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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강풀 작가의 작품은 특유의 정서를 살리느냐 살리지 못하느냐가 관건이다” 〈조명가게〉 김희원 감독

추아영기자
〈조명가게〉
김희원 감독 (사진 출처 =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극단 생활로 시작해 벌써 연기 경력 30년을 넘긴 배우 김희원이 감독으로서 대중 앞에 다시 섰다. 그는 강풀 작가의 원작을 시리즈화한 디즈니플러스의 시리즈 <조명가게>의 연출을 맡아 감독으로 데뷔했다. 본래 연극 연출을 전공한 그는 배우 생활을 하면서도 연출에 대한 꿈을 놓지 않았다. 틈틈이 연출 공부를 하고, 배우로서도 작품 전체를 조망하는 시선을 잃지 않고 의견을 제시해 온 것. 대학 시절에 연극 연출을 해본 그의 경험은 이번 작품에서 빛을 발하기도 했다. <조명가게>는 기존의 드라마 구조에서 벗어나 한 편의 연극처럼 구성되어 있다. 그를 만나 감독으로 데뷔한 소감과 작품 <조명가게>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조명가게〉
〈조명가게〉

 

<조명가게>는 배우로 활동하다 감독으로 데뷔한 첫 연출작인데, 이번 작품을 연출한 소감이 어떤지 궁금합니다.

아직은 제가 감독이라고 느껴지지 않아요. <조명가게> 끝나고 나서는 ‘배우로서 한 작품을 끝낼 때와 감독으로서 끝낼 때는 아주 큰 차이가 있구나’란 생각이 들긴 했어요. 물리적인 시간이 엄청나게 차이가 나거든요. 배우로 작품을 끝냈을 때는 ‘아우 시원해’ 이렇게 느끼고 말았다면, 감독으로서는 지금도 되게 두근두근하고, 감정 기복이 좀 많아요. 10월 12일에 디즈니에 최종적으로  작품을 납품했는데, 그때는 살짝 공항 같은 것도 왔어요. 좀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이번 작품은 어떻게     하게  되었 나요?

     

우선 강풀 작가님이 제안을 먼저 주셨어요. 이거는 제 추측인데요. <무빙>에서 제가 맡은 인물이 초능력이 없잖아요. 제가 생각하기로는 초능력이 없는데 초능력자하고 싸우면 죽을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작가님께 말씀드렸죠. “애들을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남의 집 자식인데 이렇게 목숨 걸고 싸울 일이 없다. 최일환이라는 사람의 신념이나 존재감이 걸려 있어야 목숨 걸고 싸울 수 있을 것 같다”고요. 그렇게 얘기했더니 작가님이 설득됐다고 대본을 바꿔주셨어요. 그런 대화들이 저를 이번 작품의 연출로 이끌지 않았나 싶어요.

작가님께 저를 왜 연출로 선택했냐고 물어봤을 때는 그저 “연기를 잘하시잖아요”라고 답해주셨어요. 제가 작품을 할  때마다 제 캐릭터도 생각하지만, 전체적인 것을 많이 생각하고 분석하는 배우여서 그런 부분이 작용하지 않았나 싶어요.

〈조명가게〉
〈조명가게〉

 

물론 작품의 서사 를 조망해서 바라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이 감독이 해야 할 일의 다는 아니잖아요. 촬영이나 배우 디렉팅 등 각각의 요소들을 다 아우르면서 해야 하는데 실제로 해보니 어떠셨어요?

 

사실은 제가 평상시에 연출 준비도 하고 있었고, 꼭 연출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지만 막상 실제로 하면서는 저도 저한테 깜짝 놀랐어요. ‘내가 이런 아이디어를 다 내다니’라는 생각이 들었죠. 예를 들어서 4화 마지막에 있는 롱테이크라든지, 버스 사고 장면도 제가 장난감 버스랑 트럭도 사서 혼자서 장면을 구상했어요. ‘이렇게 넘어지면 되겠구나’하고 미리 다 생각했거든요. 그러다가 ‘그래 이게 맞아’, ‘이렇게 하면 재밌을 거야’하고 혼자 생각만 했던 것이 화면으로 옮겨졌잖아요. 그 순간에 신이 도와준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웃음) 또 제가 어떤 생각을 얘기하면, 스태프분들이 “이거는 재미없어요”라고 얘기해주고, 그러면서 조율해 나갔죠.

