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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서현진과 함께 〈트렁크〉를 해석하다 “인지의 카약, 탱고, 어항, 버건디 재킷의 의미는…”

김지연기자

 

기자로서 인터뷰의 재미를 느낄 때는, 인터뷰이와 직업인 대 직업인을 넘어 사람 대 사람으로 작품에 관한 의견을 나눌 때다. 그런 의미에서, 서현진과의 인터뷰는 인간으로서 순수하게 ‘재미있었다’라고 말할 수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트렁크>는 유난히 여백이 많고 해석의 갈래가 다양한 작품이기도 한데, 배우로서, 또 시청자로서 누구보다도 명확하고 날카로운 이해력을 지닌 서현진은 <트렁크> 해석의 길잡이이기도 했다.

 

<트렁크>에서 노인지 역을 맡은 서현진은 그와 유난히도 닮은 반려견 ‘시더’와 함께 인터뷰 장소에서 취재진을 맞이하며 <트렁크>의 의미를 더욱 풍부하게 확장해 나가는 토론의 장을 열었다. 인터뷰에서 기자 본인이 느낀 ‘재미’가 지면에서도 고스란히 전달되길 바라며, 지난 6일 오후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배우 서현진과의 인터뷰 전문을 옮긴다.

배우 서현진. 사진제공=넷플릭스
배우 서현진. 사진제공=넷플릭스

12.3 비상계엄령 선포로 인해 인터뷰가 한차례 미뤄졌어요. 사실, 인터뷰가 취소되고 나서 바로 다시 일정을 잡는 게 쉬운 일이 아닐 텐데, 빠르게 다시 날짜를 잡아주셨어요. 서현진 배우가 <트렁크> 작품에 대한 애정이 그만큼 많다는 방증일 텐데, 서 배우에게 <트렁크>가 어떤 의미였는지 궁금해요.

다시 뵐 수 있게 돼서 너무 다행이고요. 급하게 다시 요청을 드렸는데도 만나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트렁크> 공개를 기다리고 있었던 시청자 중 한 명이었고, 또 제가 OTT 작품은 처음이라 기다리면서도 어떻게 보실까 굉장히 궁금했어요. 물론, 대본도 재밌었지만, 마지막에 인지의 멈춰 있던 시간이 흐르기 시작한 것이, 올해의 저에게도 많이 영향을 미쳤어요. 저도 짐 버리고, 이사도 하고. 저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어서, 작품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서현진 배우는 강한 캐릭터 몰입력이 장점인 배우잖아요. <트렁크>의 노인지 역을 맡은 후, 후유증은 없으셨는지 궁금해요.

(캐릭터를) 이렇게까지 묻어본 적은 또 처음인 것 같아요. 촬영은 끝났지만, 공개되기까지 시간이 있으니까 작품이 안 끝난 것 같은 거예요. 뭔가가 계속 남아 있더라고요. 문득문득 곰곰이 씹어보게도 되고, 그때 이런 해석이 맞았나, 아니면 이렇게 생각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래도 이제 오픈이 됐으니까, 떠나보낼 수 있지 않을까요?

배우 서현진. 사진제공=넷플릭스
배우 서현진. 사진제공=넷플릭스

 

그렇다면 실제로 공개된 <트렁크>를 봤을 때 어떤 느낌이 드셨나요?

완성본은 대본보다 훨씬 풍성해졌고, 더 좋은 쪽으로 가벼워졌어요. 대본 자체는 더 딥했거든요. 그런데 감독님이 음악도 캐주얼한 느낌으로 쓰시고, EDM 사운드도 쓰면서 분위기를 탁탁 한 번씩 깨주는 게 있어서, 대본보다 밝아져서 좋았어요. 제 취향의 톤앤매너여서요.

 

〈트렁크〉
〈트렁크〉

 

<트렁크> 중반부까지 인지는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을 꼽자면, 7화에서 도하(이기우)와 대면하고 집으로 돌아가며, 버스정류장에서 주저앉아 정말 힘들게 꺼이꺼이 우는 씬이었어요. 서현진 배우는 그 장면을 연기하며 굉장히 많은 것을 쏟아내신 것 같은데요.

