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가족
감독 양우석
출연 김윤석, 이승기, 김성령, 강한나, 박수영, 김시우, 윤채나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저출산 시대에 묻는 가족의 의미
★★☆
<변호인> <강철비> 시리즈를 만든 양우석 김독의 가족 코믹극. ‘정자 기증 스캔들’로 발칙하게 출발해 ‘대안가족’이라는 틀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묻는다. 장르는 다르지만, 목표한 바를 향해 이야기를 거침없이 밀어붙이는 감독의 화법은 여전하다. 무난하게 즐길 대중영화이긴 하나, 후반부 갈등 해소 과정의 섬세함이 떨어지고 메시지를 너무 교훈적으로 전하고 있어서 종종 저출산 시대에 나타난 출산 장려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정유미 영화 저널리스트
정성껏 빚은 가족 영화
★★★
<변호인> <강철비> 양우석 감독의 신작. 가벼운 가족 코미디로 시작해 깊은 가족 드라마로 흐른다. 양우석 감독은 만둣집을 운영하는 아버지와 스님인 아들의 이야기를 속이 꽉 찬 만두처럼 다양한 재료로 채운다. 익숙한 맛인가 싶을 때마다 반전이 일어나고 가족 영화 치고는 규모도 작지 않아 볼거리가 이어진다. 캐릭터도, 설정도 어느 하나 허투루 다루지 않고 가족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하려는 영화의 진심이 와닿는다. 다만 젊은 입맛을 공략하기엔 새로운 양념이 부족하게 느껴진다.
서브스턴스
감독 코랄리 파르쟈
출연 데미 무어, 마가렛 퀄리, 데니스 퀘이드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육체와 욕망
★★★★
데이비드 크로넨버그를 연상시키는 바디 호러이자, 자아 분열과 두 개의 육체에 얽힌 싸이코 스릴러이자, 싱싱한 육체를 소비하는 자본주의 미디어에 대한 블랙 코미디. 약물과 성형 중독의 시대를 비트는 듯하면서도 그곳에 단순하게 머물지 않고, 페미니즘 이슈와 연결되며 몸과 욕망에 대한 영화로서 관객을 공격하듯 감각적 이미지를 발산한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이 영화의 가장 강렬한 지점은 데미 무어. 1980년대 청순미 넘치는 청춘스타로 데뷔해 1990년대에 파격적인 육체 연기와 이미지를 보여주었지만 21세기 들어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어느새 60대가 되어 ‘왕년의 배우’가 되어가던 그는, 40년의 연기 인생을 응축해 폭발시킨다. 2시간 20분의 러닝타임이 전혀 지루하지 않은, 잊지 못할 클라이맥스의 강렬함을 지닌 영화.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모든 억압으로부터 폭주하고 끝내 폭발하는 에너지
★★★☆
바디 호러의 장르성을 적극적으로 끌어안고, 여성의 신체와 젊음을 착취해 온 산업과 사회적 현실을 고발하는 초현실적 우화. 이 영화는 산업 안에서 평가되는 동시에 성적 환상이 입혀지는 몸과, 강력한 자기혐오를 기반으로 여성 스스로 통제하는 몸이라는 두 가지 억압 사이를 폭발적인 에너지로 오간다. 카메라를 따라 노골적 시선의 소비에 가담했거나 가담한 적이 있는 우리 모두는 이 영화가 쏟아내는 피의 난장을 피하기 어렵다. 첫 시선에는 여러 파격이 먼저 눈에 들어오지만, 아무런 한계를 두지 않는 영화적 질주는 곱씹을수록 산뜻하기까지 하다. 남성 지배 중심의 업계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이자 스타 배우 데미 무어를 둘러싼 메타텍스트라는 점에서 한층 더 납득 가능해지는 결과물. 그의 실제 인생이 캐릭터에 드리우는 입체성의 무게가 적지 않다.
