됐죠.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공간 같다고 할까요?
알겠습니다. 제목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요. 제목으로 장난을 ‘많이’ 치셨어요.(웃음) 하나씩 설명을 들어보죠.
좀 그랬죠.(웃음) 원래 각장의 제목은 ‘달팽이’, ‘서울극장’, ‘소우’였어요. <미망인>이 영화에 들어오면서 제목이 바뀐 건데요. 국어사전에 ‘미망인(未亡人)’을 검색해보니 ‘남편이 죽었는데 따라 죽지 못한 여자’라고 나오는 거예요. 도대체 왜 이런 의미가 나오나 싶어서, 한자사전에 ‘미망’을 검색해봤죠. 한글은 같은데, 한자가 달라지면서 ‘사리에 어두워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다(迷妄)’, ‘잊으려 해도 잊을 수가 없음(未忘)’, ‘멀리 넓게 바라봄(彌望)’ 같은 다른 의미를 담고 있더라고요.
우연의 일치인데, 제가 영화에 담고자 하는 세 이야기와 너무 잘 들어맞는 거예요! 세 파트는 공간을 담아내는 개념이자 이미지인데, ‘미망’이라는 하나의 글자에 다른 뜻 세 개가 들어있다는 점, 또 결국 제자리로 돌아왔다라는 저의 주제 의식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좋은 제목이 발견돼서 너무 좋았습니다.

그렇군요. 엔딩 부분에서 ‘미망’ 타이틀이 뜨면서요. 빈 버스를 카메라가 비추는데, 참 잘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어쩌면 영화 속 인물 모두가, 우리 모두가 그렇게 인생이라는 곳에서 버스를 타고 여행을 하다가 내리는 이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맞아요. 마지막에 뜨는 ‘미망’(微望)은 ‘작을 미’에 ‘바람 망’을 써서 ‘작은 바람’이라는 뜻이데요. 이 영화의 전체적인 타이틀이 될 겁니다. 미망이라는 단어에서처럼 영화 속 인물들은 헤매고, 그리워하고, 멀리서 바라보는 것처럼 흘러가는데, 제 바람은 남자와 여자가 각자 다른 장소에서 홀로 한 방울씩 비를 맞은 것처럼, 이어져 있고, 또 이어지기를 바라는 작은 바람도 담은 거죠.
영화 속 인물들 모두 각자의 바람이 있습니다. 첫 파트에서 여자 모더레이터가 “여러분의 삶이 극장 밖에서도 이어지길 바란다”라는 작은 바람을 전하는 장면이 있듯이요. 영화 속에서 작은 바람들이 모였으니 마지막 제목을 ‘작은 바람’이라고 한 거죠.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영화에 뚜렷하게 감정을 이입할 것들이 적으니 소소한 재미들을 분포시켜두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했습니다. 아, 그리고 관객들에게 ‘미망인’ 말고 ‘미망’이라는 단어에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도 전하고 싶었어요.

음악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요.
노영심 선생님의 음악부터 장기하 가수의 노래를 평소 많이 들어요. 소우에서 나오는 노영심의 노래들은 타이밍적으로 가사가 대사와 맞물리기도 합니다. 저만의 ‘이스터에그’ 같은 거라고 할까요?(웃음) 간극이 있는 가수들의 노래가 함께 나오니 세대를 아우르는 공간이라는 의미도 있고요. <미망>의 김태산 음악감독이 제 동생이에요. 평소 음악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20대인 동생의 노래가 영화에 삽입되니, 공간에서도 이런 시간의 간극들이 혼재하고 있다는 걸 노래로 표현하고 싶었죠.
차기작으로는 뭘 준비하고 있으세요?
<서울 이야기>(가제)라는 시나리오를 썼어요. 서울이라는 공간이 저는 너무 재밌어요. <동경 이야기>(감독 오스 야스지로), <뉴욕 스토리>(감독 우디 앨런, 1989) 같은 영화는 있는데, 아직 서울 이야기는 없는 것 같더라고요. 꼭 그 제목으로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간단히 말씀드리면, 할머니가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와요. 아들의 이혼을 말리려고요. 그런데 아들이 집을 나가면서 손녀와 함께 아들을 찾으러 서울을 유랑하는 이야기입니다. 부부 역할에 <미망>에서 헤어졌던 여자 이명하 배우와 남자 하성국 배우를 캐스팅했습니다. 시간이 지나서 결혼했다는 설정까지는 아니지만, <미망>을 재밌게 본 관객이라면 <서울 이야기>가 제작됐을 때 흥미롭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마지막으로 이 영화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하고 싶으신가요?
바람 같은 건데요. 연예인을 보면 멋지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부럽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이나 일상에 특별하고 드라마틱한 사건이 없다고 해서 소중하지 않다는 건 아닌 것 같아요. 평범한 하루하루도 꽤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드라마 같은 구석이 있지 않을까요? 하루하루 걷는 길들도 다르게 바라보면 재미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어쩌면 내 하루도 영화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영화를 본 관객들에게 그런 마음이 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