그건 어려웠던 씬 중 하나예요. ‘어떤 감정으로 우는 걸까’를 알아야 하니까, 현장에서도 감독님과 (공유) 오빠와 많이 대화했어요. 도하와의 감정을 묻어온 걸까, 아니면 정원(공유)을 보고 울컥 눈물이 난 걸까. 그 감정의 정체가 뭘까에 대해 굉장히 많이 얘기를 했었는데, 지금 또 (제 스스로) 그 감정의 의미가 많이 변화하는 씬이에요. 찍고 나서도 그 울음의 의미가 뭐였을까,라는 물음이 따라다녔어요. 그런데 정답은 없지만, 지금의 제 생각은 ‘이 여자는 위로가 필요했나 보다’예요. 인지가 울자 정원은 손을 잡아주지도 않고 그냥 바라만 보잖아요. 그런데 그게 정원이 방식의 위로였던 것 같고, 인지는 그게 필요했던 것 같아요.

 

한편, 일명 ‘척추뼈 연기’까지 해내셨어요. 2화에서 척추뼈를 다 드러낸 채 흐느끼는 인지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김규태 감독님은 그게 ‘칸 가야 하는 연기’라며 굉장히 극찬을 하시더라고요. 그 장면이 서현진 배우의 제안으로 탄생한 씬이라던데요.

너무 부끄럽네요(웃음). 인지가 많이 피폐해져 있고, 코너에 몰려 있는 듯한 이미지성 컷이 필요했어요. 그날 등이 파여 있는 옷이 있기도 했고, 제가 평소에 임팩트가 있어서 가지고 다니는 사진이 있거든요. 그게 어떤 여자 모델이 앉아 있는 백샷인데, 허리를 숙이고 있는데 뼈가 도드라져 보이는 모습이 굉장히 임팩트가 있어서 언젠가 한번 이런 이미지를 쓰고 싶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등도 파인 옷을 입은 겸, 이런 이미지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보여드렸습니다.

 

배우 서현진. 사진제공=넷플릭스
배우 서현진. 사진제공=넷플릭스

 

<트렁크>에 등장하는 샹들리에도, 트렁크도, 카약도,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모두 비어 있어요. 그처럼, <트렁크>는 결핍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요. 인지의 결핍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해하셨나요?

이 해석을 처음 들어요. 너무 감사합니다. <트렁크>는 결핍에 대한 얘기도 맞죠. 제가 이해한 것은, 인지의 외적인 부분, 사회적인 모습은 직업적인 결혼, 그리고 인지의 비어 있는 속은 도하의 집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 두 개가 평행 세계처럼 나란히 공존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 집을 지키려면 직업도 있어야 하는 거예요. 그리고 (도하와의 관계가) 끝나지 않은 관계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나에게 벌을 주고 있는 형태로 이 직업이 필요했던 것 같고요. 그리고 (도하의 집을) 계속 쓸고, 닦고, 유지하는 것도 스스로에게 주는 벌이거나 죄책감 때문일 수도 있겠죠.

 

그렇다면 그 죄책감이, 결혼을 약속했던 남자친구 도하를 소유하고자 했던 욕망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저는 인지가 원했던 결혼은 굉장한 이기심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해요.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은 것, 그것도 소유의 한 형태죠. 그래서 오롯이 용서를 받는 시간이 필요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도하가 돌아와서 인지를 용서해 주지 않으면 끝나지 않는 거예요. 사실, 그냥 헤어져도 되고, 없어지면 더 이상 찾지 않아도 되고, 반년, 1년, 2년은 기다릴 수 있다 쳐도 그다음부터는 오기이고, 자신의 집착이잖아요. 그런데 내가 그 사람에게 사회적 살인을 했기 때문에, 내가 용서를 받기 전까지는 벗어나면 안 돼,라는 마음이지 않았을까요?

 

 

〈트렁크〉
〈트렁크〉

 

 

그래서 도하가 돌아오자 ‘밥 먹자’라고 하면서 도하의 집에서 아무렇지 않게 두 사람이 식사를 하는 건, 용서받고 싶은 인지의 심리에서 비롯됐을까요?