말씀하신 4화의 마지막 부분에 있는 롱테이크 씬이 커뮤니티에서 반응이 좋았어요. 그 장면으로 연출이 누군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김희원 배우란 걸 알고 놀라더라고요. 그런 시청자들 의 반응도 많이 보셨는지 궁금해요.

 

그 오픈톡? 그걸 처음 봤어요. 저는 그게 있는지도 몰랐는데, 칭찬들이 많으니까 볼 때 뿌듯하더라고요. 욕이 많았으면 아마 하나만 보고 안 봤을 것 같은데, 요즘 매일 봅니다. (웃음)

 

〈조명가게〉
〈조명가게〉

 

평소에도 연출 준비를  틈틈이 했다고 하셨는데, 그 기간이 어느 정도나 되나요?

제가 학교 다닐 때 전공을 연출로 했어요. (김희원 감독은 서울예술대학에서 연극 연출을 전공했다) 그렇지만 배우로 먼저 데뷔하게 되었고, 자꾸 배우로 캐스팅이 되니까 해야죠. 배우로 활동하면서도 틈틈이 계속 공부했죠.

공부를 했지만 막상 시작할 때는 이 카메라가 어떤 거고, 조명을 또 어떻게 해야 되고 이런 것들을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그래서 스태프들과 그런 공부를 많이 한 것 같아요. 이 거리에서는 어떤 렌즈로 찍어야 원하는 뉘앙스가 나오는지, 그런 공부를 할 때 우리 촬영 감독님께 많이 배웠어요. 제가 아이디어를 내더라도 촬영 감독님이 그럴 때는 이렇게 찍는 게 더 좋을 것 같다고 말씀해 주시기도 하고요. 진짜 소통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강풀 작가님과 배우로서 협업하실  때와 감독으로서 같이 일하실 때는 어떤 차이가 있으셨어요?

배우로 일할 때는 의견을 내면 간혹 자기 역할을 좋게 하려고 그러나, 오해를 하시는 분들이 있거든요. 그래서 강력하게 얘기를 못 해요. 그냥 제 의견은 이렇다 정도만 얘기하는데, 감독으로서 의견을 제시할 때는 조금 더 치열해요. 서로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하고, 양보할 건 양보하는데, 배우일 때보다 의견 조율 과정이 훨씬 치열했죠.

의견 차이가 있었던 장면 중 에 기억나는 게 있다면 어떤 장면인가요?

원래 대본에는 오승원(박혁권) 버스 기사가 걸으면 신발에서 물이 찔끔찔끔 나오게 되어 있었어요. 그래서 신발에다 물을 다 담아서 촬영했는데, 신는 순간 물이 다 나오더라고요. 그렇잖아요. 발이 신발에 들어맞으니까. 그러면 그것을 CG로 해야 되는 거예요. 근데 CG로 해봤더니 잘 안 보여요. 그리고 걸을 때마다 CG 처리를 해야 하니까 고난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거예요. 이거는 안 될 것 같아서 CG로 하지 말고, 실제로 물을 넣어서 하긴 했죠. 그런 에피소드들이 곳곳에 있어요.

〈조명가게〉
〈조명가게〉

배우로든, 감독으로든 강풀   작가의 작품을 두 번 하셨는데, 강풀 작품의 색, 혹은 장점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강풀 작가님의 글은 특유의 정서가 있어요. 판타지 액션인 <무빙>에도 강풀 작품 특유의 정서가 있어요. 그 정서를 살리느냐 살리지 못하느냐가 관건인 것 같아요.

원작이 갖고 있는 아날로그 감성이 시리즈에도 남아 있어서 좋았어요. 전체적인 톤앤매너는 어떻게 잡으려 고 하셨는지 궁금해요.

보통 웹툰이나 만화가 영화나 드라마로 많이 만들어지잖아요. 제 생각에는 그 만화를 구성하는 각각의 컷들이 인물의 가장 스페셜한 표정의 연결인 것 같아요. 그것을 영상으로 담을 때는 표정과 표정 사이의 변화를 잘 찍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되도록 ‘컷과 컷에 이어지는 정서가 뭘까’ 고민하고, 만약 만화 속 인물이 전 컷에서는 ‘으악’ 막 이랬다가 그다음에는 ‘허허허’ 이러면, 무슨 변화가 있기 때문에 이렇게 되는 거잖아요. 그런 변화를 잘 해석하고 찍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죠. 그렇게 하다 보니 아날로그처럼 보였나 봐요.

