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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 관람 추천하고픈 ‘당신이 놓친 영화’

씨네플레이

이왕이면 다홍치마다. 블록버스터든 수공예 독립영화든 작품 만든 김에 사랑받고 싶은 건 영화인 모두 같은 마음일 것이다. 그러나 관객 입장에선 돈도, 시간도 한정적인 인생에서 그 모든 영화를 다 챙겨보기란 불가능하다. 거기다 여러모로 형편이 안 좋은 근래의 상황에서 예상외로 사랑받은 영화만큼 예상보다 외면받은 영화도 많다. 그래서 오늘은 2024년, 혹여 독자들이 놓쳤다면 한 번쯤 되돌아봐주었으면 하는 씨네플레이 기자들의 추천작을 소개한다. 이른바 ‘당신이 놓친 영화’라고 명명한 이번 리스트는 기자들이 각자의 취향, 선호에 따라 정말 추천하고 싶은 영화 한 편씩 총 5편을 골랐다. 2024년이 다 가기 전, 참신한 에너지를 얻고 싶다면 기자들이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 추천하는 이 영화들을 한 번 살펴보시라. 참고로 근래 뜨거운 감자였던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 에서 도시락을 먹는 주체가 누구인가'에 대해선 씨네플레이 기자들끼리도 뜨거운 토론 중이니 의견이 있다면 그에 대한 의견도 환영한다. 


김지연표 도시락_ <플라이 미 투 더 문>(2024, 그렉 버랜티)

〈플라이 미 투 더 문〉
〈플라이 미 투 더 문〉

'신파'라는 단어는 본래의 의미와는 다르게 부정적인 뉘앙스로 더 많이 쓰이고 있는 추세지만, '신파'를 '관객의 감정을 건드리는 공식'이라고 정의한다면 영화 <플라이 미 투 더 문>은 그야말로 '미국식 신파' 메커니즘이 잘 녹아든 영화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애플tv+ 오리지널 영화로 제작되어 올여름 국내 극장에서 개봉하고, 마침내 지난 6일 애플tv+에 공개된 <플라이 미 투 더 문>은 모난 부분이 하나도 없이 매끈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다. <플라이 미 투 더 문>은 스칼렛 요한슨과 채닝 테이텀의 실패할 수 없는 로맨틱 케미는 물론이고 호불호 없는 웃음 포인트, 시대적 배경, 감동까지 적절히 버무렸다. '그냥 큐브릭에게 맡길걸!'이라며 스탠리 큐브릭이 아폴로11호의 달 착륙 장면을 연출했다는 음모론을 유쾌하고 영리하게 비벼낸 장면, 그리고 아폴로 1호에 탄 비행사들이 사망한 데에 따른 미국인 공통의 비애를 건드린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탁월하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 물론, 스칼렛 요한슨의 60년대 패션을 보는 재미가 큰 건 당연지사. <플라이 미 투 더 문>은 혼자 보기보다는 누군가와 함께 보는 '데이트 영화'로 제격이다. 연말 모임에 틀어놓고 다 함께 즐겨도 좋겠다.


성찬얼표 도시락 _ <싱글 에이트> (2023, 코나카 카즈야)

〈싱글 에이트〉
〈싱글 에이트〉

 