도하도 이 여자가 용서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들은 헤어지려고 만났잖아요. 끝을 보기 위해서. 촬영할 때도 이기우 선배님이랑 ‘끝내려고 만나는 관계’에 대해서 얘기했어요. 사실, 굳이 끝내려고 만나지 않아도 끝날 수 있는 건데, 그들은 그런 게 필요한 사람들인가 보다. 도하도 한편에서는 찝찝했을 것 같고요. 그렇다고 도하가 그 집에서, 한국에서 계속 살았을 것 같지는 않거든요.

 

인지는 도하가 떠난 후에도 5년간, 도하의 집에 있던 어항과 물고기를 계속 돌봅니다. 인지에게 어항이란 무슨 의미였을까요?

노인지에게는 ‘유지해야 하는 존재’였고요. 사실, 제가 어떤 순간에 느끼기에는 어항이 세상, 물고기가 도하 같았고요, 어떤 순간에는 어항이 도하의 집 같고, 물고기가 인지 같기도 했어요. 보시는 분들의 해석에 따른 거지만, 어항뿐만 아니라 드라마에 그런 장치, 미장센들이 숨어 있거든요. 그래서 소품들이 클로즈업이 될 때나, 인물 외에 다른 것들이 앵글에 많은 퍼센티지를 차지한다면, 분명 의도가 있기 때문에 촬영감독님이 잡으신 거예요. 그런 걸 좀 더 재밌게 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마치 서연이가 뿌리는 비트 주스를 잡아 주는 것처럼 말이죠. 앞서 공유 배우와의 인터뷰에서, <트렁크> 속 서연(정윤하)이는 파란색, 인지(서현진)가 빨간색을 상징한다고 들었어요. 의상 등의 디테일은 어떻게 잡으셨나요?

감독님이 각 캐릭터마다 색깔을 부여해 주셨어요. 인지는 레드, 서연은 파랑, 정원(공유)은 그레이, 지오(조이건)가 아마 초록색일 거예요. 그래서 감독님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신에서는 꼭 옷이 아니더라도 백이나 시계, 귀걸이 등 꼭 하나에는 컬러를 넣어줬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어요. 예를 들면 인지의 첫 등장 씬에서 인지는 버건디 재킷을 입고 있잖아요. 그리고 네 명(인지, 정원, 서연, 지오)이 모였을 때는 저의 귀걸이, 시계 스트랩이 빨간색이에요. 그리고 인지와 정원의 마음이 열렸다는 상징적인 씬이 있을 때는, 인지가 정원에게 물들어간다는 의미로 제가 그레이를 입기도 했고요. 그렇게 감독님의 섬세한 터치가 있었어요.

 

〈트렁크〉
〈트렁크〉

 

그렇다면 캐릭터를 상징하는 색상에 의미도 있었나요? 일반적으로 레드는 강렬하고 열정적인 느낌을 품고 있잖아요.

 

인지의 레드는 탱고랑 연결이 되는 건데, 이 여자가 탱고를 배운 것도, 사실 대중적인 게 아니고 자기가 좋아서 선택했을 것 같기도 하고, 사실 그는 자기의 일상이 무너지기 전에는 그렇게 살았던 여자일 거니까. 인지는 원래 그런 마음(열정)을 품고 살았을 거예요. 그래서 인지의 원래 컬러는 레드가 아닐까 하고, 인지가 타는 카약도 레드예요. 서연이는 왜 파란색일까요?

 

서연이가 정원에게 준 파란 약과 연결되는 것 아닐까요. 파란 약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고, 가짜 세상에서 살게 하면서 끊임없이 의존하게 만들죠. 서연이가 정원에게 그런 존재였을 수 있고요.

좋은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웃음).

 

 

〈트렁크〉
〈트렁크〉

 

 

정원이와 인지의 멜로는 우리가 익히 접했던 멜로와는 상당히 다른 느낌이에요. 서현진 배우가 타 로맨틱 드라마를 작업할 때와, 이번 작품을 작업할 때 어떻게 다르게 접근하셨나요.