이지혜 영화 저널리스트
조각난 신체와 분열된 정신의 폭주
★★★☆
거울을 바싹 들이대 자신의 얼굴 곳곳을 품평한 적이 있다면, 그리고 그 거울을 다른 누군가에게 들이댄 적이 있다면 <서브스턴스>는 바디호러 이상의 공포가 된다. 여성의 신체를 조각조각 잘라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다 유통기한이 다 되면 뱉어 버리는 쇼 비즈니스에서 엘리자베스(데미 무어)는 늙었다는 이유로 퇴출 당한다. 그는 수상한 주사약으로 젊고 완벽한 육체를 지닌 또 다른 나 수(마가렛 퀄리)를 창조하지만 내 안의 괴물과 싸우며 점점 통제력을 상실한다. 외모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드는 세상에서 벌이는 엘리자베스의 극단적인 선택이 결국 스스로를 겨냥한 자해임을 스크린에 낭자한 선혈만큼 선명하게 드러낸다.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나’를 사랑하고 ‘나’를 파괴하는 ‘나’
★★★★
무엇이든 극단으로 밀어붙인다. 익숙한 메시지를 예측 불가한 방식으로 살벌하게 풀어낸다. 재밌는데 기묘하고 때론 ‘뜨악’스럽다. 노화를 거부하는 ‘자기혐오’가 얼마나 서늘한 부메랑으로 돌아오는가를 섬뜩한 이미지로 묘사하는 가운데, 젊은 여성의 육체를 소모품처럼 소비하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풍자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전신 성형 등으로 가십 뉴스의 표적이 돼 온 데미 무어의 자기 반영적 연기는 놀라움을 넘어서 눈물겹다. 심심풀이로 자신을 씹어대는 미디어에 이런 식으로 피를 뱉을 줄이야. 앞으로 데미 무어를 비판하려거든, 적어도 이 영화는 보고 말하자.
정유미 영화 저널리스트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장편 데뷔작 <리벤지>(2020)에서 강렬한 여성 복수극을 펼친 코랄리 파르자 감독이 할리우드로 무대를 옮겨 충격적인 여성 바디 호러를 선보인다. 전작이 남성우월주의를 저격하는 영화였다면, 이번 신작에선 외모지상주의와 할리우드에 대한 신랄한 풍자를 담았다. 젊고 아름다워지고 싶은 끝 간데없는 욕망이 불러오는 파국, 그 이후까지 집요하고 지독하고 처절하게 그린다. 직관적이고 탐미주의적인 연출은 더욱 과감해졌고, 피의 향연은 호러영화의 집합체와 같다. 데미 무어와 마가렛 퀄리가 온몸을 내던지는 연기의 끝을 보여 준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
감독 팀 밀란츠
출연 킬리언 머피, 에밀리 왓슨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고요한 밤, 침묵하는 불의 앞에 선 거룩한 의지
★★★☆
원작의 행간 사이를 이보다 정확하고 섬세하게 구현해 내기는 어려울 듯하다. 거대한 사건보다는 미세한 파동을, 변화의 흐름보다는 순간의 선택에 더 집중하는 영화 안에서 배우 킬리언 머피는 너무도 유려한 캔버스가 된다. 조직적인 불의 앞에서 양심과 정의를 바라보고자 하는 자의 두려움은 주인공 빌의 얼굴에, 손에, 반복되는 노동의 행위에 알알이 맺혀있다. 다만 그가 끝내 진실한 영혼이기를 택할 때, 영화는 추위를 헤치는 빌의 굽은 뒷모습에 이전과는 다른 삶의 시작을 알리는 빛이 스미기를 허락한다. 개별적으로는 작고 연약할 수 있지만, 인생의 변화는 올곧은 마음을 바탕으로 한 수많은 선택의 총합들로 이뤄진다. ‘이처럼 사소한’ 양심과 선의의 순간들이 발휘하는 힘은 그리 작지 않다.