비록 식견이 있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영화를 오랫동안 지켜본 사람으로서 영화의 흥행은 운이 절반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왜 화제가 안됐지?’ 싶은 작품이 때때로  툭 튀어나는데, 올해는 <싱글 에이트>가 그런 작품이었다. 특히 영화를 사랑하기로 전 세계의 인정을 받은 한국에서, 청춘영화 마니아층이 적지 않은 한국에서 ‘영화를 만드는 청춘남녀 이야기’ <싱글 에이트>의 성적은 아쉬우면서 의아할 정도였다. 그래서 놓친 영화 특집을 진행하기로 결정하자마자 <싱글 에이트>라는 선택지가 떠오른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방학에 영화를 만드는 고등학생들. 이 풋풋한 소재와는 사뭇 안 어울리게도 이 영화는 1990년대 말부터 활동한 노장 코나카 카즈야 감독이 쓰고 연출했다. 이 ‘안 어울리게도’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영화 만들기의 우여곡절과 짝사랑으로 얽힌 청춘들의 풋풋함이 오밀조밀 스며들어 관객의 마음을 흔든다.  특히 지금처럼 정보량이 광범위하지 않은 시대에 영화를 만들고자 머리를 싸매는 모습은 모두 코나카 카즈야 감독의 자전적 경험에 기인한 것이라 ‘영화 만들기 A TO Z’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모범적인 연출 가이드북 역할을 한다. 1978년 필름 시절의 기발한 연출법은 물론이고 카메라의 기본적인 부분까지 하나하나 설명하는 것이 꼭 연출과 학생을 위한 교보재 같기도. 이런 지점도 훌륭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추천하는 건 히로시, 요시오, 사사키, 나츠미 네 인물과 이들을 연기한 배우들의 풋풋한 매력 때문. 히로시와 나츠미의 간질간질한, 그러면서도 고등학생다운 미묘한 긴장감은 이런 청춘을 보낸 적 없는 기자에게  ‘존재하지 않는 기억’을 주입하며 녹다운 시켰다. 요즘 같은 도파민 범람 시대에 이처럼 무해하고 (심지어 영화 만드는 과정조차) 슴슴한 영화라니. 지치고 힘들어 한숨 돌리고 싶을 때, 이 영화를 보며 잊었던 추억과 열정을 슬그머니 돌아보길 권한다. 


이진주표 도시락 _ <막걸리가 알려줄 거야> (2024, 김다민)

〈막걸리가 알려줄 거야〉
〈막걸리가 알려줄 거야〉

 

우리는 더 이상 ‘왜’를 묻지 않는다. 왜 일을 하는지, 왜 공부를 하는지, 왜 사는지 고민하지 않는 서글픈 어른이 된 우리도 한때는 삶의 답을 찾고자 했다. 이 탐구의 과정이 우리를 좌절과 우울 혹은 무기력으로 이끌지라도 보다 단단한 인간이 되기 위한 필연적인 시간이었음에는 틀림없다. 

<막걸리가 알려줄거야>는 삶의 답을 막걸리에게서 찾는 11살 소녀의 이야기를 담는다. 동춘(박나은)은 해야 할 것이 참 많다. 국어, 영어, 수학은 물론 태권도와 미술, 코딩 그리고 페르시아어까지 배운다. 동춘은 수많은 학원과 과제 속에 볼멘소리 한번 내지 않는다. 그저 이렇게 물을 뿐이다. “이거 왜 하는 거예요?” 동춘의 근본적인 질문에 어른들은 제대로 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서로에게 미룬다. 결국 동춘은 스스로 답을 찾아 나서기로 하고 우연히 만난 막걸리에게서 그 실마리를 찾는다. 

〈〉
〈막걸리가 알려줄 거야〉

 

영화는 아이와 어른을 이분화시켜 구도하지 않는다. 사교육을 시키는 엄마와 아빠는 동춘의 이야기를 들으려 노력하고 사교육을 강요하지 않는다. 한편, 동춘의 동급생들은 (초등학생임에도) 세상 물정을 너무 잘 알아 동춘을 ‘이상한 아이’ 취급한다. 동춘이 이들과 다른 점은 단 하나, 소통에 대한 의지이다.

막걸리의 거품 소리를 모스부호로, 그 모스부호를 페르시아어로 변환하여 막걸리와 소통하는 동춘의 모습은 삶의 진실에 다가가기 위한 진정한 소통의 가치를 보여준다. 극 중 누구도 동춘의 질문에 답하지도,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지도 못할 때 동춘은 느리지만 성실하게 막걸리와 대화를 나눈다.

​신년이 불과 보름 앞으로 다가온 시점, 당신의 다이어리 첫 장에는 어떠한 꿈과 희망으로 가득한가. 그것이 진정한 당신의 소리인지 막걸리에게 물어보라.