정원이와 인지의 관계에 꼭 멜로만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개인으로서의 측은지심도 있을 것이고, 사람에 대한 안쓰러움, 그리고 인지는 정원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고도 생각했을 거예요. 도하의 집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과, 서연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정원이를 일치시켜 봤을 것 같고. 처음 시정(엄지원)에게 자신이 바라는 건 ‘완벽한 이혼’이라고 하잖아요. 그게 정원이와의 완벽한 이혼을 뜻하기도 하고, 인지와 도하를 뜻하기도 한다고 생각해요.

 

 

〈트렁크〉
〈트렁크〉

 

인지는 새벽에 홀로 카약을 타는 인물이잖아요. 인지는 카약을 탈 때, 유일하게 안정감을 느끼는 것 같은데요.

제가 인지가 카약을 타는 이유를 공감했던 게, ‘섬 같다’라는 표현 때문이었는데요. 사람들이 저희 집에 오면 ‘도시 한복판인데 섬 같다’라는 말을 할 때가 있거든요. 그래서 그 말이 뭘까,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노인지는 속 시끄러운 일이 많은 사람이었으니까, 카약에서 섬처럼 있고 싶은 게 아닐까. 모든 사람, 관계, 스토리를 다 떠나보내고 오롯이 나 혼자 가만히 있고 싶은 거. 저도 꼭 그렇지는 않아도 많은 소리에서 차단되고 싶을 때, 내가 원하지 않는 정보들이 막 쏟아질 때가 있으니까 이해를 하고 공감을 하겠어요.

 

카약을 실제로 타고 연기하면서 느낀 바가 있다면요.

카약은 팔로 하는 운동이 아니더라고요. 팔로 노를 젓는 게 아니라, 코어 회전 운동이에요. 팔로 하면 정말 몇 분 못 버티실 거예요. 팔이 아니라 몸통을 회전하는 운동인데, 탱고랑 되게 비슷해요. 그래서 저는 작가님께 탱고랑 카약이 같은 원리로 하는 운동인 줄 알고 쓰신 건지 정말 신기해서 여쭤보고 싶었어요. 오늘 여쭤봐야겠어요. 그런데 사실, 결국 앞으로 나아가려면 내 마음 가까이에 있는 마음 근육을 움직여야만, 진짜 내 자아가 변화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잖아요. 그게 꼭 인지에게 어울리는 것 같아서, 탱고와 카약이 꼭 맞는 것 같아요. 탱고도 격정적으로 발과 손을 쓰지만, 결국에는 몸통 회전이 중요하거든요. 척추 제일 가까이에 있는 근육이 움직여야 하는 거더라고요. 탱고와 카약 둘 다, 보이는 것과 하는 것이 되게 다른 스포츠예요. 그래서 저는 카약과 탱고가 꼭 인지 같았어요.

 

〈트렁크〉
〈트렁크〉

 

세트도 굉장히 공들여 만든 것 같아요. <트렁크>의 미술, 미장센 역시 극의 테마와 일맥상통하는데요. 정원의 집 1층은 다 감시를 할 수 있도록 문이 없기도 하고요. 세트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맞아요. 정원의 침실을 보면서 저희는 ‘멀쩡한 사람들도 이상해질 것 같은데’라고 했어요(웃음) 그 집에서는 아무도 멀쩡하게 살 수 없어요. 너무 어둡고, 뭐 하나 제대로 된 길이 없어요. 2층에서 1층 내려오는 것도, 몇 번을 꼬아서 내려가야 하는 비효율적인 동선이고. 그래서 집이 정원의 아버지가 얼마나 비정상적인 인물인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는 얘기를 했었어요.

 

 

〈트렁크〉
〈트렁크〉

정원과 인지는 서로에게 서서히 스며들어 갑니다. 그렇다면, 서현진 배우가 생각하는 인지가 정원에게 확 빠져든 시점은 언제였나요.

처음 정원이 특별하다고 느낀 건 대학생 때일 것 같고요. 그 후에 정원이 “나 당신이랑 자고 싶은 것 같아요”라고 했을 때 인지가 “알아둘게요”라고 하고, 그 사람의 마음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 대사에 대해 현장에서도 말이 많았거든요. 이런 말을 술을 먹지 않고 할 수가 있냐, 그런데 여자들은 ‘술을 먹지 않고 해서 더 좋은 거다’라고 했어요.(웃음) 그런데 진짜 이 얘기를 술 먹고 하면 더 싫었을 것 같은 거예요. 그건 주사지. 그런데 진짜로 안 먹고 그런 얘기를 해줘서, 인지가 그렇게 진지하게 알아두겠다, 너의 진심을 받아주겠다고 했던 것 같아요.