 

김희원 감독 (사진 출처 =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김희원 감독 (사진 출처 =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원작과 달리 시리즈 에서는 시간적 배경이 2018년도로 되어 있잖아요. 웹툰은 원래 2011년도 작품이었고요. 연도를 그렇게 설정한 이유가 있을까요?

골목길 디자인 때문에 그랬어요. 사후 세계의 골목길이 어떻게 하면은 판타지인데 판타지 같지 않고, 또 현실인데 현실 같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다가 ‘살짝만 현재가 아닌 것처럼 보여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시간적 배경을 조금만 과거로 갔죠. 너무 과거로 가면 판타지처럼 보이니까 안 되겠다 싶었어요. 그 정도 연도가 괜찮은 것 같더라고요.

 

1~4화에 이르는 시리즈의 전반부와 5~8화의 후반부는 다른 장르로 봐도 될 정도로 톤앤매너 가 달라졌잖아요. 두 파트를 연출할 때 어떻게 변화를 주셨는지 궁금합니다.

 

1화~4화까지는 다들 무섭다고 하시지만, 사실 이 무서움이 나중에 알고 보면 사랑의 표시잖아요. 그래서 완전히 무섭게 가면 안 될 것 같았어요. 그래도 장르물이기 때문에 무서움이라는 단어의 뉘앙스를 생각했어요. 예를 들면 서양에서는 처키 같은 인형이 칼을 들고 다니면 무섭고, 동양에서는 소복 입고 피 흘리고 있으면 무섭잖아요. 근데 저는 그 둘의 공통점이 사람이 뭔가 알 수 없는 것을 인지했을 때 무서움이 생기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약간 좀 알 수 없는 듯한 느낌만 유지하자, 다른 거는 생각하지 말자. 그래서 그런 미스터리만 유지하면서 찍었어요.

그리고 그 톤이 바뀌었다는데 제가 연극을 오래 해서 그런지 1화부터 4화가 1막, 5화가 브릿지, 6화부터 8화까지는 2막. 이 구도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을 했었고 그다음에 드라마의 재미를 생각했을 때는 사람들이 1부를 재미있게 봐야 2부로 넘어가잖아요. 그래서 이걸 넘어가게 하는 방법을 생각하다가 아예 회차마다 장르를 다르게 가보자고 생각했죠. 1부는 서스펜스, 2부는 호러, 3부는 활극, 4부에서는 반전을 주자 이런 계획을 짰고요. 그래서 1부는 정직하게 스탠딩으로 다 찍었고, 2부는 스탠딩보다는 카메라 무빙을 좀 줬어요. 3부 같은 경우에는 전부 핸드헬드로 찍었고요. 그리고 4부 마지막에서는 롱테이크로 마무리하자는 계획을 세웠어요.

〈조명가게〉
〈조명가게〉

어두운 골목에 있는 조명 가게의 이미지가 이 드라마의 주제와 이어지는 상징적인 이미지입니다. 연출하실 때 특별히 빛과 어둠을 두드러지게 보이게 하기 위해 신경 쓴 부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빛이 살려면 어두워야 빛이 살잖아요. 그거는 기술적인 부분이 많이 적용된 것 같아요. 조명 가게의 모든 빛이 다 개개인인 거잖아요. 원래 제 생각은 전구 하나가 한 사람이니까 엄청 많이 달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모든 사람이 다 하나의 빛이다. 지금 여기 앉아 계신 기자님들을 포함해서 저도 하나의 빛이고, 제가 죽으면 그 빛이 꺼지는 그런 상상을 했어요. 그래서 전구를 진짜 한가득 채우고 싶었는데, 그렇게 하면 화재 위험이 있더라고요. 원래 천장에다가 전구를 정말 많이 달았었어요. 근데 그걸 켰더니 한겨울인데도 안에서는 땀이 뻘뻘 나고 진짜 불이 날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최대한 많이 뺀 거예요.

