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근래 자주 들은 말. “어쩌면 이것도 못했을지 몰라”. 출근하고, 밥을 먹고, 퇴근하고, 여가를 즐기는 일상 속에서 문득 떠오르는 문장. 이런 일상적인 것도 못했을지 몰라. 40년여 만에 '계엄'이란 두 글자를 마주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12월 3일 밤 10시경, 대통령은 계엄을 선포했다. 다행히 약 6시간 만에 해제됐으나 그 몇 시간의 여파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하나씩 공개되는 정보들은 비상계엄과 관련한 작전이 정말 '운 좋게도' 제대로 수행되지 않아 국회의 해제안 의결이 가능했음을 증명했고, 그 결과 국민들의 발걸음은 이 여파를 조금이라도 빨리 해결하도록 힘을 싣기 위해 국회 앞으로 향했다. 그리고 지난 14일,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돼, 대한민국은 다시 한번 새로운 기로에 섰다.
이런 상황에서 영화 같은 분야는 사치라고 여기는 이들도 있겠지만, 반대로 문화야말로 의외의 파급력을 발휘한다. 문화는 결코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아닌, 현실에 발붙인 사람들이 형성하고 누리는 것이기에 그렇다. 실제로 비상계엄 사태 이후 영화인들은 성명을 두 차례나 발표했고, 각자의 위치에서 목소리를 냈다. 이런 일련의 모습에서 떠오르는 영화들이 있어 정리한다.
<서울의 봄>
12월 3일 비상계엄령 이후 많은 이들이 당시 상황을 회상하는 가운데, 눈에 띈 일화. 해외에서 사는 한 이민자가 계엄이란 단어에 놀라 외국인 친구에게 말했더니, 외국인 친구는 '계엄'이란 단어 자체를 (모국어로도) 모른다는 것이다. 물론 나라마다 헌법이 다르니 계엄이란 단어가 통용되지 않아서 발생한 일일 테지만, 생각해보면 그 말이 납득이 간다. 전시, 혹은 그에 준하는 상황이 일어나 행정부에서 군대를 운용하는 것. 이런 상황을 경험할 순간이 평생 얼마나 되겠는가. 내란 가능성이나 적군 첩보원의 대규모 침투가 엿보일 때나 할 수 있는 조치일 테니 일반적인 국가에서 자주 듣는 단어일 리가 없다.
사실 한국 또한 마찬가지다. 계엄이 발령된 상황은 1980년이 마지막이다. 44년 전이다. 애초 일반 시민들에게 이 단어가 익숙한 것이 이상한 셈이다. 그럼에도 한국인들은 발령과 동시에 상황의 위험성을 즉각 인지했고, 그중 일부는 곧바로 국회로 달려가 계엄군의 진압 상황을 늦추는 데 일조했다. 44년, 아주 먼 세월이지만 누군가의 머릿속엔 그 시간을 아득히 뛰어넘는 충격이 '계엄'에 새겨졌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특기할 만한 부분은 그 시절, 그러니까 44년 전 마지막 계엄을 책으로만 배운 세대조차 비상계엄령을 듣자마자 상황 파악이 빨랐다는 점이다. 그 지점에 있어선 2023년 영화 <서울의 봄>의 공이 크다. <서울의 봄>은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된 10.26 사태 이후 공백이 생긴 권력을 장악하려는 군부 세력과 이를 저지하려는 수도경비사령관의 대립(12.12 군사반란)을 그린 작품이다. 물론 12.12 군사반란은 계엄사령관마저 연행되는, 일반적인 계엄이라고 볼 수 없는 내란이었으나 영화 속에서 '무력으로 국가 권력을 장악하는 상황'의 심각성은 충분히 전달됐다. 거기다 <서울의 봄>은 개봉 당시 세대 불문 작품성을 인정받아 1,300만 관객 돌파라는 흥행을 거뒀다. 그만큼 '계엄'이란 단어, 시스템을 무시한 국가 장악에 대한 두려움과 경각심이 전 국민에게 어느 정도 상기된 상황이었다. 때문에 이번 12.3 사태는 전 국민적인 경각심으로 발 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다고 봐도 될 것이다.