서연 역의 정윤하 배우와의 엘리베이터 액션 씬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긴장 관계에 있는 두 사람이 마침내 치고받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

감정 씬이기도 하고, 액션 씬이기도 해서 NG가 정말 많이 났어요. 밑에서 합을 맞추고 올라갔어도 서로 정신이 없으니까 풀샷에서 방향을 못 맞출 때도 있었어요. 그래서 서로서로 돌려가며 했던 기억이 나요.

 

인지와 서연의 몸싸움 말고도, 구강 액션이라고 해야 할까요, 마음재에서의 “근데 비트는 어디에 좋아요?” 등. 인지와 서연은 팽팽한 긴장 관계를 형성하는데요. 실제로 둘은 그 장면을 어떻게 연기했나요.

구강 액션이라는 표현은 처음 듣네요.(웃음) 저희는 재밌었어요. 마당재에서 서연과 인지가 앞에서 기싸움을 하고 있으면, 윤아(주민경)가 ‘체할 것 같아’라는 대사를 하거든요. 그런데 우리끼리도 찍으면서 ‘지금 차를 마신다고?’ 하면서 그런 긴장감을 재밌다고 느끼면서 했어요.

 

〈트렁크〉
〈트렁크〉

 

 

<트렁크> 3화, 정원의 집에서 4인이 모여서 와인을 마시는 장면도 인물들의 미묘한 심리가 오가는 명장면이에요. 정원의 현 와이프와 전 와이프, 전 와이프의 남편까지 한자리에 모였으니까요.

저희가 많은 인원이 모이는 장면이 많지 않았어요. 극 중에서도 잘 만나지 않으니까, 최다 인원이었거든요. 어떻게 앉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소파를 어떻게 놓을 것인지, 누가 한 소파에 앉을 것인지 등. 전적으로 감독님의 의견으로, 옛 부부 정원과 서연이 한 소파에 앉아 있고, 현 와이프인 인지와 현 남편 지오는 1인 소파에 앉았어요.

 

배우 서현진. 사진제공=넷플릭스
배우 서현진. 사진제공=넷플릭스

<괜찮아, 사랑이야> <우리들의 블루스> 등을 연출한 김규태 감독은 <트렁크> 제작발표회 현장에서 굉장히 길게, 서현진 배우를 칭찬하며 굳건한 신뢰를 드러냈어요. 서현진 배우는 김규태 감독과 함께 작업한 느낌이 어땠나요.

김규태 감독님은 구체적으로 디렉팅을 하신다기보다는 뭉뚱그려서 표현을 하세요. 저는 그게 어렵지는 않더라고요. 그리고 정말 놀랐던 건, 이렇게 오랫동안 많은 작품을, 많은 선배님들과 하신 감독님이신데, 아주 신인의 말에도 경청하시고, 막내 스태프의 의견도 다 들으시는 분이라서 정말 놀랍고 좋았어요. (조)이건이 같은 경우에는 거의 첫 작품인데도 그 친구의 의견을 끝까지 들으시고, 수평적인 관계를 형성하세요. 앞에서 사람이 20분을 혼자 얘기해도 끝까지 들으시고, 듣는 척만 하는 게 아니라 진짜 들으시고 그거에 대한 대답과 질문을 하세요. 제가 너무 신기해서 “감독님, 어쩜 그렇게 다 들으세요?”라고 한 적이 있거든요. 그랬더니 감독님은 “앞에서 말을 하니까”라고 하셨어요. 참 요즘에 잘 없는 미덕인 것 같아요. 그리고 공유 선배님도 그랬고, 감독님도 유머가 있으신 것도 너무 좋았어요. 그런 점이 진짜 배워야 될 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트렁크〉
〈트렁크〉

 

정원을 연기한 공유 배우와의 호흡은 어땠나요.