그리고 많이 뺐는데도 너무 뜨거워서 조명을 흐리게 켜는 거 있잖아요. 그래서 조명의 한 5%밖에 안 켰어요. 다 줄인 거예요. 조금만 촬영해도 바로 뜨거워지고 불날 것 같아서요. 그렇지만 조명 가게의 이미지가 임사 체험하신 분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잖아요. ‘어두운 골목길과 같은 터널을 보고, 그 끝에 있는 빛을 봤다’. 그래서 대비되는 정도로는 밝기가 나와줘야 해서 밝은 빛을 보여 줄 때는 순간적으로 밝기를 확 올렸다가 다시 내리면서 빛을 조정했어요.

〈조명가게〉
〈조명가게〉

 

2화에서 현주가 혜원 에게 우산을 씌워주는 장면에서는 CG 기술을 활용하셨을 것 같은데, 그 장면은 어떻게 만들어진 건가요?

 

그 장면은 참 찍기 어려웠어요. 혜원의 키가 커질 때 혜원의 머리카락도 함께 자라게 해야 하잖아요. 근데 그거를 다 나눠 찍어야 하는 거예요. 결국에는 그것을 다 CG로 할 수 없으니까 옆에다가 점점 높아지는 비스듬한 길을 만들어서 한 사람은 그 길 위에 올라가게 한 거죠. 그러면 키가 커지는 걸 표현할 수 있거든요. 근데 그러면 어깨는 올라가는데 몸통은 길어지지 않으니까 그 부분만 CG로 메꾸는 거예요. 그러면서 머리카락까지 길어져야 하니까 또 한 사람이 막대기에 가발을 매달고 뒤에서 쫓아 올라갔죠. 그래서 저는 그 씬을 보면서 웃겼어요. (웃음)

〈조명가게〉
〈조명가게〉

아무래도 배우 활동을 먼저 하셔서 배우의 입장도 많이 공감되고 현장에서도 배우들과 소통하기 원활했을  것 같아요. 감독의 입장에서 배우로 활동한 경험이 어떻게 도움이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배우 생활을 30년 넘게 했는데 지금도 제 연기에 만족을 못 하거든요. 촬영이 끝나면 내가 잘한 건지, 못한 건지 엄청 많이 생각해요. 감독님이 오늘 너무 좋았다고 말해도 사실 그 말에 대한 믿음이 전혀 생길 수가 없어요. 집에 갈 때마다 마음이 굉장히 허전한데, 아마 우리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들도 다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요. 일부러 전화해서 “야 네가 오늘 제일 잘했다” 말해주고, 그러면 괜히 자기만 잘하는 줄 알죠. (웃음) 그렇게 배우들이 위안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감독과 배우가 얘기를 많이 해서 안정적인 상태에서 연기를 하는 것과, 그냥 연기를 하는 것하고는 좀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대화를 많이 했어요.

설현 씨는 인터뷰에서 감독님의 연기 디렉팅에 대해 굉장히 세세하게 해주셨다고 말했더라고요. 예를 들면 , “3초 있다가 말해라”, “고개는 15도로 들어라” 이렇게 되게 디테일한 부분을 말씀해 주셨다고.

저 그거 보고서 오해 생기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설현 배우가 연기한 지영 역은 귀신으로도 보였다가 서스펜스도 줬다가 해야 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정형화될 필요가 있어요. 그게 지영이라는 캐릭터에 훨씬 더 어울릴 것 같았어요. 그렇다고 해서 세 발자국 걸어가서 고개를 들고 이렇게는 말하지 않았어요.

 

〈조명가게〉
〈조명가게〉

 

마지막 회가 끝나고 나오는 쿠키 영상은 <무빙>의 세계관과 이어지는데요. <무빙 2>를 염두에  두고 만드신 것 같은데, 쿠키 영상에 관해서는 강풀 작가님과 나눈 이야기가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정말 쿠키 영상에 대해서는 대화를 나눌 수 없었습니다. 제가 너무 바빠서, 본편 찍는 데도 너무 바빴거든요. 대본을 받아서 정말 급하게 진행됐어요. 그래도 <무빙>에 출연했으니까 알잖아요. 윤정이가 “저는 안 다치는데요”라고 말하는데, 이거 재밌겠네 싶었죠. 윤정이가 대사를 칠 때의 미스터리한 느낌을 살리는 것에 집중해서 찍었어요.

만약에 연출 제안이 온다 면 앞으로도 또 하실 의향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연출 제안이 또 오면 할 것 같아요. 배우로 즐거움을 드리고 싶기도 하고요. 하여튼 많은 분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거라면 감독으로나 배우로나 다 좋을 것 같아요.