<맥베스의 비극>
OTT 시대의 좋은 점 중 하나. 방에서 '명작'을 원작 삼아 '명감독'이 만들고 '명배우'가 연기한 것을 볼 수 있단 것. <맥베스의 비극>이 그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이 영화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맥베스」를 조엘 코엔 감독이 영화로 옮겼다. 거기다 덴젤 워싱턴이 맥베스를, 프란시스 맥도먼드가 레이디 맥베스를 연기했다. 마치 일종의 실험극을 보는 듯한 미니멀리즘 프로덕션 디자인에 4:3 화면비, 더불어 흑백 영상까지. 이제는 믿보배급사로 자리 잡은 A24와 오픈 초기에 공격적인 마케팅을 시행한 애플tv+가 아녔다면 못 봤을 프로젝트였을 것이다.


아무튼 '맥베스' 하면 사람들이 반사적으로 떠올리는 건 맥베스 본인보다 그의 부인 레이디 맥베스인 경우가 많다. 맥베스가 황무지에서 세 마녀로부터 '왕이 될 자'라는 예언을 받고도 그저 환상이 아닐까 우유부단하게 굴 때, “계획을 실행한다면 더욱 사내다워질 거예요”라고 종용한 건 그의 부인이었다. 맥베스가 덩컨 왕의 심장에 칼을 꽂고 한참 절망하고 있을 때 경비병들에게 누명을 씌워 죄에서 벗어나라고 지시하는 것도 레이디 맥베스다. 사내보다 더 사내다운 자, 욕망을 실현하는 야심가, 극중 이름조차 명시되지 않는 이 레이디 맥베스야말로 4대 비극 다른 작품과의 차별점이자 지금까지도 '클래식'으로 칭송받는 이유 중 하나다. 욕망은 누구나 가지고 있으나, 그것을 실행하는 것, 혹은 실행하도록 종용하는 것. 「맥베스」는 탐욕이 어떻게 인간을 위대하게 만들며 동시에 지옥으로 빠뜨리는지를 명백하게 보여준다. <맥베스의 비극>은 원작 비극을 대폭 압축하긴 했으나 프란시스 맥도먼드의 레이디 맥베스는 그 와중에서 분명 번뜩이고 있다. 귀에 꽂히는 발성으로 맥베스를 사로잡으며 안광을 빛내는 맥도먼드의 레이디 맥베스는 <맥베스의 비극> 명암을 넘나들며 관객을 사로잡는다. 왕위를 탐내다 미끄러진 자, 그리고 그런 우유부단한 남편을 통해 욕망을 실현하는 여인의 이야기가 이 추운 겨울에 유독 생각나는 건 그저 '우연'일 것이다. 아마도.
<위기의 민주주의: 룰라에서 탄핵까지>


지난 대선 레이스 당시 양강 후보 모두 봤다고 대답한 영화가 하나 있다(정확히는 한 후보가 봤느냐고 물었고 다른 후보가 봤다고 대답했다. 진짜 봤을지는 호기심의 영역에 남겨두겠다). 다큐멘터리 <위기의 민주주의: 룰라에서 탄핵까지>다. 2019년 공개한 이 다큐멘터리는 2010년대 브라질을 흔든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이 어떻게 부상했는지부터 탄핵당하며 물러나기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영화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가 대통령 임기 만료 후 표적 수사의 대상이 되고, 그로 인해 시민 간의 의견 대립이 극단으로 치닫는 과정을 포착한다. 민주주의의 희망을 엿보았다가 다시 거세진 갈등으로 분열되는 브라질 사회가 비단 남의 일로만 보이지 않는다. 특히 영화를 만든 페트라 코스타는 본인이 처음 투표하는 장면 등 본인 인생을 자료로 사용하며 민주주의의 주체는 곧 국민임을, 민주주의의 본질을 상기케 한다. 일각에선 그만큼 감독의 시선이 진하게 투영된 작품이라서 일정 부분 거리를 두고 봐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중립적인 저널리즘 다큐멘터리처럼 위장할 뿐, 프로파간다에 가깝다는 극단적인 비판도 받았다. 그럼에도 탄핵이라는 중대한 사건을 사건 전후, 미시적인 부분에서 거시적인 부분까지 그 변화를 살펴보는, 그것도 해외의 실제 상황을 반영한 다큐멘터리라는 점에서 지금쯤 한 번 챙겨보면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