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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거래하지 않을 자신 있습니까?" 〈서브스턴스〉 리뷰

이진주기자
〈서브스턴스〉
〈서브스턴스〉

줬다가 뺐는 것만큼 서러운 일이 없다. 처음부터 당연하게 내 것이었던 것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을 때 우리는 좌절한다. 노화(老化)란 이런 것이다. 보이던 것이 보이지 않고 기억나던 것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넘치는 에너지와 뜨거운 열정, 건강하고 탄력 있는 몸이 처음부터 우리의 것이 아니었다면 덜 괴로울까? 1954년 퓰리처상을 받은 미국의 시인 시어도어 로스케의 “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라는 명언이 담담하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는 ‘잘못 없이 벌을 받은 나’와 ‘노력 없이 상을 받은 너’가 함께하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서브스턴스〉
〈서브스턴스〉

영화 <서브스턴스>는 ‘잘못 없이 벌을 받은’ 50대의 한물간 스타 엘리자베스 스파클(데미 무어)과 ‘노력 없이 상을 받은’ 20대의 젊고 아름다운 수(마거릿 퀄리)의 목숨을 건 결투를 담는다. 문제는 엘리자베스 스파클과 수가 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영화는 끊임없이 말한다. “Remember you are one(기억하라 너는 하나다)”.

 

한때 아카데미상까지 수상하며 대중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은 엘리자베스 스파클. 지금은 겨우 TV 에어로빅쇼를 진행하는 처지이다. 그럼에도 그는 오랜 경력으로 쌓인 방송 노하우와 잘 관리된 몸으로 당당하게 활동했다. 쇼의 프로듀서 하비(데니스 퀘이드)의 악담을 듣기 전까지 말이다. 하비는 ‘young’, ‘hot’, ‘new’ (어리고 섹시하고 새로운)를 외치며 엘리자베스 스파클을 내쳤다.

 

설상가상 교통사고까지 당한 엘리자베스 스파클에게 한 젊은 간호사가 ‘서브스턴스’라는 약물을 알려준다. 한 번의 주사로 보다 나은 나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서브스턴스’의 유혹에 엘리자베스 스파클은 몸속 깊이 주사기를 찔러 넣는다.

〈서브스턴스〉 엘리자베스 스파클(데미 무어)
〈서브스턴스〉 엘리자베스 스파클(데미 무어)

영화는 시작부터 채도 높은 원색의 미장센과 적극적인 카메라 활용으로 그만의 독특한 문법을 관객에게 강력하게 주입시킨다. 특히 할리우드의 명물 명예의 거리에 설치된 엘리자베스 스파클의 별을 부감으로 잡아내 그의 인생을 압축적으로 표현해낸 시퀀스는 압도적이다. 마치 ‘서브스턴스’를 주입하고 혼미한 엘리자베스 스파클처럼 관객은 영화의 공격적인 유혹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이후 <서브스턴스>는 본격적으로 ‘바디 호러’ 장르물로서의 면모를 뽐낸다. 엘리자베스 스파클과 그의 몸에서 탈피한 젊고 아름다운 여성 수가 약물의 규칙에 적응하고 나아가 저항하는 과정에 두 개의 육체에 대한 노골적인 탐색과 기괴한 변형이 이루어진다. 결국 인간의 육체는 수단이자 재료로 전락하고 만다. <티탄>(2021), <미래의 범죄들>(2022) 등 신체 변형을 통해 관객에게 공포를 선사하는 ‘바디 호러’는 몸에 대한 욕망을 키워드로 하는 영화 <서브스턴스>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그렇게 엘리자베스 스파클과 수는 일주일씩 번갈아가며 시간을 공유한다. 수는 타고난 매력으로 엘리자베스의 후임자 자리를 어렵지 않게 차지하고 빠르게 성장한다. 기쁨과 사랑, 인정과 환호가 가득한 수에게 일주일은 짧다. 화려한 행사와 불같은 사랑을 위해 결국 수는 엘리자베스의 생명을 뽑아 자신에게 주입한다. ‘서브스턴스’의 룰이 깨지는 순간이다. 수는 겨우 몇 시간, 며칠을 젊게 살기 위해 어떠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수의 삶이 빛날수록 엘리자베스 스파클의 삶은 어두워진다.

 

〈서브스턴스〉 하비(데니스 퀘이드)
〈서브스턴스〉 하비(데니스 퀘이드)

엘리자베스 스파클의 자아가 수에게 옮겨가는 데에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들은 젊고 아름다운 여성만이 완벽한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한가운데에 있기 때문이다. 프로듀서 하비가 상징하는 이 남성 중심적 시장은 늘 팔리는 여성을 찾았고 수뿐만 아니라 엘리자베스 스파클 역시 한때는 그 수혜자였다. 젊은 시절 그가 스타로 부상하게 된 데에는 그 자리를 내어준 또 다른 ‘엘리자베스 스파클’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영화는 젊고 아름다운 여성의 피로 돌아가는 할리우드의 현실을 정확하게 저격한다.

 

〈서브스턴스〉엘리자베스 스파클
〈서브스턴스〉엘리자베스 스파클

데미 무어의 캐스팅은 <서브스턴스> 신의 한 수이다. 데미 무어야말로 할리우드의 산증인으로 <서브스턴스>의 엘리자베스 스파클의 전생과 같은 삶을 살았다. 1981년 영화 <선택>으로 데뷔한 데미 무어는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10대에 성인 잡지 모델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후 1990년 <사랑과 영혼>에 출연하며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으며 약 40년간 활동을 이어왔다. 독보적인 분위기로 스타덤에 오른 그는 3번의 결혼과 3번의 이혼, 7억여 원에 육박하는 전신 성형 등 충격적인 사생활로 대중에게 각인되기도 했다.

 

<서브스턴스>의 연출을 맡은 코랄리 파르쟈 감독은 데미 무어가 출연 승낙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걱정에 그를 캐스팅 보드에 올리지도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오히려 데미 무어가 자신의 회고록「인사이드 아웃(Inside Out)」을 전달하며 출연에 적극적이었고, 파르쟈 감독은 그가 엘리자베스 스파클에 적격이라고 확신했다. 코랄리 파르쟈 감독은 “데미 무어가 이미 모든 두려움과 공포증, 모든 폭력에 맞선 삶의 단계에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정말이지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을 발견했다”라며 캐스팅 과정의 일화를 전했다. 데미 무어 역시 “이 역할이 날 찾아왔다”며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서브스턴스〉 수(마가렛 퀄리)
〈서브스턴스〉 수(마가렛 퀄리)

한편, 수 역을 맡은 배우 마가렛 퀄리는 2013년 영화 <팔로 알토>로 데뷔한 이후 과감한 연기로 늘 할리우드의 도마에 오르내렸다. 1990년대를 풍미한 배우 앤디 맥도웰의 딸이자 샤넬, 겐조의 뮤즈로 활약한 모델이기도 한 마가렛 퀄리는 <서브스턴스> 이전에 <카인드 오브 카인드니스>(2024)와 그의 언니 레이니 퀄리의 ‘Love me like you hate me’의 뮤직비디오 등에서 파격적인 노출을 감행한 바 있다. 동시에 조회수 792만 뷰를 돌파한 2016년 겐조의 향수 광고에서 독보적인 표정연기와 움직임을 선보여 화제성에 밀리지 않는 연기력을 자랑했다. 마거릿 퀄리는 이번 작품에서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수를 완벽하게 표현하며 데미 무어에 밀리지 않는 존재감을 드러냈다.

 

씨네플레이 이진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