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의 마지막 달이 시작되었다. 한 해의 마지막을 논하기 참 어려운 시점이지만, 그래도 2024년을 정리하지 않고 넘어갈 수 있다. 올해를 되돌아보는 작품 선정 기준 중 '첫 '타자는 씨네플레이 기자들에게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온 '첫' 장편영화로 구성했다. 아래 소개할 영화들은 당연히 좋은 영화인 것은 물론이고, 각 기자들이 독자들이 한 번쯤 돌아봤으면 하는 추천작이기도 하다. 아직 이 영화들을 보지 못했다면, 상영 중인 작품은 극장에서 만나주길, 혹은 OTT에서라도 관심 버튼이라도 눌러주길 바란다.
주성철 편집장의 선택 _ <미망> (감독 김태양)

영화에서 공간은 또 하나의 캐릭터다, 라고 쉽게 말해 왔지만 솔직히 그 말뜻을 정확하게 이해했나 싶다. 김태양 감독의 데뷔작 <미망>을 보면서 이제야 그 의미를 알게 됐다. <미망>은 광화문을 비롯한 서울의 원도심 안에서 옛 연인이 만나고 헤어지는 3개의 이야기를 엮었다. ‘미망’은 에피소드 별로 서로 다른 세 개의 한자어로 이뤄져 있다. 사리에 어두워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맨다는 뜻의 미망(迷妄), 잊고 싶지만 잊을 수가 없다는 뜻의 미망(未忘), 멀리 넓게 바라본다는 뜻의 미망(彌望)이 인물들이 걷는 그 길 위에 새겨진다. 이별 후 성장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거짓이었고, 감정의 파도라 여겼던 심경의 변화도 그저 잔잔한 물결에 지나지 않았다. 결국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고 바고 그 공간이 알려준다. 홍상수 감독 <극장전>(2005)에서 동수(김상경)가 극장 앞에서 거짓말처럼 영화 속 여주인공 영실(엄지원)을 마주친 것처럼, <미망>에서는 과거 연인이었던 남자를 우연히 만난 여자의 뒤를 쫓는다. 영화 속 인물들은 분절되고 독립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 공간은 다 기억한다. 그렇게 스크린과 현실이 하나로 이어진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 그들이 걸었던 광화문 길을 따라 걸으며 <극장전>에서 동수가 했던 대사를 되뇔지도 모른다. “이제 생각을 해야겠다. 정말로 생각이 중요한 거 같아. 끝까지 생각하면 뭐든지 고칠 수 있어. (중략) 생각만이 나를 살릴 수 있어. 죽지 않게 오래 살 수 있도록.”
추아영 기자의 선택 _ <오멘: 저주의 시작> (감독 아르키샤 스티븐슨)
기존의 오컬트를 전복한 여성주의적 오컬트


차세대 여성 감독으로 주목받고 있는 아르카샤 스티븐슨은 리차드 도너의 대표적인 오컬트 영화 <오멘>(1976)의 프리퀄 <오멘: 저주의 시작>을 자신의 장편 데뷔작으로 만들었다. 아르카샤 스티븐슨은 이미 시리즈 <리전>, <브랜드 뉴 체리 플레이버>에서 호러, 액션, SF 등의 장르물에 특화된 스토리텔링과 스타일리시한 연출을 선보였다. 아르카샤는 이번 영화에서 자신의 재능을 살려 원작의 탄탄한 세계관에 데이빗 린치풍의 스타일리시함을 덧대 <오멘> 시리즈를 더 감각적으로 재탄생시킨다.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그가 애호하는 데이빗 린치처럼 바디 호러 장르를 활용한다. 그의 야심찬 데뷔작은 여성의 신체를 사탄의 임신 수단으로만 그려냈던 기존의 오컬트를 전복하고, 바디 호러를 통해 여성의 신체에 가해진 고통을 드러낸 여성주의적 오컬트다.
영화는 수녀 서약을 맺기 위해 로마로 떠난 마거릿(넬 타이거 프리)이 악의 탄생과 얽힌 음모를 마주하고 신앙을 뒤흔드는 비밀의 베일을 벗겨내는 이야기다. 1970년대의 로마, 교회의 세력은 더 이상 교회에 오지 않는 사람들을 다시 불러 모으기 위해 적 그리스도를 탄생시키려 한다. 이들은 자신의 권위를 위협하는 세속주의가 세상에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사탄과 손잡는다. <오멘>이 1970년대 미국의 기성세대들이 반문화 세대에 갖는 공포를 형상화했다면, <오멘 : 저주의 시작>은 종교 극단주의자들이 세속화 진행으로 달라진 세상에서 느끼는 공포를 날카롭게 그려낸다. 아르카샤 스티븐슨의 데뷔작은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의 기성세대들과 종교 극단주의자들의 모습을 영리하게 유비해냈다.
이진주 기자의 선택 _ <장손> (감독 오정민)

지난 9월 <장손>을 처음 관람하고 네 개의 별점을 매겼더랬다. 그리고 약 3개월이 지난 지금 <장손>은 다섯 개의 별로도 부족하다. 일상의 아무개들에게서 종종 이 영화를 흔적을 찾는 것을 보면 필자에게 <장손>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며 새롭게 시작한 셈이다.
약 121분의 러닝타임 동안 <장손>은 세 계절의 시간 속에 세 세대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압축적으로 담아낸다. 영화는 깊은 곳에서 시작해 몸집을 부풀려 층과 층 사이 뜨끈한 공기를 품은 크루아상처럼 가벼우면서도 높은 밀도감을 자랑한다. 이는 <장손>의 세계관을 다차원의 좌표에서 설계해 구현해낸 오정민 감독의 몫이 크다.