너무 좋았고요. 현장에서도 같이 연기하며, 진짜 섬세하게, 촘촘하게 연기를 하신다고 생각했는데 완성본을 보고 나니까 (공유 선배님이) 그려놓은 큰 그림이 보이는 거예요. 그리고 제가 너무 많이 빚졌다고 생각하는 게, 엔딩 씬을 찍을 때는 몰랐는데, 후시녹음을 하러 가서 바스트 컷을 처음으로 보니까 너무 깜짝 놀라서 연락드렸던 기억이 나요. 저렇게 사랑스럽게 봐줬는데, 저는 그만큼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 마지막 씬의 8할, 9할은 해주신 것 같아요. 1할은 은행나무고요. 덕분에 마지막이 너무나 설레게 잘 나온 것 같습니다. 이전에 제가 했던 드라마와는 달리, OTT 드라마다 보니까 한 번에 8화를 쭉 보게 되는 건 저도 처음이었거든요. 제가 뭘 놓쳤는지가 굉장히 잘 보이더라고요. 그리고 공유 선배님이 뭘 잘했는지가 잘 보여서 좋았어요.

배우 서현진. 사진제공=넷플릭스
배우 서현진. 사진제공=넷플릭스

 

그렇다면, <트렁크>를 정주행하며 본인이 놓쳤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어디였나요?

​좀 더 촘촘했어야 했다고 생각해요. 내가 조금 더 다르게 했으면 (시청자들이) 더 친절하다고 느끼시지 않았을까, 저는 대본이 여백이 많고 함축적이고 비유가 많아서 좋다고 선택했지만, 보시는 분들에 따라서는 불친절하다고 느끼실 수도 있을 것 같거든요. 그런 부분을 내가 좀 더 강력하게 메꿀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후회가 남습니다. 촬영을 순서대로 하지 않으니까, 후반으로 가니까 ‘앞에 어떻게 찍었었지?’가 희미해지는 거예요. 그래서 후반부에 감정이 세게 붙을 때는, 현장에서도 앞의 촬영본을 들춰보는 경우가 있었어요.

 

앞서 공유 배우는 인터뷰에서 불친절할 수도 있는 공백을 모두 서현진 배우가 메꿨다고 하셨는데요.(웃음)

더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웃음)

 

배우 서현진. 사진제공=넷플릭스
배우 서현진. 사진제공=넷플릭스

 

​모두가 서현진 배우는 정말 명확하고 확실하게 대본과 캐릭터를 연구하는 편이라고 하시던데요.

다른 분들이 봤을 때는 그렇게 보이나 봐요. 저는 제가 그런 것 같지는 않아요.

<트렁크>의 대사들은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기도 합니다. 서현진 배우가 <트렁크>에서 유독 기억나는 장면 혹은 대사가 있나요.

8화에서 정원의 집을 부수고, 인지가 정원에게 ‘고마웠어요, 한정원 씨. 당신에게 그 말을 꼭 하고 싶었어요’라고 하잖아요. 이 대사를 실제로 세트 마지막 촬영 날, 마지막 장면으로 찍었거든요. 저도 찍는 내내 공유 선배님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그 자리를 빌려서, 서현진과 노인지의 마음을 같이 대사로 빌어서 했었어요.

 

<트렁크>는 ‘가짜 결혼’이라는 소재로, 진짜 사랑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트렁크> 작업 전과 후, 결혼관이 바뀌었나요?

<트렁크>가 꼭 가짜 관계에서 진짜 사랑으로 가는 관계만을 그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인물들이 자신의 일상을 회복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결혼관이 뭐가 바뀌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인지가 평범한 일상을 회복했듯이, 나도 집 안에만 있다 보니까, 사람들도 만나고, 부대끼면 다른 일상이 있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는 됐어요.

마지막으로, 서현진 배우가 <트렁크>라는 작품을 통해 얻은 것이 있다면요.

김규태 감독님과 공유 선배님께 배운 건데요. 현장에서 애쓰지 않고, 유머를 잃지 않고 있는 거. 그리고 이 작품으로 내가 어떻게 성장했는지는 지금이 아니라 한두 작품을 더 한 후에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그때 내가 뭘 배웠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