이지혜 영화 저널리스트
아일랜드에서 온 크리스마스 선물
★★★☆
영화는 평범한 남자가 사소해보이지만 한 사람의 세계를 바꿀 선택을 하기까지의 과정을 찬찬히 따라간다. 성실한 가장 빌 펄롱(킬리언 머피)은 석탄을 배달하다 수녀원의 비밀을 알아버린다. 마을에서 인정받은 일원인 지위와 가족들을 먹여 살리는 생계가 위협받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빌 펄롱은 약자를 구하기 위해 손을 내민다. 망설이던 그가 마침내 결심했을 때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이 결연하거나 웅변적인 태도가 아니라 따뜻한 미소라는 점이 용기의 크기를 잘 보여준다. 동명의 원작 소설이 이미 탁월한 성취를 거둔 가운데 영화는 이를 성공적으로 스크린에 옮긴다. 문장에서는 밖으로 드러나지 않던 빌 펄롱의 고뇌와 두려움이 킬리언 머피를 만나 한층 더 깊어진 색감으로 배어 나온다. 종교의 이름으로 미혼모에 대한 인권 유린이 벌어졌던 아일랜드의 막달레나 세탁소 이야기를 다뤘다.
X를 담아, 당신에게
감독 테아 샤록
출연 올리비아 콜맨, 제시 버클리
정유미 영화 저널리스트
남성 중심 사회에 돌직구 날리는 여성 시대극
★★★☆
실화를 바탕으로 한 블랙 코미디 영화. 1920년대 영국 해안 마을 리틀 햄튼에서 벌어진 욕설 편지 테러 사건을 다뤘다. 신실하고 보수적인 독신 여성에게 날아드는 편지 테러의 범인을 찾는 과정을 유쾌하게 전개한다. 추리 소동극 분위기로 진행되던 영화는 시대에 억압된 여성들의 해방 이야기로 흐른다. 용의자로 지목된 아일랜드 이민자 여성의 사연과 사건 해결에 나선 마을 여성들의 연대를 보여주면서 구시대의 여성차별에 통쾌한 일침을 날린다. 올리비아 콜맨, 제시 버클리, 티모시 스폴 등 연기파 배우들의 연기 접전도 즐거운 볼거리다.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
감독 곤 사토시
목소리출연 에모리 토오루, 오카모토 아야, 우메가키 요시아키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하늘엔 영광, 땅엔 평화
★★★☆
존 포드의 <3인의 대부>(1948)에 대한 곤 사토시 감독의 오마주. <퍼펙트 블루>(1997) <천년여우>(2001) <파프리카>(2006) 같은 사토시 감독의 전작을 떠올리면,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따스한 온기를 지닌 작품일 것이다. 버려진 아기의 엄마를 찾아가는, 노숙자와 게이와 가출 소녀의 여정이 메인 플롯으로, 여기에 각 인물의 사연과 예상치 못했던 사건들이 서브플롯으로 얽힌다. 도시의 뒷골목에서 벌어지는 범죄와 액션의 어두운 톤을, 휴머니즘과 유머의 밝은 느낌과 대비시키면서 감동적인 가족 드라마가 만들어진다.
정유미 영화 저널리스트
독보적인 크리스마스 영화
★★★★
일본 애니메이션계에서 천재 감독으로 남은 곤 사토시 감독의 2003년 작. 크리스마스이브에 버려진 아기를 발견한 세 노숙자가 아기의 부모를 찾아 나서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그렸다. 가족을 등진 가장, 트랜스젠더, 가출 소녀 세 주인공이 도쿄 시내를 누비면서 우연과 만남을 거듭하는 이야기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크리스마스 정신을 일깨운다. 마냥 온화한 크리스마스 영화라기보다는 곤 사토시 감독의 독특한 개성과 사회 비판적 메시지가 번뜩이는 알록달록한 크리스마스트리 같은 영화다. 애니메이션 팬들에게는 매드하우스 대표작을 극장에서 만날 절호의 기회다.
퍼스트레이디
감독 애몽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이슈를 추월한 현실의 속도
★★☆
현실의 첨예한 이슈를 담는 정치 다큐멘터리에게 가장 곤혹스러운 경우는, 제작을 마친 후 개봉 시기가 되었을 때 세상이 너무 많이 변해버린 경우다. 그런 의미에서 김건희에 대한 다큐 <퍼스트레이디>는 조금 늦은 느낌이 있다. 이 영화가 다루는 디올백과 도이치 모터스와 천공 같은 이슈는, 명태균 게이트를 거쳐 계엄 선포를 지나 탄핵 정국이 된 지금 시점에서 볼 땐 이미 ‘흘러간 이슈’가 되고 말았다. 리마인드로는 가치 있지만, 시의적절함에서는 아쉬운 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