영화 <장손>은 3대 장손인 성진(강승호)를 중심으로 대가족이 제삿날에 모이며 시작한다. 전형적인 유교적 가부장제를 따르는 이 집은 가업인 두부 공장을 운영하며 가문(?)의 토대를 쌓았다. 어렵사리 공장을 설립한 1세대와 뒤를 이어 사업을 번성케한 2세대는 3세대인 성진이 서울에서 영화를 한다는 것이 못마땅하다. 가족의 기대와 애정을 한몸에 받는 성진은 결국 가업을 잇지 않겠다는 폭탄 발언을 하고 집에 폭풍이 불기 시작한다. 설상가상 갑작스러운 이별이 이들을 찾아오며 무엇보다 단단해 보이던 가족은 두부처럼 으스러지기 시작한다.
세대, 젠더, 이념 등의 차이를 보이는 인물들이 한 데 모여 크고 작은 갈등을 일으키지만 영화가 진짜 주목하는 것은 이들의 삶이다. 가족이라는 이름 하에 한 데 모인 이들은 서로 다른 운명의 수레바퀴를 타고 흘러간다. 그리고 계절에 따라 변모하는 산이 이들을 품는다. 영화는 모든 것에서 한 발짝 떨어져 지켜볼 뿐이다. <장손>은 오정민 감독 개인의 역사에서 영감을 얻었지만 결코 자전적 성격을 띠지 않는다. 오히려 보편적인 한국 가정의 다양한 형태를 담아내 관객 각자의 내면에 깊이 파고든다. 그렇게 전달된 파동은 영화가 끝나도 남아서 문득 떠오른다.

성찬얼 기자의 선택 _ <해야 할 일> (감독 박홍준)


요컨대 적대의 시대. 진영을 짜고 편을 가르고 혐오하는 것이 온세상을 관통하고 있다. 이렇게 서로를 이해하는 노력이 점차 무의미해진 시대에 '회사의 인사팀'을 주요 인물로 내세운 영화 <해야 할 일>은 영화의 호불호나 완성도를 떠나 이상하리만큼 오래 남는다. 투자자들의 비위에 맞추고자 사측에서 단행하는 대규모 구조조정에서 주인공 강준희(장성범)를 비롯한 인사팀은 각자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동료인 노동자를 만나고, 희망퇴직을 권유해야 한다. 그것이 그들의 업무니까. 박홍준 감독 본인의 인사팀 경험을 녹여낸 영화는 '사측'과 '노동자' 양측 사이에서 사실은 그 어느 쪽에 기댈 수 없는 인사팀 직원들의 고충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사실 <해야 할 일>에서 제일 좋은 부분은 딜레마에 억눌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사팀 발령되자마자 구조조정이란 큰일을 수행하는 강준희는 물론 스트레스를 겪는다. 해고 대상자 이름에서 아는 이름을 발견하고, 친했던 직원도 넌지시 적개심을 드러낸다. 이런 스트레스는 결혼을 목전에 둔 여자친구와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영화는 강준희가 무너질 정도로 몰아세우지 않는다. 만일 그랬다면, 이 영화는 '딜레마'를 들여다보는 그 많은 영화들과 다를 게 없었을 것이다. 인사팀의 고통을 더 부각했더라면 자칫 인사팀 옹호라고 오해를 살 법한 일을 미연에 방지했달까. 영화의 적절한 거리 두기는 인물들의 상황을 보다 보편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한다. 그런 면에서 참 슴슴한데,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뜨겠지' 하고 매일을 살아가고 있는 나를 보는 것만 같아 괜스레 마음에 남는다.
김지연 기자의 선택 _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감독 김민하)


취향을 매우 많이 탈지언정, 의도적으로 허술한 영화가 필요했다. 시쳇말로, 최고로 ‘MZ’한 감독과 영화가 나타났다. 너무 거대하거나, 너무 매끈하거나, 혹은 너무나 감정의 여백이 많은 영화들 사이,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개교기념일>(이하 <아메바 소녀들>)은 너무나 독특해서 그 자체로 귀중하다. 괴상하고도 재기발랄한 <아메바 소녀들>은 저예산 영화의 새로운 길잡이를 제시하는 듯, 감독이 담고 싶었던 이야기가 그릇에 딱 알맞게,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담긴 모양새다.
혹자는 설명에서 <인천스텔라> <잔고: 분노의 적자> 등의 백승기 감독, <델타 보이즈> <습도 다소 높음> 등의 고봉수 감독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아메바 소녀들>의 김민하 감독은 그들과는 단연코 방향이 다르다. 그보다는 건전하고, 정통(?)적이고, 귀엽다. 말하자면, ‘착한 병맛’이랄까. <아메바 소녀들>은 구석구석이 모두 ‘밈’화 되기 좋은 영화이자, 반대로 숏폼 영상이나 스케치 코미디의 재미에 익숙해진 관객들에게 낯설지 않게 말을 거는 영화이기도 하다. 너도나도 한국영화계에 ‘다양성’이 필요하다며 입 모아 외치는 가운데, <아메바 소녀들>, 그리고 김민하 감독이 추후 들려줄 이야기는 분명 희소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