주성철표 도시락 _ <복수는 나의 것> (1979, 이마무라 쇼헤이)

〈복수는 나의 것〉
〈복수는 나의 것〉

진짜 이상한 얘기지만, 연쇄살인마가 살인을 저지르고 손에 묻은 피를 자신의 오줌으로 닦는 장면이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1979년작 <복수는 나의 것>은 오래전부터 보고 싶은 영화였다. 제목만큼은 너무나도 익숙한, 드디어 이제야 정식으로 극장 개봉한 이마무라 쇼헤이의 <복수는 나의 것>(영어 제목: Vengeance Is Mine, 1979)은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영어 제목: Sympathy for Mr.Vengeance, 2002)과 제목만 같다. 하지만 그를 비롯해 봉준호, 오승욱 감독 등 수많은 한국 감독들이 자신의 영화 베스트 목록에 빼놓지 않고 올리는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는 연쇄살인 행각을 벌인 이와오(오가타 켄)가 체포된 시점에서 출발하여, 과거로 돌아가 살인과 사기로 점철된 그의 행적을 추적한다. 경찰의 수사망을 따돌리기 위해 유서를 남기고 투신자살로 위장한 뒤 대학교수, 변호사 등으로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살인과 절도 등의 잔혹한 범죄를 대범하게 저지르며 도피 생활을 이어간다. 일본에서 실제로 벌어진 연쇄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삼았던 사키 류조의 동명 원작을 영화화한 <복수는 나의 것>은,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게 사이코패스의 잔혹한 행동과 불가해한 심리를 사실적이고 충격적으로 묘사했다. 유년기에는 군인과 폐하 앞에 충성을 맹세하는 아버지를 보고, 자라서는 미군과 함께 여성들을 희롱하며 살인을 저지르며, 쫓겨 다니면서는 재일한국인으로 보이는 여관 주인의 정부(情夫)가 되어 역시 살인을 저지른다. 그렇게 ‘괴물’이 되어간다. 그런 죄책감 없는 괴물의 탄생을 이토록 집요하게 추적하는 영화가 있었던가. 실제 그를 잡기 위해 12만 명의 경찰이 동원됐는데, 1963년 당시 일본에서 가장 큰 규모의 수사 작전이었다. 바로 대망의 도쿄 올림픽 개최를 한 해 앞둔 때였기 때문이다. 개인과 사회의 어긋나버린 그 균열과 충동의 진앙지로 들어가, 충격에 충격을 더하는 문제적 걸작.


추아영표 도시락 _  <독립시대> (1994, 에드워드 양)

〈독립시대〉
〈독립시대〉

 

 

 

 

 

 

 

 

대만의 3대 거장 감독 중 한 명인 에드워드 양 감독의 국내 미개봉작이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영화를 볼 이유는 충분하다. <독립시대>는 에드워드 양의 영화 <마작>과 함께 국내 미개봉작으로 남아 있다가 올해 9월 드디어 개봉했다. 에드워드 양의 필모그래피 안에서 빛과 어둠으로 근대 대만의 혼란스러운 시대적 공기를 그려낸 영화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과 보이지 않는 절반의 진실을 탐구해온 감독 자신의 예술관을 반영한 영화 <하나 그리고 둘>로 이행하는 전환점이 된 영화다. 또 통속적인 톤앤매너의 스크루볼 코미디인 이번 영화는 그의 영화 중에서 독특한 입지를 지니고 있다.

〈독립시대〉
〈독립시대〉

 

 

영화는 재벌 집 딸 몰리와 그녀의 절친 치치 사이에 얽힌 오해 그리고 그들의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계급과 성향, 가치관이 저마다 다른 영화 속 여러 인물은 스크루볼 코미디답게 자신의 말들을 소란스럽게 늘어놓는다. 하지만 그들 중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치치뿐이다. 순수하고 밝은 성격의 치치는 주변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지만, 진실되지 못한 사람들은 그녀의 순수함을 의심하고 가식으로 여긴다. 에드워드 양은 치치가 받는 오해를 영화 속 작품의 내용과 유비해 현대인들의 진실되지 못한 소통에 대한 비판의식을 드러낸다. 이는 곧 에드워드 양이 평생 몰두한 진실과 거짓이라는 주제로 이어진다. 자칫 가벼운 통속극으로만 보일 수 있는 영화는 그 속에 사랑과 예술, 정치의 메타포로 얽혀 있는 묵직한 주제 의식과 함께 인간의 보편적인 생애를 바라보는 에드워드 양의 따뜻한 시선을 담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